너구리랑 여우랑 1
아타모토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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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것은 조금 무섭지만, 만화로 보면 앙 깨물고 싶어지는 동물들. 지금까지 강아지나 고양이가 주인공인 만화는 봤었지만 너구리랑 여우랑 커플로 등장하는 만화책은 처음이다! 일본 현지에서 80만부 발행을 기록한 초히트작인데다, 애니메이션 방영작이란다. 너구리와 여우가 친구인 듯 아닌 듯한 사이로 등장, 투닥투닥하기도 하고 아껴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 속 어딘가에서 몽글몽글한 기운이 솟아오른다.

    

 

 

                           

                             

대사들이 많지 않다. 적은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행간과 동물들의 표정으로 분위기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해야할까.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귀여운 캐릭터를 잘 만들어내는 일본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느낌도 드는데, 요런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도 흠뻑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리뷰 쓰기 참 힘들다! 왜냐! 귀엽다는 말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에! 그냥 귀엽다! 마냥 귀엽다! 이런 것들(?)이 눈 앞에 있으면 무서움이고 뭐고 당장 껴안고 뒹굴뒹굴하고 싶다! 매일 속고 당하는 너구리와 시크하게 구박하면서도 은근 챙기는 여우. 이 조합 찬성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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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마을의 푸펠
니시노 아키히로 지음, 유소명 옮김, 노경실 감수 / ㈜소미미디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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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미터 절벽 아래 바깥 세계를 전혀 모르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온통 굴뚝투성이에 늘 검은 안개가 뭉실뭉실 피어올랐어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검은 연기에 묻혀서 파란 하늘,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몰랐어요.

                             

할로윈 축제로 마을이 들썩들썩하는 어느 날

밤하늘을 달리던 배달부가 배달하던 심장이 굴뚝마을로 떨어졌습니다.

마을이 너무 어두워 심장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모르는 배달부는 그냥 사라져 버렸어요.

 심장은 굴뚝마을의 외딴 곳, 쓰레기더미에 떨어져 쓰레기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행색은 초라하고, 입에서는 독가스를 뿜어내며 낡은 우산을 머리에 쓴 더러운 쓰레기 사람.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에 쓰레기더미에서 나와 마을로 향합니다.

                               

마을 아이들은 쓰레기 사람을 할로윈에 변장한 그 누군가로 알았어요.

하지만 곧 그 정체를 깨닫고는 괴물이라고 소리치며 도망쳤죠.

마을에는 곧 쓰레기 사람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그는 어디를 가나 멸시와 구박을 당했어요.

 

그런 그 앞에 굴뚝 청소부 소년 루비치가 나타나요.

루비치는 매일 쓰레기 사람을 깨끗하게 씻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쓰레기 사람에게 '푸펠'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어부였던 루비치의 아빠는 작년 겨울 파도에 휩쓸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소중한 아빠의 사진이 들어간 목걸이를, 루비치는 하수구에 빠뜨렸다고 이야기하면서

아빠가 말씀해주신 '별'이 보이는 하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굴뚝 마을에서는 누구도 믿지 않는 아름다운 하늘을요.

                             

친절한 루비치였지만 마을의 소년 악당 안토니오 일행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했어요.

결국 쓰레기 사람을 외면하고 등을 돌립니다.

 

아무도 씻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욱 더러워진 쓰레기 사람, 푸펠.

그는 매일 더 더러워졌고,

어느 날 초라한 몸을 이끌고 루비치의 집앞에 나타나 잠시 어딘가에 같이 가 줄 것을 부탁합니다.

                             

수천 개의 풍선을 매단 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 두 사람.

루비치의 아빠가 말한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바로 거기 있었어요!

그 곳에서 푸펠은 루비치의 아빠 사진이 들어간 목걸이를 꺼내듭니다.

                             

대화로 오랜 갈등과 미움을 해소한 두 사람.

부끄럽다며 집게 손가락으로 코 밑을 비비는 푸펠의 모습을 보고 루비치는 깜짝 놀라요.

그 이유는...!!

 

저는 이 장면을 보고 등에 소름이 돋고,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루비치처럼 그제서야 푸펠이 누구인지 깨달았거든요.

 

자신에게 유일하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매일 몸을 씻겨주었던 루비치를 위해 매일 하수구를 뒤지고 다녔던 푸펠.

그 잠시의 온기를 잊지 않고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내던지려고 했던 푸펠의 모습도,

사랑하는 아빠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믿었던 루비치의 모습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편견없이 손을 잡고, 상대방의 아픔을 잊지 않고 함께 해준다는 것.

그 소중한 메시지가 담긴 감성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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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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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 한 가운데, 앞에 있는 차량에서 딸 이지의 얼굴을 보았다! 앞뒤 잴 것 없이 일단 차량을 따라가보지만 결국 추격에 실패한 게이브. 아닐 거야, 이지는 지금 집에서 엄마와 함께 있을 거야, 내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며 애써 자신을 추슬러보지만, 노파심에 집으로 전화한 그를 맞이한 것은 경찰의 목소리. 강도가 들어 아내 제니와 딸 이지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 게이브는 급기야 가족을 살해한 용의자로 몰려 경찰수사를 받고, 장례 절차도 제대로 밟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모든 상황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게이브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이지가 살아있다는 것.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던 그 날 앞차에 타 있던 아이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딸을 찾아 고속도로와 휴게소를 헤매는 게이브의 수상한 조력자 사마리아인. 그리고 앨리스라는 소녀를 데리고 도망다니는 프랜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케이티. 각자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한 데 모여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초크맨] 과 [애니가 돌아왔다]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 C.J.튜더의 신작 [디 아더 피플]은 다른 사람의 복수를 대신 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누군가 당신의 딸을 성폭행했는데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한다면, 운전자가 당신의 가족을 치고 지나갔는데 면허가 취소되고 그만이라면, 의사의 과실로 당신의 아이가 죽었는데 경고만 받고 끝났다면'. 생각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고 제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할 상황이 아닌가. 망연자실, 살아갈 의욕마저 잃어버린 당신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 당신 대신 복수를 해주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단, 여기에는 조건이 따른다. 돈을 받지 않고 누군가 당신의 복수를 해주는 대신, 당신 또한 누군가가 복수를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것. 스릴러 소설이나 미드에서 자주 보였던 소재에 튜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미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프랜과 도망다니는 앨리스가 모으는 조약돌은 대체 어디에서 나타나는 것인가, 앨리스가 거울 속에서 발견하는 소녀는 누구인가.

 

독자에게 마냥 친절한 작품만은 아니다. 작품의 중반까지는 이 이야기가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등장인물들이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누가 누구를 위해 대신 복수를 했고 복수의 대가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나름 짜맞추느라 머리가 약간 복잡했다. 바뜨. 각 챕터의 마지막을 영리하게 장식한 덕분에 그 다음, 그 다음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었다. 뒷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책을 손에 들고 하룻밤 내리 읽어버렸다. 게다가 비극적인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 그 일이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등이 새삼 섬뜩하게 다가와 가슴 한 쪽이 서늘해진다.

 

튜더의 작품은 이것으로 세 번째. 초자연적인 소재의 작품은 무서워서 잘 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가의 작품에는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공포만을 앞세우지 않는 무엇. 사람의 내밀한 속마음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 다음은 어떤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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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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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21번째 거장은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화가 '페르메이르'. 그의 작품을 따라 걸음을 옮긴 저자 전원경님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감흥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우리가 희미한 과거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면, 그 모습은 아마도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이 보여주는 세계와 엇비슷할 것이다. 한때 우리는 그토록 맑고 온화하며 신실한 세계에 속해 있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 우리가 받는 인상, <진주 귀고리 소녀>나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이 주는 깊은 아름다움과 아련한 슬픔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이제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지나간 날들에 대한 우리의 영원한 그리움이다.

p276

10여 년 전,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고 나는 아주 완전히 이 그림과 페르메이르에 빠져버렸다. 명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로워 관련 서적을 읽기는 했지만 지식적인 부분에서는 문외한인 나에게, '추천한다면 이 화가'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날부터 나의 원픽. '왜 이 화가야? 같은 질문을 들어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끙끙대기만 했는데, 이번에 [페르메이르] 를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전원경님의 저 문장들로 확실히 알았다. 옛 것을 좋아하고 흘러간 시간과 발자취에 대한 로망이 한가득이었던 나와 페르메이르는 찰떡궁합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페르메이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1632년 델프트에서 태어나 1675년 사망한 그는 40년 조금 넘는 생애를 살았고 대부분의 삶을 델프트에서 보냈다. 델프트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지만 17세기에 존재했던 수천 명의 화가들 속에서 그리 유명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하지 않았던 17세기 네덜란드의 권력은 시민계급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림들은 자연히 시민들의 기호에 맞춰 그려졌는데, 덕분에 당대 유럽의 다른 화가들이 주로 그린 종교화 대신 풍속화, 정물화, 초상화, 트로니 등 새로운 주제를 담은 그림들이 넘쳐났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내 카타리나와 만나 결혼하고 (살아남은) 열 한명의 아이를 보살피며 그림을 그려 생활을 유지했던 페르메이르. 처가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했던 덕분에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느린 속도로 그림을 완성해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말년의 그는 곤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사후 아내 카타리나는 파산 신청을 했고,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팔아 얼마 간의 빚을 갚아나가면서 그의 작품이 전 세계로 퍼지며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그의 작품은 30여점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대에 같이 활동했던 렘브란트가 2,000점의 작품을 남긴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다.

 

                              

전원경님은 일단 2019년 초 일본의 오사카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페르메이르전에서 그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큰 작품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온 예수>와 <뚜쟁이>를 비롯한 여섯 작품을 관람한 후 네덜란드로 발걸음을 옮긴다. 페르메이르가 평생을 보낸 델프트에서 그의 자취를 느끼고, 암스테르담의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으로 이동해 <우유를 따르는 하녀>, <골목길>,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연애편지> 를 만났다,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진주 귀고리 소녀>가 전시되어 있는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이스를 거쳐 1668년 완성한 <회화의 기술>을 보유한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한 후 그의 말년을 더듬으며 런던에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빛의 섬세하고 미묘한 사용에 집중했고, 이러한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간을 비웠으며 등장인물의 수를 최소화했던 페르메이르 그림의 특징들. 빛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쓰이는 열린 창과 전체적으로 약간 어두운 공간, 페르메이르 그림에 늘 등장하는 친밀함과 고요함, 은은하게 흐르는 시적인 정서들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림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그림,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 다양한 해석들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림에 대한 저자의 자세한 해석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대표작가 100인이 '내 인생의 거장'을 찾아 12개국 154개 도시에서 불러내는 꿈결같은 이야기다. 철학, 문학, 화가,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거장을 아우르는 이 시리즈에 대한 감동은 이번 [페르메이르]를 통해 정점을 찍었다. <진주 귀고리 소녀> 가 어째서 이렇게 사람들을 매혹시키는지, 페르메이르의 수수께끼같은 생애 속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다면 부디 이번 책을 놓치지 마시라. 이 세상과 안녕하기 전에 꼭 한 번은 나도 네덜란드에 가서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직접 감상해야겠다.

예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큰 이유는 그 예술 작품이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바로 그러한 부분, 아스라하게 사라져가는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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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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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버린 남편과의 관계에 괴로워하는 칼라. 그녀가 애정을 쏟으며 돌보았던 염소 플로러마저 실종(?)된 상황에서 이웃에 사는 실비아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세상을 떠난 실비아의 남편과 관련하여 불순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남편과 킬킬대며 웃었던 칼라의 모습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한 채, 그녀의 젊음과 싱그러움에 실비아는 매력을 느꼈다. 남편을 떠나기를 소망하는 칼라를 돕기 위해 실비아는 친구에게 부탁해 거처까지 마련해주지만, 결국 칼라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실비아의 집 문을 두드리는 칼라의 남편 클라크. 다시는 자신들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며 으르렁거리는 클라크와 상황을 수습하려는 실비아 앞에 갑자기 나타난 플로러. 생각지도 못한 극의 전개와 결말이 잠시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을 읽는 것은 이번이 다섯 권째.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녀의 작품에는 별다른 사건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생활의 한조각을 뚝 떼어 그 장면을 묘사해놓은 것 같은 그녀의 작품은, 그러나 비루한 내 문장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을 발산한다. 이 작품집의 표제작인 <런어웨이>또한 그러하다. 이렇게 단순하게 줄거리를 소개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일, 평범한 일상을 단조롭게 서술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녀의 문장 하나하나를 읽다보면 어느 새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런어웨이>를 읽고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결말 때문이었다. 돌아온 플로러를 당연히 집으로 데려가 아내에게 보여주고 기쁘게 해 줄 것이라 믿었는데, 어째서인지 작품 속 플로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하다. 클라크는, 칼라가 애정을 쏟았던 플로러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나. 그래서 칼라에게 그토록 무정하게 대했나. 그런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을 부끄럽다 여긴 것일까. 스릴러 같은 면모를 보이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편.

 

이번 작품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연>, <머지않아>, <침묵>이었다. 세 편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줄리엣.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인연을 맺는 그녀의 삶이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소박하면서도 정제된 문장으로 펼쳐진다.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 중에서는 보지 못했던 형식이라 신선하게 다가왔는데, <침묵> 이라는 작품은 다소 충격이었다. 갑자기 소식을 끊은 딸 퍼넬러피. 우리나라 정서라면 울고불고 난리치며 딸의 행방을 좇고, 딸을 만났다는 딸의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든 수소문해 아이를 만나러 가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대체 이유가 뭐냐-라며 묻고 따지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랐을텐데. 어째서인지 줄리엣은 그런 퍼넬러피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언젠가는 딸이 소식을 전할 거라며 기다리기로 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가-싶을 정도의 쇼크. 두 눈을 비비고 재차 읽어봐도 퍼넬러피가 줄리엣과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있지 않다. 게다가 그것을 조용히 수용하는 줄리엣. 체념인가. 아니 체념은 아니었다. 작품 말미에 강요하지는 않지만 연락을 기다린다는 표현이 나와 있으므로. 허 참. 알다가도 모를 앨리슨 먼로의 작품세계라고 할까나.

 

그 동안 읽은 작가의 작품 분위기와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열정>이었다. 사귀고 있는 남자의 형과 순간의 일탈을 즐기고, 애인에게 그것 또한 자신의 결정이었음을 통보하는 그레이스.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잠자리를 갖고, 극단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위해 가족을 버렸던 여성의 모습을 그려왔던 앨리스 먼로. 곰곰이 생각해본다. 작가는 과연 그런 여자들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자유와 도피, 열정과 일탈. 인생에 있어 큰 사건이라 불릴만한 에피소드들임에도, 작가는 잔잔하고 평화롭게 장면들을 묘사한다. 겉에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 그리고 그 일상 속에 숨어있는 미스터리와 상황의 의외성. 나는 왜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을 멈출 수 없는가. 무엇이 나를 이토록 끌어당기는가. <앨리스 먼로 컬렉션> 도 이제 단 한 작품집이 남았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읽으면서는 이 의문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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