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학교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이 엘리베이터 안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는 사진이 공개되었습니다. 아마 그 사진을 본 많은 사람들은 시간을 그 전으로 되돌리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했을 겁니다. 대체 우리 아이들은 어느 선 위에 서있는 걸까요? 아이들이 왜 이러는 걸까요?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는 외로운 존재가 되어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독, 인터넷과 스마트폰 속 게임중독으로 인한 폭력에 대한 무절제, 많은 이유들이 점철되어 거대한 결과를 낳은 것이겠지만 그 이유들 중 '혼나야 될 때 혼나지 않아서'도 빼놓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디너]는 어느 날의 저녁식사 시간을 둘러싼 한 남자의 갈등을 보여주는 심리소설입니다. 학교폭력은 아니나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정서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믿었던 행크 로만. 그러나 그의 가정은 아들 미헬이 거리의 노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폭력적인 장면이 TV에 비춰지면서 위기를 맞이하죠. 화면에 비친 저 아이들이 정말 내 아들과 조카인가. 끊임없이 자문하고 의심하지만 진실은 하나. 결국 아들 미헬의 휴대폰까지 훔쳐보게된 행크는 또다른 폭력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과 조카의 거취를 의논하기 위해 모인 행크 부부와 형 세르게 부부.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가기 앞서 아페리티프(서양 요리의 정찬에서 식욕증진을 위하여 식전에 마시는 술)와 에피타이저를 통해 분위기는 고조되고 드디어 문제가 물 위로 떠올랐을 때 갈등은 폭발합니다.

 

이 작품은 범죄를 저지른 아들에 대한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 뿐 아니라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흑인과 빈곤자들에 대한 편견, 폭력적 성향의 유전적 원인, 선과 악의 경계 등에 대해서요. 폭력적 성향의 유전적 원인-에 관한 부분은 설득력이 조금 빈약했지만 흑인에 대한 편견, 선과 악의 경계 등에 대한 묘사는 놀랍습니다. 행크는 형 세르게 부부가 입양한 흑인 아이 베아우에 대해 공공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아내 끌레르는 그런 행크를 오히려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의 아들이 궁지에 몰리자 그녀의 본성이 일시에 드러나죠. 인종에 관한 편견을 숨기고 착한 백인 역할을 연기했던 끌레르가 아들을 지키기 위해 변화하는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고 할까요.

 

오히려 저는 행크의 형인 세르게에게서 반전의 묘미를 느꼈습니다. 세르게는 차기 수상 자리를 노리는 유명한 정치가입니다. 인격적으로 고매하다기보다 속물 근성에 짐승적인 본능이 강한 남자죠. 그런 세르게가 오히려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를 포기하겠다 합니다. 가족으로서 아들의 죄를 아버지인 자신이 속죄하겠다는 것이었죠. 그런 그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한 것은 각자의 아들들의 엄마, 끌레르와 세르게의 아내 베르테입니다. 가족만 알고, 가족이니까 덮어줘야 할 일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저 아무 일 없이 시간만 지나면 해결될 거라 믿으며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내죠.

 

작품 속에서 거리의 노숙자를 죽인 행크의 아들 미헬과 그의 조카 릭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장면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후 많은 돈을 요구(했다고 여겨지는) 한 베아우가 실종되죠. 그리고 끝. 작품은 이렇게 끝나지만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미헬과 릭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저는 아직 미혼이고 아이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그 사람이 미성년자이든 가족이든 상관없이요. 과거를 책임지지 않으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믿어요. 정당한 처벌, 정당한 속죄. 그것만이 마음 속 짐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요. 그리고 그러면서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아내고 성장하며 자신의 아픔까지 치료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니까, 사랑의 이름으로 죄를 덮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워서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거잖아요. 감싸는 게 능사는 아니죠. 그런데 언제까지 부모가 자식의 일을 대신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자연적인 순서라면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죽고 자식들은 부모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요. 홀로 남겨진 그 세상에서 자식이 굳건히 두 발로 서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하려면 결과에 대한 책임, 죄에 대한 속죄 등 인간으로서 마땅히 배워야 할 것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면, 상대가 귀할수록, 꾸짖어야 할 때 꾸짖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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