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비「」밀「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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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이 머리 위 마크로 보이는 쿄와 시소처럼 보이는 밋키, 심장박동수가 보이는 하라와 카드의 기호처럼 보이는 즈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정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 지 화살표가 보이는 엘이라는 다섯 소년소녀의 설레면서도 미스터리하고 풋풋한 이야기다. 마음에 두고 있는 소녀가 자신의 친구에게 '뭐 바뀐 거 없어?'하며 들이대면 '설마' 하면서도 차마 자신의 마음을 꺼내놓지 못하고, 히로인보다 히어로가 되고 싶고 모두를 사랑하는 밝은 여학생이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를 쥐어짠다. 냉정한 진짜 자신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필사적으로 연기하기도 하고, 타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를 꿈꾸며,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고민했던 지난 날을 회상한다. 입시를 앞두고 있음에도 서로를 향하는 감정들. 그들의 울고웃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들, 뭘 알고 여러 사람들을 좋아하는 걸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밤의 괴물], [또 다른 꿈을 꾸었어]로 국내 독자들과 익숙한 스미노 요루의 신작이다. 사람의 감정을 어떤 기호나 화살표, 심장박동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약간 미스터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누구나 지나간 자신만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청춘스토리라고 할까. 기존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에 조금 더 가까운 분위기인 것 같기도 하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한 데 모여있는 설정은 좀 과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소설인 것을. 결국에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개인들의 고민이 오롯이 담겨 있어, 비단 학창시절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나는 과연 누구에 가까울까. 굳이 꼬집어보자면 쿄나 엘이었을까. 지금보다 훨씬 소심하고 남 앞에 서는 것을 무서워하던 소녀. 그런 나를 발견하고 친근하게 다가온 친구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그 시간이 떠올라 아련해진다. 어떤 캐릭터이든 고등학생이고 입시를 앞두고 있는만큼 미래와 진로, 존재의 이유 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 친구들, 그리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 앞으로 조금만 더 지나면 이들과 같은 공간에 지금처럼 있을 수 없다는 자각. 그것이 덩어리 진 슬픔처럼 가슴을 꽉 메워 오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자신의 감정에 매듭을 지으려는 성숙한 모습들에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암시와 비밀이 내재되어 있다. 문장이 드러내는 것에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한 챕터 한 챕터 읽어나가면서 그들의 감정을 추론할 뿐이다.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 상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소설의 기본소재가 각자가 지니고 있는 '비밀'인만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할까. 각자의 감정이 과연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지금의 나는 이들에 비해 얼마나 성숙해졌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다듬고 만들어나가야 할 길이 있는 이들과, 어느 정도의 길을 걸어온 나. 시간과 공간, 실제와 허구라는 간극 속에서 작품이 전하는 활기와 긍정적인 기운만은 두 팔 벌려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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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시 - 아픈 세상을 걷는 당신을 위해
로저 하우스덴 지음, 문형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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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년 정도 전이었던가. 공허하고 그 공허함에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이상하게 그 때 시를 많이 읽었다. 시에는 문외한이라 좋다는 시가 한 데 묶인 시집을 읽기도 하고, 그 중 마음에 든 작가의 시집을 찾아 따로 읽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때는 소설도, 그 어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읽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주구장창 시만 읽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 마음이 괜찮아지자 더 이상 시가 읽히지 않았다. 즐겁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시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는 당연하다는 듯 시집을 떠올린다. 감정의 덩어리를 응축하고 꾹꾹 눌러담은 글자 자국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안다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일까. [힘들 때 시]라는 제목을 보니, 아, 사람들은 모두 힘들면 시를 읽는구나-라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이 책에 실린 시들 중에는 단순히 '개인의 힘듦'을 노래한 것은 거의 없다. 시작부터 압도적이다. 작가 매기 스미스의 <좋은 뼈대>. 처음 등장하기도 하지만 읽은 것들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챕터의 제목이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지 말라'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짧음과 세상의 어둠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세상이 끔찍한만큼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염려하는 한 엄마의 시점에서 쓰여진 시는 지금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어떻게 해야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세상의 가장 나쁜 모습들을 비밀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세상 모든 엄마가 동일한 것이다. 엄마의 시점에서 쓰여졌지만, 이 시는 개인의 고민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펄스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영국의 정치인 조 콕스가 북부지역 선거구 모임 중 대낮에 저격당했을 때도, 2016년 미국 대선 다음날에도 회자된다.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정(情)을 표현하면서 이 세상에는 말못할 슬픔과 끔찍한 일이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삶을 찬양하려는 사람들의 노래다. 끝 부분의 '당신이라면 이곳을 멋지게 만드실 수 있어요'라는 표현이 그 의미를 전달한다.  

 

이 시를 읽고났는데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너를 보면]이 떠오른다. 집을 잃은 여우, 파란 하늘을 잃은 나비, 메마른 땅의 코끼리, 쓰레기에 갇힌 바다생물, 어느날 갑자기 버려진 강아지를 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며 눈물 흘리는 여자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런 여자아이에게 자신들과 함께 울어줘서 고맙다고 하는 동물들. 세상은 이토록 잔인하고 어둡지만 그런 세상을 보며 눈물 흘리고 아파해주는 누군가가 있어 자신들을 긍정할 수 있는 존재들. 어둠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 그림책과 매기 스미스의 시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매기 스미스를 비롯한 10명의 시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인생의 쓸쓸함과 슬픔, 고독과 아픔은 물론 그것을 인정하며 삶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려는 모습들이 담겨있다(고 여겨진다). 힘들 때 아니면 시를 잘 찾지 않고, 또 이렇게 시를 해설해주는 책은 학창시절 이후 처음이라 초반에는 낯설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나의 존재를 압도하는 어떤 거대함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내가, 나만이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 같은 것. 힘듦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그 힘듦이 밝히고 있는 것은 삶과 세상의 따뜻한 면이다. 아름다운 면이다. 얇은 책이지만 그 분량에 비해 전달되는 감동이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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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 - 꿈꿀수록 쓰라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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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인 이시카와 가즈토와 프리랜서 교정자인 기요미, 고등학교 1학년생 아들 다다시와 중학교 3학년인 딸 미야비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 다름 없이 평범하고 평온한 가정이었다.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중학교 때까지 하던 축구를, 다리를 다치면서 그만두게 된 다다시가 요즘들어 비뚤어진 모습을 보인다는 정도랄까. 가즈토와 기요미는 그 정도면 사춘기를 맞이한 여타 십대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고 가급적 간섭하지 않으려 하지만 눈에 멍이 들어 오기도 하고, 외박이 잦아진 데다, 공구용 칼을 구입하기도 하는 다다시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난 주말. 잠깐 외출한 다다시가 돌아오지 않는다. 뉴스에서는 다다시의 친구였던 소년이 살해된 채 발견됐고 시신이 발견된 차량에서 그 또래로 보이는 소년 두 명이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연락이 되지 않는 다다시를 실종신고하면서 가즈토와 기요미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 와중에 밝혀진 사실 하나. 사건과 관련되어 행방이 묘연한 소년은 셋, 그러나 도주한 소년은 둘. 과연 다다시는 가해자인가, 또 다른 피해자인가.

가즈토와 기요미는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것을 염원한다. 내 아들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며 또 다른 희생자일 거라 추정하는 가즈토와, 가해자여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 바라는 기요미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내 아들이 누군가를 해치는 일을 할 리 없다는 믿음,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는 자신. 다다시가 가해자로 밝혀졌을 때 무너질 건축가로서의 입지, 붕괴될 가정,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미야비의 좌절은 상상만으로 끔찍한 것이었다. 그 상상 앞에서 가즈토의 믿음은 과연 순수했을까. 다다시의 여동생인 미야비마저 오빠가 가해자인 게 낫다며, 그렇지 않으면 다 망한다며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 그들 곁에서 단 한 사람 기요미만이 다다시의 무사생환을 기원한다. 물론 기요미도 다다시가 가해자일 경우 그들 앞에 닥칠 어두운 미래를 상상하고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명의 피해자가 되는 것보다 살아있는 가해자가 낫다, 지금까지의 안락한 생활은 무너지고 세상 사람들의 질타가 끊이지 않겠지만 다다시를 위해 짊어지고 살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모습에 어머니로서의 강인함을 느꼈다고 할까. 만약 우리가,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어느 쪽을 염원하게 될까. 모두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선택지 앞에서.

그럼 어쩌라고?

당신은 지금 그 녀석이 범인인 게 낫다는 거야?

굳이 어느 쪽이 나은지를 따지면 그쪽이 훨씬 낫지.

당연하잖아.

오랜 전 잊히지 않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첫째 아이와 다른 친구들이 계단에서 어떤 여자 아이를 밀어 그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어째서 그런 끔찍한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2층에 있고, 계단이 많고 가팔라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다칠까 늘 염려했던 게 꿈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꿈 속인데도 느껴지는 공포와 두려움이 생생했다. 나도 가즈토와 똑같이 생각했다.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분명히 무슨 착오가 있었던 거라고. 그러면서 죽은 아이보다 내 아이를 먼저 걱정했다. 앞으로 우리 아이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조금 더 커서 무언가를 확실히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때 뭐라고 이야기해줘야 할까. 한편으로는 죽은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꿈에서 깨고 난 뒤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서,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만일, 정말 만의 하나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부모로서 아이가 책임을 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다져야 한다는 의견을 나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기요미와 똑같이 생각했다. 가해자일지언정 살아있는 편이 낫다고. 평생 세상의 뭇매를 맞고 형편은 어려워지더라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이 백배 천배는 나을 것이다.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는

정말 잃어서는 안 될 걸 지키는 게 중요해.

매일 세상을 뜬 피해 아이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그런 식으로 부모인 네가 책임을 지는 거지.

그럼 다다시도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니.

네가 다 등에 업으면 다다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그러니까 기요미.

넌 자신을 버리고 다다시를 지킬 각오를 다져야 해.

사건이 일어나고 전모가 밝혀질 때까지 긴장감과 불안감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른다. 가족들이 느끼는 심적고통에 마음이 아팠고, 어느 쪽이라고 밝혀진 것도 없는데 가해자처럼 여겨지며 이어지는 매스컴의 인정사정없는 스포트라이트가 불쾌하게 다가왔다. 긴장과 불안은 부부가 마침내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여겨지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뻥 터진다. 후반부에서는 그야말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열했다. 다다시가 마지막에 자신을 위해 내린 결정이 마음을 후벼팠다. 소설임에도 현실 속 자식을 가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더 가슴 아팠다. 이 책을 읽고나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이 일상이 무척 소중해진다. 어린이집에 가 있는 큰 아이의 얼굴이 무척 보고싶어졌다.

시즈쿠이 슈스케의 작품은 [범인에게 고한다]를 이후로 처음이지만, 이 작가가 이런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새롭게 다가왔다. 작가의 재발견. 앞으로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 리스트에 올리리라 다짐할 정도로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알아본 출판사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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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죄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은모 옮김 / 달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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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으로 풍성한 요즘입니다. 친구가 소년A 일 수도 있다니! 에이타가 출연한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니 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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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화학자 2 - 명화에 담긴 과학과 예술의 화학작용 미술관에 간 지식인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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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더불어 세계 3대 성화 중 하나로 불리는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에는 납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뉘어 있는데 천상계는 지상계와 달리 형태가 흐릿하고 색채도 창백하고 몽롱하다. 마치 물체가 탈 때 나타나는 불꽃 속에서 희끗희끗 창백하게 빛나는 재처럼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감 중 연백은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데 그냥 흰색이 아니라 창백한 느낌의 독특한 흰색을 띈다고 한다. 연백은 '탄산수산화납'으로 표기되며 오래 전부터 백색 안료로 사용되어 왔다. 물에는 녹지 않지만 산에 녹아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알칼리에도 녹는데, 황화수소를 만나면 검게 변하는 단점이 있다. 납 중독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해서 최근에는 그 사용 범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작자 미상)를 보면 여왕의 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묘사되어 있는데 당시 그녀가 미백을 위해 납 성분의 화장품을 사용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명화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하다. 성서는 물론 신화와 음악 등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는 제목에서처럼 화학적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본다. 사실 학창시절 과학 과목을 잘했던 편이 아니어서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면 어쩌나 살짝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일반 독자들이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그런 고민은 덜어도 될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올만큼 [미술간에 간 화학자] 이야기는 과학계와 문화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우수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이와 더불어 [미술간에 간 의학자], [미술관에 간 수학자], [미술간에 간 인문학자] 등 '미술관에 간~'시리즈는 매우 유명하다. 화학 이야기만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림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배경이 소개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은 스페인의 톨레도라는 도시, '산토 토메'라는 성당에 있다. 이 그림에서 매장되는 오르가스 백작은 그림이 그려지기 270년 전, 1312년에 세상을 떠난 인물인데 신앙심이 매우 깊어 후손들에게 자신의 재산 중 일부를 해마다 헌금으로 기부하도록 당부했다. 그러나 16세기에 종교개혁의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펠리페 2세의 강압적인 반종교개혁적 조처는 부패한 가톨릭교회의 반감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고 오르가스 백작의 후손들도 유언의 실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오르가스 가문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당시 톨레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인 엘 그레코에게 오르가스 백작을 기리는 그림을 의뢰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죽은 사람의 소환. 아이러니하면서도 얼마나 절박했으면 저런 생각을 떠올렸을까 싶기도 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그림이 더 생생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이와 함께 엘 그레코의 생애와 그가 속했던 사조인 '매너리즘'에 대해서도 소개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또 많이 알려진 화가 중 하나로 반 고흐를 들 수 있겠다. 세세하게 작품 하나하나는 몰라도 그의 이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텐데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전시된 고흐의 <해바라기>가 노란색에서 갈색으로 변색되고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변색의 원인으로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밝은 노란색을 얻기 위해 크롬 옐로와 황산염의 흰색을 섞어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크롬 옐로는 납을 질산 또는 아세트산에 용해하고, 중크롬산나트륨 수용액을 가하면 침전되어 생성되는데 이 반응에 황산납 등의 첨가물을 가하거나 PH를 변화시키면 담황색에서 적갈색에 걸친 색조가 생긴다. 크롬 옐로의 납 성분은 대기오염 중 포함된 황과 만나면 황화납이 되는데 이것이 검은 색이다. 결국 오랜 시간 빛이나 대기 중에 노출되면 변색의 정도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에 미술관 측은 당분간 이 <해바라기>의 해외여행을 금지했다. 이 챕터에서는 화학적 설명의 분량이 많은데 파리와 아를의 해바라기가 다른 이유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이외에도 평소 좋아하는 그림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기상학자들이 밝힌 뭉크의 <절규> 속 붉은 하늘에 관한 이야기, 클림트가 작품에 사용했던 금박 이야기, 쿠르베의 자화상 <부상당한 남자>를 엑스레이로 촬영해 본 결과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이렇게 과학과 연결지어 그림을 바라보니 명화가 실생활과 밀접해있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역사와 신화, 과학과 인문학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는 그림들. 앞으로도 '미술간에 간~'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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