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4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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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 책 읽을 때 주위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에 조금 민망했다고 할까요. 제목에 '~신들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보니 워낙 많은 분들이 이 책은 대체 어떤 책이냐 물어보시더라고요. 타인에게야 그저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얘기하면 끝났는데, 어무니는 이게 정말 미스터리 소설이 많느냐는 시선으로 왜 너는 맨 미스터리만 읽느냐고, 오랜만에 한 소리 들었습니다. 헤헷. 미스터리만 읽는 것은 아닌데요;; 이것저것 읽지만 특히 좋아하는 분야가 미스터리일 뿐인 거랍니다! -0- 저는 연애소설도 좋아하고 판타지도 가끔 읽고 국내 작품, 일본 문학도 좋아해요. 재미난 거라면 뭐든 ok. 어쨌든 이 책은 공공장소에서 떡하니 펼쳐놓고 읽기에는 조금 어려웠던(?) 작품이라고 할까나요. 

 

미쓰다 신조의 '~처럼 ~인 것' 시리즈의 최고참 작품입니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과 [산마처럼 비웃는 것]을 먼저 읽은 저로서는 앞의 두 작품, 특히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지만 이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그 충격의 최고봉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그 동안 일본요괴에 대해 무섭다기보다는 귀엽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요괴여도 인간들 주위를 맴돌며 그들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도움을 주는 아기자기한 소설들을 접했기 때문일까요. 그런 귀여움과 깜찍함(?)에 물들어있던 저에게 이 작품은 일본 요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일깨워주었답니다. 일본 공포영화는 <주온>이후로 보지 않았는데 그 <주온>만큼 아주아주 무서운 소설이었습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도조 겐야가 역시 주인공. 탐정이었던 아버지의 자유로운 영혼을 물려받은 그가 이번에 발을 내디딘 곳은 가가구시촌입니다. 사람들이 염매라고 부르는, 신이지만 굉장히 두려워하는 존재와 얽힌 행방불명 사건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사건들. 한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이 오랜 시간에 걸쳐 어떻게 변색될 수 있는지, 신을 향한 인간의 잘못된 욕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에 비극을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에요. 미스터리하다기보다 괴기스럽고 호러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라고 할까요. 부르르.

 

한편 이번 작품은 미쓰다 신조 작가의 똘똘함과 강한 탐구심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머리속이 빙빙 돌 것 같은 마계신화와 수많은 민간전승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과정도 어찌나 복잡하던지요.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며 결말을 만들어내야 했을 그의 노력과 천재성에 절로 감탄이 새어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놓치지 않는 그 호러 분위기란! 전 책을 읽는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잤습니다. 머리맡에 책을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서 발로 저 멀리 밀어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 속까지 따라오지 뭡니까! 지금까지 본 시리즈 중 가장 무섭고 충격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저처럼 겁이 많고 무서운 것을 보면 잠을 잘 못이루는 분은 조심해서(?) 읽으시길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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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기억 속으로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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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리뷰에 적었던 것처럼 저는 제가 약간의 강박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문이 잠겨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긴 문에 몇 번이나 매달려서 이 문이 다시 열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었어요. 그나마 어떤 분이 그럴 때는 자신의 행동을 소리를 내서 입 밖으로 말하면 머리속에 각인이 되서 그 횟수가 줄어들거라고 말씀해주셔서, 이제는 문을 잠근 후 '한 번만' 점검해도 괜찮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강박장애도 하나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는 제가 어렸을 때 했던 아주 작은 실수가 원인이었지만, 자기 자신의 실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입은 상처로 인해 장애와 발작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겁니다. 아니, 어쩌면 타인에게 입은 상처로 인해 생긴 강박장애가 자기 자신의 실수로 인한 것보다 훨씬 괴롭고 잔인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작품은 강박장애와 공황장애를 앓는 한 여성의 기록입니다. 한때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의 집착과 스토킹, 그리고 이어진 잔혹한 구타와 고문. 심지어 그는 경찰이었어요. 그녀, 캐서린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과거의 기억 때문에 자신이 정해놓은 횟수에 따라 집의 자물쇠를 점검하고, 커텐의 위치를 확인하며, 공용으로 쓰는 현관문도 일정한 순서에 따라 몇 번이나 점검해야만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죠. 정해진 시각에 차를 꼭 마셔야 하고, 짝수일에만 장을 보러 갈 수 있으며 홀수일에는 운동도 할 수 없는 여자. 빨간색과 경찰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불쑥불쑥 찾아드는 그의 기억에 괴로워하던 캐서린 앞에 스튜어트가 나타나고, 그녀가 드디어 회복을 위해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할 때, 또다시 그가 나타납니다.

 

집안을 서성이고 잠도 제대로 못이루며 집 안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지 점검하는 캐서린의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저에게도 두려움을 느끼게 했어요. 이런 삶도 있겠구나, 자신의 집에서조차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런 삶도 있구나,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그녀가 또 하나의 사랑을 만나 미래를 생각하고 앞으로 걸어나아가며 강인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은, 비록 소설이기에 이런 빠른 회복과 투지가 생긴 것이라 한다고 해도,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캐서린도 캐서린이지만 잔혹한 그, 리의 과거도 궁금했어요. 대체 어떤 생활을 해왔고 무슨 일을 겪었길래 그렇게 된 것인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 상처도 잔인한 방법으로 파내버린 그가, 과연 그 상처 때문에 폭발해버린 게 맞는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했어요. 리도 원래는 본성이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도요. 어쩌면 우리 마음 속에는 하나의 스위치가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보내고 있었어도 무언가가 한 번 뒤틀리면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건지 무섭습니다. 리도 캐서린처럼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는 지도 궁금하네요.

 

주인공이 여성이라 그런지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상당히 무서웠어요. 다행히 집에 부모님이 계셨기에 망정이지 혼자 읽고 있었다면 저도 캐서린처럼 문을 점검하고 창문도 모조리 잠그고 또 점검하고 확인하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스릴러에 비해 잔인한 장면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스릴러보다 여성 독자들을 두려움에 빠트린 소설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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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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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한 건의 살인사건으로. [658, 우연히] 사건 이후 조용하게 지내려던 데이브 거니 앞에 원초적인 마초 형사 잭 하드윅이 성난 코뿔소처럼 들이닥칩니다. 표면상으로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거니에게 사건 해결을 맡기려는 것이지만 불목하는 반장 로드리게스와 동료 형사 블랫에게 한 방을 먹이고 싶었던 하드윅이 들이민 사건은 완전범죄. 결혼식 날 아름다운 신부가 멕시코인 정원사 헥터 플로레스에게 목이 잘려 살해당하지만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내 매들린과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은퇴했던 거니였지만 자신조차 제어할 수 없는 형사의 본능과 직감으로 결국 사건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무기로 사용이 가능한 두께(무려 641페이지)의 이 작품을 저는 추석 연휴동안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스릴러를 즐겁게 읽었다고 하니 조금 이상하긴 하나 책에 손이 딱 붙어 떨어지지 않더이다. 보통 이 정도 두께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부분은 지루할만도 한데 이 작품은 버릴 부분이 손톱만큼도 없는, 정말 완벽한 이야기였어요. 개인적으로는 [658, 우연히] 보다 더 좋았다고, 이 독자, 자신있게, 외칩니다아!! 사실 [658, 우연히]에서는 전직형사 거니가 지닌 암울한 심리와 아내와의 암울한 관계가, 사건보다 더 암울하게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악녀를 위한 밤]의 사전에는 지루함이란 단어는 절대 찾아볼 수 없고, 두 번은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깊숙한 곳에서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스릴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가 될 겁니다. 완전범죄로 여겨지는 현장을 조사하고 모든 요소를 통합하여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이 독자에게도 하나의 즐거움이거든요. 그리고 누가 범인인가 뿐만 아니라 '왜'라는 숨겨진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 안에서 독자 또한 한 명의 형사가 되는 거죠. 이 작품은 그런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제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표현, 인간의 본성에 관한 예리한 시각, 사건과 관련하여 작가가 던지는 예시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거니가 살해당한 신부의 남편이자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스콧 애슈턴의 책에서 밝힌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경계의식이라거나, 거니와 스콧이 만난 자리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예로 들며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방법이랄까요. 굉장히 섬세하고 구체적이며 독자에 대한 친절의식을 마다하지 않는 점이 엿보이는 장면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형사 거니가 아니라 남편이자 아버지인 데이브 거니로서 갖는 감정이 훨씬 깊어지고 설득력이 생긴 것 같아요. 어째서 아내 매들린과 그렇게 갈등해야 하는지, 거니가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어떤지에 대해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할까요. 반전은, 말할 것도 없죠.

 

끝이 다가올수록 페이지가 몇 장 남아있지 않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2011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에 선정되고 유럽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이것으로 끝일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사실 끝부분이 그런 느낌을 자아내게 했거든요. 다행히 시리즈의 3편인 [악마를 잠들게 하라]가 얼마 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우리도 곧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좀 빨리 만나게 해주면 안될까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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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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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입니다! 완벽해요! 짝짝짝! 예전 조 힐의 작품을 읽었을 때는 그 기괴함에 놀라서 다시는 보지 못할 작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평가 기준이 더 높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작품의 분위기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었어요. 영화 <드래그 미 투 헬>같은 그런 분위기라고 할까요. 그래서 [뿔]도 그런 성향이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NO!! 어느 부분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해도 이번 작품은 구성이나 인물, 이야기 전개 그 어느 것 하나도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소설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조 힐은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스티븐 킹의 아들다운- 굉장한 작가라고 할까나요. 역시 사람은 오래 두고 볼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벌레로 변해 있었다는 카프카의 [변신]과 유사한 첫 장입니다. 술에 취해 잠들었다 일어나보니 머리에 뿔 두 개가 생겨난 남자, 이그나티우스 마틴 페리시. 약칭 이그 페리시라 불리는 남자는 어느 날 아침 세면대 거울을 통해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 뿔, 정말 기가 막힙니다. 사람들로부터 듣기를 원하지 않았던 온갖 더럽고 추악한 말들을 뱉어내게 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안에만 담아놓고 타인에게는 절대 밝힐 수 없는 어두운 비밀들을요. 이그는 여자친구 메린을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풀려난 전력이 있는 남자로, 그 일로 인해 매우 오랫동안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그는 뿔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진실을 듣고 기묘한 체험을 하며 진범을 처단합니다. 신이 아닌 악마의 이름으로.

 

이 작품은 섬뜩한 스릴러이자 굉장한 러브 스토리입니다.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있는 감독 알렉산드르 아야도 -세상의 모든 죄와 벌에 대한 가장 신선한 접근이며 인간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폭로이자 마음을 울리는 러브 스토리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는데요, -마음을 울리는 러브스토리-라는 부분에서 절대 공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그의 살해된 여자친구 메린으로 완성되죠. 반전으로 밝혀지는 그녀의 사랑 앞에 저는 그만 별 다섯 개를 미련없이 주었답니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인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이 작품은, 과연 우리 세상에서 진정한 악마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뿔이 자라나고 코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불에 타도 죽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그가 정말 악마인지, 악마보다 더한 악마같은 인간성의 사람이 사실은 진짜 악마가 아닌지에 대해서요. 때문에 -그렇게 인간과 악마가 같이 누워있는 잠시 동안 옛날 주물 공장은 고요했다.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악마인지는 아마도 신학적 논의의 문제가 되겠지만-이라는 문장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해피엔딩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당연히 이그가 행복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꿈이고 한순간 꿈에서 깨어나보니 메린은 여전히 이그의 곁에서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내고 있고, 이그가 그 미소를 보며 행복해하는 장면이 마지막이 아닐까 조금 기대했어요. 그런데 역시 조금 뻔했는지, 색다른 결말을 보여주네요. 어쩌면 해피엔딩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닐 수도 있는. 저는 나름대로 이그에게 있어 해피엔딩이라 결정지으렵니다. 굉장한 재미와 울림을 주는 [뿔]. 이제 스티븐킹의 아들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혼자서 훨훨 날게 된 조 힐의 다른 작품들을 주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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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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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지 못해 세상엔 이토록 많은 고통과 상처가 얽히는 것이다.

멀리 남쪽에서 이 곳으로 온 여자는 단지 동생을 만나러 왔을 뿐이다. 의붓동생, 새엄마의 딸. 어린 마음에 그 아이로 인해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다 여겼고,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질 여유없이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 때는 몰랐었다. 그 일이 이토록 평생,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고 마음을 짓누르며 그녀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될 줄은. 특별히 동생을 생각하며 산 것은 아니었으나 새엄마의 죽음은 여동생을 다시 그녀의 기억 속으로 불러들였고 남편과 소원해지고 딸마저 자유롭게 훨훨 날아간 지금, 그녀는 동생의 집에서 동생을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첫 문장을 읽고 그 다음 문장을 읽어내리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아마도 처음부터 요양원이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주인공, 우울한 분위기, 상실의 고통. 내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라서 아프고 힘든 부분은 책이라도 쉽게 넘겨버리지 못한다. 어쩌면 책이기 때문에 더. 책만큼은 나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므로 슬픔과 괴로움에 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 재미난다. 크게 자극적이지도 않고 엄청난 소설적 장치가 들어있는 것도 아닌데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동생이 사는 곳에 발을 딛고 생활하는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 그리고 종내는 만나게 될 여동생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그녀가 과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갈 지 궁금했다.

 

이 작품은 굳이 정의하자면 '치유의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녀는 동생이 살고 있는 도시에 머물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자연스럽게 그곳에 동화될 뿐. 성스럽게 추앙받는 성모상은 그녀에게 죄책감의 상징이고, 마음 한 켠에 새겨진 주홍글씨이며,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벌이었다. 그런 그녀가 반짇고리 노인을 만나고, 고양이 칠월을 만나고, 세상만사 상담소의 상담사를 만나고, 동생의 지인들을 만나며 동생을 맞아들일 준비를 한다. 아무런 꿈도 없던 미래에 그녀의 흔적을 벌써부터 남겨놓은 채.

 

일본문학에서 엿볼 수 있었던 형식에 우리의 정서를 담아낸 따스한 작품이다. [최소한의 사랑]이라는 제목처럼 작품 안에는 간간히 '최소한'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최소한. 그녀의 인생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고, 그녀에게 연정을 품었던 대학 동기조차 과도한 표현으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으니 존재할 뿐,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정도로.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세계였는데, 마치 유토피아 같으면서도 실제로 존재할 듯한, 아무것도 아닌 듯 하나 굉장히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런 세상이었다.

 

최소한이라는 단어는 '아주 조금'이 아닌 '당연히 지켜야 할' 로 귀결된다. 사랑에서, 인연에서, 생활 속에서. 억지로 큰 것을 얻으려 하지 않고 최소한의 것을 바라며 최소한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 아름답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힐링은 최소한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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