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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오늘 동생과 다퉜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다퉜다기보다 제가 일방적으로 동생을 삐지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니고 너무 치사스런 일이라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창피하지만, 제가 요즘 무척 예민해져 있는 데다가 여기저기 몸도 안 좋아서 저기압인 상태였다-고 하면 변명일까요. 결국 동생은 저녁도 안 먹고 수원의 자취방으로 돌아가버렸는데요, 외출하셨던 부모님이 밥도 안 먹고 갔다고 어찌나 서운해하시는지요. 무슨 일이 있나, 서운하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내가 치사하게 굴어서 삐졌다!'고는 차마 말도 못하고, 따끔따끔 속이 찔려서 심장이 벌렁벌렁하다가, 결국 미안하다고 먼저 문자를 보냈습니다. 엄청 서운한 모양인지 답문도 없네요, 흑흑.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는 절대 동생과 다투는 일 따위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정말 제가 앞으로 동생과-가볍게라도-다투는 일이 없을지, 저조차도 의심이 들어요. 그 나이 먹도록 아직도 동생과 다투느냐고 하시면, 쩝, 할 말은 없지만 저희 집 식구들의 성격이 워낙 불같고 직접적이라 마음 여린 저도 나름 제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를 위한 공격을 할 때가 있거든요. 요즘 라디오에서 '당신은 밖에서의 행동과 안에서의 행동이 다르십니까' 가 주제인 광고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저는 그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밖의 사람들과 안의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안의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이 더 좋아야 하겠지만, 가끔 우리는 남에게는 관대한 일도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한 적도 있잖아요. 밖의 사람에게는 이미지도 지켜야 하고 이것저것 따져서 행동해야 할 때도 있지만, 가족을 상대로는 감정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좋은 말과 행동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는 생각합니다.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이 '가족'이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애증의 관계죠, 애증. 전 이것보다 가족의 관계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아직 찾지 못했어요. 사랑의 감정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위에 미움과 증오가 쌓일 때도 있으니까요. 그 미움과 증오가 어떤 가족에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어떤 가족에게는 순간뿐인 감정이 되기도 하겠죠. 분명한 하나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우리가 가족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 그런 말 자주 하잖아요. 엄마가 날 다 알아?, 당신이 내 마음을 다 알아? 같은.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은 '가족'이 주제입니다. 친구가 자살한 후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전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은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 반, 보호하려는 마음 1/4, 감시하려는 마음 1/4이 더해져, 아들의 컴퓨터에 기록을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바이 부부. 신장이식을 해야 하는 아들을 둔 로리먼 부부. 아들이 자살한 힐 부부. 이야기는 이런 다양한 가족들 위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자를 납치해서 잔인하게 살해하는 범인,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하려는 경찰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져 전개됩니다. 처음에는 대체 이 사람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게 될지 고개가 갸우뚱해지지만, 읽어나가다보면 결국 접점을 갖게 되고 하나로 모아지죠.
사실 [아들의 방]은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할런 코벤의 작품과는 조금 달라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 반전의 자리를 '가족'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속도감과 스릴은 기존의 작품에 비해 떨어지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들의 삶이 과연 '가족'이라서 행복한지 등을 생각하게 해주죠. 가족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타당한 것인지,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인지, 아이들을 키울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고 할까요. 때문에 평소보다 좀 더 꼼꼼하게 읽어나갔답니다.
작가는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강아지가 새장에 갇혀 있다가 날개달고 날아가는 표지도 그렇고, 바이 부부가 인터넷 상에서 아들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한 그 선택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세요. 그리고 로리먼 부부, 특히 아내인 수전이 간직한 비밀을 남편이 끝까지 모르게 진행된 전개과정은 암묵적으로 앞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힐 부부 같은 사람들은 어쩌면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면 그 아이가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서 하나의 주체인 아이들의 순간순간의 선택까지 부모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아닐테니까요. 참 어렵습니다, 가족은.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마치 원으로 연결된 것처럼 설정된 것은 좀 억지스럽고, 여자들을 납치해서 잔인하게 폭행하는 사이코패스의 등장은 개인적으로 미스라고 생각하지만, 그 정도는. 할런 코벤의 작품스럽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로는 할런 코벤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주제로,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전개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과 사이좋게 지내세요.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