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녀시절을 빛나게 해주었던 꿈결같은 이야기]
출간되면 사서 모으는 고전들이 있다. [키다리 아저씨], [빨간머리 앤] 그리고 [작은 아씨들]. 이 세 작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력이 있어서 각각 다른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면 그저 홀리듯 구입해 진열하는 희열을 맛보고 싶어진다. 게다가 이번 [작은 아씨들] 은 186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에 무려 금장이다! 이러니 어찌 소유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랴! 나도 좀 멋지게 무소유의 삶을 살아보고 싶지만, 책에 있어서만큼은 그 무소유가 실천이 안되니 큰일이라면 큰일이고 별일이 아니라면 별일이 아닌 것이고. 그러나 같이 사는 옆지기가 우리집이 무슨 서점이냐며 참다참다 한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점점 큰일이 되어갈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주 어렸을 때 읽고 이번에 완독했더니 네 자매들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 네 자매들이 엄청 큰 언니들로 비춰졌는데, 알고보니 이 언니들 나이가 그리 많지도 않다. 큰언니인 메그가 겨우 열 여섯, 말괄량이 조가 열 다섯, 아버지에게 '평온한 귀염둥이'라 불리는 베스는 열 셋이다. 와! 열 여섯이면 자기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만도 벅찰 나이인데 어머니가 안 계실 때는 맏이로서 역할에 충실하고 동생들을 알뜰살뜰 보살피다니, 아무리 시대 차이가 있다고 해도 나의 그 시절을 생각하면 대단하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는 어떤가! 열 다섯이라는 나이에 자신만의 글을 써서 신문에 투고까지 하는 당차고 대범하며 이미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내는 어엿한 여성이다. 수줍음은 많지만 가족들과 아끼는 물건들에 애정이 깊고 음악을 사랑하는 베스와,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어쩌면 그 나이에 맞게 잘 생활하고 있는 에이미의 모습은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들 자매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마치 부인.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 지에 따라 등장인물을 보는 눈도 달라지기 마련이라, 어린 시절에는 그저 '엄마'로 여겨졌던 마치 부인의 아내로서의 모습과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의무나 다소 고리타분한 내용을 딸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남편을 멀리 전장에 내보내고 의연하고 굳건한 모습으로 네 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씩씩하게 생활해나가는 모습은 감탄스럽기만 하다. 잔소리보다는 딸들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모습이나, 에이미가 조의 원고를 태워버리는 아주 심한 짓을 저질렀을 때조차 화를 내기보다 토닥임과 조언으로 딸들을 건사해나가는 모습은 자애로운 어머니, 바로 그 자체다.
앞부분의 주요 내용들은 읽으면서 얼핏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뒷부분 내용은 새로웠다. 내 기억에 옆집 소년 로리는 조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랑 결혼을 하고, 조 또한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교수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읽어가면서 아주 조금 충격에 빠졌다. 헉, 이런 내용이었어?! 하는 기분. 마지막 부분에서 베스가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것도 충격. 왜 내 기억 속에는 네 자매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로 남아있는 것인가. 소설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쓰여졌는데 2020년에 베스를 보며 눈물짓는 나라니.
표지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으나 완독을 한 지금 다시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래서 예전 작품들을 찾아읽게 되는 것이다. 내 소녀시절을 빛나게 해주었던 꿈결같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