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얼 보았나? - 나와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그림책 읽기
김건숙 지음 / 바이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책 사랑꾼'과 '그림책'. 내가 좋아하는 두 단어의 조합. 그림책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애도 아닌데 그림책을 왜 읽어-했던 시절이 무색할만큼 나는 요즘 그림책 홀릭이다. 첫째 곰돌군이 태어나고 돌이 되기 전부터 함께 그림책을 읽었다. 똑똑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거나 빅픽처를 그린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는 것을 아이도 좋아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책장만 펼치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계로, 시간과 공간 불문하고 떠날 수 있는 이 멋진 여행을 아이도 즐기길 바랐다. 그런데 웬걸. 이 그림책이라는 멋진 세계에 풍덩 빠져버린 것은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아이도 물론 수시로 책을 읽어달라거나 밤에 잠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할만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림책이 주는 매력과 심오한 세계는 나에게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덕분에 집은 온갖 책들이 뒹굴고 쌓여있어 엉망이지만.
같은 책 사랑꾼으로서 다른 책 사랑꾼은 그림책을 통해 무엇을 보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상도 궁금했지만 어떤 그림책을 읽었는지 소개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총 19편의 에피소드와 그와 관련된 그림책이 소개되어 있다. 평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적힌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다(생각해보니 잘 읽지 않는 책들이 꽤 있다). 그의 경험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어 공감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그림책 소개 도서들 중에도, 그림책보다는 자신의 아픔이나 고통에 집중하고 그림책으로 인해 그 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풍의 글은 질색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에 냉정하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이 책이 약간이나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날마다 편지 쓰는 할머니>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10여년 전부터 편지를 써오신 장형숙 할머니. 이 분은 책이나 기사에서 복사한 것 가운데 상대에게 필요하다 싶은 내용의 뒷면에 편지를 쓰신다. 처음에는 타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 그 다음에는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이제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도 편지를 보낸다. 하루에 10여 통의 편지를 쓰신다는 할머니는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남은 박준혁 군에게도 편지를 쓰셨다고 한다. 말로만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저자를 부끄럽게 만들만큼 행동으로 위로하는 법을 보여준 할머니. 이 할머니의 사연을 보고 서로 친필을 교환한 저자는 단원고 앞에 만들어진 생존자 쉼터에 80만원 정도의 책을 구입해서 기증하기에 이르렀다. 한 사람의 선의와 용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감동깊은 이야기에 저자는 장형숙 할머니를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그림책과 비교한다.
여러 그림책들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뒷편에는 <일본 그림책미술관 기행>이라는 챕터가 실려있다. [창가의 토토]로 유명한 이와사키 치히로 작가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치히로 미술관. 세계 최초의 그림책 전문 전시관이라는 데 의의가 있는 도쿄의 이 전시관에는, 치히로 작가의 그림과 세계적인 작가, 지역 화가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이와사키 치히로가 자택 겸 아틀리에로 22년간 사용하던 공간을 전시관으로 개조한 것으로 언제라도 작가의 그림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모은 기부금과 치히로 작가의 인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쿄 뿐 아니라 나가노의 아즈미노에도 치히로 미술관이 있는데 이 곳은 [창가의 토토]에 나오는 도모에 학원을 재현해놓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의 사토 와키코 작가가 운영한다는 '작은 그림책미술관'과 일본 최초로 동화(童畵)라는 말을 사용한 다케이 다케오 작가의 '이루후 동화관'을 방문한 기록도 실려 있다.
총 19편의 에피소드에 실려 있는 그림책은 22권. 저자가 현재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책은 백희나 작가와 사노 요코 작가의 책이지만 이 책에는 사노 요코의 책 두 권만 소개되어 있다. 자신의 관심사와 가치관과 인생관을 연결시켜주는 그림책을 주로 소개했다는 이야기에, 저자가 소유한 다른 그림책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궁금해진다. 백희나 작가와 사노 요코 작가는 이름만 들어보고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분들의 그림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동안에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저 느끼는 일에 만족하곤 했는데, 오늘부터는 읽는 그림책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지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아이와도 더 깊이있는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의 세계란, 깊고도 오묘하다.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