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오랜만에 다시 보다가 떠나버린 여인을 막연히 기다리는 젊은 경찰관의 독백이 마음에 다가왔다.

"실연당했을 때 나는 조깅을 한다. 그럼 수분이 모두 빠져나와 눈물이 더 이상 안 나온다."

p 132

 

 

이 부분을 읽는데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달리는 것은 커녕 가볍게 걷는 것도 안 하던 나였는데, 생전 처음으로 몇 날 며칠 공원을 뛰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대로 땅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아서.

공지영님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다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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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쳐버린 이 별에서 인생이라든가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이미지를 느끼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이 별이 인간의 한 생애와 맞먹는 76년이라는 독특한 주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핼리 혜성에 마음이 있다면 혜성은 다시 지구 가까이 돌아왔을 때 그가 76년 전에 보았던 인류의 대부분이 무덤 속에 누워 있고 그들의 낯선 후손이 저마다의 행복과 슬픔 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광경을 고즈넉이 굽어볼 것이 아닌가.

p 105

 

 

이 대목 읽는데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고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 고독함. 적막감. 외로움. 쓸쓸함. 다음 번 핼리 혜성을 볼 수 있는 해는 2061년이라는데, 그 때즘 되면 아마도 나는 물론 나의 가까운 이들도 대부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자신을 보았던 사람들은 아무도 남지 않는 이 지구 위를 날아갈 핼리 혜성.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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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가슴을 찌르르하게 만드는 부분을 종종 만난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도 아닌데, 이 대목에서 왜 눈물이. 아마도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든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조차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보다 아이들을 먼저 챙기게 된다. 요즘 아동학대 기사를 자주 접하는데, 그들은 과연 이런 마음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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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한 생활을 꿈꾸면서 휴대폰 만들기에도 저항하고, 이사를 하면서 오래된 장롱을 처분할 때에는 자신이 '파괴와 착취와 살육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저자.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설레임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다소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렇게 자신만의 '반자본주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삶에는 일련의 스산함이 있어야 한다. 그 스산함은 우리가 헐벗은 상태로 태어났다는 사실에의 끝없는 상기가 아닌가 한다.

p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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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은 생각하면 하나의 일탈이다. 그것은 단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균적 가치관에 저항하며 구축된, 다소 고독한 가치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 한 발자국을 확보할 수 있는 자를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비록 한 발자국을 물러섰지만 그의 앞에는 몇 배나 더 넓은 영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p 45

 

 

앗! 이 부분,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생각해본 적이 있는 내용이라 깜짝 놀랐다. 직장 다닐 때를 떠올려보면 그 순간에는 손해보는 것 같더라도 멀리 보면 오히려 이득이 되었던 경우도 더러 있었던 것 같다. 고집을 부려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다가 후회했던 경험도 있었다. 우선 내 것을 먼저 취하고 싶더라도, 마음을 일단 가라앉히고 물러설 수 있다면 물러서는 것.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도 여유를 주고, 상대에게도 같은 편안함을 전달하는 일인 것 같다.

뭐, 늘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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