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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의 항아리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1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짝짝짝! 박수가 절로 나오는 작품입니다. 읽고 나서 머리가 멍~해지는 것이 마치 영화 <인셉션>을 보고 난 후와 같은 상태였답니다. 현실이 꿈인 듯, 꿈이 현실인 듯 여겨지는 몽환적이고도 불명확한 기분.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요? 나는 진짜 나인가, 이 사람들은 정말 나의 가족이 맞는가,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세상이 '진짜' 현실인가, 나는 나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는가, 나를 지켜보는 다른 누군가는 없을까. 머리속이 잠시 뒤죽박죽, 약간 패닉 상태가 되지만 그건 그것대로 즐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우선 '클라인의 항아리'라는 것에 대해 알아볼까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바깥쪽과 안쪽을 구별할 수 없는 단측곡면(單側曲面)의 한 예로 독일의 수학자 F.클라인이 고안하였는데, 이 항아리에서는 항아리의 양끝이 접속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닫혀 있는 데도 사실은 열려 있다. 이 항아리의 용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액체를 넣으면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라고 친절한 네이버양이 가르쳐 주네요. 저처럼 공간상상능력이 힘겨우신 분들을 위해 그림 하나 보여드릴게요.
<출처 : http://blog.naver.com/omath/150042474676 > |
이 작품에서 이 항아리가 직접 등장하는 것은 아니에요. 주인공 우에스기가 쓴 게임원작을 가상체험이라는 실제 게임으로 만들겠다는 게임회사 인물들이 이 항아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죠. 겉과 속이 없는 클라인의 항아리처럼 게임을 현실처럼 느끼게 하는 겁니다. 몸에 밀착되는 물질을 이용해서 피부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통해 먹고 마시고 자는, 우리의 실제 생활과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 어, 뭐지?'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부분이 나타날 때마다 주목하시면 조금은 분명하게 책을 읽어나가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전 '어, 뭐지?'를 느끼기는 했지만 그런 기분을 즐기기도 하는 터라 헤롱헤롱하며 읽었지만요.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있겠다, 신기하겠다라는 호기심 뿐이었는데 게임회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느끼게 되는 오싹함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마치 어두운 미래를 본 느낌이었어요. 우리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고, 선택마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현실이 온다면 우리도 결국 마지막에는 우에스기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내가 숨쉬고 있는 공간이, 나의 선택이 오로지 나의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한 것이라면 그 좌절감과 무력감은 상당하겠죠.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의 우에스기의 선택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카지마 후타리라는 이름은 도쿠야마 준이치와 이노우에 이즈미 콤비의 공동필명으로 닐 사이먼의 [오카시나 후타리]에서 빌려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두 콤비의 역할분담도 상당히 정확했던 듯, 도쿠야마가 플롯을, 이노우에가 집필을 담당했다네요. 일본의 엘러리 퀸이나 전설의 콤비라 불려졌던 이들은 현재 해체된 상태지만 다른 작품들도 소개되서 그 매력을 흠뻑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