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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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 이름, 브라운 신부. 나 또한 신부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나, 첫 단편을 읽는 순간 '오잉?'했더랬다. 표제작 <푸른 십자가>에 수사관 발랑탱이 나오길래 그저 단순히 '이것은 발랑탱 시리즈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둥글고 넓적한 얼굴에 두 눈은 북해처럼 공허한 작달만한 신부. 발랑탱의 눈에 이 신부는 세상 물정 모르고 어수룩한 사람이었다. 아니, 어떤 사람이 자기가 지금 '진짜 은과 '푸른 보석'으로 만든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의 이런 진면목은 작품의 말미에서 드러난다. 이렇게나 수완 좋고 똑똑한 신부님이라니!

 

 

브라운 신부님의 적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플랑보로 이 인물은 <푸른 십자가>를 시작으로 <기묘한 발소리>, <날아다니는 별들>,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 그 인연이 이어진다. 세상을 뒤흔든 플랑보의 죄명은 절도. 수법은 늘 새로웠고 매번 전설을 만들었으며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방법으로 범죄 행각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런 플랑보도 브라운 신부님 앞에서는 말 잘 듣는 동물처럼 온순해지는 느낌이다. 초반에는 신부님에게마저 약간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플랑보였지만, 거듭되는 만남과 들통나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날아다니는 별들>에서는 뭔가 깨달은 듯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급기야 <보이지 않는 사람>에서는 절도도 그만두고 사립탐정으로 거듭나-비록 역할을 미미해도- 브라운 신부님과 함께 일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니, 이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진 협찬 : 눈마음 님

 


신부님이기에 늘 온화하고 다정할 거라 기대하면 오산이다. <기묘한 발소리>에는 가입하기도 쉽지 않은 어떤 클럽의 회원들이 고결하고 도도하게 연회를 즐기는데, 후에 그들은 사건의 범인을 알게 된 후 자신들이 '신사'라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들에게 신부님이 가하는 일침!!

 

 


그렇습니다. 신사가 되는 건 아주 힘든 일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종업원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힘들 거라는 생각을 때때로 하곤 한답니다.


p 69

 

 

푸근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냉철하고 예리한 시각과 타고난 예민함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해내는 브라운 신부님. 이 단편집에서는 네 편 밖에 만날 수 없었지만 조만간 다른 이야기들도 찾아봐야겠다. 브라운 신부님이 보여주는 뛰어난 해결력도 매력적이지만, 왜 자꾸 플랑보와의 조합이 기대되는 걸까! 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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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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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를 먹는다는 소문을 듣고 단도와 권총으로 무장해 한 가정을 습격한 마을 사람들. 그들은 '선한 신'의 권능을 행사하기 위해 그 집으로 몰려가 문을 부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생명을 끝장내버린다. 자신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성한 어머니 소를 죽이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 가르침을 주었다 여긴 그들이 발견한 것은 작은 아이스박스 속 닭 한 마리.

 

 


그런데 소고기는 어디 있어?


p290

 

 

지반이 겪은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저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받고 싶어서 다소 선동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지반. 하지만 이미 그녀는 테러리스트에게 세뇌당해 정부를 비판하고 급기야 얼마 전 일어난 기차 방화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순식간에 감옥에 들어가 있다. 아무리 자신은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기차에 불이 났던 그 시각에는 히즈라(트렌스 여성)인 러블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러 가던 길이었다고, 들고 있던 꾸러미는 영어책이라고 주장해도 그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용기내어 털어놓은 자신의 인생은 '테러리스트'로 거듭난 그녀의 모습에 한층 신빙성을 더하는 이야기로 둔갑해버렸다. 소문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야 했던 한 가정과, 역시 막연한 추정으로 테러리스트로 몰린 지반.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정말 소고기를 찾을 수 있었을까.

 

여기에 배우를 꿈꾸는 러블리와 한때 지반을 가르쳤던 체육 교사가 등장한다. 지반에게 영어를 배우던 러블리는 왜 아무도 지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느냐며, 지반의 어머니에게 기꺼이 자신이 증언하겠다고 나섰다. 한때 지반을 멘티로 생각했으나 생계를 위해 학교를 떠나야했던 지반의 속사정도 모른 채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체육 교사는, 텔레비전에서 지반을 발견하고 그녀가 자신의 제자였던 어느 한 때를 생각한다. 이쯤되면 기대하기 마련이다. 둘 중 하나는 그래도 지반을 위해 나서주겠지. 자신이 추종하는 당을 위해 거짓 증언을 하고 돌아다니는 체육 교사라도, 제자였던 지반을 놓지는 않겠지. 순수한 러블리니 지반을 도와줄거야.

 

작가는 독자에게 가차없이 현실을 들이민다. 부패와 타락, 계급 상승의 욕구를 지닌 사회에서 타인의 인정을 기대한 쪽이 잘못이라는 듯이. 이쯤되면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소문인가, 진실인가, 진실의 탈을 쓴 거짓인가. 우리는 소문을 듣고 몰려가는 마을 사람인가, 습격당한 남자 혹은 지반인가. 그도 아니면 러블리, 혹은 체육 교사인가. 나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짧고 단순한 문장 속에 삼라만상이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다. 덤덤하게 읽었는데 마음과 머리가 모두 시끌시끌하다.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국 마지막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 선택의 순간, 지키고 싶은 것, 잃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이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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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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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고기는 어디 있어?
p290

소고기를 먹는다는 소문을 듣고 단도와 권총으로 무장하고 한 가정을 습격한 사람들. 그 가정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이었지만 그것은 이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광기에 휩싸인 그들이 난리를 친 후 발견한 것은 아이스박스 속 닭 한 마리. 과연 소고기는 어디 있을까.

지반의 사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지반이 테러리스트에게 선동 당해 기차에 불을 지은 방화범이라 확신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테러리스트는 빠져나가고 누명을 쓴 그녀만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다. 씁쓸하고 마음 아픈 결말. 어쩌면 이것이 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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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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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정말 이상하네! 강도가 들고 가정 내 문제가 일어나도 이웃 간 싸움이 날 때마다 우연히 지나가다니!
p152

콜카타의 ‘세 사람’ 중 마지막 인물은 지반이 다녔던 학교의 체육 교사였다. 그는 지반을 멘티로 생각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나, 지반은 그를 그저 다른 교사보다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반이 학교를 떠난 것에 배은망덕하다고 느꼈을까.

현재 그는 자신이 지지하는 제1야당, 국민복지당을 위해 거짓 증언을 하며 돌아다닌다. 조금의 가책도 보이지 않고. 그가 지반 사건에서도 거짓 증언을 하게 될까. 기자를 철썩같이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지반도 그렇고, 불안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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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 인류사에서 뒷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다! EBS 알똑비 시리즈 1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 EBS BOOKS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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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분류하는 기준에서 '통사'도 중요하지만 뒷이야기의 재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역사에 흥미를 느끼는 방법으로 이 '뒷이야기'의 활약이 지대하니까요! 어쩐지 나에게만 들려주는 비밀 같은 거랄까요. 어렸을 때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던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프로그램을 무척 재미있게 봤었는데, 요 책을 읽다보니 어쩐지 그 프로그램을 볼 때 받았던 느낌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저건 진짜일까 가짜일까, 이 이야기는 진실일까 거짓일까. 침이 꼴깍 넘어가는 비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클레오파트라가 백인이라는 이야기, 혹시 들어보셨나요? 저는 그녀가 이집트 사람이니 백인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흑인이거나, 혹은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저 '이집트인'이라고만 여겨왔죠. 그런데, 두둥! 아니랍니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계 백인이랍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복잡한 이런 저런 사연이 있는데요, 마케도니아 왕국의 멸망과 관련이 깊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그 이름, 알렉산드로스 왕이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이집트를 정복하고 동쪽 지역으로까지 진출해 인도까지 달하는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은 부하 장군들에 의해 4개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그 중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차지한 거예요. 그의 후손들이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는 이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입니다. 맞아요!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사람도 이미 여러 명이었던 겁니다. 게다가 이름 자체도 이집트식 이름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어로 '아버지의 영광'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식 이름이라니, 오와, 이리 짧은 지면에 담긴 지식이 왜 이리 풍부한가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이야기한 사람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라 루이 14세의 부인인 마리 테레즈였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죠? 원래는 '빵이 없으면 파이의 딱딱한 껍질이라도 먹게 하세요'라는 말이 앞의 문장으로 변질된 것인데요, 여기에도 정치적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프랑스인들이 적국으로 여겨온 오스트리아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자, 혁명을 앞두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를 나쁘게 조성할 필요성에 의해 의도된 계략이었던 겁니다.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이들에게 감사와 검소함을 가르쳤고, 측근들과 시종들도 그런 그녀의 겸손과 친절함을 칭찬했다고 해요. 심지어 처형 당하기 전에 쓴 편지에도 원망의 말 대신 용서와 가족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당시 시민들 사이에 퍼져 있던 극심한 생활고, 그리고 적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여성이 자신들의 왕비가 되었던 것에 대한 불만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허황된 소문을 만들어냈다니, 너무나 가엾습니다.

 

요즘 저희 첫째 아이가 잘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에요. 아직 한글을 떼지 않아서 소리를 듣고 부르다보니 '말목 자른 김유신'을 '발목 자른 김유신'으로 부르기도 하는 등 포복절도할만한 가사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열심히, 즐겁게 부르고 있습니다. 요 노래 가사 첫부분에 '단군 할아버지'가 등장하십니다. 결국 단군 할아버지의 출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웅녀님이 등장하지 않겠습니까. 곰이었던 웅녀님이 사람이 되기 위해 백일 동안 동굴 안에서 쑥과 마늘만 먹었다는 이야기,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거 아닙니까! 웅녀님이 사람이 되는 그 당시 한반도에는 마늘이 없었대요. [삼국유사]에 마늘로 표기된 한자는 '산(蒜)'이라는 것으로 이것은 달래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달래는 매운 맛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무릇'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식용 또는 구충제로 사용되었다고 해요. 웅녀님이 드신 것이 달래든 무릇이든, 마늘은 확실히 아니었고, 또 이 이야기에는 부족 간 연합과정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 기억하십셔!

 

페이지가 그냥 쑥쑥 넘어갑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더 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아껴 읽으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 어떤 스릴러보다 흥미진진한 반전 이야기, 역사 속 뒷이야기의 커밍아웃, 재미납니다!

 

**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EBSBOOKS>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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