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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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부산을 거쳐 대마도로 향하는 저렴한 패키지여행의 관광버스 짐칸에서 어린 아이의 토막 시체가 발견된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던 김석일과 그의 아이 김도현. 다정한 아버지는 커녕 처음부터 무언가 석연치 않았던 그는 사라지고 아이만 남았다. 사건을 맡은 형사 박상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자신의 과거사를 다시 떠올리게 되고, 장애를 안게 된 아들 은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더욱 사건에 몰입한다. 이 와중에 김석일의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치듯 집을 떠났던 그의 전처 정지원이 아이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고, 그녀에게 남모를 감정을 느끼는 박상하는 김석일과 정지원의 결혼생활에 무언가 비밀이 있었음을 짐작한다. 끔찍하고 잔혹한 사건 뒤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체 무엇이 아이를 학대하고 죽이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그들을 몰아갔던 것일까.

 

가정폭력과 관련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매스컴을 오르내린다. 때리고 가방에 가두는 것은 물론, 아무 거리낌 없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이야기들. 공포스러운 것은 그런 아동학대의 주범이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이다. 태어난 아이를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세상의 모든 풍파로부터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쳐도 모자랄 부모라는 사람들이, 사실은 아이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을 때리고 학대하는 무서운 현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지는 부모 모두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들을 내려놓고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 쏟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떠오를 생각 하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것. 대부부의 부모가 이런 생각들을 떠올려도 픽 웃으며 흘려보내는 것과 달리 누군가는 한 번 올라온 생각에 붙잡혀버린다. 급기야는 자신의 삶이 자유롭지 못하고 나의 삶이 짓눌리게 된 것은 이 아이 탓이라며 결국 모든 잘못을 아이에게 덮어씌워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향하는 폭력은 쉽다.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할 뿐더러, 엄마고 아빠니까 그래도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에 매달려 금방 그 죄를 용서해주니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도 아이 때문에 산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인생이 우선이지, 아이가 나보다 우선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거라고. 하지만 곰돌이 두 명을 돌보고 함께 뒹굴다보니 내가 얼마나 무책임한 생각을 했었는지 깨달았다. 부모라면 태어난 아이에게 책임이 있다. 아이가 태어난 뒤의 삶이 어떻든 그 아이가 커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게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삶을 뒷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부모로서의 숙명이다. 아니, 자신의 삶을 뒤로 미뤄둘 것도 없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 속에서 또다른 행복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한 가지. 박상하의 아내 채연희가 나약했기 때문에 아이를 향한 학대가 발생했다는 작가의 관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향한 폭력과 학대는 용납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어쩌면 모든 엄마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의 병은 혼자서는 고칠 수 없고, 그 벼랑 끝에 선 엄마들에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커다란 차이일테니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 전체,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의 문제다.

 

내 아이이든 아니든 온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그것이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다듬어진 육아서가 아니라 이런 작품들을 통해 나의 육아를 되돌아보게 된다. 때리지는 않아도 나는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는 것인가. 오늘의 말 한 마디, 시선 하나가 혹여나 내 아이를 아프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것들도 정신적 학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쉽지 않다.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 이번 작품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니 더 응원한다. 나 스스로를, 그리고 지금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고 있을 세상의 모든 부모들을.

 

**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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