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186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빅토르 위고 지음, 백연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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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0년 1월, 포틀랜드의 한 해번. 한 척의 배가 출항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리 날씨가 좋은 날이 아니었지만 이 범선에 타는 사람들은 한시라도 빨리 이 땅을 떠나야 했다.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무리 속에서 바쁘게 오가는 작은 그림자. 아직 어린 그 아이도 이 무리의 일원이었지만 누구도 말을 건네지 않고 일만 시킬 뿐이다. 이윽고 출항준비가 완료된 무리의 사람들은 서둘러 배에 오르지만 아이는 배에 오르지 못한다. 버림받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버려졌는지 영문도 알 수 었었다. 바람이 불어왔고 추위가 품속을 파고들었다. 언 땅위를 기약없이 걷고 있는 아이 앞에 이미 숨을 거둔 여인의 품 속에 안겨있는 작은 아기가 나타난다. 그 아이를 안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 아이가 당도한 곳은 우르수스의 오두막. 오직 호모라는 늑대 한 마리만 가까이 하는 범상치 않은 이 인물 앞에 두 아이가 나타난다. 입은 걸어도 음식과 잘 곳을 마련해주는 그의 앞에, 마침내 버림받았던 남자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귀까지 찢어진 입, 드러난 잇몸과 으깨어진 코, 웃지 않아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기괴한 얼굴. 웃는 남자였다.

 

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작품이자 뮤지컬로도 잘 알려져 있는 [웃는 남자]를 초판본 표지로 드디어 만났다!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를 제외한 페이지수는 무려 1081 페이지. [레미제라블]에서 이미 맛보았던 빅토르 위고의 장광설을 다시 체험하고, 웃는 남자인 그윈플렌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작품을 온전히 읽어내는 것도 여간 힘든 과정이 아니었지만, 더 힘든 일은 이 작품에 대해 리뷰를 남긴다는 것. 책을 읽은 지는 정말 어마무시 한참이나 되었는데 그 동안 허리가 우지끈!하여 장장 2주의 시간을 거의 누워보냈더니 더욱더 리뷰 쓰기가 망설여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고민하면서 보낸 시간들 동안 깨달은 것은, 내가 어떻게 리뷰를 쓰든 이 작품에 버금갈 글을 쓰지는 못한다는 것. 그러니 그냥 편안하게 진행해보겠다.

 

콤프라치코스의 잔인한 악행이 성행하는 시대였다. '어린 아이들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합성어이지만, 어린아이 장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다. 단순히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위대한 세기라 불리던 17세기에 사람들의 장난감이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한 아이들은 괴물이 되어갔다. 난쟁이, 꼽추, 미숙아, 짐승처럼 보이는 얼굴. 보기 흉하게 변형시켜 인간을 훼손하는 행위, 이 과정을 통해 신분조차 지워졌다. 하지만 이런 콤프라치코스는 제임스 2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위기에 봉착했고, 윌리엄과 메리의 통치 초기 공포된 법령 중 하나가 이들에게 철퇴를 휘두른다. 결국 벌을 피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고 도망가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윈플렌의 기괴한 얼굴을 통해, 그가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얼굴이 변형된 아이였음을, 그리고 벌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던 그들에게 버림받았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더 행운. 인간 혐오자인 곡예사 우르수스와 그의 하나뿐인 동행 호모를 만나 그위플렌과 아기인 데아는 가족이 되어 곡예를 부리며 함께 생활한다. 앞 못보는 데아와 얼굴이 망가진 그윈플렌. 그 둘은 서로를 깊이 사랑한다.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그윈플렌과 데아 앞에, 사랑의 방해물 여공작 조시안이 나타난다. 앤 여왕의 의붓 여동생이자 그윈플렌의 얼굴이 망가졌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원한다는 비뚤어진 욕망의 소유자. 이 거침없는 유혹의 손길 앞에서 그윈플렌은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그를 강타한 것은 여인의 유혹이 아니라 그 오랜 세월 동안 분명 궁금했었을 자신의 '신분'이었다. 광대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고귀한 존재가 되었고, 그 충격과 환희에, 순간 자신의 자리를 잊어버린다. 그의 평생의 사랑이라 맹세한 데아마저도. 그러나 결국 순결한 빛인 데아가 찬란한 미래에 대한 허황된 꿈에 취해버린 그윈플렌을 깨운다.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그윈플렌이 상원의원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아닐까. 그윈플렌이 아무리 목놓아 외쳐도 그들은 그윈플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오직 그의 흉칙한 얼굴만 보며 박장대소한다. 그윈플렌의 절규가 그들의 귀에는 가닿지 않는 것이다. 부유하고 교만한 귀족들의 압박과 잔인함에 짓눌려 겉으로는 억지로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는 빈민들, 많고 많은 수많은 인간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그윈플렌과 그를 무시하는 귀족들을 통해 어두운 사회를 엿볼 수 있다. 뮤지컬이었다면 클라이맥스라 불릴만한 부분.

 

자리를 떠난 그윈플렌은 우르수스와 데아를 찾아나선다. 그들은 이미 이 땅을 떠나기 위해 배에 올라 있었고, 데아는 그윈플렌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생명이 다한 상태였다. 기억을 하기 이전부터 고통받았으나 데아로 인해 삶의 행복을 알게 된 그윈플렌인만큼 부디 마지막만큼은 그가 진정으로 '웃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었을까. 빛을 잃어버린 그가 이 어두운 세상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달리 없을 터이므로.

 

다소 과장된 대사들과 장황한 문장들에 소설이 아닌 뮤지컬을 보는 듯한 기분이 강했다. 뮤지컬로 인한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이런저런 정치적인 상황들에 대한 비유와 소개되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한 복선을 알아챘다면 한층 깊게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지만, 아직 나의 좁은 식견으로는 전부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가인 빅토르 위고조차 '나는 이 이상의 위대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라고 말했다는데 내가 어찌!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지만 꼭 한 번 다시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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