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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망다랭 2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송이 옮김 / 현암사 / 2020년 8월
평점 :
일적인 문제로 미국으로 향한 안. 그 곳에서 그녀는 루이스 브로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와의 헤어짐이 가슴 아플 정도로 자신의 모든 열정을 루이스에게 바치는 안의 모습은 전혀 예상 밖이라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프랑스의 뒤브레유 옆에서는 절제되고 정숙한 이미지로 그를 내조하는 이미지였던 그녀가, 루이스 앞에서는 그저 한 명의 여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진정한 자신을 알지는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헤어지면서도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프랑스에 돌아와서도 편지를 주고받던 그들이지만, 거듭되는 밀회와 시간의 흐름은 그들의 사랑도 퇴색시켜버린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루이스 앞에서 절망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안의 모습에서 냉철한 정신과 의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잘못된 선택의 문턱에 서 있기까지 했으나 다시 새로운 희망을 기약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1권에서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앙리는 결국 정치적 기로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으로 인해 혼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서게 된다. 그 와중에 앙리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점점 자신을 놓아가는 폴, 뒤브레유의 딸인 나딘과의 관계, 배우인 조제트와의 불같은 열정 등 개인사도 복잡하기 그지없어지며 자신의 정체성과 글쓰기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자신의 이념을 내세우며 앙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거나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 자신만의 방법으로 전후 상황을 뛰어넘으려는 사람들,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탁한 정치적 물결 속에서 방황하는 다양한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상을 둘러싼 진실한 삶의 문제를 묻는 작가의 날카로운 필력이 돋보인다.
[레 망다랭]은 원래 중국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특권층 지식인들을 폄하하여 칭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평화를 위하여 계급 없는 세상을 꿈꾸는 주인공들이 대의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서보는 남자들과 이 남자들 때문에 울고 미쳐가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평등한 유토피아를 꿈꾸고 나치의 만행과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분노하는 남자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자들을 하위계급으로 분류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자신만의 뛰어난 능력이 존재하는데도 앙리를 위해 10년이라는 세월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하고 오로지 사랑에 목매는 모습을 보이는 폴과, 한 개인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과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안이 프랑스에서도 그리고 미국의 루이스 앞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는 뒤브레유에게 가려져서, 미국에서는 루이스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만으로 자신을 놓아버리는 모습을 통해, 마치 내가 안이 되어버린 듯 자존심이 무너져내린다.
때문에 도발적이고 매사 부정적이며 폭력적으로까지 보이는 나딘의 매력이 돋보였다. 너무나 어렸을 때 유대인인 연인을 잃고 염세적으로 변해버린 나딘은 폴이나 안과는 뚜렷이 다른 인물이다.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으려고 하며, 심지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앙리마저 뻥! 차버릴 수 있는 통쾌한 면모를 지녔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폴을 한심해하고, 또다른 연인을 구하기 위해 위증까지 감행하는 앙리가, 연애에서만큼은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지켜보는 독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전후의 혼란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방황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올바른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껴안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들을 지켜보며 실존주의 작품이란 이런 것인가, 그 맛을 느껴보았다. 철학과 사상의 사유의 시간에 빠져들었던 시간. 명료하고 간결한 문체가 작품 이해를 한결 도왔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 작품을 계기로 2021년에는 보부아르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