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허들 - 1리터의 눈물 어머니의 수기
키토 시오카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에게 있어 어머니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가 라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이러한 말을 소재로 책도 나왔던 것 같다). <1리터의 눈물, 생명의 허들>을 읽으면서 내내 이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시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아야는 병을 이기려고 노력할 수 있었던 거구나"

 -病気はどうして私を選んだの(병은 어째서 나를 선택한 걸까)-
-転んだっていいじゃないか。また起き上がればいいんだから(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1리터의 눈물 中)

내가 키토 아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 딱 이맘 때였다. 원래 일본드라마를 즐겨보는 나는,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슬픈 내용은 되도록 피한다. 그래서 <1리터의 눈물>의 제목을 보면서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루 동안에 11편의 드라마를 모두 봐 버렸고, 결국 한 달이 넘게 후유증으로 꽤 고생을 해야 했다. 마음을 다스리기까지 힘은 많이 들었지만 나는 <1리터의 눈물>을 통해 -키토 아야-를 알게 된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로 먼저 알게 되었지만 책으로도 나온 <1리터의 눈물>은 키토 아야가 척수소뇌변성증(운동신경을 관장하는 척수와 소뇌에 이상이 생겨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에 걸려서도 손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쓴 일기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 아야의 곁에서 많은 힘을 주며 같이 병마와 싸운 어머니의 수기가 바로 이 <생명의 허들>이다. <생명의 허들>은 앞서 나온 <1리터의 눈물>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아야의 생활과, 아야가 병과 어떻게 싸워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오늘이라는 날도 내일이라는 날도 시간으로 새기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새겨나가자.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상상을 해 봐.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많아-(생명의 허들 中)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 아야의 어머니는 아야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단지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아야에게 있어 어머니는 삶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을 밝게 비쳐준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야가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하며 좌절해 있을 때도, 일기를 써서 사회 속으로 들어가라고 권유한 것도 어머니였고, 아야의 약한 마음을 다독이며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은 것도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아야는 게으름을 피우고 마냥 울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병과 싸우려고 노력했고, 그녀가 쓴 일기는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마저도 삶의 희망을 일깨워주었다. 

 이 수기에서는 또한 일반 사람들이 병든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부분도 엿볼 수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무척 화가 나게 만든 부분이었다. 아야의 병은 몸이 부자유스러운 것 뿐이지 뇌의 활동은 정상인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아야는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총명한 아이였다. 그런 아야를 어떤 간병인들은 바보 취급을 하고, 심지어 학대에 가까운 행동도 거리낌없이 행한다.  누워만 있는 아야의 몸을 잘 닦아주지 않는 사람, 목의 연동기능이 잘 움직이지 않아 천천히, 오래 밥을 먹는 아야에게 대체 언제까지 밥을 먹는 거냐며 호통을 치는 사람..심지어 어떤 간호사는 마지막이 다가오기 6개월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아야의 병실에 들러 식사량이 얼마냐고 무신경하게 묻기도 했다니..책을 읽는 내 마음도 너무 아팠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보는 아야의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하니, 분노로 눈물이 났다. 동시에 내가 그 동안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봐 왔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적이 있었나, 아니, 따뜻한 눈빛 한 번 보낸 적이 있었나. 부끄럽다. 

 다행인 것은 아야의 곁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지켜준 간병인, 인기가수이면서도 소탈한 모습으로 찾아와 아야에게 멋진 만남의 기회를 선사해준 야마카와 유타카, 주치의 선생님인 야마모토 히로코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했던 가족.어머니. 고통이 많았지만 짧은 생 속에서 충만한 사랑을 느꼈다는 그 사실에 나도 또한 위로받았다. 

 <1리터의 눈물> <생명의 허들> 이 책들은 지금 특히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나 또한 힘들 때마다 <1리터의 눈물>을 꺼내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있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데 두려운 게 무엇이고, 해내지 못할 일이 무엇일까.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열망한 아야를 생각하고, 함께 고통받은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조그만 일에도 쉽게 지치는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나도 아야처럼 온 힘을 다해 살아내야지"하는 의무감을 느낀다. 사소한 것, 평범한 것, 그것이 바로 다름아닌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야의 마지막을 어머니는 -시집보낸다-고 표현했다. 먼 나라, 전화도 편지도 할 수 없는 먼 나라로 아야를 시집 보내는 것이라고..죽음은 우리 삶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예기치 못하게 다가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마지막까지 시신을 기증하며 사회에 보탬이 되기를 원했던 아야. 그리고 그런 아야를 마지막까지 지탱한 어머니.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삶을 누린 아야와 그런 아야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녀의 어머니에게 박수를 보내며, 오늘도 난 그들 덕분에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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