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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인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서 더욱 '과연 인권에 대해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라는 의문을 빙자한 변명으로 이 글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하루하루가 슉슉 지나가고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에 부치는 저는, 그저 제 할 일이나 잘하면 다행이라는 그런 소소한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며, 그리고 상처받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의 목표인 셈이지요. 하루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누웠다 하면 잠에 빠져드는 저에게 '인권'이란, 마치 저어기 떠 있는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를 가진 단어랄까요. 단순히 싫다, 좋다의 개념이 아닌 생각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에 느낄 수 있는 거리감입니다. 주위를 홱홱 둘러보면, 제 주위 사람은 아마도 저와 거의 비슷하지 싶어요.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며, 그리고 상처받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의 목표-라는 개념이, 어쩌면 인권의 시작이 아닐까 되새겨봅니다. 인권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서로를 존중해준다는, 그런 의미 아니겠어요? 그것은 결국 부모와 자식사이, 학생과 교사사이, 남자와 여자사이, 유색인종과 무색인종 사이, 부자와 극빈자 사이, 회사와 노동자 사이 등 그 어떤 사이에서도 지켜져야 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 라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를 가졌던 그 인권은, 바로 우리 생활 속에서 항상 숨쉬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그런 거리감을 저자 김두식 선생(어쩐지 선생이란 직함이 붙어야 할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이 편하고 알기쉽게,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좁히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 바로 이 책 [불편해도 괜찮아] 입니다.
직업상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청소년 인권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들은 것은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과 폭력 사이, 평소 편견없이 바라봐왔(다고 생각했)던 성소수자 인권과 인종차별의 문제, 노동자 인권, 그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확실히 알 수 없는 장애인 인권과 종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제노싸이드 등 평소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지만 제대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문제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습니다. 만약 저자가 대학 강의식으로 하나의 인권 당 개념이나 원리 등으로 진행 했다면 저는 이 책을 덮어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종종, 사회나 인문 서적들은 저자들의 지식 자랑하기로 끝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영화와 다큐멘터리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문제의 민감성을 쏙쏙 뽑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모든 챕터의 내용들이 깊이있고 흥미롭습니다. 사람이라면 평생 써야 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도입해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설명하고, 성소수자들을 위해 우리가 '다름'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 지를 고찰하게 하죠.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그 시대 인종차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저자가 말한대로 정말 숫자놀음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제노싸이드를 통해 생명의 고귀함과 우리 삶을 조종할 수도 있는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는 영화 <300>을 예로 들어 '장애인 인권'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영화 <300>을 보셨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그 영화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조조로 보기위해 극장으로 달려갔거든요. 광고효과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300명 용사들의 멋진 몸 때문이라기보다, 소수의 영웅들이 악을 이기기 위해 분투하는 그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 김두식 선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모든 내용을 이 리뷰 안에 담아내기란 무척이나 어렵고 복잡한 일이므로 저도 김두식 선생처럼 <한겨레> 의 김소민 기자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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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으로 다듬어진 시각적 무기가 인종주의를 북돋우며 여성과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 거슬릴 수 있는 영화-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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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떤 분들은 한 편의 오락영화를 보면서 유난스럽기도 하다고,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인간은 결국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단순한 존재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결국에는 그 소소하게 느껴지는 '불편함'이 인권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아픔을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으로 연결되지 않겠어요?
인간은 쪼콤 못된 습성을 가진 동물이라 남에게는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남의 손을 빌려 일을 처리하려 하기도 하죠. 다른 사람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나에게는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며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어쩌면 못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일까요? 그 약함을 아집이나 편견으로 드러내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고 저자의 말 그대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면 같은 사람들끼리 치고박고 싸울 일도 적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자가 들어가서 거창한 무엇처럼 보이지만, 인권은 우리 삶의 바른 모습,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