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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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해하느냐고, 이 사형수를.


p165

 

시종일관 이어지는 무미건조한 문체 속에서 이 문장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망설였다. 나는 과연 이 주인공을 이해하고 있는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마저도 그저 일상의 한부분처럼 받아들이는 듯한 뫼르소의 모습은 기이하게 다가올 정도였다. 이미 시신이 된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도 보려하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집에 돌아와 앞으로 열두 시간을 잘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뫼르소.

 

그의 모든 생활이 그러했다. 사랑하지는 않지만 잠자리를 함께 하는 마리에게 어쩌면 결혼할 수도 있겠다 이야기하는 뫼르소의 삶은 어쩐지 권태로 가득차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가 무엇에 기쁨을 느끼고 살아있다는 실감을 하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가끔 수영을 하고, 술을 마시고, 어쩐지 되는대로,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숨만 쉬고 있는 듯한 인물. 그런 그가 우연히 사람을 죽이고 만다. 그런데 과연 우연이었을까. 단 한발이었다면 몰라도, 어째서 그는 잠시 쉬었다가 연달아 네 방을 더 쏜 것인가. 죽음에 대한 무감함이었던가.

 

어쩌면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재판장에서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사람을 죽인 사실보다도,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사람이라면 응당 부모의 죽음 앞에서 보여야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수군거림. 뫼르소는 그렇게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뫼르소가 감정을 터뜨린 것은 사형이 확정되고 사제가 그를 방문했을 때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나서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실감한 뫼르소.

 

말로만 듣던 알베르 카뮈의 그 [이방인]을 마침내 만났다. 무척 기대하고 읽었는데 읽는 내내 뫼르소의 마음이 읽히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왜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을 보려 하지 않는가, 삶에 대해 그는 왜 그리 무덤덤한가. 아마도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러야 했던 시대 배경 때문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나는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을지 알 수 없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깊은 허무에 빠져들었을 것이고, 그 어떤 일로도 진정한 기쁨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며, 만연한 죽음에도 큰 충격을 받지 못했으리라.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찾아헤맸을 사람들. 자신의 죽음 앞에서야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느꼈을까.

 


 

 

어려운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읽는다해도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는 나에게는, 어둠 속에서 팔을 내밀어 길을 따라가는 듯했던 이야기. 애초에 세계문학, 고전소설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오만이겠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몇 번씩 읽어야 하지 않았던가. [이방인]도 앞으로 두 세번은 더 읽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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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저편 이판사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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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읽어야 하는데 특정 부분 특정 단어만 끄집어 내서 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p 70

'요양소'에 갇히게 된 마쓰. 밥 먹는 시간, 목욕 시간, 소등 시간이 모두 정해진 이 곳은 감옥과도 같다. 심지어 제대로 된 식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전향이 되었는지 확인한다는 이유로 억지로 내키지 않는 작품을 써내야 한다. 혹시나 탈출할 길이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지만 주변은 절벽 뿐.

기리노 나쓰오님은 그저 '쎈' 언니 정도로만 여겼는데 작가 본인은 이래저래 상처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 소설은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읽어야 한다-는 마쓰의 이야기가 작가 본인의 목소리인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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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저편 이판사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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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페도필리아, 페티시 등 독자들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드는 작품을 쓰는 마쓰 유메이. 어느 날 총무성 문화국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라는 곳으로부터 소환장을 받는다. 약간의 강습 등이 있으니 숙박 준비를 하여 출두하라는 내용. 대체 무엇 때문에 소환 당한 것인지 이유도 제대로 모른 채 불안한 예감을 안고 도착한 이바라키 현 경계에 있는 지바 현의 바닷가 도시. 도착부터 감점을 받은 마쓰는 감금당한다!

 

쎈 언니 기리노 나쓰오가 돌아왔다! 출판사 북스피어의 기대되는 <이판사판>시리즈. 그 시작을 알릴 걸작.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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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iller's Wife 킬러스 와이프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 1
빅터 메토스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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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인 제시카 야들리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그녀의 전남편 에디 칼이 잔인한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었던 것. 그가 투옥될 당시 임신 중이었던 제시카는 평생의 꿈이었던 사진작가의 길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진학해 검사가 되었다. 14년의 세월이 흘러 비록 사춘기를 지나는 딸 타라, 새로운 연인인 웨슬리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제시카에게 FBI 요원인 케이슨이 도움을 요청한다. 부부들이 살해된 연쇄 살인 사건이 과거 에디 칼의 범행과 흡사하다며 함께 수사하기를 원한 것.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하던 제시카지만 이내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날 방법은 이것 뿐이라며 마음을 다잡고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 과연 이 범인은 에디의 모방범일까?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에디의 음모는 무엇인가. 사형 집행을 앞둔 에디의 게임판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장르 소설의 백미는 역시 법정 스릴러라고 생각한다. 적을 쳐부수는 한방. 그 마지막을 위해 주고받는 논리와 긴박감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야기의 초반은 범행의 단서를 따라가는 제시카와 케이슨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면 후반전은 법정에서 이루어진다. 어쩌면 범인이 이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범인은 그 사람! 그 범인이 너무나 빨리 밝혀져서 혹시 이 사람이 아닌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작가가 범인을 빨리 밝힌 이유는 제시카와 그의 법정 싸움을 그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에디 칼의 모방범이라고 여겨지는데다 제시카가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받게 되는 부당함, 그 와중에 벌어지는 정치 싸움, 범인 측과의 치밀한 두뇌 헐투까지 이런 저런 재미난 요소가 적절히 버무려진 작품이었다.

 

스토리라인도 흥미롭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번역된 문장이 매끄럽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상한 번역 탓에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문장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읽어나가는 데 별로 막힘이 없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이 다 말이 많다. 이 경우 말이 많다는 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등장인물들이 자기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다 해준다는 말이다. 범인의 정체 외에는. 어설프게 추측하지 않아도 되고 개개인의 심리나 상황이 명확하게 드러나서 그 점이 좋았다.

 

범행이 너무나 잔인하고 가슴 아파서 읽는 내내 숨이 턱 막혔던 이야기. 깊고 진한 어둠 속에 다리 한쪽을 담궜다가 빼낸 듯한 기분이다. 마지막 반전은 조금은 알쏭달쏭. 그래서 이것이 과연 제시카에게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생각해봐야 했다. 혹시 속편을 예고하나. 혹시나 <제시카 야들리> 시리즈로 출간된다면 얼마든지 계속 읽을 의향이 있다!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키멜리움>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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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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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에피미치 라긴이라는, 한 의사가 있어요. 원래 성직자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의학부를 마친,  귀족 집안의 자제였죠. 현재는 병원의 의사로 일하지만 딱히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이라거나 긍지를 찾아보기는 힘든 인물입니다. 병원 시설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 환자들이 어떤 부당한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에도 그닥 관심 없어 보이거든요.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이성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등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찾아오는 친구도 많지 않아서 저녁에 만나는 우체국장만이 벗이라면 벗이랄까요. 그런 에피미치가 6호 병동의 이반 드미뜨리치 그로모프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 사람에게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6호 병동에는 총 다섯 명의 사람이 입원하고 있는데 그 중 이반 그로모프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남자예요. 서른세 살의 귀족 출신이었으나 형과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뜨고 가세가 기울면서 과거 누렸던 호사스러운 생활과는 다른 세상을 맛봐야 했습니다. 훌륭한 교육도 받았고 책도 많이 읽은 그는 도시 주민들의 무지와 무기력을 비난하곤 했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그는 어느 날 두 명의 죄수와 죄수들을 호송하는 군인과 맞닥뜨립니다.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이 언젠가 족쇄를 차고 감옥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돼요. 그것을 시작으로 그의 망상은 정도가 더해지며 결국 미쳐버리기에 이른 겁니다. 이런 그로모프와 에피미치는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삶과 죽음, 죄와 현실에 대해 논쟁하게 됩니다.

 

작품이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저에게는 조금 어렵게 다가온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제 나름대로 풀어보자면 '과연 우리는 정말로 모두 미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로모프와 자꾸 대화를 나누는 에피미치를 점차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며 급기야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런 주변 사람도 제 눈에는 딱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병원 시설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에피미치의 자리만 노리는 또 다른 의사, 같이 떠난 여행길에서 돈을 빌려놓고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에피미치를 병적으로 몰아가는 우체국장 등을 보면서 우리는 단지 어떤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덕적인 태도와 논리는 여기서 거론할 일이 못 됩니다. 모든 일은 우연에 달려 있으니까요. 붙잡힌 사람은 갇혀 있는 것이고, 붙잡히지 않은 사람은 돌아다니는 것이지, 그 이상은 없습니다. 내가 의사이고 당신이 정신병자라는 데 허무한 우연만 있지 도덕성이나 논리는 없습니다.


p55-56

 

저에게는 여운이 남는 비극적인 이야기였어요. '감옥과 정신병원이 있는 한, 누군가 거기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라는 문장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요. 사회적 인식과 여론에 의해 잘못 진행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걸까, 생각하며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인생의 일반적인 이야기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표제작 <6호 병동> 외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도 만나실 수 있어요. 이 작품 또한 우리 삶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이야기. 역시나 저에게는 여운이 남아서 말로 다 표현하기도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져셔 그런가, 어째 작품들이 전하는 이미지에 우울해요. 으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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