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해보다도 바쁜 2012년-이라는 생각을 품고 산 지 두달 째. 내가 이 일을 왜 벌였을까, 나도 그냥 편하게 살아볼걸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바쁘게 산다는 게 좋다는 건 안다. 올해가 다 가고 나면 어쩐지 -올해는 참 다이나믹했지. 바빴지만 보람있었어-하며 진심으로 나를 토닥토닥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확실히 예년에 비해 책을 많이 못읽고 있다. 집에 오면 지쳐 쓰러져, 말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내던지고 축 늘어진 채 잠이 든다. 완전히 나를 놓아버렸다는 느낌?! 그래서일까. 간간히 읽는 책들이 너무 좋아서 마음이 벅차다.

 

오늘은 온다 여사의 [불연속 세계] 리뷰를 올렸는데, 주인공 다몬(多聞)이라는 남자가 무척 맘에 든다. 다몬을 그의 친구라고 해야할지, 그저 가끔 만나는 사람이라고 해야할지의 어떤 여성이 이렇게 묘사했다.

 

-다몬 씨는 늘 '열린 상태'잖아...그러면서 어디에 있어도 닫혀있을 수 있단 말이지. 다몬 씨는 툭 터놓는 것 같지만 속마음은 전혀 드러내지 않으니까.  

-드러낼 속마음이 없을 뿐이야.

-응 그럴 수도 있어. 

리뷰에도 썼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기보다, 내 스스로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투명한 종이인형처럼 드러낼 속마음따위 없고 그저 순간에 반응하며 앞에 있는 상대에게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 아니면. 그저 속편한 사람?!

 

이제 읽어야지 하고 마음 먹은 책들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무조건 읽기 시작! 보통은 '~상 수상작'이라는 문구에 현혹되지 않는 편이지만, 이 부커상만은 굉장히 신뢰가 간다.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이 다들 좋았으니까. [세이브 미]는 왕따를 용서와 화해라는 관점에서 다가갔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시크릿 교토]는 교토에 무척 가고 싶은 내 마음을 투영시켰다. 그들에게는 생사가 걸려있는 일에 나는 여행타령이나 하는 것 같아 굉장히 미안하지만, 그래도 교토를 가기 어려워졌다는 점이 아쉬운 걸 어쩌랴.

 

 

 

 

이 두 권은 참 굉장히 안 읽힌다 =ㅅ=;;

관심 있어서 품에 들인 아이들이었는데.

어렵다 =ㅅ=

 

 

 

 

 

 

 

그리고 스트레스를 폭발시키기 위해 지른 아이들. 중고샵에서 건졌습니다욧.

 

 

 

 

 

 

 

 

 

 

 

 

 

 

 

 

 

 

 

 

 

 

 

 

 

 

 

커다란 박스가 배달되어오니, 기뻤다.

해도해도 안 질리는 책사기 놀이 =ㅅ=

오늘도 무슨 책을 살까 한 바퀴 돌았다. >.<

 

내일은 월요일.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책 읽고.

매일매일이 있음에 감사하고, 재미있는 책이 곁에 있음에 즐거워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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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속 세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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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여사라고 하면 당연하다는 듯 따라오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노스탤지어의 마법사. 사실 저는 딱히 어떤 분위기를 노스탤지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온다 여사의 이야기는 읽다보면 마음 한 구석이 저릿저릿해지는 이상한 느낌이 있어요. 그 느낌은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그리워해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거나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뚝 떨어져있는 것 같은 기분과 닮아있습니다. 안식과 평화를 갈구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만약 그런 느낌들이 노스탤지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면 온다 여사는 그 방면으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분위기들은, 한 번 만들어봐야지!-하고 결심한다고 해서 조성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불연속 세계]를 읽기 전에 [달의 뒷면]을 먼저 읽었다면 좋았을테지만 연작 단편집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것이 계기라면 계기. 다몬(多聞)이라는, 매우 좋은 뜻의 이름을 가진 한 남자가 어디를 가든 괴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가는 곳마다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는 점에서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지만, 이 다몬은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은 아니니까요. 사건을 해결한다기보다 그저 괴이한 일들을 들어주고 나름 그 이치를 따져서 조리있게 사건 당사자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정도입니다. 어쩐지 종이인형같은 이미지의, 이리 바람이 불면 이리 흔들리고 저리 바람이 불면 저리 흩날릴 것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또 결혼은 했는지 이 남자의 인생 또한 불가사의하다고 해야 할까요.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린 작품집입니다. 처음을 장식하는 <나무 지킴이 사내>와 두 번째 이야기인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를 읽고는 약간 무서웠습니다. 막 잠에 들기 전 읽었기 때문인지 무서운 꿈도 꾸었어요. 뒤에 이어지는 <환영 시네마>와 <사구 피크닉>등도 덜 무섭기는 했지만 앞의 두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노스탤지어보다는 '괴이'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귀신과 연결되는 느낌? 인간의 마음 속 어두운 기운이 그런 덩어리로 드러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장 마음에 든 이야기는 마지막 이야기 <새벽의 가스파르>입니다. 이 작품은 [흑과 다의 환상]을 연상시키는 이야기였는데요, 앞에서 언급했던 그런 분위기와 마음들을 오랜만에 맛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참 좋았어요.

 

이 책은 이야기보다는 '다몬'이라는 남자 자체가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다면 여자든 남자든 간에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다몬 씨는 늘 '열린 상태'잖아...그러면서 어디에 있어도 닫혀있을 수 있단 말이지. 다몬 씨는 툭 터놓는 것 같지만 속마음은 전혀 드러내지 않으니까.  

-드러낼 속마음이 없을 뿐이야.

-응 그럴 수도 있어. 

아아, 대체 이 다몬은 어떤 사람인 걸까요. 어쩌면 저는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기보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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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상페
장 자크 상뻬 지음, 허지은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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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사랑스럽고 포근한 책입니다. 열정적이고 톡톡 튀는 책이기도 해요. [꼬마 니콜라]에 푹 빠져들어 출간되는 책마다 구입해서 책장 한 켠에 가지런히 꽂아두곤 했는데, 처음에는 이 [뉴욕의 상뻬]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제목이 [뉴욕의 상뻬]인데 말이에요. 하지만 기대와 다른 책이어서 실망했다기보다 오히려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창 밖에 바람은 다소 불지만 햇빛은 비춰지고, 부모님 두 분은 나란히 낮잠을 즐기시는 이 오후에,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실로 오랜만에 -아, 봄이 오는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있다는 증거같아 약간 안심이 됩니다. 길고 긴 겨울을 지나오면서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보다 나은 생활이 지속될 거라는 걸, 실행은 못했지만 깨닫고 있었으니까요. 스트레스와 마음 고생으로 3월을 심하게 앓아야 했던 저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책입니다, 이 작품집은요.  

 

이 책은 1978년부터 2009년까지 잡지 <뉴요커>에 장 자끄 상뻬가 그린 표지화들로 엮어져 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분량이긴 하지만 상뻬와 르카르팡티에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상뻬가 처음 <뉴요커>에 표지 의뢰를 받았을 때의 심경, 그가 잡지 사장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경외, 뉴욕 사람들에 대해 품은 생각, 뉴욕 그 자체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 다른 삽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것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잘 몰랐지만 이 <뉴요커>라는 잡지에 표지화가 실린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인 모양으로, 프랑스인 특유의 밝고 흥분된 상뻬의 목소리가 종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답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요커>가 자신들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고 '상뻬다운' 그림을 요청했으니 그럴 수밖에요. 자신의 부족함을 늘 인정하는 겸손함도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그만의 확고한 생각도 가지고 있는 상뻬가, 어떤 그림이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할 때의 목소리는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꼬마 니콜라]에서 알아채지 못했던 상뻬 특유의 감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르카르팡티에와의 인터뷰를 통해 종종 놀라울만큼 감성적이고 섬세하며 서정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가령 르카르팡티에가 '우수'라는 단어에 대해 언급하자 상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사람들이 그 말에 놀라는 게 놀랍기 때문이에요. 우수와 향수는 인생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보내는 좋은 순간에는 분명 우수가 깃들어 있어요. 아주, 아주아주 행복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에서는 <이 순간도 역시 지나갈거야>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거든요. 그건 마치......향기가 날아갈까 두려워 마개를 열지 못하는 포도주, 빛에 노출시키지 말아야 하는 그림들처럼......그런 거에요.

그런 서정성과 우수는 인터뷰 뿐만 아니라 표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1981년에 실린 표지 중 어린 발레리나 소녀들이 무대 위로 등장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요, 계단 한 구석에서 혼자 쪼그리고 앉아 발레 슈즈를 신고 있는 듯한 모습이 그렇게 와 닿을 수 없는 거에요. 어떤 행사에서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내야 하는데 오직 한 명의 소년만이 풍선을 꽉 쥐고 고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림이나, 복잡하고 바쁜 거리에서 홀로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신사의 여유로움, 무대 위의 공연을 위해 그 뒤에서 고생하는 스텝들을 그린 표지, 홀로 방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고양이 그림 등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감정들이 그림을 통해 전달됩니다. 이를테면 그는, 상뻬는, 세상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인 거죠. 그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상뻬는 삽화가가 아니라 예술가로 불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단편적인 세상이 아니라 그 뒤의 세계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라면, 이미 예술가로 불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한 장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포근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 오늘날 그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요커>에서 살아남은 이유, 많은 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세계적인 삽화가로 칭송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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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1
케이트 모튼 지음, 정윤희 옮김 / 지니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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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리버튼]으로 잔잔하고 아련한 감동을 주었던 케이트 모튼이 [비밀의 정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순간의 오해로 빚어진 잔혹한 운명의 엇갈림으로 책을 읽고 난 후 한동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던 기억이 나요. 때문에 [비밀의 정원]에 대한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물 한 살이 되던 생일날 자신에게 얽힌 비밀을 알고 그 때까지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린 넬과, 그녀의 죽음 뒤 손녀인 카산드라가 넬의 인생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며 운명을 향한 새로운 한걸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리버튼]에서도 보여주었던 운명의 비틀림과 안타까움이 녹아들어있기는 하지만 [리버튼]에서 받은 감동보다는 덜하다는 느낌이었어요.

 

이야기의 줄기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넬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호주에서 영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뿌리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넬이 태어나기 전 넬의 출생과 관련된 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인연들, 넬의 죽음 후 카산드라가 할머니인 넬이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산 비밀을 알아내고 결국 비밀을 밝혀내는 모습들이 시공을 초월해 묘사되어 있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무엇이든 하나씩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는 카산드라를 통해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합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만나 힘찬 한보를 내딛는 그녀의 현재는, 넬과 넬의 출생에 관련된 모든 인물들의 희망이 투영된 모습, 바로 그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습니다. 굳이 두 권으로까지 만들었어야 했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세심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려 하는 의지는 전달이 됐지만, 그 점이 오히려 약간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넬의 출생에 얽힌 비밀이야 책을 좀 읽다보면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그 비밀 하나로 긴장감 있게 작품을 이끌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기도 했고요. 매력적인 소설임에는 틀림없지만, 스피디함과 강한 자극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잘 맞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저한테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요즘 마음 불편한 일들이 계속 있어서 책에 몰입하지 못했을 수도요. 바뜨. 그런 마음도 몰입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재미있는 책 아니겠습니까. 어째 이리저리 널뛰는 감상이 되고 말았지만 저의 마음은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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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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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에 이어 접하는 김려령 작가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음. 개인적으로는 [완득이] > [가시고백]> [우아한 거짓말] 순이 되겠습니다. 사실 [완득이]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우아한 거짓말]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었어요. 하지만 [완득이]의 성공으로 작가가 심리적 부담을 느꼈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우아한 거짓말]은 억지로 감동을 만들어내려 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왠지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느낌, 독자들이 이 부분에서는 뭔가를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인위적인 장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기분. 제가 예민한 탓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심각한 주제가 희극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시고백]에서는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깨힘이 조금 빠졌다고 할까요. 현실 그대로라고 할 수는 없으나 [완득이]에서 느꼈던 유쾌함과 발랄함 속에 10대들의 고민이 녹아들어있는 듯 합니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해일과 재혼가정인 지란, 반장이라는 한없는 책임감에 짓눌려 마음고생하는 다영이와 너스레 잘 떨고 욕쟁이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속깊은 진오가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그 와중에 제자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은 담임교사와 도사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해일의 형 해철이 등장해 곳곳에 조미료를 뿌려주죠. 10대들의 고민이 비단 공부만은 아님을,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공부만 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햇살과 바람 아래서 살고 있는 데다, 공부에만 집중하기에 편안한 환경을 가진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적어도 친구관계, 부모님과의 관계로 인해 한 두가지 고민쯤은 안고 있을 겁니다. 때문에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한없이 밝게 웃고 있어도 그 아이가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더 잘 살펴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니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4명의 아이들 모두 가슴에 상처와 고민은 있지만 그들 특유의 발랄함과 활기참으로 귀엽고, 나름 시크한 매력을 풍기는 담임교사도 조금 잘난 척 말하는 것(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인 걸까요?) 빼고는 마음에 들지만 제가 주목한 인물은 해일의 형 해철입니다. 글쎄요.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이 해철이라는 인물을 창조해낸 건지 매우 궁금하군요.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면 놀고먹는 백수에 돈 안 되는 일에 열심인 한심한 사람처럼 보이는 이 해철이, 어쩌면 이 작품에서 제일 생각깊고 어디에 떨어트려 놓아도 가장 힘차게 살아갈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필요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감정은 잘 다스려야 해요. 질투나 시기가 지나치면 인격살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거든요. 저보다 잘났든 못났든 조롱하고 야금야금 씹는 거죠. 그거 결국 둘 다 죽는 거예요...감정 분포가 잘못된 사람은 모든 기준이 자기인 줄 알아요. 그런 사람일수록 저만 잘 먹고 싶어 하죠. 같이 굶어 죽으면 죽었지 남 잘 먹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거예요. 감정 설계는 그런 사람이 제일 먼저 받아야 해요. 자기 무덤 자기가 더 깊게 파기 전에. -p55

약간은 심각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함에도 즐겁게 읽었지만, 조금 산만하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습니다.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랄까요. 10대들의 고민, 다른 사람을 헐뜯고 상처주는 사회에 대한 비판, 교사와 아이들과의 관계, 교직에 대한 생각 등등 아직은 정리가 조금 덜 된 느낌이에요. 다음 작품에서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 하나만 딱 잡아서 조금 심도있게 그려보면 어떨까 싶네요. 전체적으로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말, 참 괜찮네요.

 

 삶의 근육은 많은 추억과 경험으로 인해 쌓이는 것입니다. 뻔뻔함이 아닌 노련한 당당함으로 생과 마주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살아 보니 미움보다 사랑이 그래도 더 괜찮은 근육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어 미운 사람 여전히 미워하지만, 좋은 사람 그냥 떠나 보내는 실수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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