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건강하십니까? 때이른 더위에 벌써부터 지쳐 계신 건 아닌가요? 이제 완연한 여름입니다. 그야말로 미스터리, 스릴러의 계절이 도래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저야 일년 내내 미스터리와 스릴러물을 가리지 않고 읽는 사람이라 여름이 되어도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지만, 어쩐지 여름이 되면 좀 더 읽는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요즘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 갑자기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메일이 아니라 편지여서 뜻밖이었다고요? 으흐. 제가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책이 바로 당신과 제가 즐겁게 읽었던 [고백]의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왕복서간] 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정형화된 글자로 서로의 안부를 묻기보다, 이렇게 서로 실재한다는 느낌을 주는 편지 쪽이 더 정감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는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는데, 세상 참 많이 변했죠.

 

[왕복서간]은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세 편의 이야기가 묶여있는 단편집이더군요.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편지를 통해 그 때의 진실을 밝혀내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섭고 잔인한 악의가 흘러넘친다기보다 그 순간에는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선택의 순간에 결단을 강요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처음에는 물론 이번에는 인간의 어떤 악의를 보여줄 것인가, 악의 속에 숨겨진 어떤 슬픔을 보여줄 것인가 기대했지만 잔인한 악의는 없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사연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는 <이십 년 뒤의 숙제>였어요. 지금은 교직을 떠난 선생님이 제자인 오바 아쓰시에게, 예전에 가르쳤던 다른 여섯 명의 제자에게 자신의 편지를 전해주길 바란다는 부탁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쓰시가 편지를 전달하며 다니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잔혹한 사연이 밝혀져요. 남편과 제자들과 함께 소풍을 떠난 어느 날, 한 명의 제자와 남편이 물에 빠지고 결국 남편은 사망했다는 것이었죠. 제자들의 시각에 따라 선생님의 모습이 다르게 비춰지지만 결국 진실은 하나.

 

그러나 이 선택이 결코 이 선생님만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내가 그 선생님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답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답을 내지 못할 거에요. 하지만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면 역시 제자가 아니라 남편 쪽을 먼저 구하게 되겠죠. 올해들어 특히 제가 학교와 아이들 일로 고민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때문에 더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듯 해요. 상상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어떤 의미로는 가장 공포스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당신도 줄곧 얘기했었잖아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고백]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해요. [고백]이 워낙 재미있었어야 말이죠. 하지만 [왕복서간]은 뭐랄까, 그런 이미지를 의식하지 않고 쓴 작품 같아요. [속죄]나 [야행관람차], [소녀]등의 작품이 [고백]의 신드롬을 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왕복서간]은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고 그야말로 쿨하게, 힘을 빼고 편안하게 써내려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때문에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따스함도 깃들어있는 게 아닐까요.

 

누구나 힘들다는 요즘입니다. 당신도 여전히 힘든가요? 저도 조금 힘들지만 당신과, 그리고 이렇게 한숨 돌릴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이 있어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렇게 문장으로가 아닌, 얼굴을 맞대고 읽은 책들에 대해, 당신과 나에 대해 행복하게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부디 건강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