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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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서를 이용해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간식처럼 색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음식이라는 테마 하나로 역사를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 음식은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같이 무언가를 먹는다. 하다못해 차 한 잔이라도 나눈다. 저자 또한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음식인만큼 음식의 역사는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는 생활사의 중심이 된다고 보았다. 중국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왔을까. 입에 담는 음식을 통해 어떤 역사를 이루어왔을지, 음식에 담긴 그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처음 등장하는 화제부터 흥미진진하다. 고대 중국에서는 요리사가 재상이었다니, 요리사의 업무와 재상의 업무가 명백히 구분되는 현재와 비교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질만한 이야기다. [도덕경]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 라는 말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는 생선을 요리할 때 자주 뒤집으면 살이 부서지듯이 나라를 다스릴 때 번거롭게 굴면 백성이 흩어지니, 생선요리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고대 중국의 재상 중에는 요리사 출신이 많았는데 한자의 어원 자체가 요리사라는 뜻이란다. 재상이라는 단어는 천관총재라는 벼슬에서 비롯되었는데 천관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일, 총재는 제사 지낼 때 쓰는 음식을 장만하는 역할을 맡았다. 씨족사회였던 고대국가에서는 나랏일 중에서 조상님께 제사지내는 일을 가장 큰 일로 여겼고, 내치와 외교를 담당하는 것이 바로 음식이었던 것이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요리사를 맡겼던 것이 국가의 틀을 갖추면서 재상이 된다.

 

복날과 보신탕의 개념은 우리나라의 전통인 줄로 알았는데 이들의 유래는 [사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 사마천은 복날 관련 기록을 두 곳에 남겼는데 그 중 하나가 진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진본기], '덕공 2, 처음 복날을 정해 개로 벌레의 피해를 막았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12제후국의 주요사건을 연도별로 정리한 [십이제후연표]에도 복날의 기록이 나와있다. 그 시작은 진나라였는데 뿌리는 서쪽 오랑캐라고 알려진 서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진나라 백성을 구성하고 있는 서융 부족 중 견융은 개가 조상인 부족으로, 복날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제사를 지낼 때도 이왕이면 조상님과 관련된 가축이 좋다고 생각하여 개를 잡아 성문에 걸어 나쁜 기운을 막았다는 [사기]의 기록이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복날의 개고기를 통한 춘추 시대 전후의 육식문화와 사회구조에 대한 이야기, 출산 장려책으로 사용된 개고기 이야기가 등장한다. 예전 먹고 살 것이 없어 인간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개를 잡아 먹었던 풍습이 요즘의 복날과 보신탕으로 변화한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새로운 발견이었다.

 

한겨울 뱃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호떡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양귀비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 중 하나가 호떡이었다고 하는데 1300여년 전 호떡의 위상은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서민들의 군것질거리같은 값싼 음식이 아니라 아주 고급 음식이었던 것이다. 호떡의 뿌리는 서역의 중앙 아시아로 [세종실록]에도 중국에서 호떡을 말할 때 쓰는 표현 중 하나인 '소병'이란 말이 보이며 우리나라에서 상류층의 별미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호인(胡人)들이 먹는 떡이라는 뜻의 호떡. 여기서 ''는 오랑캐가 아니라 서역에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의 밀가루 빵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거쳐 전해진 것이 지금의 호떡이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밀가루와 함께 전해진 서역의 조리법, 두부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양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중국을 만든 음식>, <역사를 바꾼 음식>, <오해와 진실을 밝히는 음식>으로 나누어져 소개되어 있다. 단순한 음식 문화가 아니라 하나의 음식을 통해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복날과 개고기, 고구마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음식에 대한 반전도 재미있었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입고 살아왔던 시간들이 모여 역사가 되어 지금 우리에게 전해졌다. 음식을 통해 하나의 문화가 생성되기도, 없어지기도 한다. 개론서만으로는 맛볼 수 없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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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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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곰돌군이 우와악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바람에 첫째 곰돌군이 덩달아 잠에서 깼다. 평소라면 조금 뒹굴하고 일어났을 첫째 곰돌군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일어나자~맘마 먹고 어린이집 가자' 몇 번을 이야기해도 일어나지 않더니 결국 9시가 다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등원 시간이야 조금 늦어도 상관없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맘마 먹자는 말에도 아랑곳없이 놀이방으로 들어간다. '안먹어, 어린이집 안가' 를 몇 번 반복하더니 어린이집은 가지 않아도 되지만 맘마를 먹지 않으면 간식을 주지 않겠다는 말에 식탁의자에 앉았다. 첫째 곰돌군에게 아침을 챙겨주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가 식탁 밑으로 물을 흠뻑 흘렸다. 돌아와보니 둘째 곰돌군이 그 물 웅덩이에서 좋다고 물장구를 치고 있다. 나의 신경선이 어디서 끊긴 것일까. 마음으로는 '참자, 있을 수 있는 일이야'를 되뇌어보지만, 결국 좋지 않은 소리가 입을 뚫고 나가버린다. 한 번 시작한 꾸중이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결국 시무룩해져 겨우겨우 밥을 우겨넣은 첫째 곰돌군을 보자니 또 마음이 철렁한다. 한 번만 더 참을걸.

낮버밤반이라고 했던가. 낮에는 버럭하고 밤에는 반성하는 것. 요즘 내 모습이 딱 이러하다. 첫째 곰돌군이 미운 네 살에 접어들어서인가, 아니면 내가 육아에 지친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첫째 곰돌군이 네 살에 접어든 것을 핑계삼아 나의 사나운 마음을 아이에게 쏟아내는 것인가. 사실 첫째 곰돌군은 미운 네 살 시기라고는 해도 미운 짓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그저 아이들이라면 할 수 있는 실수, 동생을 본 형아의 사랑받고자 하는 약간의 질투어린 행동, 그것이 전부라고 할만큼 순한 아이다. 그러니 결론은, 내가 이 아이에게 아주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어느 밤,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쓸어넘겨주며 또 한 번 반성하던 밤,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첫째 곰돌군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하는 점에 생각이 미쳤다. 아이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도 선택할 수 없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나는, 못난 엄마 만나 고생한다는 생각에 유독 아이가 안쓰러웠더랬다. 감정적으로 이토록 불안정하고 예민해져있는 나를, 이 아이는 후에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내가 딱 이맘 때였을 무렵, 네가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해 동생이 다쳤다고 나를 노려보던 엄마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처럼, 이 아이도 자신을 혼내던 나의 목소리, 나의 눈빛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서늘해졌다.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라면, 우리 아이들은 나를 엄마로 선택해주었을까.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p111-112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는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자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를 키우는 세계를 선보인다. 단순히 양육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낳은 아이를 키우기 원치 않을 때 정부에서 그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 방식이다. 그렇게 NC 센터가 세워졌고, 그 아이들은 국가의 아이들(nation's children)이라고 불린다. 갓 태어난 아기들과 미취학 아동을 관리하는 퍼스트 센터, 초등학교 입학 후 열두 살까지 교육하는 세컨드 센터, 열세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부모 면접을 진행할 수 있는 라스트 센터. 부모 면접을 줄여 '페인트'라 부르는 아이들 속에 제누 301이 있었다.

작품은 센터를 나가야 하는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누301이 '부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 누구도 원하지 않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살아온 사람의 모습 등을 내보이며 좋은 부모의 기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부모를 직접 면접하고 점수를 매겨 선택할 수 있다는 상상은 어쩌면 상상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청소년심사단들은 현실을 전복시키는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엄마인 나로서는 그 동안의 내 행동을 돌아보게 만드는 오싹함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식도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이제 더는 '너는 내 자식이니까, ~야' 같은 말은 통하지 않는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족이 될 수 있고, 혈연이기에 더 깊은 상처를 받고 평생 등지고 살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부모 면접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제누301이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서는 모습을 그리는 성장소설임과 동시에, 현재의 가족관계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작품이다. 나는 과연 엄마로서 몇 점을 받을 수 있는가. 적어도 미움받거나 존재를 부정당하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며, 소설 속 세상이 아직 닥치지 않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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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기출문제집 중급편 기출문제집 + 기출해설집 세트 - 전2권 - 3, 4급 시험 대비, 핵심 키워드 연표 제공
설민석 지음 / 단꿈드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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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둘째 곰돌군으로 인해 계획했던 휴직 기간이 연장되었습니다. 매일이 소중하지만 평범한 일상이에요. 읽는 책이 바뀌는 것을 제외하고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아이들은 자라고 저는 늙어(?) 갑니다.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했어요. ''라는 사람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것,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 이것저것 시도해보았지만 돌고돌아 결국 선택한 것이 또 공부입니다. 어차피 저에게 필요한 공부이니 마다할 것이 없었죠. 호기롭게 고급에 바로 뛰어들까 했지만, 겸손하게, 중급부터 시도해보기로 합니다.

 

설민석 선생님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방송에도 자주 등장해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설명해주시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역사는 어렵다'는 공식에서 벗어나 친숙하고 꼭 알아야 할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죠. 경험상 모든 시험의 시작은 기출문제분석이 먼저라는 생각에 역시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의 기출 해설집을 검색해보았는데요, 마침 설민석 선생님의 기출문제집과 해설집이 출간되어 주저없이 선택했어요.

전체 구성과 특징이에요.

 

먼저 키워드로 핵심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사진에서처럼 특히 기억해야 할 사항을 메모 형식을 빌려 살짝 귀띔해주고 있고요. 최근 5개년 한능검 중급 기출 문제를 분석하여 뽑은 테마별 반출 키워드입니다. 모범 기출문제 부분에는 각 테마별로 가장 중요한 주제의 문제가 실려 있어요.

연관 기출문제도 등장하는데요, 이 부분의 날개단에는 핵심 개념이나 어려운 단어를 설명하거나 사료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파트 2는 실전감각을 익히기 위한 자리입니다. 일단 각 회차별로 어떤 문제들이 어떻게 출제되었는지 알기 쉽게 구성되어 있어요.

 

바로 뒤부터 실전 문제지가 실려 있어요. 37회부터 34회까지 총 4회 분량으로 현재 자신의 실력을 체크해볼 수 있습니다.

 

<주목! 눈여겨볼 TOP4>에서는 어렵게 출제되었거나 신유형인 문항을 익히고 향후 학습법을 가늠해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문제를 다 풀고 난 후에는 당연히 세심하고 꼼꼼한 해설 강의를 살펴봐야겠죠!

 

 

 

 

해설서에는 요렇게 연표와 그림과 자료로 정리된 한국사까지 만나볼 수 있어요.

 

하지만 저처럼 처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준비를 시작하거나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교재만으로는 독학하기가 힘들죠. 특히 요즘은 공무원 시험에서도 한국사 과목이 검정제로 대체되면서 공신력이 높아짐과 동시에 난이도가 올라가 많은 수험생들이 인강을 활용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홀로 책을 들여다보면서 공부하기보다는 인강을 들으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설민석 선생님의 한능검 강좌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여 쉽게 암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고득점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지루한 암기에 취약한 분들에게 안성맞춤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인강을 한 번 들어보았습니다.

 

저는 특히 낮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올인하느라 육아와 집안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에요. 새벽 시간을 활용하지 않으면 책 한 줄도 읽기 힘들죠. 그래서 한능검 시험 준비도 오래 망설여왔는데 이번에는 인강 그저 틀어놓고 왔다갔다 하면서 흘려듣기하니 좋더라고요. 대충 들었더라도 나중에 아이들이 잠든 후 다시 보면 기억이 날 때도 많았습니다. 정식 강의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역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였습니다.

 

현재 설민석 선생님이 강의하시는 단꿈 인강 사이트에서는 여러 가지 이벤트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단꿈인강 사이트 주소: https://pass.dankkum.com/

이벤트 소개 : 43회 한능검 합격시 100%환급 이벤트 https://pass.dankkum.com/Event/197

기간 내 급수별 한능검 프리패스 구매자 대상 중 합격 인증 시 수강료 100% 환급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프리패스 https://pass.dankkum.com/Event/161

"무료가입만해도 한능검 24시간 무제한 프리패스 0"한능검 전 강좌 무료 수강!

42회 한능검 총평해설 서비스 https://pass.dankkum.com/Lecture/Explain/JH

 

짤강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oiDoWuNlhs

https://www.youtube.com/user/tghistoryqr/videos?disable_polymer=1

 

기출 문제 다음에는 개념서도 설민석 선생님 책으로 선택할 예정입니다.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준비하시는 분들, 함께 힘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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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얼 보았나? - 나와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그림책 읽기
김건숙 지음 / 바이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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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꾼'과 '그림책'. 내가 좋아하는 두 단어의 조합. 그림책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애도 아닌데 그림책을 왜 읽어-했던 시절이 무색할만큼 나는 요즘 그림책 홀릭이다. 첫째 곰돌군이 태어나고 돌이 되기 전부터 함께 그림책을 읽었다. 똑똑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거나 빅픽처를 그린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는 것을 아이도 좋아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책장만 펼치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계로, 시간과 공간 불문하고 떠날 수 있는 이 멋진 여행을 아이도 즐기길 바랐다. 그런데 웬걸. 이 그림책이라는 멋진 세계에 풍덩 빠져버린 것은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아이도 물론 수시로 책을 읽어달라거나 밤에 잠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할만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림책이 주는 매력과 심오한 세계는 나에게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덕분에 집은 온갖 책들이 뒹굴고 쌓여있어 엉망이지만.

같은 책 사랑꾼으로서 다른 책 사랑꾼은 그림책을 통해 무엇을 보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상도 궁금했지만 어떤 그림책을 읽었는지 소개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총 19편의 에피소드와 그와 관련된 그림책이 소개되어 있다. 평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적힌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다(생각해보니 잘 읽지 않는 책들이 꽤 있다). 그의 경험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어 공감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그림책 소개 도서들 중에도, 그림책보다는 자신의 아픔이나 고통에 집중하고 그림책으로 인해 그 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풍의 글은 질색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에 냉정하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이 책이 약간이나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날마다 편지 쓰는 할머니>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10여년 전부터 편지를 써오신 장형숙 할머니. 이 분은 책이나 기사에서 복사한 것 가운데 상대에게 필요하다 싶은 내용의 뒷면에 편지를 쓰신다. 처음에는 타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 그 다음에는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이제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도 편지를 보낸다. 하루에 10여 통의 편지를 쓰신다는 할머니는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남은 박준혁 군에게도 편지를 쓰셨다고 한다. 말로만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저자를 부끄럽게 만들만큼 행동으로 위로하는 법을 보여준 할머니. 이 할머니의 사연을 보고 서로 친필을 교환한 저자는 단원고 앞에 만들어진 생존자 쉼터에 80만원 정도의 책을 구입해서 기증하기에 이르렀다. 한 사람의 선의와 용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감동깊은 이야기에 저자는 장형숙 할머니를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그림책과 비교한다.

여러 그림책들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뒷편에는 <일본 그림책미술관 기행>이라는 챕터가 실려있다. [창가의 토토]로 유명한 이와사키 치히로 작가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치히로 미술관. 세계 최초의 그림책 전문 전시관이라는 데 의의가 있는 도쿄의 이 전시관에는, 치히로 작가의 그림과 세계적인 작가, 지역 화가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이와사키 치히로가 자택 겸 아틀리에로 22년간 사용하던 공간을 전시관으로 개조한 것으로 언제라도 작가의 그림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모은 기부금과 치히로 작가의 인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쿄 뿐 아니라 나가노의 아즈미노에도 치히로 미술관이 있는데 이 곳은 [창가의 토토]에 나오는 도모에 학원을 재현해놓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의 사토 와키코 작가가 운영한다는 '작은 그림책미술관'과 일본 최초로 동화(童畵)라는 말을 사용한 다케이 다케오 작가의 '이루후 동화관'을 방문한 기록도 실려 있다.

총 19편의 에피소드에 실려 있는 그림책은 22권. 저자가 현재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책은 백희나 작가와 사노 요코 작가의 책이지만 이 책에는 사노 요코의 책 두 권만 소개되어 있다. 자신의 관심사와 가치관과 인생관을 연결시켜주는 그림책을 주로 소개했다는 이야기에, 저자가 소유한 다른 그림책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궁금해진다. 백희나 작가와 사노 요코 작가는 이름만 들어보고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분들의 그림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동안에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저 느끼는 일에 만족하곤 했는데, 오늘부터는 읽는 그림책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지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아이와도 더 깊이있는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의 세계란, 깊고도 오묘하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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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1 아르테 오리지널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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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한 소녀가 산길을 걷는다. 잠시 몸을 녹이던 그녀, 황재하가 향한 곳은 장안.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추리력으로 아버지를 도와 많은 사건을 해결했지만 일가족이 독살당하고 자신은 살인범으로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지인에 의해 몸을 숨기려 올라탄 마차에서 기왕 이서백과 만나고, 황재하는 대담함과 행동력으로 이서백의 환관으로 그의 곁을 지키게 된다. 자신을 도와달라는 황재하의 부탁에, 이서백은 그녀의 신분을 눈감아주는 대신 사건 한 가지를 해결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이 일을 해결해주면 황재하가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혼사에 큰 소동이 생길 것 같다는 이서백을 돕기 위해 황재하는 그의 환관 양숭고로 위장하여 그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비녀의 기록'이라는 뜻의 제목 [잠중록]은 주인공 황재하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할 때마다 머리에 꽂은 비녀를 빼서 무언가를 끼적이는 버릇을 나타낸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사건 현장을 들락거렸지만 그 때마다 기록할 거리를 챙길 수 없어 머리에 꽂은 비녀를 사용했던 황재하. 그녀의 버릇은 환관 양숭고로 신분을 위장한 후에도 계속되었고, 이는 그녀가 해결하는 사건의 기록이자 그녀 자신을 나타내는 정체성의 상징이 된다. 타고난 신분에 어울리게 처음에는 황재하의 사연과 그녀의 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기왕 이서백은 '사방안 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그녀의 능력을 높이 사고, 결국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문제를 그녀에게 털어놓으며 거래를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잠중록]은 황재하와 기왕 이서백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미스터리 사극물이자, 비록 1권에서는 그 기운이 미미하지만 이 둘의 로맨스가 진행될,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

중국문학 중에서도 접했던 로맨스 소설은 [보보경심]이 유일하고, 개인적인 취향 덕분에 중국 소설은 잘 읽지 않는데도 [잠중록]은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과하지 않은 감정선, 부담스럽지 않은 대화, 인간의 삶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꼬집으면서도 그런 인간에 대한 연민의 시각을 잃지 않은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탄스러울 정도로 탄탄하다. 화려하지만 어두운 황실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 마치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주인공인 황재하와 기왕 이서백은 물론, 귀족 가문의 자제임에도 검시에 흥미를 가진 주자진, 청량한 자태를 뽐내는 왕온, 그들 주위를 감싸는 예인들까지 독창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자랑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정말 살아 숨쉬는 사람들같은 현실감을 부여해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잠중록]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된 작가 처처칭한의 원래 꿈은 만화가로 만화 잡지 <카툰왕>에 원고를 투고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린 것이 바로 [잠중록]의 초고였다고 한다. 굳이 집필기간을 따지자면 13년의 시간이 걸린 역작으로, 그녀가 집필한 10여 편의 소설 중 [잠중록]은 유일한 추리소설로 독자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여자 주인공의 원형으로 당나라 말기의 실존인물 황숭하를, 남자 주인공은 기왕 이자를 원형으로 하여 추리소설이라는 큰 틀 안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깊이있게 그려내고 있다. 세상에 사연 없고 상처 없는 사람 없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악인의 동기와 그가 맞이하는 결말은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안타깝다. 그럼에도 황재하와 이서백이 중심을 확실히 잡아 '인과응보'에 해당하는 악인의 말로를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총 4권으로 완결되는 [잠중록]은 현재 2권까지 출간되었다. 1권을 읽었으니 당장 2권도 주문할 수밖에. 한 번 손에 들면 절대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의 특성상 2권이 도착할 때까지 조바심이 날 것 같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간혹 위트있는 대사로 미소짓게 하고, 인간사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작품. 다음 권에서는 황재하와 이서백의 사랑선이 조금 짙어져 있길 기대해본다. 아기엄마에게 잠은 중요한 것이거늘, 이 작품으로 나의 소중한 취침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아침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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