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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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 참 강렬합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이 있었길래 제목조차 이리 강렬한 포스를 풍기는 건지 짐작이 가실까요. 살다보면, 그래요. 생각만으로도 승질 나고 다시 내 인생에서 보는 날이 없었으면 좋겠고, 그런 그지깽깽이같은 인간 여자와 인간 남자들은 후에 온당한 대가를 치를 거라며 팔딱팔딱 뛰는 날이 있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가끔 욱하는 성격이라 -에이, 퉤퉤퉤-하는 날이 있지만 또 머리가 그다지 좋지는 않은 관계로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건 용서와는 별개인 것으로, 용서했다면 무심코 떠올랐을 때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날나리로 다니는 성당 주보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습니다. 용서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물론 -성당 주보에 쓰인 글이니까 당연하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끝이 있는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볼 때 어쩌면 진실로 용서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요. 타인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서요.

 

할런 코벤의 작품답게 몰입이 상당히 잘 되는 작품입니다. 상관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사건이 뒤엉켜 내용이 전개되지만 역시 마지막에는 그 엉킨 실타래가 슬슬슬 풀려요. 그 푸는 솜씨가 굉장합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현상들 뿐만 아니라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개인적인 사정들까지 사건과 연계되면서 촘촘한 구성을 자랑하죠. 학대받는 아이들을 도와온 댄이 숨기고 있던 비밀이라거나,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소녀 헤일리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 성범죄자들을 밝혀내는 웬디의 슬픈 가족사까지 그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거기에 여러 번 뒤통수를 후려치는 신공을 발휘하시는 이 분, 이번에도 몇 번의 후려치기 기술을 선보이시며 -뭐야, 아직도 더 남은 거야?! 아직도 뭐가 남은 거야!-라는 심호흡이 필요한 반전을 선사해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들의 방]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저는(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단순한 스릴러보다 뭔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인간의 욕망, 사회의 부조리, 우연적인 사건에 의해 맞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 이런 요소들을 생각하다보면 나란 존재는 정말 작구나, 우주의 먼지 하나에 지나지 않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그럼에도 이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신비한 기적에 전율을 느끼죠. 그런 면에서 할런 코벤은 참 세심하다고 할까요. 인간의 마음 속 솜털만한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엿보인다고 할까요. <뉴욕타임스> 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마는 절박한 본능을 코벤은 가장 적확하고도 깔끔하게 표현해냈다-라고 찬사를 보냈는데요, 그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도덕과 인간적인 처사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죄를 짓게 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좀 더 조심스럽게 우리 생을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전과 긴장, 숨가쁜 스피드. 할런 코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여기 들어있지만 저는 '감동'이라는 것을 하나 추가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설사 혼자 곰곰히 생각해서 내가 누군가를 용서했다는 결론을 내렸더라도, 그 사람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를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묵직한 감동까지 더해져 -역시 할런 코벤-이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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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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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교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이 엘리베이터 안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는 사진이 공개되었습니다. 아마 그 사진을 본 많은 사람들은 시간을 그 전으로 되돌리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했을 겁니다. 대체 우리 아이들은 어느 선 위에 서있는 걸까요? 아이들이 왜 이러는 걸까요?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는 외로운 존재가 되어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독, 인터넷과 스마트폰 속 게임중독으로 인한 폭력에 대한 무절제, 많은 이유들이 점철되어 거대한 결과를 낳은 것이겠지만 그 이유들 중 '혼나야 될 때 혼나지 않아서'도 빼놓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디너]는 어느 날의 저녁식사 시간을 둘러싼 한 남자의 갈등을 보여주는 심리소설입니다. 학교폭력은 아니나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정서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믿었던 행크 로만. 그러나 그의 가정은 아들 미헬이 거리의 노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폭력적인 장면이 TV에 비춰지면서 위기를 맞이하죠. 화면에 비친 저 아이들이 정말 내 아들과 조카인가. 끊임없이 자문하고 의심하지만 진실은 하나. 결국 아들 미헬의 휴대폰까지 훔쳐보게된 행크는 또다른 폭력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과 조카의 거취를 의논하기 위해 모인 행크 부부와 형 세르게 부부.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가기 앞서 아페리티프(서양 요리의 정찬에서 식욕증진을 위하여 식전에 마시는 술)와 에피타이저를 통해 분위기는 고조되고 드디어 문제가 물 위로 떠올랐을 때 갈등은 폭발합니다.

 

이 작품은 범죄를 저지른 아들에 대한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 뿐 아니라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흑인과 빈곤자들에 대한 편견, 폭력적 성향의 유전적 원인, 선과 악의 경계 등에 대해서요. 폭력적 성향의 유전적 원인-에 관한 부분은 설득력이 조금 빈약했지만 흑인에 대한 편견, 선과 악의 경계 등에 대한 묘사는 놀랍습니다. 행크는 형 세르게 부부가 입양한 흑인 아이 베아우에 대해 공공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아내 끌레르는 그런 행크를 오히려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의 아들이 궁지에 몰리자 그녀의 본성이 일시에 드러나죠. 인종에 관한 편견을 숨기고 착한 백인 역할을 연기했던 끌레르가 아들을 지키기 위해 변화하는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고 할까요.

 

오히려 저는 행크의 형인 세르게에게서 반전의 묘미를 느꼈습니다. 세르게는 차기 수상 자리를 노리는 유명한 정치가입니다. 인격적으로 고매하다기보다 속물 근성에 짐승적인 본능이 강한 남자죠. 그런 세르게가 오히려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를 포기하겠다 합니다. 가족으로서 아들의 죄를 아버지인 자신이 속죄하겠다는 것이었죠. 그런 그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한 것은 각자의 아들들의 엄마, 끌레르와 세르게의 아내 베르테입니다. 가족만 알고, 가족이니까 덮어줘야 할 일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저 아무 일 없이 시간만 지나면 해결될 거라 믿으며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내죠.

 

작품 속에서 거리의 노숙자를 죽인 행크의 아들 미헬과 그의 조카 릭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장면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후 많은 돈을 요구(했다고 여겨지는) 한 베아우가 실종되죠. 그리고 끝. 작품은 이렇게 끝나지만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미헬과 릭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저는 아직 미혼이고 아이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그 사람이 미성년자이든 가족이든 상관없이요. 과거를 책임지지 않으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믿어요. 정당한 처벌, 정당한 속죄. 그것만이 마음 속 짐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요. 그리고 그러면서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아내고 성장하며 자신의 아픔까지 치료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니까, 사랑의 이름으로 죄를 덮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워서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거잖아요. 감싸는 게 능사는 아니죠. 그런데 언제까지 부모가 자식의 일을 대신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자연적인 순서라면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죽고 자식들은 부모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요. 홀로 남겨진 그 세상에서 자식이 굳건히 두 발로 서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하려면 결과에 대한 책임, 죄에 대한 속죄 등 인간으로서 마땅히 배워야 할 것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면, 상대가 귀할수록, 꾸짖어야 할 때 꾸짖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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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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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십니까? 때이른 더위에 벌써부터 지쳐 계신 건 아닌가요? 이제 완연한 여름입니다. 그야말로 미스터리, 스릴러의 계절이 도래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저야 일년 내내 미스터리와 스릴러물을 가리지 않고 읽는 사람이라 여름이 되어도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지만, 어쩐지 여름이 되면 좀 더 읽는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요즘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 갑자기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메일이 아니라 편지여서 뜻밖이었다고요? 으흐. 제가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책이 바로 당신과 제가 즐겁게 읽었던 [고백]의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왕복서간] 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정형화된 글자로 서로의 안부를 묻기보다, 이렇게 서로 실재한다는 느낌을 주는 편지 쪽이 더 정감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는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는데, 세상 참 많이 변했죠.

 

[왕복서간]은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세 편의 이야기가 묶여있는 단편집이더군요.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편지를 통해 그 때의 진실을 밝혀내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섭고 잔인한 악의가 흘러넘친다기보다 그 순간에는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선택의 순간에 결단을 강요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처음에는 물론 이번에는 인간의 어떤 악의를 보여줄 것인가, 악의 속에 숨겨진 어떤 슬픔을 보여줄 것인가 기대했지만 잔인한 악의는 없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사연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는 <이십 년 뒤의 숙제>였어요. 지금은 교직을 떠난 선생님이 제자인 오바 아쓰시에게, 예전에 가르쳤던 다른 여섯 명의 제자에게 자신의 편지를 전해주길 바란다는 부탁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쓰시가 편지를 전달하며 다니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잔혹한 사연이 밝혀져요. 남편과 제자들과 함께 소풍을 떠난 어느 날, 한 명의 제자와 남편이 물에 빠지고 결국 남편은 사망했다는 것이었죠. 제자들의 시각에 따라 선생님의 모습이 다르게 비춰지지만 결국 진실은 하나.

 

그러나 이 선택이 결코 이 선생님만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내가 그 선생님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답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답을 내지 못할 거에요. 하지만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면 역시 제자가 아니라 남편 쪽을 먼저 구하게 되겠죠. 올해들어 특히 제가 학교와 아이들 일로 고민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때문에 더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듯 해요. 상상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어떤 의미로는 가장 공포스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당신도 줄곧 얘기했었잖아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고백]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해요. [고백]이 워낙 재미있었어야 말이죠. 하지만 [왕복서간]은 뭐랄까, 그런 이미지를 의식하지 않고 쓴 작품 같아요. [속죄]나 [야행관람차], [소녀]등의 작품이 [고백]의 신드롬을 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왕복서간]은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고 그야말로 쿨하게, 힘을 빼고 편안하게 써내려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때문에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따스함도 깃들어있는 게 아닐까요.

 

누구나 힘들다는 요즘입니다. 당신도 여전히 힘든가요? 저도 조금 힘들지만 당신과, 그리고 이렇게 한숨 돌릴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이 있어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렇게 문장으로가 아닌, 얼굴을 맞대고 읽은 책들에 대해, 당신과 나에 대해 행복하게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부디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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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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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은 후 되돌아가 다시 정독하고, 나름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한 부분을 간추려 읽은 것까지 반올림해서 합하면 세 번 정도 읽었다 하겠다. 한 작품을 읽은 후 시간의 차이를 두지 않고 마치 끝이 처음과 이어져 있는 것처럼 다시 읽어나간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다시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라는 문구에도 반신반의했더랬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반전이길래.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웬만한 반전에는 이제 끄떡없다 자신하는 나였지만, 이 작품의 반전에는 꽤 놀랐음을 고백한다. 그 반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소설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 인생 그 어떤 시점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을까. 안분지족-의 삶이, 비록 평범할지라도 무척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기에, 때문에 나에게는 그런 삶이 허락되기를 바라는 것도, 어쩌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선에서 언제 어디서 놀라운 사실과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정처없는 두려움을 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린 시절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종종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행동을 기억하는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너 어렸을 때 그랬었어'라는 말을 꺼내면, 마치 미지의 생물과 조우한 느낌이 든다. 마치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만이 '나'일 뿐, 과거에 존재했던 '나'는 내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기분 나쁜 일이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머릿속에 꽁꽁 묻어두고 몇 달만 지나도 안개 속에 휩싸인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의 뇌의 영향인 걸까. 때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도 실제로 일어났던 것처럼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들이밀지 않는다. 다만 서술할 뿐이다. 때문에 '확실하게' 밝혀졌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우리는 앞뒤 사건들을 짜맞추고 기록을 살펴서 추측할 뿐이며, 그 추측이 사실에 가까울지라도 작가는 그것이 '정확하다'고 판단해주지 않는다. 작품이 삶과 닮아있는 것이다. 기억은 온전한 한 개인만의 것. 나의 기억이 정확한지 어떤지 타인은 물론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다. 내가 했던 말 한마디, 그 때 했던 행동이 과연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는가도. 이 작품의 매력은 그것에 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편의에 맞추어 기억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것. 의식의 표면에서는 비록 인식하지 못해도 무의식적으로는 그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 그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이야기를 통해 전면에 내세우면서 '진심으로' 깨닫게 해준다.

 

오묘한 작품, 냉철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관찰이 꽤 오랜시간 농축되어 이제야 빛을 발했다는 느낌이랄까. 부커상 수상작들을 유독 애정하는 나이기도 하지만, 이번 작품은 굉장히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아니, 다른 '읽어야 할' 책들 사이에 이미 '읽은' 이 책이 끼워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어쩌면 가까운 시간 안에 나는 또 이 책을 펼쳐들지도 모르겠다. 문장 하나 하나를 곱씹으면서. 독서란 그래서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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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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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의 마법사-로 불리는 온다 여사의, 조금은 색다른 작품입니다. [불연속 세계]의 매력남 다몬(多聞)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세계를 그리고 있어요. 굳이 장르를 따져보자면 SF의 범주 안에 넣어야 할 것 같지만, 완전한 SF인 것인가 라고 한다면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는 묘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읽는 내내 작년에 읽었던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을 떠올렸는데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새로운 존재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은 있지 않나 싶네요. 다만 스티븐 킹이 외계인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한다면 온다 여사는, 뭐랄까요, 백귀야행 같은 맛이 나면서 또 굳이 그렇지만도 않은, 하지만 일본적인 감성을 덧칠해 마음 깊은 곳을 스윽 만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느낌인지 아시려나요. 흠흠.

 

딱히 이 작품의 줄거리를 소상히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책 뒷표지에 쓰인 문구가 아주 훌륭하게 이 작품을 나타내고 있거든요. -의문의 연쇄 실종사건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미스터리와 판타지, SF와 호러의 환상적인 크로스오버- 와우, 이 문구보다 더 훌륭하게 이 작품을 소개할 말은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전 SF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먼 우주 밖 어딘가에 분명히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우주전쟁, 외계인, 요런 이야기들에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런 저에게 SF의 매력을 알게 해 준 작품이 바로 [언더 더 돔]이었고, 이번 온다 여사의 [달의 뒷면]을 통해 조금 더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다 호러의 분위기에 무서워하면서도 밤늦게까지 열심히 읽었으니, 다른 독자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분명 큰 매력을 발산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 작품은 '다수에 속한다'는 것, '하나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실종되었다 돌아오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자신들이 그런 존재에 속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과 같아지고 싶어하며, 두려움을 넘어 '다수'가 되는 것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평소 생활에서는 알아챌 수 없지만 큰 충격을 받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의 행동, 즉 무의식적인 반응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편의점 장면에서, 저는 그런 본능으로 사회문제가 깊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어요. 나는 개성적인 한 인간이야, 나는 나야, 나는 그 누구와도 달라-를 외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가 누군가와 다름을 두려워하는 거죠. 그래서 어쩌면 슬금슬금, 혹은 지나친 당당함으로 하나가 되기를 요구하고 다수에 속하지 않는 소수에게 어서 우리 편에 들어오라고 강요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야나쿠라의 물이 순식간에 사람들을 덮쳐 데려가버리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제가 지금 좀 예민한 상태라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수는 뭐고 소수는 뭔가, 다수에 속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하는 갖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좀 복잡해요. 이런 고민 상태의 제 마음 어느 곳에서는, 저도 분명히 다수에 속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어쩌면 저는 지금도 성장하는 것일지도요. 인생의 비밀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기 마련이라는 문구처럼, 제가 보지 못했던 방향, 알지 못했던 마음들에 요즘 눈 떠가는 중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알지 못했던 것,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달의 뒷면'일테니까요.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달리 좀 더 철학적이기도 하면서 그렇다고 감성적인 면을 포기하지 않은 이번 이야기가, 저는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온다 여사의 팬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한계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이야기만 접해왔기 때문인지 참 신선하고 좋았어요. 오! 온다 여사가 이런 이야기도!-의 느낌이랄까요. 음. 어쩌면 다몬이라는 이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지도요. 봄에 읽어도 좋지만, 어쩐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을에 읽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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