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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 꽃으로
권태성 글.그림 / 두리미디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늦은 밤, 책을 읽다 혼자 엉엉 울어버렸다. 밤이라 센티멘탈해진 탓도 있었겠지만, 책을 읽다 통곡에 이르는 눈물을 흘린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 심오한 뜻을 가진 책은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한 두 번 겪었을, 그런 사소한 일상들이 동글동글한 그림체 안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 책이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었다면, 이리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하지 못했을 것도 같다. 눈 앞에 보이는 인물들이 때로는 내가 되고,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때로는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책은 12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병들어 버려진 유기견의 이야기를 다룬 <괜찮아요>, 사랑이야기인 <러브레터>, <극장 앞에서>, <고백>, ,<셀로판지처럼>, <이쁜이>, 정신대 할머니들의 고통을 담은 <다시 태어나 꽃으로>, 아마도 작가 자신의 가족사일 <힘>,< 꼼장어와 김치찌개> 등 작지만 소박하고 가슴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가득 담겨져 있다. 특징적인 것은 작가 자신의 신변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말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다행이에요..보이진 않지만 주인님한테서 기쁜 냄새가 나네요. 행복한 냄새가 나네요. 그걸로 됐어요. 그걸로..전 잘 지내니까 잘 있으니까 그걸로 됐어요..괜찮아요..정말로..전..정말 괜찮아요..-p31
<괜찮아요>를 읽으면서 일본작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하드보일드 에그]를 떠올렸다. 주인공의 친구는 버려진 동물들을 모아 자신이 기르고 사랑해주고 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사람은 참으로 잔인하고도 책임감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어떤 생명을 자신이 맡게 되었을 때 그 책임은 무거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고 예뻐해주었던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을 하찮게 취급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끝맺는 부분의 백내장에 걸려 버려진 강아지의 사진이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 강아지의 눈빛을 원래 주인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강요에 못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김학순> -p150
대학 때 홈스테이를 온 일본인들과 -나눔의 집-을 찾은 적이 있다. 꺼려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우리들보다 그 일본인들이 더 관심있어 했다. 그 곳에 살고 계신 할머니들은 정말 평범한 우리나라 국민이었다. 우리가 찾아가자, 반가워 하시며 이것 먹어보라, 저것 먹어보라며 챙겨주셨고, 안마라도 조금 해드리면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었다. 그런 할머니들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은 과연 일본이라는 나라일까. 나는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일본보다, 역사를 쉽게 잊고, 여인들의 아픔을 잘 헤아려주지 못하는 우리들의 탓이 더 크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태어나 꽃으로>로 접한 한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가 앞으로도 잊어서는 안 될 우리 모두의 역사이다.
<괜찮아요>의 강아지가 자기 주인 곁에서 행복을 맛보고, <다시 태어나 꽃으로>의 할머니가 내세에는 평범한 여자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다만, 그 때가 너무 늦지 않은 것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사랑을 전달할 수 있기를. 나의 기도는 항상 -작은 것에 기뻐하자-에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