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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우연히 ㅣ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학창시절, 행운의 편지 한 두번은 받아보셨을 겁니다. 저는 최근에 문자 형태로 한 번 받았는데요, 저희 아부지께서는 그게 '진짜 행운'의 편지인 줄 알고 저를 비롯한 온 가족에게 보내셨더라구요
어렸을 때도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네 어쩐다네에 굴하지 않고 가볍게 패스해 온 인생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온다'라는 말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행운의 편지나 문자는 보내는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받은 사람이 혹시 내가 보낸 걸 알면 어쩌지, 내가 문자나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생기는 순간, 우리의 삶은 불안 속에서 흔들리게 되니까요. 저희 아부지는 '진짜 행운'의 문자인 줄 아셨던 관계로 당당하게 번호를 쾅 찍어서 보내셨답니다.
그런데 이런 편지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어투의 편지, 내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알고 있고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꿰뚫어보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요. 만약 그것 뿐이라면 장난이겠거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지금 생각한 숫자를 정확히 알아낸 편지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겠죠. 어떻게 내가 생각한 숫자를 알아냈을까, 이 사람이 나에 대해 또 뭘 알고 있을까, 과거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이라도 있는 건가, 더 알고 싶다, 이 사람이 요구한 돈을 보내야겠다로 생각이 발전하는 건 정해진 수순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 전혀 로맨틱하지도 즐거운 일도 아니니 어떻게든 이 사람의 정체를 밝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이 작품은 세 가지 미스터리를 간직한 채 진행됩니다. 수신자가 생각한 숫자를 범인은 어떻게 알아낸 걸까, 편지를 받은 사람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전직 형사 데이브 거니가 간직한 삶의 고통은 무엇인가. 앞의 두 가지와는 달리 거니에 대한 의문은 전혀 관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막바지로 치달아가면 결국 오묘한 인생의 굴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 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작가가 내세우고 싶었던 수수께끼'는 이 정도이지만 다른 분들은 또 다른 수수께끼를 발견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주인공 거니가 생각이 좀 많습니다. 그 생각에 제가 좀 침식당하는 느낌이었는데요, 지금까지 읽은 스릴러 소설 중에서 자신에게 이토록 집중하고 많은 생각을 간직한 캐릭터는 처음인지라 색다르기도 했습니다. '지겹다'는 기분보다는 작가가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할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이 '편지 트릭'에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받는 편지, 내가 생각한 숫자를 두 번이나 정확하게 알아내는 사람이 있고 그 자신이 과거에 조금 잘못한 경력이 있다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될테니까요. 작가가 인간의 심리에 집중한다는 인상은 결말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릴러이기는 한데 스펙터클하고 최고의 긴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정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작품 안에 눈이 등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서늘하기도 하고 그 서늘함 안에 감춰진 쓸쓸함이나 고독감이 사건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이야기였어요. 아웅, 요즘에는 이런 스릴러가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비중이 좀 적고 '사람'에게 집중한 소설이랄까요. 거니가 등장하는 다음 편도 출간 예정이라는데 그 작품에서는 거니와 그의 아내 매들린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