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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차일드
팀 보울러 지음, 나현영 옮김 / 살림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 읽은 미스터리 소설 중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이로써 저의 책읽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근 며칠 동안 읽었던 책들이 재미가 없는 작품이었거나 혹은 저와 아주 맞지 않는 이야기였던 듯 해 기쁘기까지 해요. 더불어 책읽는 즐거움 지수 급상승.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끔 재미없는 책들만 줄줄줄 손에 잡히는 때가 있나 봅니다. 그럴 때는 아주 재미있는 책을 찾아읽어서 침체된 책읽기 즐거움 지수를 올려야 한다는 지인의 충고가, 이번에는 특효약이었던 듯 합니다. 사실은. 팀 보울러도 그리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기에 '이 책마저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면 어쩌나. 나는 이제 책 말고 다른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건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지만요. 반대의 결과가 나와 다행이죠.
'소년'을 내세워 할아버지와의 아름다운 교감과 상실을 통한 성장을 그렸던 [리버보이]와 마찬가지로, [블러드 차일드]의 주인공 역시 '소년'입니다. 다만, 뺑소니 사고를 당해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야 하는 조금 힘겨운 소년이죠. 의식을 회복하는 단계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정체불명의 소녀 영상과 어두운 그림자로 나타나는 얼굴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편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는 헤이븐스마우스 마을에 깃든 '병'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 소년의 이름은 윌. 사고를 당하기 전에도 환각을 봐왔다는 주변사람의 증언과 적대적인 눈길 속에서 소년은 또 다시 곤경에 처합니다. 소년이 보는 환영들의 정체, 헤이븐스마우스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윌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스터리가 격하지 않게,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질 정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실 전 [리버보이]를 재미있게 읽었지만 만약 팀 보울러의 작품이 죽 이런 방향이라면 그의 골수팬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했더랬습니다. 물론 성장소설을 좋아하기는 해도 같은 작가의 성장소설이 뭐 그리 큰 재미가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블러드 차일드]를 읽고나니 그런 점을 팀 보울러도 고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표면적으로는 미스터리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역시 '소년의 성장'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거든요.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는 하지만 [리버보이]와는 다른 설정을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사고를 당하기 전의 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글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의 윌이 환영을 보고 '병'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적대적인 시선 속에서 약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면, 사고 후 기억을 잃은 윌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겪는 고초나 위험은 그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 되어 그를 성장시키고 있어요. 죽음을 무릅쓰고 위험을 감수하고 결국에 모든 문제를 해결한 그의 성장은 작품의 마지막 문장, '여기 남겠어'로 귀결됩니다.
미스터리 방식을 취했고 전개 과정에 약간 공포도 느꼈지만 그 어떤 소설보다 순수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윌의 능력 때문일까요, 아니면 팀 보울러가 창조한 세계였기 때문일까요. 미스터리와 감동, 가슴 먹먹함이 한 데 어우러진 재미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