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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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남성의 시체를 가방 안에 넣고 지하철역에 유기하려 한 장차오가 경찰에 붙잡힙니다. 남자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음을 시인하며, 증거도 그가 범인이라고 가리켜요. 하지만 장차오는 곧 진술을 번복하고, 자오톄민과 옌량은 피해자인 장양에게 초점을 맞춰 사건을 재수사합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 검찰관이었던 장양이 십여 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을 끈질기게 조사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오톄민과 옌량은 마침내 장차오 사건 이면에 숨겨진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장양이 조사하고 있던 것은 대학동기인 허우구이핑이 살해당한 사건이었습니다. 허우구이핑은 법학과 3학년 학생으로 2년간 교육지원을 다녀오면 대학원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는 학교 프로그램에 자원, 2001년 먀오가오향의 초등학교로 부임했습니다. 한 소녀가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하자 진실을 폭로하려고 하지만 되려 소녀와 마을의 부녀자 성폭행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목숨을 잃었어요. 그의 여자친구였던 리징은 장양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탄탄한 미래를 꿈꾸던 장양은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정의로운 형사 주웨이, 법의관 출신인 천밍장과 허우구이핑 사건을 열성적으로 조사합니다. 그리고 지나간 10년의 세월. 장양이 잃은 것은 젊음과 일, 명예와 미래, 가정, 그리고 그의 목숨입니다.


이처럼 억울한 사건 하나도 바로잡지 못한다면, 도대체 자신은 왜 검찰관이 되려는 걸까? 나중에 간부가 되고 싶어서? 만일 그런 거라면 자신은 점점 혐오스러운 인간으로 변해갈 것이다.

어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저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사용하겠다는 용기는 어디서 나는 것인지,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아요. 장양에게 있어 허우구이핑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부정부패와 억울한 죽음 앞에서 눈 돌리지 않는 것, 그것이 장양을 장양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작품은 거대 권력에 맞서는 개인의 무력감과 절망, 답답함을 생생하게 그려냈고, 마침내 밝혀지고야 마는 진실을 선사하며 작품 말미에서는 엄청난 쾌감을 선사해줍니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걸린 오랜 시간과 고통은 어둠에 비유되며 어서 동이 터오길 간절히 바라게 돼요.

 

현실이 항상 소설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더 뼈저리게 느껴져요. 어린 소녀가 운전기사에게 함부로 말하고, 회사 대표는 사원을 폭행하고 모욕감을 주며, 갑과 을이라는 이상한 관계가 생겨난 세상.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일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려냈고, 하지만 비판과 논리에 더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정선까지 살려 무척 감동적이고 아프게 다가온 작품이었습니다.

 

[동트기 힘든 긴 밤]은 중국 버전의 [도가니]라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비리를 고백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는 불씨에 숨을 불어넣으며 잊고 살았던 것,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일깨워줘요. 저도 읽는 내내 장양이 느꼈던 절망과 무려감을 고스란히 함께 했고,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과연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장양처럼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까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런 장양의 모습이 영웅처럼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동트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품고 그 밤을 견뎌내고, 걸어오고 있을까요. 그들을 어떻게 응원하고 알아보아야 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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