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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데이즈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의 몽환적인 소설의 대가라고 하면 '온다 리쿠'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제 그 범주에 이 작가, '혼다 다카요시'를 넣어도 될 것 같다. 단편집인 탓인지 그리 큰 완성도와 탄탄한 구성력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만 놓고 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현실과 판타지, 과거와 현재 시공간을 넘나드는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쓰여진 문구에 걸맞게 주인공들은 대부분 청춘,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고 작품들의 배경은 딱히 어디가 현재, 어디가 과거라고 규정짓기 어렵다. 때로는 오싹하고 때로는 안타까우면서 또 때로는 강한 결의같은 것을 보여주는 색다른 단편들.
첫 번째 이야기인 <Fine Days>는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청춘살벌미스터리'소설이 되겠다. 어느 날 전학 온 아름다운 전학생 소녀. 그 소녀를 따라다니는 불길한 소문들과 학교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 소녀의 정체와 그녀를 둘러싼 오싹한 분위기들이 주인공과 그의 친구 야스이가 가진 비밀과 맞물리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일어나면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자리잡았을지도 모르는 그런 일들이 작품 속에서는 그 때마저도 '아련한 한 때'로 그려지며 그야말로 'Fine Days'로 각인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인 <Yesterdays>는 병에 걸린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녀의 존재를 찾아간 남자. 내용 자체만을 두고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는 듯하나 작가가 묘사하는 분위기와 장면 하나하나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킬만큼 섬세하다. 실제로 2008년에는 영화화되어 젊은 층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싶을만큼 분위기가 멋지다. 여운과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특별한 로맨스.
세 번째 이야기는 <잠들기 위한 따사로운 장소>, 이 작품집에 실린 이야기들 중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다. 이 이야기에는 각자의 상처를 끌어안고 죽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즐거워도 즐거워할 수 없고 누군가의 인생에 강하게 엮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그런 그들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함께 살아나가려고 하는 모습이 짧은 분량 안에서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발전시켜 장편으로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주인공들의 미래가 기대되는 오싹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인 <Shade>는 이야기 속 이야기와 등장하는 현실 속 남자의 사랑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진행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 골동품 가게를 배경으로 그 곳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되짚어보면서 앞으로 나아가 볼 것을 결심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혼다 다카요시의 작품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었는데 요렇게 단편집으로 만나게 됐다. 작가가 만들어낸 몽환적인 세계와 분위기들을 느껴보니 앞으로 눈여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999년에는 수상작을 포함한 [MISSIING]이 '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부문에서 10위에 진입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이 작품과 다른 두 세 편의 장편을 읽어본 후 결정해야지. 페이지가 슉슉 넘어가는, 여름밤에 읽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