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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평점 :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로 불리는 온다 여사의, 조금은 색다른 작품입니다. [불연속 세계]의 매력남 다몬(多聞)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세계를 그리고 있어요. 굳이 장르를 따져보자면 SF의 범주 안에 넣어야 할 것 같지만, 완전한 SF인 것인가 라고 한다면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는 묘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읽는 내내 작년에 읽었던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을 떠올렸는데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새로운 존재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은 있지 않나 싶네요. 다만 스티븐 킹이 외계인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한다면 온다 여사는, 뭐랄까요, 백귀야행 같은 맛이 나면서 또 굳이 그렇지만도 않은, 하지만 일본적인 감성을 덧칠해 마음 깊은 곳을 스윽 만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느낌인지 아시려나요. 흠흠.
딱히 이 작품의 줄거리를 소상히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책 뒷표지에 쓰인 문구가 아주 훌륭하게 이 작품을 나타내고 있거든요. -의문의 연쇄 실종사건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미스터리와 판타지, SF와 호러의 환상적인 크로스오버- 와우, 이 문구보다 더 훌륭하게 이 작품을 소개할 말은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전 SF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먼 우주 밖 어딘가에 분명히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우주전쟁, 외계인, 요런 이야기들에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런 저에게 SF의 매력을 알게 해 준 작품이 바로 [언더 더 돔]이었고, 이번 온다 여사의 [달의 뒷면]을 통해 조금 더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다 호러의 분위기에 무서워하면서도 밤늦게까지 열심히 읽었으니, 다른 독자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분명 큰 매력을 발산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 작품은 '다수에 속한다'는 것, '하나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실종되었다 돌아오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자신들이 그런 존재에 속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과 같아지고 싶어하며, 두려움을 넘어 '다수'가 되는 것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평소 생활에서는 알아챌 수 없지만 큰 충격을 받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의 행동, 즉 무의식적인 반응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편의점 장면에서, 저는 그런 본능으로 사회문제가 깊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어요. 나는 개성적인 한 인간이야, 나는 나야, 나는 그 누구와도 달라-를 외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가 누군가와 다름을 두려워하는 거죠. 그래서 어쩌면 슬금슬금, 혹은 지나친 당당함으로 하나가 되기를 요구하고 다수에 속하지 않는 소수에게 어서 우리 편에 들어오라고 강요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야나쿠라의 물이 순식간에 사람들을 덮쳐 데려가버리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제가 지금 좀 예민한 상태라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수는 뭐고 소수는 뭔가, 다수에 속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하는 갖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좀 복잡해요. 이런 고민 상태의 제 마음 어느 곳에서는, 저도 분명히 다수에 속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어쩌면 저는 지금도 성장하는 것일지도요. 인생의 비밀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기 마련이라는 문구처럼, 제가 보지 못했던 방향, 알지 못했던 마음들에 요즘 눈 떠가는 중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알지 못했던 것,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달의 뒷면'일테니까요.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달리 좀 더 철학적이기도 하면서 그렇다고 감성적인 면을 포기하지 않은 이번 이야기가, 저는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온다 여사의 팬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한계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이야기만 접해왔기 때문인지 참 신선하고 좋았어요. 오! 온다 여사가 이런 이야기도!-의 느낌이랄까요. 음. 어쩌면 다몬이라는 이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지도요. 봄에 읽어도 좋지만, 어쩐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을에 읽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