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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ㅣ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21번째 거장은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화가 '페르메이르'. 그의 작품을 따라 걸음을 옮긴 저자 전원경님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감흥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우리가 희미한 과거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면, 그 모습은 아마도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이 보여주는 세계와 엇비슷할 것이다. 한때 우리는 그토록 맑고 온화하며 신실한 세계에 속해 있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 우리가 받는 인상, <진주 귀고리 소녀>나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이 주는 깊은 아름다움과 아련한 슬픔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이제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지나간 날들에 대한 우리의 영원한 그리움이다.
10여 년 전,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고 나는 아주 완전히 이 그림과 페르메이르에 빠져버렸다. 명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로워 관련 서적을 읽기는 했지만 지식적인 부분에서는 문외한인 나에게, '추천한다면 이 화가'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날부터 나의 원픽. '왜 이 화가야? 같은 질문을 들어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끙끙대기만 했는데, 이번에 [페르메이르] 를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전원경님의 저 문장들로 확실히 알았다. 옛 것을 좋아하고 흘러간 시간과 발자취에 대한 로망이 한가득이었던 나와 페르메이르는 찰떡궁합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페르메이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1632년 델프트에서 태어나 1675년 사망한 그는 40년 조금 넘는 생애를 살았고 대부분의 삶을 델프트에서 보냈다. 델프트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지만 17세기에 존재했던 수천 명의 화가들 속에서 그리 유명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하지 않았던 17세기 네덜란드의 권력은 시민계급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림들은 자연히 시민들의 기호에 맞춰 그려졌는데, 덕분에 당대 유럽의 다른 화가들이 주로 그린 종교화 대신 풍속화, 정물화, 초상화, 트로니 등 새로운 주제를 담은 그림들이 넘쳐났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내 카타리나와 만나 결혼하고 (살아남은) 열 한명의 아이를 보살피며 그림을 그려 생활을 유지했던 페르메이르. 처가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했던 덕분에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느린 속도로 그림을 완성해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말년의 그는 곤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사후 아내 카타리나는 파산 신청을 했고,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팔아 얼마 간의 빚을 갚아나가면서 그의 작품이 전 세계로 퍼지며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그의 작품은 30여점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대에 같이 활동했던 렘브란트가 2,000점의 작품을 남긴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다.
전원경님은 일단 2019년 초 일본의 오사카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페르메이르전에서 그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큰 작품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온 예수>와 <뚜쟁이>를 비롯한 여섯 작품을 관람한 후 네덜란드로 발걸음을 옮긴다. 페르메이르가 평생을 보낸 델프트에서 그의 자취를 느끼고, 암스테르담의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으로 이동해 <우유를 따르는 하녀>, <골목길>,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연애편지> 를 만났다,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진주 귀고리 소녀>가 전시되어 있는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이스를 거쳐 1668년 완성한 <회화의 기술>을 보유한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한 후 그의 말년을 더듬으며 런던에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빛의 섬세하고 미묘한 사용에 집중했고, 이러한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간을 비웠으며 등장인물의 수를 최소화했던 페르메이르 그림의 특징들. 빛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쓰이는 열린 창과 전체적으로 약간 어두운 공간, 페르메이르 그림에 늘 등장하는 친밀함과 고요함, 은은하게 흐르는 시적인 정서들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림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그림,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 다양한 해석들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림에 대한 저자의 자세한 해석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대표작가 100인이 '내 인생의 거장'을 찾아 12개국 154개 도시에서 불러내는 꿈결같은 이야기다. 철학, 문학, 화가,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거장을 아우르는 이 시리즈에 대한 감동은 이번 [페르메이르]를 통해 정점을 찍었다. <진주 귀고리 소녀> 가 어째서 이렇게 사람들을 매혹시키는지, 페르메이르의 수수께끼같은 생애 속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다면 부디 이번 책을 놓치지 마시라. 이 세상과 안녕하기 전에 꼭 한 번은 나도 네덜란드에 가서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직접 감상해야겠다.
예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큰 이유는 그 예술 작품이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바로 그러한 부분, 아스라하게 사라져가는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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