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남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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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여자]와 함께 세트로 출간된 책. 아빠에 관한 책 되시겠다. 어쩐지 여느 집 아빠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이미지로 그려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스다 미리의 아빠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뜨거운 된장국에 얼음을 넣어먹을 정도로 급한 성격이지만, 취미는 낚시와 독서. 그런데 읽은 책은 미련 없이 처분하는 결단(?)력있는 남자다! 무뚝뚝하고 애정표현에 서투른 듯 해도 퇴근길에는 가족을 위해 깜짝 케이크를 준비하는 남자. 이 케이크도 그냥 전달하지 않고, 대문 앞에 살짝이 놓았다가, 깜빡 잊었다는 듯 툭 던지는 장면이 재미나다.

 

이 아버지의 성격이 얼마나 급했냐면, 마스다 미리가 '나는 아버지니까 얼굴 보고 살지, 이런 남자친구만큼은 사절이라고 마음 속으로 맹세했다'라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런데 사실 나도 그랬다. 우리 아빠도 젊으셨을 때 성격이 얼마나 급하고 호랑이 같으셨는지 나도 아빠같은 남자는 남자친구로 사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엄마에게 받은 사랑보다 아빠에게 받은 사랑이 더 기억에 남는다. 딸이어서 그랬을까. 그래도 동생에게는 매도 들고 하셨던 분이, 나에게는 한 번도 매를 든 적이 없으셨다. 말로 혼난 적은 있었지만. 하지만 어렸을때는 아빠의 목소리가 하도 커서 말로만 혼나도 눈물을 펑펑 쏟았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 관심이 무척 많은 분이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였냐면, 동생이 서른이 넘었을 때까지도 집에 안 들어오면 잠을 잘 못이루시고, 얼른 들어오라며 전화하느라 서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정도?! 가족이었으니까 이런 저런 우여곡절이 많지만, 나와 동생이 한 가지 의견일치를 본 것이 있는데 -절대로 아빠는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표현이 조금 거칠고 목소리가 커서 화난 사람같았던 아빠지만,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스다 미리의 작품은 단순한데, 리뷰 쓰기가 참 쉽지 않은 책들 중 하나다. 책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앞서 작성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지금 쓰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우리가족의 전부가 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게 다르고, 부모님이 기억하시는 게 다를 테니까. 서운함과 아픈 기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한다.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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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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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직장의 임원으로 재직 중인 데다, 아름다운 아내와 두 딸이 있는 행복한 가정까지 이룬 조르주 제르포. 그는 어느 밤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사고 차량의 운전자를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준 뒤 귀가한다. 마침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여행을 떠난 조르주. 그의 뒤를 두 명의 암살범이 쫓아온다. 수영 중이던 그를 물 속에서 공격하지만 조르주의 격렬한 저항으로 암살에 실패한 두 남자. 조르주는 왜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지 영문도 모른 채 공격받은 그 밤 다시 파리로 돌아오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 생각을 정리한다. 그 사이 암살범들도 다시 그를 찾아 조르주의 아파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한 번의 공격. 조르주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상처입은 채 화물열차에 타고 있었고, 그의 물건을 노리는 부랑자에 의해 열차 밖으로 내던져지게 된다.

 

툭툭 던져지는 문장 속에서 순간순간 독자를 놀라게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무심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듯 하다가, '엘리자베스, 조르주 제르포는 이 암캐마저 죽여버렸다' 같은 문장이 갑자기 나타난다. 이미 조르주가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드러나는 상황. 작품은 여기에서 역행하여 조르주가 어째서 알론소라는 인물을 죽이기 위해 나타나는지, 그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차분히 설명하고 있다. 그 와중에 작품 속에 울리는 음악들. 그 음악들이, 독특하게도 이 이야기를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보이게도 하는 마법을 부린다.

 

특이한 것은 조르주의 태도. 두 명의 암살범들에게 쫓겨 큰 상처를 입은 그는 라귀즈라는 노인을 만나 이런 저런 기술을 배우게 되는데, 어쩐 일인지 그는 좀처럼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토록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아내 베아에게 전화 한 통 할 법한데도,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라귀즈의 손녀 알퐁진을 만나 한순간 쾌락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그녀와의 관계를 '쾌락'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조르주가 알퐁진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다음 장면에서 일어난 일들로 인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의 의식 안에는 '집'이라는 개념이 일정기간 동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가 휴가지에서 갑자기 이탈한 이유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표현한 것과 연관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우리가 모든 걸 다 내려놓고선 산에 올라가 채소를 기르고 양을 치며 살았으면 싶기도 해(p87)' 라는, 은연 중 품었던 소망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즐거움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조르주는, 작품 초반에 설명된 것처럼 그의 목적을 이루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이미 한 마리 야수가 들어앉아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았던 상황에 본능적으로 깨어나게 된 폭력성과 야만성이, 이제는 더는 잠들지 못하고 그를 흔들어놓는다. 웨스트코스트 블루스를 들으면서 시속 145km로 질주하는 조르주. 그의 내면에 자리한 야수를 잠재울 방법은 그것 하나 뿐일까. 새로운 안티히어로의 등장. 담담하면서도 강렬한, 프랑스 누아르의 혁신 '네오폴라르'의 최고 걸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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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주영아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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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이고 기묘한 분위기로 압도하는 미스터리!]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엘러리 퀸 콜렉션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도서는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 앞으로도 계속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즐거움이 한참은 남았다고 여겼는데, '공식적인' 엘러리 퀸 함시도는 이 작품이 마지막이 되었다. 아쉽지만 중요한 것은 '엘러리 퀸'이라는 작가의 작품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는 것. 그 동안 이름만 들어왔지 읽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함시도를 통해 작가와 작품에 푹 빠지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권씩 자율적으로 읽어나갈 예정!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다! 이집트 유물이나 고대 이집트학과 관련해 관심이 많아서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컸는데, 등장하는 첫 살인사건부터 오컬트적인 분위기가 물씬! 크리스마스 날 아침,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작은 마을 아로요에서 끔찍한 모습의 시체가 발견된다. T자형 교차로의 T자형 도로 표지판에 목이 잘린 채 T자 모양으로 매달린 시체. 거기에다 피살자의 집 문에는 피로 휘갈겨 쓴 T자가 남아 있다. 희생자의 신원은 교사로 재직 중이던 앤드루 반. 엘러리는 이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이번 작품에서는 아버지와 떨어져 독자적으로 사건을 수사해보기로 하지만 범인은 마치 연기처럼 그 정체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아무 성과 없이 뉴욕으로 돌아간 엘러리 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야들리 교수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보.

 

엘러리가 야들리 교수로부터 전보를 받은 것은 앤드루 반 사건이 일어나고 6개월 뒤.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서 똑같은 유형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백만장자인 토머스 브라드가 목이 잘린 채 T자형 토템 포스트에 못 박혀 사망했고, 역시 시체 주변에는 수수께끼의 T자가 피로 쓰여 있다. 사건은 미치광이 예언자와 광신도, 나체주의자 등 기괴한 인물들과 엮여 점점 더 오리무중으로 빠지는 가운데, 반과 토머스, 그리고 토머스의 사업 파트너였던 스티븐을 둘러싼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이 아주 오래 전 시작된 피의 복수극임을 알린다.

 

초반에 앤드루 반이 매달려 있던 십자가와 하라크트라는 남자의 존재로 인해, 이 작품은 영락없이 이집트와 연관이 있다, 뭔가 고대의 저주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하며 마음이 설레었다(?). 하지만 엘러리가 초반에 세운 이 가설은 후에 야들리 교수와의 대화로 사건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으로 증명된다. 사실 그 동안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를 읽으면서 굳이 제목에 국명을 넣을 필요가 있었는가-의문을 가질 정도로 연관이 없다 생각해왔는데,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는 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엘러리 퀸과 야들리 교수가 아주 친절하게 이집트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설명해주는 마당에야. 사건은 그런 오컬트적인 면이 아니라 이제 가문과 가문 사이에 벌어진 잔인한 복수극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결말은! 이집트 십자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피해자들의 머리를 자른 이유는 '그것 뿐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이유라 내심 놀랐다. 다만 범인 색출에는 실패. 후보에는 올라 있었지만 이 사람 저 사람 갈팡질팡하다가 마지막에 결정을 못한 탓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은 엘러리 퀸 작품 중에서는 나와 가장 잘 맞았던 작품.

 

작품 속에서 엘러리 퀸이 펼치는 논리에 집중하다보면 글자 하나하나가 뇌리에 박히는 느낌이 든다.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특히 이렇게 논리적으로 펼쳐지는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독자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지. 나는 트릭을 고안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짤 필요도 없이, 그저 단순히 이 책 읽는 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공식적인 함시도는 막을 내렸지만, 앞으로 읽어나갈 <엘러리 퀸 콜렉션>에 대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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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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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편지 조작'이었다. 그것을 과연 단순히 '장난'이라 치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소의 악의가 들어간, 소녀들의 짖궂음이 반영된. 사람의 마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것의 향방이 어찌될 지 지켜보며 킬킬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 속에서 분노가 치솟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행위를 범죄라 지칭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경우에는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우리는 감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들이므로. 장난이라고 하는 모든 행위가 모두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녀들의 시작은 장난이었다.

 

조해너의 일생은 외로웠다. 부모님도 계시지 않았고 누구 하나 친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딸처럼 보살폈던 새비서조차도 그녀와 헤어질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다 뭐란 말인가. 새비서가 떨어져 지내는 아빠에게, 조해너가 쓴 것처럼 꾸민 편지를 집어넣으면서 친구인 이디스와 작은 모의를 꾸민 것을 보면, 조해너는 결코 새비서의 마음을 얻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 조해너의 삶 속에서 새비서의 아빠, 부드로가 보낸 편지 하나만이 작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것이 거짓일 거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채, 조해너는 부드로를 향해 떠난다. 사랑이라 믿으면서, 자신에게 그가 소중한 존재가 된 것처럼 그에게도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일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이었지만 좀 더 주의깊게 읽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쉽다고는 결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직 이 의문에 대한 답을 확실히 찾은 것 같지는 않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일상. 연못에 돌이 떨어지듯 생기는 에피소드. 그 에피소드가 만들어내는 작은 파문에 마음이 깊게 잠겨들어간다. 에피소드가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만큼인지, 사실 나는 가늠도 못하겠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건들이 그녀들에게 어느 때는 일종의 즐거움을, 어느 때는 삶의 경이를 깨닫게 한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문은 곧 사라져간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섬세함.

 

촘촘한 작품집이다. 한 번에 읽어내려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하나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쉬지 않고서는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 그럼에도 왜 나는 이 작가를, 이 작품을 이렇게 품고 끙끙거리는 것인가. 답은 모르겠다. 그저 빠져들었고, 읽을 뿐이고, 앞으로도 읽어나갈 것이라는 점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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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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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의 두 번째 도서는 [잠자는 숲]. 일본드라마 중 < 眠れる森>라는 작품이 있어, 혹시 동일작품인가 싶어 찾아봤지만 별개의 내용. 전편인 [졸업]에서 소중한 친구들의 죽음으로 더욱 성숙해진 가가 교이치로가, 다음부터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사건 속에 뛰어들게 될 지 내내 궁금했었다. 경찰보다는 교사의 길을 택했던 가가. 그래서 이번에 교사가 된 가가의 모습을 만나는 것인가 내심 기대했는데, 그 부분은 훌쩍 건너뛰고 형사가 된 가가가 독자들을 맞이한다.

 

다카야나기 발레단에서 발견된 한 구의 남성 시체. 피의자인 사이토 하루코는 사망한 남성인 가자마 도시유키가 발레단의 사무실에 침입, 갑자기 자신을 공격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살해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정당방위라 말하는 하루코의 의견에 따라 사건 수사를 시작한 가가와 경찰들. 하지만 어째서 가자마가 하필 발레단에 침입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다. 그것도 화가로서 뉴욕행을 코앞에 둔 지금 시점에서. 하루코와 가자마의 접점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레단의 안무가인 가지타 야스나리도 살해당하고, 이제는 범인이 발레단 내부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와중에 발레리나인 아사오카 미오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가가.

 

발레리나-의 모습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소녀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마음. 작은 새처럼 무대 위를 날아오르며 아름다운 동작을 뽐내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마법'이라는 단어를 표현할 수 있다면 바로 저런 것이 아니겠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언젠가 방송에 등장했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울퉁불퉁, 고목의 뿌리를 연상하게 만든 그 발에 그녀가 수십 년간 이뤄온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쉼없는 연습, 끊임없는 체중 조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프리마 발레리나가 아니라면 겪어야 하는 생활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발레를 포기할 수 없었던 다카야나기 발레단원들의 모습에 가슴이 묵지근해질 수밖에 없다.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사토코에게 무뚝뚝하게 프로포즈를 했던 가가 교이치로다.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내 마음만은 말해두고 싶었다-며 사토코에게 일격(?)을 날렸던 때와는 달리, 미오를 향한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포함된 배려가 담겨 있다. 가가라는 인물을 알고 있기에 망정이지 아무리 사건 수사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다소 스토커 같은 모습으로 연습 중인 그녀를 살펴본다든가, 낯간지러운 대사를 한 마디씩 던지는 그를 보고 있자니 약간 닭살이 돋았다. 과연 이 사랑이 끝까지 지켜질 수 있을지,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안타까움마저 느껴진다.

 

아직은 초보 형사의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베테랑의 모습을 보이게 될 지 기대가 크다. 교사였던 그가 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을 지 무척 궁금했는데, 혹시 다른 작품들에서 잠깐이라도 엿보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모으는 뿌듯함이 있는, 멋진 표지의 <가가 형사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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