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 개의 군이 모여 생긴 도시 유메노. 유메(꿈)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이 도시는 꿈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시로의 위상을 높이고자 드림타운같은 쇼핑몰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미 쇠락해가는 도시의 어둠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걸까요. 이미 도시는 꿈을 잃은 채 그 날 그 날을 겨우 숨쉬며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젊은이들은 거의 대도시로 떠나고 남은 것은 젊은이들 중에서도 유메노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뿐입니다. 도시를 채우는 것은 끊임없는 어둠과 어리석은 인간들이 내뿜는 악취. 그 중 소개된 다섯 사람-아이하라 도모노리, 구보 후미에, 가토 유야, 호리베 다에코, 야마모토 준이치-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시청의 사회복지사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자신의 일에 그 어떤 보람도 느끼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무기력한 사람이죠. 자신의 일도 감당하기 벅찬데, 윗선에서는 생활보호대상자 수를 줄이라는 지침이 내려오니 요즘은 죽을 맛입니다. 구보 후미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에요. 열일 곱 소녀이지만 누구보다 유메노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대학은 꼭 도쿄로 가겠다는 꿈을 안고 있는 당돌한 아가씨죠. 학교에서조차 유메노를 떠날 학생과 유메노에 남을 학생들로 구분되는 현실. 그녀는 도쿄의 여대생이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학원으로 향합니다. 세일즈 판매를 하고 있는 가토 유야는 폭주족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지금은 폭주족 시절 보스였던 가메야마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말이 좋아 일이지, 엄밀히 따지자면 사기에요, 사기. 마트에서 보안담당으로 일하는 호리베 다에코는 남편과 이혼하고 두 자녀와 떨어져 사는 여성입니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사슈카이라는 종교로 달래는, 조금 불쌍한 사람이에요. 야마모토 준이치는 지역 인사로 뒤가 구린, 그러면서 심지는 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구보 후미에가 좋아하는 야마모토 하루키의 아버지기도 하고요. 

[꿈의 도시]는 아이하라 도모노리를 시작으로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챕터 1이 아이하라 도모노리의 이야기라면 챕터 6은 되어야 다시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 중간에 사건이 벌어져 구보 후미에의 이야기가 몇 번 빠지니까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도 없겠군요. 어쨌든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어두컴컴해져요. 어쩌면 이리도 생명력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나, 어쩌면 이렇게도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어쩌면 이렇게도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일을 해결하려 하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아무 보람도 없고, 꿈도 없고, 남에게 해를 가하고도 죄의식도 없고, 외로움도 괜찮다고만 하며 사이비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 종교에만 의지하는 사람들. 지역 인사라는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고 안에서만 권력을 휘두르며 볼썽 사나운 모습을 감추지도 않고 겔겔 거리며 웃고 있는 곳. 그런 유메노를 벗어나고자 꿈꿨던 구보 후미에만이 어쩌면 밝은 앞날을 기대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녀에게 닥쳤던 일을 잘 극복한다면요. 

두께에 비해 슉슉 잘 읽히고 초반에는 재미도 있었지만 제가 별 세 개를 준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작품에는 그냥 '이야기'만 있다고 할까요. 결말이 궁금해지는 읽는 '재미'는 분명 있었지만 저는 아무 감동도 느끼지 못했어요. 가슴을 짠하게 울려주는 메세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무살 도쿄] 입니다. 일견 가벼운 청춘소설로 짐작되겠지만 의외로 그 안에 감동과 교훈이 숨어 있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재미도 있고요. 제가 읽다가 지하철 안에서 깔깔 웃어버렸다니까요. 마이니치 신문은 '마지막에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비춰 오는 것 같은 감동이 있다' 라고 했지만, 저는 구보 후미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성장한 사람은 없다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오싹해진 장면이 바로 마지막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 호리베 다에코의 경우도 빼고요. 그녀는 조금,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전의 길을 반복할 것 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빛을 느꼈다면 이들에게서가 아니라 유메노의 다른 사람들 쪽에서라고 할까요.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만 되고 제대로 된 마무리가 되지 않은 느낌에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 지 궁금하네요. 아니면.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아쉬움을 일부러 조장한 것일까요? 꿈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 유메노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래도 다음 작품을 늘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작가임에는 분명합니다. 이야기는 재미있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새해가 되면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소란스럽다. 어제와 오늘이 그리 다를 것 없고 평소 때는 나이조차 잊고 사는데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약간의 팔랑귀를 타고난 나는 또 점점 마음이 이끌려간다. 괜히 센티멘털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난 아직 청춘이야, 이거 왜 이래!'라는 오기도 생겨서 괜히 이 책이 읽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2010년 한 해는 이러저러 마음 다칠 일이 또 많았어서, 이 책이 눈에 들어온 시기에, 난 정말로 아팠더랬다.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스트레스보다 큰 만병의 원인은 없는 듯 하다. 그리도 아프고 저리던 몸이 방학을 맞음과 동시에 점점 괜찮아졌으니까.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파온다는 말을, 난 태어나서 두 번째로 경험했더랬다.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이다. 좋고 즐거울 때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에세이들이, 종교가, 마음이 힘들고 몸이 아프니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임용고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지친 마음을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로 달랬던 그 때처럼. 그러니 위의 평점은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평가라 하겠다. 실제로 읽어보면 나보다는 지금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나, 취업난에 허덕이는 어린 청춘들에게 더 적합하다는 느낌을 받겠지만 그들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성숙한 청춘인 내가 읽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다만 어린 청춘들이 100% 청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면, 나는 청자와 화자의 입장을 번갈아가면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고 할까. 

그는 선생이라 했다. 학생들을 꿈꾸게 만들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 주는 사람, 그런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새해 목표를 정했다. '학생들을 꿈꾸게 만들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자고. 유독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것 같은 말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 것은,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들, 학교와 집 안에서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떠먹여주던 밥만 열심히 받아먹던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어떤 마음이 들 지 조금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성실했던 아이들일수록, 공부를 잘하고 부모님 기대에 부응했던 아이들일수록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는 가혹하고 그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김난도 교수의 말 중 첫 번째로 공감한 것은 '대학에 진학해서 처음 느끼는 어려움은 '목표가 퍼져버리는 것'이다'라는 부분이었다.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가 달성된 후 무엇을 할 것인지가 순간 막연해지면서 생겨나는 아픔. 이 아픔을 이미 아이들은 겪고 있다. 수시에 합격하거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와서 하는 말 중 거의 대부분은 '시간은 많은데 생각보다 할 게 없다' 였다. 그는 그런 아이들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믿으라고 말한다. 실수는 자산이니 멋진 실수를 해보고 치밀했던 삶의 계획에 여유를 두고 다소 우연에 기대어 보라고. 그렇지 않아도 불안해하고 초조해 할 스무 살 청춘들에게 이보다 더 위로가 될 말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눈앞의 것에 연연하지 말고 넓게 미래를 바라보라는 뜻의 많은 말들은 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될 것이다. 

아무래도 대학 교수이다보니 자신이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것,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생각했던 것들 중심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단순히 아픔을 위로받을만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지점에서 자신의 목표를 재검토해보고 싶은 사람, 새로운 목표를 세웠는데 단순히 '나이'와 '시간'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어느 정도는 자신감과 위로를 얻을 수도 있겠다. 내 경우에는 이 이야기들에 직접적인 위로를 받았다기보다, 그의 말과 나의 행동들을 비교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일년을 계획할 수 있었다. 항상 곁에 두고 내 일로 인해 힘들어질 때마다 꺼내 다시 읽어보고 싶다. 

사람은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익숙해지면 또 괴로워하고 아파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인 것 같다. 나이에 신경쓰지 말자. 속도에도 신경쓰지 말자. 도전과 용기는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필요한 것임을 늘 기억할 수 있기를. 불안하고 막막하고 흔들리고 외로워도 삶에 대한 열정과 용기, 담대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늘 청춘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계연의 도쿄 집밥
박계연 지음 / 삼성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으아! 겨울밤 요리 레시피가 가득 실린 책을 읽는 건 고문에 가깝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동안 몸이 많이 지쳐있었는 지 방학에 돌입하자마자 식욕이 왕성하게 살아나버려 늘 입이 심심하고 뱃속이 허전하다. 게다가 이미 맛을 알고 있는 일본요리 레시피를 보고 있으려니 애꿎은 냉장고만 수난시대다. 방학만 되면 결심하게 되는 요리! 언제나 이번 방학 때는 꼭 열심히 음식도 만들어보고 연습도 많이 해서 도시락을 준비해야지 결심하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막상 만들어보려고 하면 이것저것 들어가는 양념에, 그거 한 번 만들려고 재료를 사야 하냐는 어무이 눈치에, 게으름까지. 핑계같지만 요리 레시피들이 또 엄청난 정성과 시간을 요구하는 탓에 늘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던 거다. 하지만! 올 겨울은 달랐다! 고 방학 끝에 외치고 싶다. 

일본에 어학연수 갔을 때, 초기에는 음식에 적응을 잘 못했었다. 밥 반찬이라 하기에는 달달한 간에 어쩐지 느끼한 맛이 어우러져 소화가 잘 되지 않아 한동안은 김치를 옆에 끼고 살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맛도 그리워진다. 그 중에서도 시간이 흘러 아주 좋아하게 된 니쿠쟈가(고기감자조림). 그 달달한 맛에 지금도 침이 고이는 것이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이 책을 보니 그나마 우리나라 요리보다 방법도 간단하고 쉽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안심은 된다. 이 책을 슬쩍 넘겨보신 우리 어무이 '이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네!' 라고 하셨을 정도. (어무이는 요리의 베테랑이라 그러신 건가 @.@)

저자조차 들어가기에 '우리 한국 요리에 비해 만드는 과정이 간단하고, 들어가는 양념의 재료도 많지 않다. 좋은 다시마를 이용해 맛있는 국물을 만들어내고, 요리에 맞는 간장과 된장을 이용해 생선을 굽거나 조리거나 하면 된다' 라고 적어놓았다. 대충 훑어보니 양념이라고 해야 정말 다시마 국물에 간장에 일본 술 정도가 전부다. 거기에 좀 많이 들어간다 싶으면 미림이나 설탕이 추가되는 정도. 대신 양념들의 황금비율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재료가 본래 가지고 있는 맛을 죽여서도 안되고 국물은 정성스럽게 우려내야 하며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 또한 양념에 주로 마늘을 사용하는 우리와는 달리 생강이 들어간다는 점이 조금 독특하다. 

레시피는 크게 열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돈부리(덮밥요리), 미소(된장요리), 쇼유(간장 요리), 오사케 안주 요리, 멘(국수 요리), 오코메(쌀 요리), 오나베(전골), 다이콘(무요리), 와후(일본식 세계 요리)에 마지막 10 챕터는 도쿄 음식 문화에 대한 에세이다. 다른 사람과 음식 나누어 먹기를 싫어하고 적은 양을 담아 먹는 특성이 있다보니, 재료의 양이 적다. 만드는 방법도 길어야 번호 6까지일까.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오야코동(닭고기덮밥)의 만드는 순서가 6번까지인데 마지막 6번은 잘 옮겨 담는다는 내용이니 실질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는 내용 되겠다. 

다른 요리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요리 문화 에세이집이다. 일본 요리 레시피 뿐만 아니라 음식에 담긴 일본문화까지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남편 분이 일본 사람이라 그런지 나도 미처 몰랐던 것들, 그저 먹기만 할 줄 알았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상황들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해줘서 요리와 일본문화에 대한 친근감이 더해진다. 난 여전히 '만들어보고 싶다' 보다 '먹고싶다!' 를 더 강하게 외치는 쪽이기는 하지만, 이 게으름, 이 요리에 한 번도 발 들이지 않았던 그 동안의 시간을 모두 타파해보련다! 조만간 '제가 만든 요리에요~!' 라는 포스팅이 올릴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윈터홀릭 두 번째 이야기 - 다시 만난 겨울 홋카이도 윈터홀릭 2
윤창호 글.사진 / 시공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2011년의 리뷰를 여행에세이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떠날까 말까 고민하다가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은 포기한 곳, 홋카이도 여행서로요. 겨울이면 늘, 홋카이도에 대한 동경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 고2 때 본 영화 <러브레터> 속 하얀 눈더미들에 대한 환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까요. 이왕이면 연인과 함께 가서 '나 잡아봐라~'놀이도 해보고 싶고, 영화 <러브스토리> 의 주인공들처럼 눈 속에 쓰러져도 보고 싶어요. 아웅! 행복한 추억이 자리잡고 있을 것만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련한 쓸쓸함으로 다가오는 곳, 홋카이도. 내년 겨울에는 오타루에 가서 꼭 대게를 먹어보고 싶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렇죠? 

두어 달 전쯤 읽은 [홋카이도 보통열차]에서 홋카이도의 여름을 맛볼 수 있었다면, [윈터홀릭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홋카이도의 완연한 겨울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쩐지 싱싱하고 활기차 보였던 홋카이도가, 이 책에서는 더없이 쓸쓸하고 허무하게 그려져 있어 책을 읽는 시간들이 줄곧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홋카이도 보통열차]의 저자도 많은 고민을 안고 오른 여행길이었던만큼 중간중간 생에 대한 망설임과 쓸쓸함이 배어나왔는데, [윈터홀릭 두 번째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타고난 감성에 겨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 곳의 모습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고 할까요. 중간중간 쓰인 단상들에 가슴 한 켠에 싸한 바람이 지나가곤 했답니다. 

[홋카이도 보통열차]에서는 눈과 (상상가능한)미각으로 즐거웠다면, [윈터홀릭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보다 짜임새 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직 생소한 지명이기는 하지만 비에이, 하코다테, 아사히카와, 아바시리, 왓카나이, 구시로, 아칸, 오타루, 아사히카와, 우토로, 노보리베쓰, 오오누마, 삿포로. 작가의 생각과 일상이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사진을 감상하고 분위기에 심취할 수 있을 정도로, 딱 그만큼만 곁들여져 있는 것이 최대 매력입니다. 전 여행책을 볼 때 작가의 글보다는 사진을 주로 보는 편이에요.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감성에 젖고 자기연민에 빠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전 그런 감정들을 보란듯이 드러낸 책들을 아주 싫어해요. 뭐랄까, '나 아파, 그러니까 나 좀 위로해줘' 라는 응석이 가득찬 책들이 되어버린다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사진이 멋져서 온통 사진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겨울의 홋카이도는 여행자금도 많이 들고 무척 춥다고 해요. 하지만 '홋카이도=겨울, 겨울=홋카이도' 라는 생각을 가진 것은 저 혼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추워도 홋카이도의 제대로 된 매력을 느끼기 위해서는 역시 겨울이 제격일 것 같아요.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저지만, 내년 겨울에는 꼭! 설원 속에서 함께 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
발레리 통 쿠옹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의미없이 보냈을 일상이지만 그 안에 우리가 생각지 못한 인연의 끈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책 읽는 당신의 옆얼굴을 훔쳐보는 수줍은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사소한 다툼으로 이별한 커플들도 있겠고, 지금은 그냥 스쳐지나갔지만 언젠가 오늘을 회상할 때 '우리가 만난 적이 있구나' 라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만남도 있을 거에요. '만약에...'로 시작되는 수많은 가정들. 그 수많은 인연의 끈들의 근원이 어디일지 생각하면 이윽고 떠오르는 단어, 운명. 지금, 당신은 그 운명에 감사하나요?

 



CAST

 

 
   
굿바이 마릴루 | 마릴루 로열 앨버트 홀 | 알베르
   

그녀의 하루는 끔찍했습니다. 중요한 서류를 책임지고 있는 그녀는 불친절한 택시기사를 뒤로한 채 급기야 뛰기 시작하죠. 머리속으로는 내내 시간을 계산하고 그녀의 유일한 희망인 아들 폴로를 생각하면서. 위험했지만 어떻게 지하철은 탔네요. 하지만 사고가 납니다. '일급 기밀의 자살'을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면서 그녀는 또 뛰기 시작해요. 뛰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회사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탄 순간, 그녀의 머리 위에서 폭죽이 터집니다.

78세의 노인. 그는 방금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하지만 결코 나에게 일어날 리 없는 일이라 믿었던 일이 그에게도 일어난 겁니다. 많은 나라를 다녔고 수백 권의 책을 읽었으며 일곱 개 언어를 배웠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유명인사였지만, '가족'은 그가 절대 이룰 수 없던 꿈이었어요.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상처. 메워지지 않는 가슴의 구멍. 하지만 그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드디어 행운을 거머쥐게 됩니다.



 



CAST

 

 
   
디어 프루던스 | 프뤼당스 그라운드 컨트롤 투 메이저 |
   

그녀는 흑인입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누구보다 능력있지만,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죠. 그녀의 상처는 첫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굴욕을 참으면서까지 얻고 싶었던 사랑. 하지만 그녀가 대답을 끝마치기도 전에 첫사랑은 멀어져갔고 상심한 그녀는 자살을 기도합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워지지 않는 상처 끝에서 그녀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일어섰을 때, 마침내 눈부신 사랑이 그녀를 찾아옵니다. 

톰은 누구보다 리비를 사랑했어요. 아름답지만 차가운 리비. 그녀도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죠.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어요. 리비가 사랑한 건 그녀의 여자친구 알린도, 톰도 아닌 오직 그녀 자신 뿐이었거든요. 자전거 사고로 다친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한 톰.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죽음 직전에 이른 그에게 어린 천사가 내려왔습니다.


 

<인물 구성은 제 맘대로 ^-^>

 

마지막에는 전철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한 남성의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작품은 이 네 사람의 상황을 번갈아가며 보여줍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이야기를 뚝 끊어버리죠. 당장 페이지를 뒤로 넘겨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 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어요. 목숨을 위협받고, 평생 몰랐던 비밀을 알게 되고, 오해가 풀리고, 사랑에 실패한 그들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한 사람의 인연의 끈은 또 다른 사람에게 연결되어 있고, 그 사람의 끈은 또 한 사람에 연결되어 있죠. 그리고 그들 각각은 그 하나의 도미노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카드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마릴루가 지각을 하지 않았다면, 알베르가 조금만 더 일찍 가족들이 모여있던 방에 들어갔더라면, 프뤼당스가 그녀의 신념을 굽히고 올바르지 못한 길을 선택했다면, 자전거 사고로 몸을 다친 톰이 리비에게 다시 되돌아가지 않았다면 현재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겠죠.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가지 않은 길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매순간 그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이 설령 '운명'이라는 이름의 우연일지라도요.  

운명의 도미노가 쓰러지면서 만든 것은 '하트'였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우연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누군가가 만난 운명이 나의 즐거움이 되기를, 그런 행운이 일어난다면 부디 모르고 지나치지 않게 되기를 빌어봅니다. 오랜만에 발견한, 가슴 따뜻한 작품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