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허들 - 1리터의 눈물 어머니의 수기
키토 시오카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에게 있어 어머니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가 라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이러한 말을 소재로 책도 나왔던 것 같다). <1리터의 눈물, 생명의 허들>을 읽으면서 내내 이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시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아야는 병을 이기려고 노력할 수 있었던 거구나"

 -病気はどうして私を選んだの(병은 어째서 나를 선택한 걸까)-
-転んだっていいじゃないか。また起き上がればいいんだから(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1리터의 눈물 中)

내가 키토 아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 딱 이맘 때였다. 원래 일본드라마를 즐겨보는 나는,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슬픈 내용은 되도록 피한다. 그래서 <1리터의 눈물>의 제목을 보면서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루 동안에 11편의 드라마를 모두 봐 버렸고, 결국 한 달이 넘게 후유증으로 꽤 고생을 해야 했다. 마음을 다스리기까지 힘은 많이 들었지만 나는 <1리터의 눈물>을 통해 -키토 아야-를 알게 된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로 먼저 알게 되었지만 책으로도 나온 <1리터의 눈물>은 키토 아야가 척수소뇌변성증(운동신경을 관장하는 척수와 소뇌에 이상이 생겨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에 걸려서도 손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쓴 일기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 아야의 곁에서 많은 힘을 주며 같이 병마와 싸운 어머니의 수기가 바로 이 <생명의 허들>이다. <생명의 허들>은 앞서 나온 <1리터의 눈물>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아야의 생활과, 아야가 병과 어떻게 싸워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오늘이라는 날도 내일이라는 날도 시간으로 새기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새겨나가자.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상상을 해 봐.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많아-(생명의 허들 中)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 아야의 어머니는 아야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단지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아야에게 있어 어머니는 삶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을 밝게 비쳐준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야가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하며 좌절해 있을 때도, 일기를 써서 사회 속으로 들어가라고 권유한 것도 어머니였고, 아야의 약한 마음을 다독이며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은 것도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아야는 게으름을 피우고 마냥 울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병과 싸우려고 노력했고, 그녀가 쓴 일기는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마저도 삶의 희망을 일깨워주었다. 

 이 수기에서는 또한 일반 사람들이 병든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부분도 엿볼 수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무척 화가 나게 만든 부분이었다. 아야의 병은 몸이 부자유스러운 것 뿐이지 뇌의 활동은 정상인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아야는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총명한 아이였다. 그런 아야를 어떤 간병인들은 바보 취급을 하고, 심지어 학대에 가까운 행동도 거리낌없이 행한다.  누워만 있는 아야의 몸을 잘 닦아주지 않는 사람, 목의 연동기능이 잘 움직이지 않아 천천히, 오래 밥을 먹는 아야에게 대체 언제까지 밥을 먹는 거냐며 호통을 치는 사람..심지어 어떤 간호사는 마지막이 다가오기 6개월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아야의 병실에 들러 식사량이 얼마냐고 무신경하게 묻기도 했다니..책을 읽는 내 마음도 너무 아팠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보는 아야의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하니, 분노로 눈물이 났다. 동시에 내가 그 동안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봐 왔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적이 있었나, 아니, 따뜻한 눈빛 한 번 보낸 적이 있었나. 부끄럽다. 

 다행인 것은 아야의 곁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지켜준 간병인, 인기가수이면서도 소탈한 모습으로 찾아와 아야에게 멋진 만남의 기회를 선사해준 야마카와 유타카, 주치의 선생님인 야마모토 히로코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했던 가족.어머니. 고통이 많았지만 짧은 생 속에서 충만한 사랑을 느꼈다는 그 사실에 나도 또한 위로받았다. 

 <1리터의 눈물> <생명의 허들> 이 책들은 지금 특히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나 또한 힘들 때마다 <1리터의 눈물>을 꺼내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있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데 두려운 게 무엇이고, 해내지 못할 일이 무엇일까.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열망한 아야를 생각하고, 함께 고통받은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조그만 일에도 쉽게 지치는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나도 아야처럼 온 힘을 다해 살아내야지"하는 의무감을 느낀다. 사소한 것, 평범한 것, 그것이 바로 다름아닌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야의 마지막을 어머니는 -시집보낸다-고 표현했다. 먼 나라, 전화도 편지도 할 수 없는 먼 나라로 아야를 시집 보내는 것이라고..죽음은 우리 삶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예기치 못하게 다가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마지막까지 시신을 기증하며 사회에 보탬이 되기를 원했던 아야. 그리고 그런 아야를 마지막까지 지탱한 어머니.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삶을 누린 아야와 그런 아야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녀의 어머니에게 박수를 보내며, 오늘도 난 그들 덕분에 힘을 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타더스트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얼간이라고 부르더니 이번에는 빼먹었네요. 천치라는 낱말도.-
-그래요. 아니, 당신은 바보 멍청이보다 더 심해요. 도대체 왜 이렇게 저를 오래 기다리게 했어요? 저는 당신한테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요.-
-미안합니다. 두 번 다시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동화'는 '동화'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어떤 내용이든, 등장인물이 누구이든, 동화는 동화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것은 어쩌면 동화는 우리들이 구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순수한 사랑, 아름다운 마음, 편안한 공기 같은 분위기.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동화를 읽은지도 오래 되었다. 자신의 일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치이고, 내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 지금.나는 <스타더스트>를 만났다. 

 여기 '트리스트란 쏜'이라는 한 젊은이가 있다. 살고 있는 마을에서 점원 일을 하고, 때로는 어리석다는 말도 듣는 그이지만 마음씨 하나만은 고운 바른 청년이다. 그런 그가 사랑 하나로 길을 떠난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빅토리아 포리스터의 키스를 얻기 위해, 별을 찾으러..사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마을 바깥에 있는 성벽 너머의 다른 존재가 그의 어머니이고, 그는 그런 어머니의 피를 반은 물려받은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 트리스트란의 능력은 마을 안에 있을 때는 발휘되지 못했지만, 낯선 땅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빛을 발한다. 그리고 드디어 별 아가씨를 만난다.  

 그리고 여기 하늘에서 떨어진 별 아가씨가 있다. 떨어진 순간 발을 다쳤다. 성격은 드세고 앙칼지고, 사납다. 트리스트란이 그녀를 찾으러 왔을 때, 온갖 험한 말로 그를 바보 취급한다. 심지어는 그를 속이고 도망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부터 얼음같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가는 것을 느낀다. 

 이야기는 흥미있는 요소를 전부 나열한다. 마법, 유니콘, 변신, 그리고 마녀까지. 등장인물들도 여러 명이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모든 요소가 둥근 원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의아함은 곧 '아, 그렇군'하는 납득으로 바뀐다. 사용하는 언어 또한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나라면 단순한 소개로 끝날 묘사가 이 작가의 손안에서는 굉장히 반짝반짝 빛을 낸다.
-사랑스럽지만 냉담한 고양이, 고상하지만 겁이 많은 개...-
고작 한 번 등장할까 말까한 동물에게까지 여러가지 수식어를 붙일 정도니, 나머지는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이런 현란한 수식어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가끔 머리가 혼란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그 때문일까. <스타더스트> 안에서 나 또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고, 중력을 느낄 수 없는 공간에 혼자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작가가 이런 느낌들을 노린 것이라면 성공했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스타더스트>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천문학적으로는 소성단, 우주진이라는 의미이지만, 구어로는 -황홀, 청순하고 로맨틱하며 신비한 감정, 넋을 잃게 하는 매력-이라는 뜻이란다. 뜻을 알고 나니 왠지 더 책이 빛나는 듯 하다.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하는데, 영화도 이런 반짝반짝하는 느낌을 갖게 해줄지 기대된다. 

 달, 별, 유니콘, 아름다운 밤하늘, 마법, 변신. 그리고 사랑.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끌리는 단어들이다. 모습은 성인이지만 내 안에는 아직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부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믿고 싶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스타더스트>는 <어린왕자>이후로 오랜만에 느끼게 해 주었다. 혹시 지금 순수하고 흥분되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보고 싶다면 <스타더스트> 안에 풍덩 빠져볼 것을 권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메레르 1 - 왕의 용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친구도 되어줘!!- 테메레르의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거의 떼를 쓰듯 내가 웅얼거린 말이다. 판타지 소설에 이렇게까지 몰입할 줄은 몰랐다. 사실 나는 판타지에 그다지 흥미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읽다 그 권수가 점점 늘어가는 것에 질려 포기했고, 그 유명하다던 <반지의 제왕>은 책은 일찌감치 접고, 영화로만 감상했다. 다행히 <반지의 제왕>은 영화로는 무척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해리포터는 극장에서 한 번 보고 코웃음만 치다 나온 기억이 난다.(같이 보러 간 누구에게 미안해서 혼났다;;)  사람들의 해리포터에 대한 평판도 자자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를 실망시킨 해리포터 때문에 나는 판타지물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테메레르-라는 단어가 부쩍 내 귀에 자주 들어왔다. 결국 -에이,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집어든 책이 바로 이 <테메레르>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용을 좋아했던 것 같다. 왠지 -용-이라고 불리는 그 어감도 좋았고, 신성시되는 품격있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으며, 책이나 영상물 안에서나마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당당한 위상을 동경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용과 나를 친하게 느껴보지는 못했다. 항상 멀리 있는, 아득한 느낌.. 그런 느낌을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털어버리고 싶었나 보다. <테메레르>를 읽으면서 나는 로렌스 대령이 되고 싶었다. 

 <테메레르>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국의 로렌스 대령과 테메레르 라는 용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원래 해군 대령이었던 로렌스는 프랑스 군함과의 싸움에서 테메레르의 알을 전리품으로 획득하게 되고, 테메레르는 로렌스를 자신의 비행사로 선택한다. 처음에는 해군이었던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앞일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찬 그였으나, 용으로 구성된 비행중대에 합류하여 함께 훈련을 받으면서 어느덧 그들만의 특별한 우정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투의 시간이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침대를 데굴데굴 굴렀다. 읽기 아까운 책이거나, 너무 즐거운 책을 볼 때 감정을 이기지 못해 나오는 내 오랜 습관이다. <테메레르>를 읽으면서 나는 정말 웃기도 하고, 마음을 졸이기도 하면서 몇 번이나 데굴데굴 굴렀는지 모른다. 그 중 읽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온 부분이 있다. 로렌스는 테메레르를 자주 목욕시키는데, 훈련을 받으러 간 공군기지에서는 용들은 목욕을 전혀 안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테메레르가 로렌스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그 말을 듣고 테메레르가 어두운 표정으로 로렌스에게 말했다. "난 그러고 싶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씻겨주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

용이 "어두운"표정으로 말했단다. 용이.. 내가 상상하는 용의 표정은 단 하나였다. 근엄한 모습, 가끔씩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그런 용이 "어두운"표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너무 귀엽고, 친근해서 마음이 즐거웠다.

인물이나 테메레르에 관한 묘사뿐만 아니라 전투장면이라든가, 배경설명 모두 금방 영상으로 떠올릴 수 있을만큼 선명했다. 쉽게 상상이 되었고, 그로 인해 책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작가는 어느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앞부분에 수록한 인물설명과 등장하는 각기 다른 종류의 용들에 대한 설명, 19세기 초의 유럽지도까지..하나하나가 다 나를 감동시켰다. 

 하지만 역시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로렌스와 테메레르, 그들만의 특별한 우정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둘 중 하나가 먼저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처음 알에서 깨어나 자신의 비행사로 로렌스를 지목한 뒤부터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끔찍하다. 아무 조건 없는 감정, 서로에게 서로가 가장 최고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받을 수 있는 존재. 그들의 우정이 너무 부러워서, 서로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결말이 다가옴에 따라 조급해지고, 눈물이 났다. 지금 우리의 인생에서는 어쩌면 느껴 볼 수 없을 최고의 감정을 그들만은 지켜나가길 바랐다. 

 앞으로 어떤 판타지 소설을 읽든간에, 나에게서 <테메레르>의 순위를 탈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를 이만큼 빠져들게 했으니, 판타지 소설 중에서는 단연 최고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책이 6권 시리즈의 처음이라 하니, 앞으로 나올 <테메레르>시리즈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집어들기 전에 망설였던 기분을 단번에 날려준, 멋진 작품이다. -테메레르, 내 친구도 되어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이온하트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온다리쿠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다. 작년 <밤의 피크닉>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으면서 다른 작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몽롱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는  국내에 나오는 책은 물론, 원서까지 사 모으고 있는 마당이니 이 정도면 팬이라고 말해도 되지 싶다. 그런 그녀의 신간 <라이온하트>가 출간되었다. 前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연애소설이란다. 선전문구 또한 -그녀가 그리면 로맨스도 미스터리가 된다!!-라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까!! 그녀가 그리는 미스터리한 로맨스는 어떤 맛일지 온다 여사의 책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읽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나는 환생을 비롯해 사람들과 맺어진 인연의 끈을 믿는다.(내 종교와 관계없이)  유독 데자뷰 현상을 많이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 속에서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도 만난다. 무수한 인파 속에서, 아름다운 무지개가 걸린 언덕에서, 한 번은 어느 허름한 여관에서, 또는 대학교수와 기자로.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짧기만 하고, 짧아서 더욱 애틋하고 애잔하다.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이들의 사랑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적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한 번 만나 찰나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평생을 찾아 헤맨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다림, 사랑.. 어쩌면 그들의 사랑에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돌고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앞서 나온 온다 여사의 작품 속 분위기를 상상한다면 실망하는 분들이 적잖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던 온다 여사의 몽롱한 분위기라든지, 닿을 듯 말듯, 건드릴 듯 건드리지 않는 묘사해내던 인간의 심리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서로를 찾아헤매는 연인들만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재미있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온다 리쿠라는 점, 시공을 초월한 사랑은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에게마저도 매력적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책 표지를 벗겨내면 은은한 바이올렛 빛깔이 빛을 발한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빛깔이 이리 고우면서 이야기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지.. 꿈을 꿀 나이는 지났음에도 나는 다시 한 번 영원한 사랑을 꿈 꿔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중학교 때부터 봐 왔던 CSI는 한창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흥미(?)로운 소재였다. 죽은 시체를 검시하고, 조사하고,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누구나 한 번씩 겪게 되는 죽음이 주제였고, 죽음 뒤에는 항상 사연이 있었다. 그 죽음의 원인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학창시절에는 다른 친구들과 '우리 나중에 꼭 미국가서 꼭 CSI나 FBI에 들어가자!!'라는 어처구니 없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나는 아직도 CSI의 스핀오프 시리즈의 각 특징을 비교하는 쏠쏠한 재미를 만끽하는 팬이다.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중세 케임브리지에서 네 명의 아이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첫번째 희생자 아이에게서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그 곳에 살던 유대인들에게 살인혐의가 씌워지고 광기에 싸인 폭도들에게 몰살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주인공 아델리아-배수비아 아델리아 라헬 오르테즈 아길라-가 유대인인 조정자 시몬과 아라비아인 만수르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다. 그녀는 이탈리아 살레르노에서 온 죽은 자들을 위한 의사, 주로 검시를 하는 의사였다. 희생된 아이들의 시체를 검시하여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살인자를 찾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살인이 뒤따르고, 사건은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그대들의 목소리로 말할 수 없는 것을 그대들의 살과 뼈가 말하도록 허락해 주기를..-
 
*중세를 알고 보면..
이 책의 배경은 중세, 십자군전쟁이 막 끝난 직후이다. 십자군전쟁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전후 8회에 걸쳐 감행한 대원정이었다. 중세는 신 중심주의, 내세주의, 금욕주의를 내세웠던만큼 종교에 있어서도 엄격했으며, 왕보다 교황이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으며, 오직 하느님의 이름 안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교도들은 반드시 처단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 종교는 타락하여, 심지어 수도원에서는 희생된 어린아이를 성자로 추대해 돈벌이를 하고 있을 정도다. 책 속에 나타난 교회의 세속화와 뻔뻔스러움이란..그런 상황에 나타난 아델리아와 시몬과 만수르는 사건의 해결을 알림과 동시에 다른 문화와의 융화의 시작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다.
 
* 매력남, 친절남을 조심하라??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범죄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다.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공격한다는 것은 그보다 강한 존재에 맞설 수 없는 비겁함과 나약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예전 뉴스에도 등장했던, 성추행범들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친절함을 가장하여 가장 무서운 지옥을 보여주는 인간..인간의 어느 곳에 그런 추악한 마음이 숨어있는 것인지. .과연 그것이 본성인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인지..때때로, 아니 절대적으로 인간은 그 어떤 생물보다 잔인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사람을 먼저 의심부터 해야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 안타깝다.
 
어떤 책이든지 읽고 나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특히 이 책은 매우 심했다. 살인과 종교, 인간의 잔인함이 마구 뒤엉켜서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고,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재미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고, 스토리라인 또한 빈틈없이 탄탄해서 555페이지나 되는 양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로 만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주인공 아델리아의 로맨스적 요소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버무려져 있고,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에 대한 응징 또한 섬뜩하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만족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뗄 수 없는 멋진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