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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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서 더욱 '과연 인권에 대해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라는 의문을 빙자한 변명으로 이 글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하루하루가 슉슉 지나가고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에 부치는 저는, 그저 제 할 일이나 잘하면 다행이라는 그런 소소한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며, 그리고 상처받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의 목표인 셈이지요. 하루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누웠다 하면 잠에 빠져드는 저에게 '인권'이란, 마치 저어기 떠 있는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를 가진 단어랄까요. 단순히 싫다, 좋다의 개념이 아닌 생각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에 느낄 수 있는 거리감입니다. 주위를 홱홱 둘러보면, 제 주위 사람은 아마도 저와 거의 비슷하지 싶어요.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며, 그리고 상처받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의 목표-라는 개념이, 어쩌면 인권의 시작이 아닐까 되새겨봅니다. 인권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서로를 존중해준다는, 그런 의미 아니겠어요? 그것은 결국 부모와 자식사이, 학생과 교사사이, 남자와 여자사이, 유색인종과 무색인종 사이, 부자와 극빈자 사이, 회사와 노동자 사이 등 그 어떤 사이에서도 지켜져야 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 라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를 가졌던 그 인권은, 바로 우리 생활 속에서 항상 숨쉬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그런 거리감을 저자 김두식 선생(어쩐지 선생이란 직함이 붙어야 할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이 편하고 알기쉽게,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좁히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 바로 이 책 [불편해도 괜찮아] 입니다. 

직업상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청소년 인권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들은 것은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과 폭력 사이, 평소 편견없이 바라봐왔(다고 생각했)던 성소수자 인권과 인종차별의 문제, 노동자 인권, 그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확실히 알 수 없는 장애인 인권과 종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제노싸이드 등 평소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지만 제대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문제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습니다. 만약 저자가 대학 강의식으로 하나의 인권 당 개념이나 원리 등으로 진행 했다면 저는 이 책을 덮어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종종, 사회나 인문 서적들은 저자들의 지식 자랑하기로 끝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영화와 다큐멘터리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문제의 민감성을 쏙쏙 뽑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모든 챕터의 내용들이 깊이있고 흥미롭습니다. 사람이라면 평생 써야 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도입해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설명하고, 성소수자들을 위해 우리가 '다름'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 지를 고찰하게 하죠.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그 시대 인종차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저자가 말한대로 정말 숫자놀음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제노싸이드를 통해 생명의 고귀함과 우리 삶을 조종할 수도 있는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는 영화 <300>을 예로 들어 '장애인 인권'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영화 <300>을 보셨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그 영화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조조로 보기위해 극장으로 달려갔거든요. 광고효과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300명 용사들의 멋진 몸 때문이라기보다, 소수의 영웅들이 악을 이기기 위해 분투하는 그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 김두식 선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모든 내용을 이 리뷰 안에 담아내기란 무척이나 어렵고 복잡한 일이므로 저도 김두식 선생처럼 <한겨레> 의 김소민 기자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효과적으로 다듬어진 시각적 무기가 인종주의를 북돋우며 여성과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 거슬릴 수 있는 영화-p131


정말 어떤 분들은 한 편의 오락영화를 보면서 유난스럽기도 하다고,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인간은 결국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단순한 존재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결국에는 그 소소하게 느껴지는 '불편함'이 인권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아픔을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으로 연결되지 않겠어요? 

인간은 쪼콤 못된 습성을 가진 동물이라 남에게는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남의 손을 빌려 일을 처리하려 하기도 하죠. 다른 사람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나에게는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며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어쩌면 못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일까요? 그 약함을 아집이나 편견으로 드러내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고 저자의 말 그대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면 같은 사람들끼리 치고박고 싸울 일도 적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자가 들어가서 거창한 무엇처럼 보이지만, 인권은 우리 삶의 바른 모습,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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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데이즈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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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몽환적인 소설의 대가라고 하면 '온다 리쿠'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제 그 범주에 이 작가, '혼다 다카요시'를 넣어도 될 것 같다. 단편집인 탓인지 그리 큰 완성도와 탄탄한 구성력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만 놓고 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현실과 판타지, 과거와 현재 시공간을 넘나드는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쓰여진 문구에 걸맞게 주인공들은 대부분 청춘,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고 작품들의 배경은 딱히 어디가 현재, 어디가 과거라고 규정짓기 어렵다. 때로는 오싹하고 때로는 안타까우면서 또 때로는 강한 결의같은 것을 보여주는 색다른 단편들.

첫 번째 이야기인 <Fine Days>는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청춘살벌미스터리'소설이 되겠다. 어느 날 전학 온 아름다운 전학생 소녀. 그 소녀를 따라다니는 불길한 소문들과 학교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 소녀의 정체와 그녀를 둘러싼 오싹한 분위기들이 주인공과 그의 친구 야스이가 가진 비밀과 맞물리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일어나면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자리잡았을지도 모르는 그런 일들이 작품 속에서는 그 때마저도 '아련한 한 때'로 그려지며 그야말로 'Fine Days'로 각인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인 <Yesterdays>는 병에 걸린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녀의 존재를 찾아간 남자. 내용 자체만을 두고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는 듯하나 작가가 묘사하는 분위기와 장면 하나하나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킬만큼 섬세하다. 실제로 2008년에는 영화화되어 젊은 층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싶을만큼 분위기가 멋지다. 여운과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특별한 로맨스. 

세 번째 이야기는 <잠들기 위한 따사로운 장소>, 이 작품집에 실린 이야기들 중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다. 이 이야기에는 각자의 상처를 끌어안고 죽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즐거워도 즐거워할 수 없고 누군가의 인생에 강하게 엮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그런 그들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함께 살아나가려고 하는 모습이 짧은 분량 안에서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발전시켜 장편으로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주인공들의 미래가 기대되는 오싹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인 <Shade>는 이야기 속 이야기와 등장하는 현실 속 남자의 사랑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진행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 골동품 가게를 배경으로 그 곳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되짚어보면서 앞으로 나아가 볼 것을 결심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혼다 다카요시의 작품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었는데 요렇게 단편집으로 만나게 됐다. 작가가 만들어낸 몽환적인 세계와 분위기들을 느껴보니 앞으로 눈여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999년에는 수상작을 포함한 [MISSIING]이 '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부문에서 10위에 진입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이 작품과 다른 두 세 편의 장편을 읽어본 후 결정해야지. 페이지가 슉슉 넘어가는, 여름밤에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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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마리오 리딩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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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종의 '성서 파헤치기' '고문서 탐독하기' 등을 다룬 책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대부분 살인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과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의 사랑, 그리고 약간 허무한 결말 등의 구성을 싫어하거든요. 더군다나 성서에 숨겨져있는 내용이나 지구가 멸망하는 지 어쩌는지는 저의 관심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답니다. 성서는 해석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그렇게 정해져 있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랄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리뷰에는 저의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는 점을 양해해 주세요.

1999년이 생각나네요. 그 때 저는 고2였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지구가 멸망할 해라며 시끄러웠던 기억이 나요. 길 위에 나선 광신도들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거나, 이제 곧 지구가 멸망하니 회개하라거나 하는 말에 어린나이였으나 '훗'하고 콧방귀를 뀌었던 기억도요. 그 때도 지금처럼 '모두 다 멸망한다면 할 수 없지'라는 담담한 마음이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종말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9가 세 개 겹쳐 있으니 불길한 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숫자 9는 중국에서 가장 좋은 숫자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아시나요? 그런 9가 세 개나 모여있던 해니, 누군가에게는 가장 운수 좋은 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즉, 이를테면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다가올 일은 언젠가 다가온다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다빈치 코드] 를 필두로 숱한 '성서 파헤치기' 소설이 발표되었다면, 이제는 어쩌면 이 책 [예언] 처럼 노스트라다무스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많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2012년 종말론을 두고 여기 저기서 의견이 분분한 때,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종말의 때로 예언한 해는 1999년이 아니라 사실은 2012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고대 마야인의 달력이 2012년까지라나 어쨌다나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진실은 2년 후에나 알게 되겠죠.  

노스트라다무스는 100편의 사행시당 1세기씩 다루어 총 10세기를 예언하는 1,000편의 사행시를 썼고, 그 중 942편만이 남아있는데 나머지 58편은 행방불명이며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행방불명된 58편의 사행시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예언] 입니다. 뭐 사실 이야기는 크게 별다를 것이 없어요. 살인사건, 그로 인한 죽음의 위협과 단서를 좇아 사행시를 찾아내려는 주인공들의 험난한 여정, 악당의 죽음, 결말. 그런 거죠. 재미있었던 건 사행시를 좇는 주인공들의 관계와 그들의 대화였습니다. 사비르와 욜라, 그리고 알렉시의 아웅다웅을 보고 있자면 마치 일곱 여덟 살 먹은 아이들 같은 느낌이 강해서 뒤에 갑자기 진지해진 사비르를 대할 때면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요. 무엇보다 사비르와 욜라가 어처구니없이 맺어지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다만 몇 군데서 등장하는 폭력적인 장면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평생 노스트라다무스 연구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연구 하시고 연구 자료만 발표했다면 더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소설이 빛날만한 그리 특이한 소재도 아니었고, 탁월한 구성능력도 없었으며, 허술한 결말은 '역시 이런 소설들에서는 이런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건가' 라는 생각만 깊게 만들었거든요. 다만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한 지식의 방대함은 인정하는 바, 오히려 그 동안 연구한 자료들을 모아 심도있게 발표했다면 그 쪽이 더 흥미로웠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나저나 만약 2012년에 정말 종말이 올까요? 제 동생은 얼마 전에 영화 한 편을 보더니 저에게 종말의 때 누구와 함께 있고 싶느냐고 물어보던데,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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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킬러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4
제프 린제이 지음, 김효설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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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덱스터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이번 작품을 기다린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답니다.  바로 덱스터가 연인 리타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인 코디의 성장(?) 말입니다. 이런 분야(?)에 '성장'이란 단어를 써도 될 지 망설여집니다만, [어둠 속의 덱스터] 에서 코디가 보여준 활약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죠. 부모님의 이혼과 아빠의 폭력으로 어느 새 덱스터처럼 마음 속에 검은 승객을 키워버린 애스터와 코디. 잘 웃지도 않는 코디가 덱스터를 구하기 위해 (아니면 즐거움(?)을 위해;;) 휘두른 칼날의 결과에 만족하며 보여준 미소는 상상만으로도 뭉클함(?)함을 느끼게 했답니다. 네, 저도 압니다. 이번 리뷰에 특히 '?"가 많다는 것을요. 하지만 저의 정신세계도 혼란스럽다구요. 덱스터와 그의 가족들을 좋아하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 일인가, 내가 덱스터와 코디의 활약(?)을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염려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마 덱스터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틀림없이 저와 같은 딜레마를 겪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이번 편도 늘 그렇듯,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하는 덱스터 되겠습니다. 연인 리타와 결혼하고 애스터와 코디로부터 교육(?)시켜줄 것을 강요당하는 덱스터. 또 늘 그렇듯, 한 건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묘사하기도 힘든, 이번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옥의 티라고 생각되는 사건을 저지른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덱스터의 동생 데보라가 공격 당하고 자리보전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동생을 공격한 놈을 찾아야 해!-라는 낯선 감정과 충동에 휩싸인 덱스터는 또또 늘 그렇듯, 범인이라 생각한 인물과 화려한(?) 밤을 보내십니다. 그.런.데. 그런 덱스터의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이 웹사이트에 올라오고 덱스터와 리타, 코디와 애스터까지 위험에 빠집니다. 더 골치 아픈 것은, 결혼 후 어쩐지 나사가 하나 풀려버린 듯한 덱스터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인해 그의 정체를 의심하는 인물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이죠. 앞에는 괴상한 살인마, 뒤에는 동료였으나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사람들, 양 손에는 리타와 아이들을 쥔 덱스터의 진땀나는 모험(?)이 시작됩니다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에서 덱스터의 활약은 그리 크지 않아요. 살인마를 잡는 살인마-라는 명성(?)에 걸맞게 늘 화려하게 잔악한 무리들을 제거해주었던 덱스터가 어쩐 일인지 계속 허둥대는 모습만 보이거든요. 화려한 밤을 보내는 모습을 범인에게 찍히지 않나, 멍~하게 있다가 툭 내뱉는 말들로 인해 의심을 야기시키지 않나. 범인도 딱히 덱스터가 해결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속된 말로 얻어걸렸다고 해야할까요;; 꼭 결혼 후 삶의 모든 끈을 놓아버린 듯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런 덱스터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동생 데보라를 공격한 놈을 잡아야겠다는 애틋함과 서서히 생겨나는 리타를 향한 애정, 귀엽지만 가끔 사악한 미소를 흘려주시는 아이들에 대한 뿌듯함이죠. 네, 어쩌면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덱스터의 킬러로서의 면모보다는 점점 인간으로 변해가는(?) 덱스터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일을 해치워버리는 덱스터도 나름 매력있지만,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부드럽고 맹~한 모습을 보여주는 덱스터도 괜찮네요. 귀엽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사건 그 자체보다 덱스터의 말장난(?)에 주목하시면 더 큰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듣고보기만 해도, 상상만 해도 끔찍할 것 같은 장면과 단어들이 이상하게 웃겨서 킬킬대고 웃는 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곤 했거든요.  게다가 비중은 좀 약했지만 살짝 등장한 코디와 애스터의 범인 공격장면도 귀엽습니다. 역시 현실에서는 무척 무서운(?) 일이겠지만요. 

개인적으로는 코디의 성장(?)을 자세히 다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것도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일이긴 한데, 덱스터의 존재 자체가 이미 큰 문제 아니겠어요? 덱스터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현실의 도덕문제를 여기까지 끌어들이지는 말자구요!  그냥 의적 홍길동이 21세기에 나타났다 생각하면 불현듯 밀려오는 양심의 가책(?)도 썰물 빠지듯 사라질 겁니다. 덱스터가 앞으로 리타와 아이들에게 어떻게 휘둘림을 당할지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걸요, 쿠쿠. 아, 그래도 너무 잔혹한 묘사는 좀 자제해 주세요, 작가님! 들리려나? 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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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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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슨 일이든 3년째는 되어야 발동이 걸리는 나로서는 2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모른다'는 마음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가끔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무슨 일이든 사람을 상대하는 어려움에 크고 작음은 없겠지만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의 마음에 한결같이 동조해주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그 또한 교만함의 증거가 아닐까. 게다가 무엇이든 오랜 시간이 지나야 정을 들이는 내 성격 탓에 섣불리 '난 이 일이 너무 좋아, 너무 재밌어' 라는 말을 입밖에 내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정말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다른 선택은 없었는지 하는 생각에 가끔은 '해보고 싶은 다른 일 베스트'를 꼽아보기도 하는데 그 중 1위는 어쩔 수 없이 '여행하고 책 읽는 일'이었다. 여행하고 책 읽고 감상을 남기는 것으로 평생을 채울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은 그 어느 나라보다 가깝지만 먼, 나에게는 친근함과 아련함으로 다가오는 일본의 풍경들을 그려낸 책이다. 2003년 처음 길 위에 서서 지난 2년 동안 일본을 아홉 번 드나들었다는 저자 김남희.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의 곳곳을 돌아다닌 시간을 합하면 총 6개월에 이른다고 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잘 알려진 곳보다는 덜 알려진 곳, 도시보다는 자연과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을 소개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바람에 알맞게 이 책은 일본의 고즈넉함과 매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홋카이도와 혼슈로 채워진 1권, 규슈와 시코쿠로 채워진 2권. 우리나라처럼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입는 일본의 풍경 중에서 내가 가장 집중한 곳은 역시 교토와 나라였다. 

오사카와 나라, 교토는 예전부터 꼭 가고 싶던 곳이었다. 관광의 개념보다는 내 마음 내려놓을만한 곳이라는 생각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더운 여름 굳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곳. 그 장소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니 다시 반가움과 설레임으로 마음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다. 저자가 밟았던 그 길 위에서 나도 한껏 일본의 고풍스러운 매력에 취해보고 싶다. 

여행서하면 사진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단연 압권으로 과연 실제로 보는 것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들게 할 정도다. 마음을 여유롭게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통의 매력이 뿜어져나오는 듯한 사진들.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면 사진 속으로 내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마음들을 근세의 마쓰오 바쇼는 '와비'와 '사비'로 표현했던 것일까. 이 책에는 사진 외의 또 다른 매력이 숨어있는데 바로 각 챕터 앞장에 소개되어 있는 '하이쿠'다. 마쓰오 바쇼와 요사 부손, 고바야시 잇사 등 당대 하이쿠 대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제 내일 모레, 26일이면 나는 일본 오사카로 떠난다. 5년 만의 일본여행.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나홀로 여행이 되겠다. 처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두근거림과 설레임 외의 다른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출발날짜가 다가오니 그 감정 사이를 비집고 두려움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용감해져야해, 자유로워져야지, 라는 생각으로 계획한 여행. 꼭 연수를 떠났던 2003년의 봄처럼 내 마음이 자꾸 뒷걸음치려는 것을 이 책이 꽉 잡아주었다.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언젠가 이 책에 소개된 멋진 풍경들을 전부 만나보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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