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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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직장의 임원으로 재직 중인 데다, 아름다운 아내와 두 딸이 있는 행복한 가정까지 이룬 조르주 제르포. 그는 어느 밤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사고 차량의 운전자를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준 뒤 귀가한다. 마침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여행을 떠난 조르주. 그의 뒤를 두 명의 암살범이 쫓아온다. 수영 중이던 그를 물 속에서 공격하지만 조르주의 격렬한 저항으로 암살에 실패한 두 남자. 조르주는 왜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지 영문도 모른 채 공격받은 그 밤 다시 파리로 돌아오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 생각을 정리한다. 그 사이 암살범들도 다시 그를 찾아 조르주의 아파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한 번의 공격. 조르주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상처입은 채 화물열차에 타고 있었고, 그의 물건을 노리는 부랑자에 의해 열차 밖으로 내던져지게 된다.

 

툭툭 던져지는 문장 속에서 순간순간 독자를 놀라게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무심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듯 하다가, '엘리자베스, 조르주 제르포는 이 암캐마저 죽여버렸다' 같은 문장이 갑자기 나타난다. 이미 조르주가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드러나는 상황. 작품은 여기에서 역행하여 조르주가 어째서 알론소라는 인물을 죽이기 위해 나타나는지, 그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차분히 설명하고 있다. 그 와중에 작품 속에 울리는 음악들. 그 음악들이, 독특하게도 이 이야기를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보이게도 하는 마법을 부린다.

 

특이한 것은 조르주의 태도. 두 명의 암살범들에게 쫓겨 큰 상처를 입은 그는 라귀즈라는 노인을 만나 이런 저런 기술을 배우게 되는데, 어쩐 일인지 그는 좀처럼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토록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아내 베아에게 전화 한 통 할 법한데도,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라귀즈의 손녀 알퐁진을 만나 한순간 쾌락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그녀와의 관계를 '쾌락'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조르주가 알퐁진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다음 장면에서 일어난 일들로 인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의 의식 안에는 '집'이라는 개념이 일정기간 동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가 휴가지에서 갑자기 이탈한 이유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표현한 것과 연관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우리가 모든 걸 다 내려놓고선 산에 올라가 채소를 기르고 양을 치며 살았으면 싶기도 해(p87)' 라는, 은연 중 품었던 소망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즐거움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조르주는, 작품 초반에 설명된 것처럼 그의 목적을 이루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이미 한 마리 야수가 들어앉아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았던 상황에 본능적으로 깨어나게 된 폭력성과 야만성이, 이제는 더는 잠들지 못하고 그를 흔들어놓는다. 웨스트코스트 블루스를 들으면서 시속 145km로 질주하는 조르주. 그의 내면에 자리한 야수를 잠재울 방법은 그것 하나 뿐일까. 새로운 안티히어로의 등장. 담담하면서도 강렬한, 프랑스 누아르의 혁신 '네오폴라르'의 최고 걸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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