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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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작품을 각색한 작품 중 최고라는 평가에, 전쟁과 로맨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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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정윤희 옮김 / 다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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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에이모 토울스의 작품 [우아한 연인]을 통해서였다. 주인공 케이티가 읽었던 그 작품. [우아한 연인] 에 완전 빠져들어서 마치 케이티에 빙의된 양 나도 [월든]을 읽겠다 날뛰었지만, 결국 다른 책들에 치여 미루고 미루다 여기까지 왔다. 법정 스님도 사랑해 마지 않았다는 그 작품, 평생에 한 번은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 평가받는 [월든]을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리투어들과 함께 쪼개 읽었다. 사실 1일차를 읽고나서는 리투어들과 같이 읽었으니 망정이지 혼자 읽었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상하게 읽을수록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것이 참 신기한 느낌.

 

[월든]은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손수 지은 오두막에서 최소한의 물품만으로 자급자족하며 생활하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담고 있다.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직접 농사에 뛰어들고,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에서 벗어나 목가적인 생활양식을 지향한다. 겉치레보다는 사람의 진지한 눈빛과 성실한 삶의 태도를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며 덜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저자. 2년 동안 직접 경작을 하면서 깨달은 바는 필요한 양만 경작하고, 수확한 농작물을 쓸데 없는 사치품과 교환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조금의 땅만 있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올바른 독서, 즉 참된 정신으로 참다운 책을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자 현대인들이 높이 평가하는 어떤 운동보다도 독자 입장에서는 녹록지 않은 운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운동선수가 참고 이겨내야 하는 고된 훈련이 필요하고, 올바른 독서라는 목적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마음가짐을 평생 유지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그 책이 처음 쓰였을 때처럼 조심스럽고 정성을 들여서 읽어나가야 한다.

p141

 

별다른 겉치장이 되어 있지 않은 오두막을 삶의 결정체라 여긴 그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고 삶의 본질적인 사실에 직접 부딪혀가면서 인생의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숲으로 들어갔다'고 밝힌다. 인생에서 사소한 두려움과 소소한 쾌락은 현실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진실, 시간이 흘러도 절대 늙지 않는 그 무엇이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은 그의 독서 취향에도 반영되는데, 짐작하기 어렵지 않듯, 그는 고전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고귀한 사상을 기록한 것이라고 찬양한다. 또한 마을 전체가 교육의 온상지가 되어 성인이 되어도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평생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면에서 삶의 존재를 찾아야 하고,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타인과 교제한다는 행위 자체가 천박하기 짝이 없는 경우도 많다. 너무 자주 만나다 보면 서로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얻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p187

저자가 월든 호숫가에서 보낸 시간은 2년 2개월 정도. 한 해의 계절을 온전히 느끼면서 겨울 동안의 동물들의 모습, 식물들의 변화, 느긋하게 봄을 맞이하는 숲의 모습까지 묘사하는 후반부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읽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처음 '경제' 파트에서는 '엥?'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읽을수록 전해져오는 청량함. 문득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늘 달리고 있는데 과연 이 끝은 어디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도 이 책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19세기에 쓰여져 문화적 차이를 엿볼 수 있었지만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어 하나의 문장을 여러 번 읽기도했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삶'. 법정스님이 말씀하시던 무소유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이렇게 되고보니 법정스님의 글도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을 100 퍼센트 다 이해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했는지는 분명히 알 것 같은 [월든]. 언젠가 조용한 호숫가에 앉아 다시 한 번 이 책을 펼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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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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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양한 매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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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웃는 남자 (186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빅토르 위고 지음, 백연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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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0년 1월, 포틀랜드의 한 해번. 한 척의 배가 출항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리 날씨가 좋은 날이 아니었지만 이 범선에 타는 사람들은 한시라도 빨리 이 땅을 떠나야 했다.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무리 속에서 바쁘게 오가는 작은 그림자. 아직 어린 그 아이도 이 무리의 일원이었지만 누구도 말을 건네지 않고 일만 시킬 뿐이다. 이윽고 출항준비가 완료된 무리의 사람들은 서둘러 배에 오르지만 아이는 배에 오르지 못한다. 버림받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버려졌는지 영문도 알 수 었었다. 바람이 불어왔고 추위가 품속을 파고들었다. 언 땅위를 기약없이 걷고 있는 아이 앞에 이미 숨을 거둔 여인의 품 속에 안겨있는 작은 아기가 나타난다. 그 아이를 안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 아이가 당도한 곳은 우르수스의 오두막. 오직 호모라는 늑대 한 마리만 가까이 하는 범상치 않은 이 인물 앞에 두 아이가 나타난다. 입은 걸어도 음식과 잘 곳을 마련해주는 그의 앞에, 마침내 버림받았던 남자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귀까지 찢어진 입, 드러난 잇몸과 으깨어진 코, 웃지 않아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기괴한 얼굴. 웃는 남자였다.

 

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작품이자 뮤지컬로도 잘 알려져 있는 [웃는 남자]를 초판본 표지로 드디어 만났다!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를 제외한 페이지수는 무려 1081 페이지. [레미제라블]에서 이미 맛보았던 빅토르 위고의 장광설을 다시 체험하고, 웃는 남자인 그윈플렌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작품을 온전히 읽어내는 것도 여간 힘든 과정이 아니었지만, 더 힘든 일은 이 작품에 대해 리뷰를 남긴다는 것. 책을 읽은 지는 정말 어마무시 한참이나 되었는데 그 동안 허리가 우지끈!하여 장장 2주의 시간을 거의 누워보냈더니 더욱더 리뷰 쓰기가 망설여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고민하면서 보낸 시간들 동안 깨달은 것은, 내가 어떻게 리뷰를 쓰든 이 작품에 버금갈 글을 쓰지는 못한다는 것. 그러니 그냥 편안하게 진행해보겠다.

 

콤프라치코스의 잔인한 악행이 성행하는 시대였다. '어린 아이들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합성어이지만, 어린아이 장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다. 단순히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위대한 세기라 불리던 17세기에 사람들의 장난감이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한 아이들은 괴물이 되어갔다. 난쟁이, 꼽추, 미숙아, 짐승처럼 보이는 얼굴. 보기 흉하게 변형시켜 인간을 훼손하는 행위, 이 과정을 통해 신분조차 지워졌다. 하지만 이런 콤프라치코스는 제임스 2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위기에 봉착했고, 윌리엄과 메리의 통치 초기 공포된 법령 중 하나가 이들에게 철퇴를 휘두른다. 결국 벌을 피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고 도망가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윈플렌의 기괴한 얼굴을 통해, 그가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얼굴이 변형된 아이였음을, 그리고 벌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던 그들에게 버림받았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더 행운. 인간 혐오자인 곡예사 우르수스와 그의 하나뿐인 동행 호모를 만나 그위플렌과 아기인 데아는 가족이 되어 곡예를 부리며 함께 생활한다. 앞 못보는 데아와 얼굴이 망가진 그윈플렌. 그 둘은 서로를 깊이 사랑한다.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그윈플렌과 데아 앞에, 사랑의 방해물 여공작 조시안이 나타난다. 앤 여왕의 의붓 여동생이자 그윈플렌의 얼굴이 망가졌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원한다는 비뚤어진 욕망의 소유자. 이 거침없는 유혹의 손길 앞에서 그윈플렌은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그를 강타한 것은 여인의 유혹이 아니라 그 오랜 세월 동안 분명 궁금했었을 자신의 '신분'이었다. 광대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고귀한 존재가 되었고, 그 충격과 환희에, 순간 자신의 자리를 잊어버린다. 그의 평생의 사랑이라 맹세한 데아마저도. 그러나 결국 순결한 빛인 데아가 찬란한 미래에 대한 허황된 꿈에 취해버린 그윈플렌을 깨운다.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그윈플렌이 상원의원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아닐까. 그윈플렌이 아무리 목놓아 외쳐도 그들은 그윈플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오직 그의 흉칙한 얼굴만 보며 박장대소한다. 그윈플렌의 절규가 그들의 귀에는 가닿지 않는 것이다. 부유하고 교만한 귀족들의 압박과 잔인함에 짓눌려 겉으로는 억지로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는 빈민들, 많고 많은 수많은 인간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그윈플렌과 그를 무시하는 귀족들을 통해 어두운 사회를 엿볼 수 있다. 뮤지컬이었다면 클라이맥스라 불릴만한 부분.

 

자리를 떠난 그윈플렌은 우르수스와 데아를 찾아나선다. 그들은 이미 이 땅을 떠나기 위해 배에 올라 있었고, 데아는 그윈플렌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생명이 다한 상태였다. 기억을 하기 이전부터 고통받았으나 데아로 인해 삶의 행복을 알게 된 그윈플렌인만큼 부디 마지막만큼은 그가 진정으로 '웃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었을까. 빛을 잃어버린 그가 이 어두운 세상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달리 없을 터이므로.

 

다소 과장된 대사들과 장황한 문장들에 소설이 아닌 뮤지컬을 보는 듯한 기분이 강했다. 뮤지컬로 인한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이런저런 정치적인 상황들에 대한 비유와 소개되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한 복선을 알아챘다면 한층 깊게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지만, 아직 나의 좁은 식견으로는 전부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가인 빅토르 위고조차 '나는 이 이상의 위대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라고 말했다는데 내가 어찌!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지만 꼭 한 번 다시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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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아리랑 1
정찬주 지음 / 다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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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지만 피하면 안될 것 같아요. 꼭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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