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회화 - 오늘 만나는 우리 옛 그림
윤철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 다닐 때 동양문화사라는 수업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이라 깊지는 못해도 중국과 우리나라, 인도의 문화재를 감상하며 그 역사를 공부하는 시간이었어요. 문화재 속에 숨은 이야기를 해석하는 과정은 경이로웠고, 매 수업시간을 기다리게 만들었죠. 미술사학과 관련된 대학원에 진학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그 때의 수업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금도 그림을 해석하고 알아보는 일에 서투릅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욕심을 내던 저로서는 약간의 조바심이 나는 일이었어요. 서양미술과 관련된 책은 여러 권 읽었지만 동양미술, 특히 우리나라 미술과 관련된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저에게 [조선 시대 회화]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현대사회는 더욱 복잡해진 국제화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하는 문화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미술에는 정통하면서 조선 시대 미술은 몰라도 그만이라는 식이다. 이는 현대미술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머리말에 서술된 이 문장들 속에서 저자의 조선 시대 회화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왠지 딱 저를 꼬집어 말하는 것 같은 기분에 부끄럽기도 했고요. 저자의 글은 <옛 그림에 대한 선입견>으로 시작합니다. ‘옛 그림하면 떠오르는 수묵화는 먹으로만 그리지 않고, 색을 사용하지 않은 그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문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는 했지만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그들 뿐만은 아니었다는 것, 5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만큼 다양한 화풍이 존재했다는 것 등을 먼저 설명하면서 무엇을--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해 기본적인 사항을 설명해주고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그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던 중국과 사상들, 그리고 조선을 시기별로 나누어 각각의 시기의 특징들에 대해 다양한 그림을 예로 들어 알려줍니다.

 

조선 시대 회화하면 김홍도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저로서는 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각 시기의 대표적인 그림과, 그 그림에 얽힌 일화 등이 소개되어 있어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선 시대 회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적은 분야였기 때문일 거예요. 이렇게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와 의의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대학에서 교양수업 도서로 사용되어도 무리가 없을만큼 다소 난해한 부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조선시대의 회화를 엿보며 그 시대상과 문화를 접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도 서점 이야기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 지음, 류순미 옮김 / 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후회하거나 큰 불만은 없지만, 만약 서점 직원이나 도서관 사서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면 전 아마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점 직원과 도서관 사서는 저에게 직업으로 다가오기보다 꿈같은, 환상의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때마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습니다. 어떤 직업이든 힘들지 않은 일은 없겠지만 좋아하는 책 가까이에 항상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니까요.

 

오래된 백화점 내 긴가도 서점에서 일하는 츠키하라 잇세이는 숨은 명작을 찾아내는 보물 찾기 대마왕이에요. 어느 날 책을 훔치다가 들킨 소년을 뒤쫓던 중 소년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잇세이는 10년이나 일했던 긴가도 서점에 사표를 제출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인터넷으로 연락을 취해온 오후도 서점의 주인을 만나러 벚꽃으로 뒤덮인 작은 마을 사쿠라노마치로 떠나요. 그 곳에서 만난 오후도 서점의 주인은 잇세이에게 몸이 아픈 자신을 대신해 대신 서점을 맡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한편, 잇세이가 긴가도 서점을 떠나기 전 마케팅을 부탁한 숨은 보물 [4월의 물고기]의 진가를 알아본 동료들은,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열정을 쏟아냅니다. 시골 마을의 작은 오후도 서점과 오래된 긴가도 서점의 사람들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endif]--> 


읽는 사람의 기분을 살짝 좋게 만드는 것만이 책이 가진 힘이 아니다. 삶이 괴로울 때나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읽다 만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내일까지, 또 그 다음 날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제가 책에 하염없이 빠져들었던 계기는 임용시험 공부를 하면서부터였어요. 어쩐지 공부 이외의 다른 것을 하면 꼭 시험에 떨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첫 해의 시험결과는 낙방. 그 다음 해 우연히 알게 된 북카페를 통해 읽게 된 책 한 권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그래서 공부하다 중간중간 머리가 복잡해서 잠시 쉬고 싶을 때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게 또 위안이 되더라고요. 공부에도 더 집중하게 되고 삶에 활기가 생겼다고 할까요. 그렇게 책이 가진 위안의 힘을 알게 되고, 그 때 본격적으로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펼치기만 하면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주는, 이렇게 신비하고 경이로운 발명품이 또 있을까요.

 

이런 책들 가까이에서 누군가에게 책을 팔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팔리는 것을 보는 기분이란 얼마나 멋질지 저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오후도 서점 이야기]에는 그런 서점인들의 마음이 가슴 벅차게 그려져 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알리기 위해 온 마음과 노력을 바치는 모습에서,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나도 저 자리에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작품은 마음 속에 자리한 상처가 물론 책으로도 치유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 아픔이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따뜻하게 그려냅니다. 책도 중요하지만 곁에서 자신을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줘요.

 

이 작품을 읽다보니 저도 저만의 서점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그런 열망이 가슴 속에 자리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꽃잎 흩날리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저만의 서가를 열고 소중한 인연을 맺는, 언젠가를 한 번 꿈꿔보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윈터 에디션)
김신회 지음 / 놀(다산북스)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수업이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아이들에게 보노보노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보노보노와 포로리, 너부리 등이 아이들에게 어떤 이미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노보노를 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업이 끝났다는 홀가분함, 이 전부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김신회 작가님처럼 누군가는 보노보노와 친구들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얻었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정이나 사랑, 부모님이나 친구, 인간관계, 그 중 어떤 것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연관이 없었으면 또 어떻습니까. 편안하게 그 시간을 즐겼다는 자체만으로도 보노보노와 관련된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테니까요.

 

요즘 들어 특히 어떤 캐릭터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것 같아요. 보노보노, 곰돌이 푸, 디즈니 캐릭터와 관련된 도서들을 보며 솔직히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 캐릭터들과 연관 지어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작위적으로 보였어요. 여행 에세이나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 아닌 이상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저의 성향도 한몫 했을 겁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도 부정적인 마음이 더 컸어요. 그런 제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표지 때문이었습니다. 윈터 에디션으로 출간되어 새로운 옷을 입은 책표지가 마음을 들뜨게 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한 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 보노보노 에피소드들이 하나 둘 생각나면서 생각보다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입니다. 만화 보노보노와 작가의 이야기가 적절히 섞여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아요. 요즘 에세이는 본인 블로그나 일기장에 적을만한 이야기가 책으로 엮여 나와 이 정도면 나도 책 내겠다!-,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책도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짜임새도 있고 개인적으로 작가님이 잘난 척을 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그의 잘난 척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도 나와 같이 고민하고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같이 공감하고 싶고 서로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공유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보노보노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처음 이야기부터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진정한 위로는 내가 받고 싶은 위로>라는, 자신은 멋진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스스로가 받고 싶은 위로를 건네겠다는 글이 유독 마음에 박힌 것은, 저도 위로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줄곧 생각해왔기 때문일까요. 아무 일이 없다는 건 좋은 것이라는 걸 깨닫는 보노보노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웬만큼 노력해서 안 되는 건 노력을 더 해도 안 된다는 것을 미리부터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말도 앞으로 아이들을 대할 저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에세이를 여러 번 읽는 경우는 무척 드문데, 이 책은 한 번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페이지를 넘기며 내용을 음미했습니다. 보노보노 만화가 삽입된 것도, 책날개에 보노보노와 친구들 캐릭터에 대해 설명되어 있는 점도 저는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노보노를 보며 이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에요. 저도 오랜만에 다시 보노보노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벌써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남성의 시체를 가방 안에 넣고 지하철역에 유기하려 한 장차오가 경찰에 붙잡힙니다. 남자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음을 시인하며, 증거도 그가 범인이라고 가리켜요. 하지만 장차오는 곧 진술을 번복하고, 자오톄민과 옌량은 피해자인 장양에게 초점을 맞춰 사건을 재수사합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 검찰관이었던 장양이 십여 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을 끈질기게 조사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오톄민과 옌량은 마침내 장차오 사건 이면에 숨겨진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장양이 조사하고 있던 것은 대학동기인 허우구이핑이 살해당한 사건이었습니다. 허우구이핑은 법학과 3학년 학생으로 2년간 교육지원을 다녀오면 대학원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는 학교 프로그램에 자원, 2001년 먀오가오향의 초등학교로 부임했습니다. 한 소녀가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하자 진실을 폭로하려고 하지만 되려 소녀와 마을의 부녀자 성폭행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목숨을 잃었어요. 그의 여자친구였던 리징은 장양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탄탄한 미래를 꿈꾸던 장양은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정의로운 형사 주웨이, 법의관 출신인 천밍장과 허우구이핑 사건을 열성적으로 조사합니다. 그리고 지나간 10년의 세월. 장양이 잃은 것은 젊음과 일, 명예와 미래, 가정, 그리고 그의 목숨입니다.


이처럼 억울한 사건 하나도 바로잡지 못한다면, 도대체 자신은 왜 검찰관이 되려는 걸까? 나중에 간부가 되고 싶어서? 만일 그런 거라면 자신은 점점 혐오스러운 인간으로 변해갈 것이다.

어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저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사용하겠다는 용기는 어디서 나는 것인지,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아요. 장양에게 있어 허우구이핑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부정부패와 억울한 죽음 앞에서 눈 돌리지 않는 것, 그것이 장양을 장양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작품은 거대 권력에 맞서는 개인의 무력감과 절망, 답답함을 생생하게 그려냈고, 마침내 밝혀지고야 마는 진실을 선사하며 작품 말미에서는 엄청난 쾌감을 선사해줍니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걸린 오랜 시간과 고통은 어둠에 비유되며 어서 동이 터오길 간절히 바라게 돼요.

 

현실이 항상 소설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더 뼈저리게 느껴져요. 어린 소녀가 운전기사에게 함부로 말하고, 회사 대표는 사원을 폭행하고 모욕감을 주며, 갑과 을이라는 이상한 관계가 생겨난 세상.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일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려냈고, 하지만 비판과 논리에 더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정선까지 살려 무척 감동적이고 아프게 다가온 작품이었습니다.

 

[동트기 힘든 긴 밤]은 중국 버전의 [도가니]라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비리를 고백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는 불씨에 숨을 불어넣으며 잊고 살았던 것,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일깨워줘요. 저도 읽는 내내 장양이 느꼈던 절망과 무려감을 고스란히 함께 했고,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과연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장양처럼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까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런 장양의 모습이 영웅처럼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동트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품고 그 밤을 견뎌내고, 걸어오고 있을까요. 그들을 어떻게 응원하고 알아보아야 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전2권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인젠리 지음, 김락준 옮김 / 다산에듀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첫째 곰돌군이 태어난 후, 저는 저라는 사람의 밑바닥을 보았다고, 그 밑바닥을 짝꿍에게까지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출산과 육아라는 것은 제 인생에 찾아온 최대 행복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인내심을 시험당하는, 길고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같은 것이었어요.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해왔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첫째 곰돌군을 정말 애지중지했어요.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은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둘째 곰돌군이 태어남과 동시에 저는 저의 밑바닥의 밑바닥을 보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첫째 곰돌군의 고집이 세지고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시기와 제가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든 때가 맞물린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 기준을 곰돌군에게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곰돌군을, 사랑하는 우리 아들을 평가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요. 그러면 안돼, 이러면 어떻게 해, 더 조심했어야지. 어느 새 많이 자란 곰돌군은 저의 말투나 억양이 조금만 다정하지 않아도 이제 저의 눈치를 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이러지 말아야지, 내가 왜 이러나 싶어 반성하면서도 또 반복돼요. 앞으로 더 큰 일이 많이 있겠지만 요즘같은 때는 정말 제 인생 최대 위기라 생각될 정도로 마음이 많이 복잡하고 힘듭니다. 그런 와중에 만난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학습편, 관계편]입니다.

 

[좋은 엄마가 좋은 선생님을 이긴다]의 저자이기도 한 인젠리는 참신한 교육이념과 아이의 마음부터 읽는 교육법으로 수많은 엄마들을 감동시키며, 중국에서는 그녀가 없으면 가정교육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학습편, 관계편]은 그녀가 8년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좋은 엄마가 좋은 선생님을 이긴다] 출간 이후 받은 22만통에 이르는 상담 메일의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학습편과 관계편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이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궁극적으로는 아이와 엄마와의 올바른 관계형성을 목표로 둔 책이에요.

 

요즘 제가 특히 고민인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어도 좋은지, 악기는 언제부터 가르쳐야 좋을지, 배변 훈련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버릇이 나빠질지 등 사소하지만 부모라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영역들은 물론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방법, 아이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에 대한 조언, 부모의 자존감과 관련된 아이의 행복에 대해 주옥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때로는 단호하고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아이보다 어머니가 더 문제라는 호된 질책도 마다하지 않으며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띠지에 적힌 문구가 무척 거슬렸어요. ‘엄마라면 다그치지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세요’, ‘엄마라면 욱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아이 마음부터 헤아려보세요’. 엄마만 있고 아빠는 없는 것인지, 한쪽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부모 수업인데 왜 중요한 역할을 엄마에게만 강요하는지 마음 한쪽이 불편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여전히 양육의 중심이 엄마 쪽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요즘은 아빠의 역할도 중요시되고 있고,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니까요. 불만스러웠던 마음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 풀어지기는 했습니다만.

 

줄까지 쳐가며 읽은 육아서는 두 번째에요. 책을 읽으면서 나의 기준을 우리 곰돌군에게 너무 강요했구나, 하루 세수 안 하고 잔다고, 하루 밥 대신 간식을 조금 더 먹는다고, 하루 양치질 안 한다고, 하루 너무 늦게 잔다고, 물 마시다가 컵을 깨트린다고, 화가 나서 물건 집어던진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겨우 31개월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힘들게 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동안 우리 곰돌군 마음보다 제가 세운 규칙을 더 중요시하고 있었다는 것에 부끄러웠어요.

 

어쩌면 저는 내일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반성하는 밤을 보낼 수도 있어요. 되도록 그런 시간을 차츰 줄여보려고 합니다. 이 두 권의 책들은 앞으로 저의 곁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요. 여러 번 반복하며 읽어야겠습니다. 작가의 [좋은 엄마가 좋은 선생님을 이긴다]도 궁금해요.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실천하고 행동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