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강영혜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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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랑하는 마성의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가 이번에는 연작 코지 미스터리로 돌아왔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고고하고 자존감 높은 재판관 고엔지 시즈카. 저와 함께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죽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이 사람이 누군지 아마 단번에 알아차리셨을 거에요. [테미스의 검]에서 와타세 경부가 자신이 체포했던 죄인이 결국 원죄였음을 알고 밝힐지 말지 고민하면서 찾아가 상담했던 바로 그 재판관입니다. 원죄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즈카는 책임을 지고 스스로 재판관의 자리에서 물러났는데요, [테미스의 검] 작품 후반에서는 그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나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녀를, 비록 재판관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20년의 세월이 흐르기는 했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것도 코지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서 말이에요.

코지 미스터리-라는 말의 의미를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작가가 이 책을 기획할 당시 코지 미스터리가 인기 있었는데 그 흐름을 한 번 따라보기로 했다고 해요. 편집자와 의논 하면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 중 한 명인 '미스 마플'에서 힌트를 얻어 현대에 미스 마플을 재현해 보자는 생각에 손녀 마도카와 사건을 해결하는 시즈카 여사의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미스 마플은 사건 현장에 나가 증거를 관찰하거나 수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추리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으로 유명합니다. 고엔지 시즈카도 이 안락의자 탐정의 모습을 보여줘요. 자신은 사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손녀 마도카가 가져온 정보만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의 윤곽을 잡습니다.

작품은 총 다섯 개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튼튼한 몸과 타고난 성실함, 누구나 마음을 열고 속마음을 드러내게 만드는 선량함이 무기인 가쓰라기 형사가, 자신의 상관이었던 쓰바키야마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쓰바키야마와 적대관계였던 구제의 시신에서 발견된 쓰바키야마의 총알. 가쓰라기는 절대 쓰바키야마가 범인일 리 없다며 개인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지만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합니다. 그 때 머리를 스친 한 인물.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마도카의 도움을 받아 쓰바키야마의 누명을 벗기게 되죠. 물론 사건을 해결한 것은 마도카로부터 사건의 정황을 듣고 범인을 추리한 시즈카였지만요.

이후 벌어지는 노부인 살해사건, 신흥종교와 관련된 사체 유기사건, 공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파라구니아 대통령 살해사건 등을 통해 가쓰라기와 마도카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마도카의 부모님 사건까지 해결하게 되는데요, 으아, 결말 부분의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란! 이래서 마성의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인 것이죠! 정말 상상도 못한 전개라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한편,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각 사건이 해결되는 통쾌함과 따스한 감성에 마지막 반전.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2편도 준비 중이라고 하니 다음 작품에서의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넘어서는 다작 작가라고 생각해요. 블루홀6 출판사에서 두 달에 한 번꼴로 작품이 출간되는 상황이거든요.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가 속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 여름이 매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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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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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외톨이 고등학생 에번 핸슨. 상담을 받고 있는 셔먼 선생님과 약속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날도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에번 핸슨에게'로 시작하는 편지. 그는 편지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엄마의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멋진 편지를 써보기로 한다. 그러나 새학기 첫 날마저 투명인간처럼 보내고, 식당에서는 코너와 부딪혀 넘어지는 등 시작이 좋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쏟아내 편지를 완성하지만 우연히 코너가 그 편지를 가로채버린다. 편지가 학교나 SNS에 돌아 웃음거리가 될 것을 걱정하는 에번.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괴소문이 돌기는 커녕 코너 자체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듣게 된 코너의 자살 소식. 코너의 부모님은 에번의 편지를 코너의 유언장이라 생각하고, 그를 생전 코너의 절친이었다 오해한다. 코너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하는 그들을 위해 에번은 가짜 메일까지 만들어가며 무리수를 두고, 난생 처음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에 흥분한 에번은 점점 더 헤어나올 수 없는 거짓말을 지어내게 된다.

시작은 두려웠다. 그 편지가 코너의 유언장이 아니라 자신의 상담숙제라는 것을 밝혀야했다. 하지만 저녁식사 초대 자리에서 꾸며낸 이야기에 감동받으며 자신을 빛나는 눈동자로 쳐다보는 코너 부모님의 모습 때문에 차마 거짓이었다 말하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진실을 밝히려고 했다. 그러나 한 번만 코너와 주고받은 척 거짓 메일을 보여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더 많은 이야기를 원하는 코너 부모님을 위해 에번은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고, 동경하던 여자아이 조이(코너의 동생) 마저 에번에게 의지하면서 코너가 없는 자신의 외로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코너의 이름을 걸고 시작된 프로젝트. 투명한 벽에 갇혀 혼자만의 세계에서 지내던 에번에게 그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점점 커져가는 거짓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언제 어떻게 진실이 밝혀질지 몰라 에번 대신 내가 전전긍긍했다. 진실을 알면 코너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에번이 거짓말 한 것을 알고도 조이는 에번의 곁을 지켜줄까. 이 일을 계기로 에번은 예전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까. 걱정되는 한편, 에번의 외로웠던 마음이 전해져 가슴 한 구석이 알싸해졌다. 이혼한 부모님, 재혼하고 새로운 아기를 기다리며 멀리 사는 아빠, 늘 일에 쫓겨 바쁜 엄마. 에번은 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에번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에번이 상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에번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분들은 나를 좋아해요.

얼마나 믿기 힘든 얘긴지 나도 알아요.

그분들은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처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에번의 거짓말은 사랑받고 싶다는 몸부림이었다. 엄마가 늘 불안한 눈빛을 보내며 자신이 사회적으로 '잘' 적응한 아이이기를 바라는 대신, 가슴 깊이 껴안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엄마와는 이혼했어도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식당 한구석에서 홀로 쓸쓸히 샌드위치를 베어먹고 싶지 않았고, 깁스한 팔에 누구도 사인해주지 않아 눈치보는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모든, 고독하고 아픈 시간 대신 찾아온 사람들의 관심과 집중.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짓된 현실에 에번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디어 에번 핸슨]은 <라라랜드> 제작팀이 참여한 현존하는 최고의 뮤지컬로 일컬어진다. 2017 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했고, 2018 그래미 어워드 수상작이며, <라라랜드>와 <메리포핀스 : 리턴즈>팀의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이 작품에 작가 이름이 네 명이나 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유튜브에서도 관련 뮤지컬 영상이 소개되어 있으니 꼭 감상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혼자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있어도, 외로움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에번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부르지 않고, 누군가가 불러주길 원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도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길 원했던 외로운 영혼. 에번과 코너가 조금만 더 일찍 다른 시간을 보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에번의 거짓 메일에서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고 사과 농장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더라면. 언젠가 한 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디 수많은 에번의 이름을 다른 누군가가 불러주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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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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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엠마 슈타인은 학회가 끝난 후 투숙한 호텔에서 연쇄살인마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살해하는 수법으로 인해 '이발사'라고 불리는 범인의 희생자로, 유일한 생존자인 엠마는 그가 범죄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편집증에 시달린다. 사실 그녀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 어린 자아가 만들어낸 상상속의 친구 '아르투어'와 오래 대화한 경험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사건 발생 후 집 안에서만 생활하고 낯선 남자를 '이발사'라 의심하는 엠마 앞에 소포 하나가 배달된다. 이웃집의 소포를 대신 맡게 된 엠마. 갈색 종이에 싸인 평범한 소포. 그러나 소포에 적힌 이름을 본 엠마는 패닉에 휩싸이고 그녀의 반려견 삼손마저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그녀는 그녀 자신의 기억마저 의심하며 혼란에 빠진다.

나를 스릴러의 세계로 인도한 안내자, 심리스릴러의 제왕 제바스타인 피체크의 신간 [소포]가 출간되었다. 앞서 읽은 [노아] 에서는 자신의 주종목인 심리스릴러 대신 묵직한 메시지와 반전의 매력을 선보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피체크 작가에게 쏟아지는 찬사가 과연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편집증에 시달리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이 어린 시절 상상속의 친구를 만들어냈었다는 전적,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 같은 시선과 반려견에게 일어난 사고, 분명히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들, 어딘가 의심스러운 남편과 그녀에게 끈적한 손길을 내미는 남편의 동료. 여기에 배달된 소포 하나는 지금까지 엠마가 느껴온 모든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로 등장하여 독자들에게 그녀의 정신상태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소포에 적힌 이름을 토대로 새로운 상황에 처한 엠마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 마치 히치콕 감독의 서스펜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과 혼란스러운 엠마의 내면이 그대로 느껴져 내 심장소리마저 무대 연출의 하나가 된 것처럼 들려왔다. 소송을 앞두고 변호사이자 오랜 친구인 콘라트와의 대화와 과거가 번갈아가며 전개되는데, 혹시 엠마가 무언가를 꾸미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범인이 아닐까, 아니면 모든 것이 그녀의 머리속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독자마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읽은 피체크 작가의 작품 중 나를 실망시킨 것은 없었다. 이름만으로도 믿고 읽는 작가이지만, 이번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정신없이 작품에 몰입했고,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강한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고 할까. 스릴러 매니아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작품. 스릴러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만한, 심리스릴러 제왕의 작품이다. 그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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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에 걸친 신부 - 그대가 눈을 뜨면
나카하라 히사시.나카하라 마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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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랑, 생명의 의미를 알려주는 8년간의 기록]

행복한 예비신부 나카하라 마이는 '항NMDA 수용체뇌염'이라는 병명으로 결혼식을 3개월 앞두고 쓰러집니다. '항NMDA 수용체뇌염'은 난소 등에 종양이 생기는 바람에 체내에 항체가 생기고 그 항체가 오인해 뇌를 공격해 이상을 일으키는 자기면역성 질병이라고 해요. 발병률은 100만명 중 0.33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런 숫자 안에 마이가 포함되었던 겁니다. 초기 증상은 종합실조증과 비슷해서 환각과 망상, 패닉 발작 등의 모습을 보여 마이도 처음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영화 <엑소시스트>의 원작 모델이었던 소년도 이 병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그들이 다시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8년, 히사시와 마이, 그리고 가족들의 괴롭고 힘든 싸움이 시작됩니다. 한 번 심폐정지까지 와서 한 때는 식물인간으로 지냈던 마이였기에 그들이 걸어온 길이 어땠을 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실 거예요.

쓰러진 마이 곁을 지킨 건 그녀의 가족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히사시의 존재가 어쩌면 가장 컸을 겁니다. 언제 마이가 다시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녀의 어머니는 히사시에게 마이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까지 꺼냈지만, 히사시는 지난 8년 동안 한 번도 '기다릴까, 그만할까'를 놓고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이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니니까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텐데'

그런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약혼했습니다.

''약혼자'라는 말은 제게도 딱 와닿지는 않는 단어였지만,

저는 마이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마이는 그것을 받아주었습니다.

서류상이나 법률상 같은 말은 상관없습니다.

다만 괴로워하는 마이의 곁을 떠나

저만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는 일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망설일 일이 아니었던 것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우직한 남자가 다 있나요. 기다리는 일을 두고 망설일 일이 아니었다고 단언하는 남자. 말이 8년이지 그 긴 시간을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태로 인내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심폐정지까지 겪어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마이를 보면서도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았던 이 남자, 제가 마이라도 이 남자를 보배처럼 여기며 평생 사랑하고 아껴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8년에 걸친 신부]는 병으로 쓰러진 한 여자를 지고지순하게 기다렸던 어떤 남자의 (다행히) 해피엔딩 러브스토리지만, 동시에 건강하고 평범하게 보내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만 봐도, 늘 아이들을 돌보면서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 살지만, 한 아이가 아프기만 해도 차라리 고된 일상이 더 낫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 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만봐야 한다는 건 아픈 사람만큼이나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을 거예요. 그 시간을 무사히, 잘 보내 준 두 사람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흉흉한 소식만 들리는 요즘, 이들 부부의 행복한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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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인물로 본 임시정부 100년
문영숙.김월배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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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국호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역사.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피땀 어린 헌신과 목숨 건 이 투쟁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은 온갖 수난을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가 세워진 러시아 연해주, 안중근이 하얼빈 의거를 준비했던 최재형 저택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등에 어린 연해주 한인들의 삶과 독립 투쟁의 역사.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자싱, 항저우, 창사, 충칭 등으로 이어진다. 임정의 옛터와 기념관들, 윤봉길의 의거가 이루어졌던 루쉰공원,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순국한 독립 투사들의 묘지,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던 한국광복군 훈련지 등 영웅들의 숨이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에 대한 기록이 바로 이 [사건과 인물로 본 임시정부 100년]이다.

내게 역사는 재미있지만 어렵고 무거운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근현대사로 넘어오면 그 무게는 한층 더해진다. 아무리 공부하고 깊이 파고들어봐도 혼란스럽고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시대. 역사를 알아야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여전히 답은 미궁에 빠진 상태다. 앎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마침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된 해이기도 하고, 사건과 인물로 짚어나가면 좀 더 쉽게 임시정부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다른 책들에 비해 쉬운 편이기는 하지만 용어라든가 정치적 흐름 같은 것은 내게는 여전히 조금 어렵다.

안창호가 조직한 신민회,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러시아에서 한인지도자로 거듭난 최재형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김구 선생과 임정의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내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독립에 대한 결의를 다진다고 해도 나는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남길 수 있을까, 목숨을 잃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의거를 행할 수 있을까, 그 의거를 하러 가면서 웃을 수 있을까. 만약 지금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나는 이 분들처럼 내 목숨을 바쳐 독립을 외칠 수 있을까. 조국을 잃고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가 임정과 합류하기 위해 죽음의 순간들을 수없이 넘기고 겨우 살아난 장준하 선생이, '다시는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한 부분에서는 결국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뜻은 같았으나 하나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시간이 슬프다. 피와 땀을 바쳤으나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하고 떳떳하게 귀국할 수조차 없었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바친 목숨과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똑같은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수많은 분들이 지켜주신 우리의 대한민국,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겠다는 장준하 선생의 다짐을, 나도 조용히 가슴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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