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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 - 꿈꿀수록 쓰라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평점 :
건축가인 이시카와 가즈토와 프리랜서 교정자인 기요미, 고등학교 1학년생 아들 다다시와 중학교 3학년인 딸 미야비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 다름 없이 평범하고 평온한 가정이었다.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중학교 때까지 하던 축구를, 다리를 다치면서 그만두게 된 다다시가 요즘들어 비뚤어진 모습을 보인다는 정도랄까. 가즈토와 기요미는 그 정도면 사춘기를 맞이한 여타 십대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고 가급적 간섭하지 않으려 하지만 눈에 멍이 들어 오기도 하고, 외박이 잦아진 데다, 공구용 칼을 구입하기도 하는 다다시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난 주말. 잠깐 외출한 다다시가 돌아오지 않는다. 뉴스에서는 다다시의 친구였던 소년이 살해된 채 발견됐고 시신이 발견된 차량에서 그 또래로 보이는 소년 두 명이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연락이 되지 않는 다다시를 실종신고하면서 가즈토와 기요미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 와중에 밝혀진 사실 하나. 사건과 관련되어 행방이 묘연한 소년은 셋, 그러나 도주한 소년은 둘. 과연 다다시는 가해자인가, 또 다른 피해자인가.
가즈토와 기요미는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것을 염원한다. 내 아들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며 또 다른 희생자일 거라 추정하는 가즈토와, 가해자여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 바라는 기요미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내 아들이 누군가를 해치는 일을 할 리 없다는 믿음,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는 자신. 다다시가 가해자로 밝혀졌을 때 무너질 건축가로서의 입지, 붕괴될 가정,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미야비의 좌절은 상상만으로 끔찍한 것이었다. 그 상상 앞에서 가즈토의 믿음은 과연 순수했을까. 다다시의 여동생인 미야비마저 오빠가 가해자인 게 낫다며, 그렇지 않으면 다 망한다며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 그들 곁에서 단 한 사람 기요미만이 다다시의 무사생환을 기원한다. 물론 기요미도 다다시가 가해자일 경우 그들 앞에 닥칠 어두운 미래를 상상하고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명의 피해자가 되는 것보다 살아있는 가해자가 낫다, 지금까지의 안락한 생활은 무너지고 세상 사람들의 질타가 끊이지 않겠지만 다다시를 위해 짊어지고 살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모습에 어머니로서의 강인함을 느꼈다고 할까. 만약 우리가,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어느 쪽을 염원하게 될까. 모두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선택지 앞에서.
그럼 어쩌라고?
당신은 지금 그 녀석이 범인인 게 낫다는 거야?
굳이 어느 쪽이 나은지를 따지면 그쪽이 훨씬 낫지.
당연하잖아.
오랜 전 잊히지 않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첫째 아이와 다른 친구들이 계단에서 어떤 여자 아이를 밀어 그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어째서 그런 끔찍한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2층에 있고, 계단이 많고 가팔라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다칠까 늘 염려했던 게 꿈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꿈 속인데도 느껴지는 공포와 두려움이 생생했다. 나도 가즈토와 똑같이 생각했다.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분명히 무슨 착오가 있었던 거라고. 그러면서 죽은 아이보다 내 아이를 먼저 걱정했다. 앞으로 우리 아이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조금 더 커서 무언가를 확실히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때 뭐라고 이야기해줘야 할까. 한편으로는 죽은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꿈에서 깨고 난 뒤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서,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만일, 정말 만의 하나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부모로서 아이가 책임을 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다져야 한다는 의견을 나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기요미와 똑같이 생각했다. 가해자일지언정 살아있는 편이 낫다고. 평생 세상의 뭇매를 맞고 형편은 어려워지더라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이 백배 천배는 나을 것이다.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는
정말 잃어서는 안 될 걸 지키는 게 중요해.
매일 세상을 뜬 피해 아이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그런 식으로 부모인 네가 책임을 지는 거지.
그럼 다다시도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니.
네가 다 등에 업으면 다다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그러니까 기요미.
넌 자신을 버리고 다다시를 지킬 각오를 다져야 해.
사건이 일어나고 전모가 밝혀질 때까지 긴장감과 불안감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른다. 가족들이 느끼는 심적고통에 마음이 아팠고, 어느 쪽이라고 밝혀진 것도 없는데 가해자처럼 여겨지며 이어지는 매스컴의 인정사정없는 스포트라이트가 불쾌하게 다가왔다. 긴장과 불안은 부부가 마침내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여겨지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뻥 터진다. 후반부에서는 그야말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열했다. 다다시가 마지막에 자신을 위해 내린 결정이 마음을 후벼팠다. 소설임에도 현실 속 자식을 가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더 가슴 아팠다. 이 책을 읽고나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이 일상이 무척 소중해진다. 어린이집에 가 있는 큰 아이의 얼굴이 무척 보고싶어졌다.
시즈쿠이 슈스케의 작품은 [범인에게 고한다]를 이후로 처음이지만, 이 작가가 이런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새롭게 다가왔다. 작가의 재발견. 앞으로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 리스트에 올리리라 다짐할 정도로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알아본 출판사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