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안드레이 에피미치 라긴이라는, 한 의사가 있어요. 원래 성직자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의학부를 마친,  귀족 집안의 자제였죠. 현재는 병원의 의사로 일하지만 딱히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이라거나 긍지를 찾아보기는 힘든 인물입니다. 병원 시설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 환자들이 어떤 부당한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에도 그닥 관심 없어 보이거든요.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이성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등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찾아오는 친구도 많지 않아서 저녁에 만나는 우체국장만이 벗이라면 벗이랄까요. 그런 에피미치가 6호 병동의 이반 드미뜨리치 그로모프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 사람에게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6호 병동에는 총 다섯 명의 사람이 입원하고 있는데 그 중 이반 그로모프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남자예요. 서른세 살의 귀족 출신이었으나 형과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뜨고 가세가 기울면서 과거 누렸던 호사스러운 생활과는 다른 세상을 맛봐야 했습니다. 훌륭한 교육도 받았고 책도 많이 읽은 그는 도시 주민들의 무지와 무기력을 비난하곤 했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그는 어느 날 두 명의 죄수와 죄수들을 호송하는 군인과 맞닥뜨립니다.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이 언젠가 족쇄를 차고 감옥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돼요. 그것을 시작으로 그의 망상은 정도가 더해지며 결국 미쳐버리기에 이른 겁니다. 이런 그로모프와 에피미치는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삶과 죽음, 죄와 현실에 대해 논쟁하게 됩니다.

 

작품이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저에게는 조금 어렵게 다가온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제 나름대로 풀어보자면 '과연 우리는 정말로 모두 미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로모프와 자꾸 대화를 나누는 에피미치를 점차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며 급기야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런 주변 사람도 제 눈에는 딱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병원 시설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에피미치의 자리만 노리는 또 다른 의사, 같이 떠난 여행길에서 돈을 빌려놓고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에피미치를 병적으로 몰아가는 우체국장 등을 보면서 우리는 단지 어떤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덕적인 태도와 논리는 여기서 거론할 일이 못 됩니다. 모든 일은 우연에 달려 있으니까요. 붙잡힌 사람은 갇혀 있는 것이고, 붙잡히지 않은 사람은 돌아다니는 것이지, 그 이상은 없습니다. 내가 의사이고 당신이 정신병자라는 데 허무한 우연만 있지 도덕성이나 논리는 없습니다.


p55-56

 

저에게는 여운이 남는 비극적인 이야기였어요. '감옥과 정신병원이 있는 한, 누군가 거기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라는 문장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요. 사회적 인식과 여론에 의해 잘못 진행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걸까, 생각하며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인생의 일반적인 이야기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표제작 <6호 병동> 외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도 만나실 수 있어요. 이 작품 또한 우리 삶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이야기. 역시나 저에게는 여운이 남아서 말로 다 표현하기도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져셔 그런가, 어째 작품들이 전하는 이미지에 우울해요. 으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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