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화학자 2 - 명화에 담긴 과학과 예술의 화학작용 미술관에 간 지식인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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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더불어 세계 3대 성화 중 하나로 불리는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에는 납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뉘어 있는데 천상계는 지상계와 달리 형태가 흐릿하고 색채도 창백하고 몽롱하다. 마치 물체가 탈 때 나타나는 불꽃 속에서 희끗희끗 창백하게 빛나는 재처럼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감 중 연백은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데 그냥 흰색이 아니라 창백한 느낌의 독특한 흰색을 띈다고 한다. 연백은 '탄산수산화납'으로 표기되며 오래 전부터 백색 안료로 사용되어 왔다. 물에는 녹지 않지만 산에 녹아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알칼리에도 녹는데, 황화수소를 만나면 검게 변하는 단점이 있다. 납 중독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해서 최근에는 그 사용 범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작자 미상)를 보면 여왕의 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묘사되어 있는데 당시 그녀가 미백을 위해 납 성분의 화장품을 사용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명화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하다. 성서는 물론 신화와 음악 등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는 제목에서처럼 화학적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본다. 사실 학창시절 과학 과목을 잘했던 편이 아니어서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면 어쩌나 살짝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일반 독자들이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그런 고민은 덜어도 될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올만큼 [미술간에 간 화학자] 이야기는 과학계와 문화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우수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이와 더불어 [미술간에 간 의학자], [미술관에 간 수학자], [미술간에 간 인문학자] 등 '미술관에 간~'시리즈는 매우 유명하다. 화학 이야기만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림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배경이 소개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은 스페인의 톨레도라는 도시, '산토 토메'라는 성당에 있다. 이 그림에서 매장되는 오르가스 백작은 그림이 그려지기 270년 전, 1312년에 세상을 떠난 인물인데 신앙심이 매우 깊어 후손들에게 자신의 재산 중 일부를 해마다 헌금으로 기부하도록 당부했다. 그러나 16세기에 종교개혁의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펠리페 2세의 강압적인 반종교개혁적 조처는 부패한 가톨릭교회의 반감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고 오르가스 백작의 후손들도 유언의 실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오르가스 가문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당시 톨레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인 엘 그레코에게 오르가스 백작을 기리는 그림을 의뢰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죽은 사람의 소환. 아이러니하면서도 얼마나 절박했으면 저런 생각을 떠올렸을까 싶기도 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그림이 더 생생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이와 함께 엘 그레코의 생애와 그가 속했던 사조인 '매너리즘'에 대해서도 소개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또 많이 알려진 화가 중 하나로 반 고흐를 들 수 있겠다. 세세하게 작품 하나하나는 몰라도 그의 이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텐데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전시된 고흐의 <해바라기>가 노란색에서 갈색으로 변색되고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변색의 원인으로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밝은 노란색을 얻기 위해 크롬 옐로와 황산염의 흰색을 섞어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크롬 옐로는 납을 질산 또는 아세트산에 용해하고, 중크롬산나트륨 수용액을 가하면 침전되어 생성되는데 이 반응에 황산납 등의 첨가물을 가하거나 PH를 변화시키면 담황색에서 적갈색에 걸친 색조가 생긴다. 크롬 옐로의 납 성분은 대기오염 중 포함된 황과 만나면 황화납이 되는데 이것이 검은 색이다. 결국 오랜 시간 빛이나 대기 중에 노출되면 변색의 정도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에 미술관 측은 당분간 이 <해바라기>의 해외여행을 금지했다. 이 챕터에서는 화학적 설명의 분량이 많은데 파리와 아를의 해바라기가 다른 이유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이외에도 평소 좋아하는 그림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기상학자들이 밝힌 뭉크의 <절규> 속 붉은 하늘에 관한 이야기, 클림트가 작품에 사용했던 금박 이야기, 쿠르베의 자화상 <부상당한 남자>를 엑스레이로 촬영해 본 결과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이렇게 과학과 연결지어 그림을 바라보니 명화가 실생활과 밀접해있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역사와 신화, 과학과 인문학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는 그림들. 앞으로도 '미술간에 간~'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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