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언제부터 거미를 무서워했어?
  ㅡ 오래됐어.
  ㅡ 근데 왜 내가 몰랐지?
  우리는 그곳에서 함께 성장했는데도 단이가 거미를 그리 두려워하는 줄을 나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ㅡ 모를 수밖에.
  ㅡ 응? 무슨 큰 비밀이었어?
  ㅡ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모르는 거야.
  거미를 밟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단이의 등을 어둠 속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나.를.사.랑.하.지.않.으.니.까, 라는 말이 낙숫물처럼 내 가슴속에 똑똑 떨어졌다. (42)

 

 


  ㅡ 저 잘 지내요. 어젯밤엔 너무 깊이 잠들어서 전화벨 소리를 못 들었어요. 아버진요?
  ㅡ 나도 잘 지낸다.
  나.도.잘.지.낸.다, 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내 마음 안에서 울려퍼졌다. 나도 잘 지낸다는 평범한 말이 이렇게 큰 울림을 가지고 다가올 줄이야. 소식이 끊긴 미루가 나.잘.지.내, 라고 전화해주었으면.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는 그가 나.잘.지.내.고.있.어, 라고 해주었으면.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아버지의 숨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나.잘.지.내.고.있.어, 라는 이 평범한 말을 단이에게서 들을 수 있다면. (274)


나.잘.지.내.고.있.어.요.
그.대.도.잘.지.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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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이야기
정효구 지음, 주명덕 사진 / 작가정신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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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자책 단말기를 받아 들고, 어떤 글을 읽어볼까 고심하며 책 목록을 보던 중, 이 제목이 눈에 띄었다.

책 소개를 볼 수는 없었다. 제목만 보고 구입해야 하는데, 평소에 알던 책과 작가가 아니라서 조금 망설였지만, '마당'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선택했다.

그렇게 전자책 단말기와 나의 인연을 '마당 이야기'로 열게 되었는데, 굉장히 성공적인 첫만남이었다!

역시, '마당'이라는 단어가 나를 향해 내뻗었던 유혹의 손길은, 거짓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집엔 손바닥만 한 시멘트 마당이 있다.

처음엔 '손바닥'만 한 게 불만이었는데, 살다보니,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흙마당이 아닌 게 더 불만스러워졌다.

마당이라면 모름지기 흙 냄새가 나야 하는데, 마당 아무 데나 파고 꽃이며 푸성귀를 가꿀 수 있어야 하는데, 비가 오면 진창에 드문드문 돌을 옮겨 놓으며 지나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가끔은 개구리 손님도 찾아오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 시멘트 마당은, 도무지 그런 재미라곤 없는 거다. 시멘트 마당의 아량은, 내가 수시로 자리 옮기며 가꾸는 화분 몇 개를 받아들이는 정도일뿐.

내가 너그러운 흙마당을 그리워하는 건, 청소년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의 '운동장'만 한 흙마당이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가슴 깊이 자리잡아서 일 거다.

 

한창 나의 감수성이 자라던 그 시절, 내게는 그런 마당이 있었다.

할머니는 마당 귀퉁이 아무 곳이나 파서 갖가지 푸성귀를 가꾸셨고, 아버지는 마당에 널찍한 평상을 만들어 여름철의 시원한 추억을 갖게 해주셨고, 어머니는 마당 하늘을 가로지른 빨래줄의 바지랑대를 눕혔다 세웠다 하며 빨래를 널고 걷으셨고, 강아지와 고양이는 마당 구석구석을 놀이터 삼아 뛰놀았고, 우리 형제들은…… 지금 도시 아이들은 뭔지도 모를, '흙냄새'를 맡으며 발에 흙을 묻히며 흙마당에 드러누워 별을 보며, 그렇게 자랐다. 내게 마당이란, 그런 유년의 추억들이 담긴 공간이다.

어떤 아름다운 '정원'을 본데도, 내 마음속 그 흙마당이 주는 아련함과 따뜻함이 깃든 추억을 이길 수 없다.

 

이 책은 내게 그런 흙마당의 추억을 다시금 불러일으켰고, 마당을 향한 간절함을 절절하게 했으며, 맨발로 흙을 밟아보고 싶어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게 만들었다. 아아, 흙마당이 없는 지금의 삶이 왜 이리 퍽퍽하게 느껴지는지.

 

  마당 없이 유년을 보내는 어린아이들에게, 마당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맘껏 뛰어놀 장소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야생의 놀이터인 마당을 되돌려주고 싶다. 마당과 같은 성실함과 튼실함을 배워가야 할 아이들에게, 드넓은 마당의 꿈을 선사하고 싶다.('작가의 말' 중)

 

이 책을 읽으면, '마당'이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마당'이 없는 지금 우리네 삶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혹은 모르고 사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 어린이용 책은 아니다.(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어린 시절 마당의 추억을 간직한, 지금도 틈만 나면 마당 넓은 시골집으로 이사하고 싶어 기웃기웃거리는, 아무튼, 흙마당이 그리워 못 견디겠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많은 걸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거다. 마당의 흙냄새가 그리운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_ 무심한 자는 무심하기 때문에 절대로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마당은 무심의 화신으로서 누구에게도 호객을 하는 일이 없다. 그런 마당의 영원과 같은 무심한 지대에 가까이 가려면 우리가 솔선수범하여 그를 속까지 닮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일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없다. 도저히 온전하게 누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지 않은가. 그러니 마당은 인간들에게 언제나 그릴 수는 없고, 오직 그리워할 수만 있는 대상인 것 같다. 마당이 부른 바 없는데도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며 찾아가고, 그가 위로한 바 없는데도 우리는 그에게 찾아가서 위로를 받고 돌아온다.

 

_ 밤의 마당에 비치는 달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심저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열게 한다. 밤 마당에 비친 달의 풍경은 단 한 번도 피하고 싶은 마음, 지루한 마음, 피로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저 우리들을 무장 해제시키며 이전보다 더욱 부드럽게, 신비롭게, 싱싱하게 할 뿐이다. 이런 정경을 마음속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스르르 녹으며, 열린다. 그런 마음과 정경 속엔 아무런 계산도, 초조도, 피로도, 긴장도 끼어들 틈이 없다.

 

_ 아파트나 도심의 빌딩에서는 비의 전신全身을 볼 수 없다. 그저 베란다나 창문을 통하여 출처도 없이 떨어지는 비의 옆구리나 허리께만 파편처럼 스치듯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_ 꽃밭에 꽃씨를 심어보는 일, 그 꽃들을 가꾸어보는 일, 그 꽃들에게 마음을 빼앗겨보는 일, 그런 밥이 되지 않는 허虛의 삶을 살아보는 일, 한마디로 말하여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라는 이른바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미적 사건이 우리의 삶에 자주 있어야겠다. 그래야 무겁고 지친 우리의 삶이 좀 가벼워지고 나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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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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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이다.

 

노시인과 서지우, 그리고 그 사이를 엮어주기도 뒤흔들어놓기도 하는 은교의 관계가.

밤에만 썼으니 밤에만 읽어주길 바란다는 작가의 당부가.

살풋 속살이 내비칠 듯한 흰 원피스의 소녀 그림이.

가슴을 뒤흔드는 작가의 문장문장이.

은교, 그 제목 자체가.

 

  눈이 내리고, 그리고 또 바람이 부는가. 소나무 숲그늘이 성에가 낀 창유리를 더듬고 있다.

 

  관능적이다.(13)

 

살면서 '관능적'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떠올려 보고 몇 번이나 입 밖에 내어봤던가?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었다. 『은교』가 처음으로 내게 '관능적'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박범신 작가의 블로그에서 '살인 당나귀'를 처음 만났던 그 관능적인 밤,이 떠오른다.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던가? 그 벅찬 느낌을 혼자 간직하기 어려워 지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가?

'살인 당나귀'는 매일 밤 내게 찾아오는 벅차고도 아름다운 문장들이었다.

그 연재의 느낌이 채 식기도 전에 '살인 당나귀'가 책으로 만들어져 찾아왔다. '은교'라는 가슴 떨리는 제목을 달고서.

 

  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사람, 은교에게 집어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 그런 게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나의 사랑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명사였다.(203)

 

그 고유명사, 은교의 이야기가, 다시 나의 밤을 노크했다.

나는, 부디 밤에만 읽어달라는 작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밤에도, 그리고 이어진 아침에도 은교를 읽었다.

은교를 읽는 아침에는, 어쩐지 그 전날 밤의 향기가 가시지 않고 떠도는 듯 했다.

밤,에만 은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은교를 읽는 시간이 내게는, 밤이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은교를 생각하면, 밤의 향기가 떠오른다.

 

모니터 앞에 앉아 '살인 당나귀'를 읽던 가슴 떨리던 그 밤의 향기, 노시인이 뜨거운 가슴을 식히기 위해 밖으로 나가 맡았던 그 밤의 향기, 내리치던 빗발 사이로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던, 그리하여 모든 걸 끝장내 버리자고 다짐하게 만들었던 그 밤의 향기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려고 뛰어본 적이 있는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자를 향해 뛰고 있는 사람은 다 아름답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하나의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그리운 그를 향해 뛰는 것이다.(206)

 

노시인, 서지우, 은교.

그들이 뛰는 길이, 단 한 갈래뿐이었던가? 왕복 차선이었던가, 혹은 일방통행이었던가?

노시인이 은교를 사랑한다, 서지우가 은교를 사랑한다, 은교가 노시인을 사랑한다, 은교가 서지우를 사랑한다, 노시인이 서지우를 사랑한다, 서지우가 노시인을 사랑한다…… 나는 이들이 누구를 향해 뛰었는지, 몇 갈래의 길을 뛰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들이 달리는 길은 미로 같았다.

 

은교,는

노시인의 사랑에 대한 고유명사이기도 하고, 노시인과 서지우의 애증의 기폭제이기도 했으며, 누구나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을 '나의 처녀'이기도 했다.

'은교'라는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다, 라는 것이, 『은교』에 대해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느낌이다.

 

  나는 진실로 청춘이었던 적이 없었으며, 내 정체성에 따른 뜻을 세운 적도 없었다. 그냥 허망하게 시간을 따라 흘러왔을 뿐이다. 내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나의 조국'

 

  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던가.(260)

 

『은교』를 덮은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밤이 되면 은교가 떠오른다.

그래, 은교는 밤에 읽어야 하는 책이다. 아니면 나처럼 은교를 읽는 모든 시간을 밤으로 느끼던가.

많은 이들의 밤에, 은교가, 살인 당나귀가, 찾아갔으면 좋겠다.

우리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관능적'이라는 단어를 이처럼 절절하고도 애틋하게 느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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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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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라는 이름은 어쩐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어서 그의 작품을 읽어볼 엄두도 못 냈었다.

먼길 외출 나갔다가 전자책 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지인에게 이 책을 빌려 집에 오는 길에 읽었다.

아아, 배터리가 다 된 전자책에 축복을!!

 

내가 탄 지하철이 금정 쯤 도착해서는 아아, 벌써 내려야 하는구나 슬퍼졌고, 수원에 도착해서는 이대로 모른 체하고 신창까지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일을 해야 해서 책을 펴볼 수 없기에. 어쨌든 정말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푹 빠져 이 책을 읽었고, 미친듯이 손가락을 놀려 일을 하고 짬을 내어 남은 부분을 마저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금의 내가 읽기에 딱,이라는 표현 말고 뭐가 더 있으랴, 말 그대로 딱,이었는데,

그러니까 고백하자면 요즘의 나는 마음이 두근두근하는 상태라는 거지.

나는 바로 베르테르로 빙의하여 내 마음속 로테를 상상하며 이 책의 모든 문장을 내 심장으로 빨아들였다.

로테에게 반하는 베르테르, 로테의 주위를 맴도는 베르테르, 로테의 미소에 행복해 하는 베르테르, 로테를 보지 못해 괴로워하는 베르테르, 로테의 약혼자를 질투하는 베르테르, 로테에게 마음을 보이자고 결심하는 베르테르, 로테를 떠나자고 다짐하는 베르테르, 아, 베르테르....

 

어제 본 영화 '시'에서 시란 누군가 표현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 해주는 것이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야 말로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는 한편의 길고도 긴 서정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들도 많았고, 이건 바로 내 마음이야! 공감 가는 문장도 무척 많았다. 얼마나 많은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던지(아, 빌린 책이라 밑줄은 못 긋고 쪽수를 적어 두었는데 그 양이 엄청나다) 밑줄 그은 문장을 읽으려면 결국은 책을 다시 읽는 셈이 될 거 같다.

 

또 다시, 어제 읽은 책 <은교>에서는 '내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나의 조국'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던가.'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베르테르에게는 로테가 '나의 조국'이 아니었을까. '조국'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나도 문득, 내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나의 조국'이라고 부를 사람이 있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비록 지금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중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번 짝사랑을 해봤지만, 그 모든 게 지나고 과거가 되어 버리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아직까지, 나의 진정한 로테를, 나의 조국을 만나지 못했다니, 심히 슬프다.

 

어찌되었든, 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지금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

 

 

_ 그렇게 해서, 우리는 로테의 집 앞에 당도할 때까지 졸음을 견디어냈다. 이윽고 하녀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로테의 물음에 아버님과 아이들이 다 무사하고 아직 모두들 주무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헤어질 때, 그날중으로 다시 만나달라고 간청했다. 그 순간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조용히 계속해서 돌고는 있었겠지만, 나는 그때가 낮인지 밤인지를 가릴 수 없었다.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47)

 

_ 로테를 너무 자주 만나지는 않겠다고 나는 벌써 몇 번이고 결심을 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지켜질 수 있을는지! 나는 매일 유혹에 못 이겨 나가면서, 내일은 가지 말고 집에 머무르겠다고 스스로 굳게 다짐해 보곤 한다. 그러나 막상 날이 새고 그 내일이 오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찾아 어느 결에 그녀 옆에 와 있는 것이다.(68~69)

 

_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85)

 

_ 그렇지만 이런 일은 산을 넘어가야 하는 나그네처럼 꼭 참고 체념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산이 없으면 가는 길은 훨씬 편하고 거리도 한결 가까워지겠지요. 그러나 산은 이제 엄연히 가로놓여 있으니,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요!(106)

 

_ 아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129)

 

_ "상상력이란 정말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고 나는 소리쳤다. "나는 일순간 이 편지를 나에게 쓰신 거라 멋대로 상상했지요"(138)

 

_ 어제 내가 떠나려고 나왔을 때,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그녀가 나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붙여서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 말이 나의 골수에 사무쳤다. 나는 혼자서 그 말을 백 번도 더 되풀이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며 횡설수설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라는 말이 잠결에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러고는 혼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151~152)

 

_ 그녀의 모습이 내게서 영 떠나질 않는다! 자나깨나 그녀의 그림자가 내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다. 눈을 감으면, 이마 속으로 마음의 시력이 집중되어,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나타난다. 바로 이곳에 말이다. 자네에게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눈을 감으면 그것이 나타난다. 바다처럼 심연처럼 그녀의 눈동자는 내 앞에 내 속에 깃들이고 내 이마 속을 꽉 채운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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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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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욤 뮈소의 책은 몇 년 전에 한 권 읽어본 적이 있는 듯 한데 그 책이 뭐였는지(아마도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였던 듯 한데 확실치는 않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이번에 읽은 책이 기욤 뮈소와의 '첫 만남'이라고 해도 되겠다.

 

하지만,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다.

 

베스트셀러고 워낙 유명하다보니 뭔가 기대를 하고 본 게 사실인데, 글쎄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뭘 봤는지...?

 

차라리, 조금 유치하더라도, 앞부분의 사랑 이야기가 쭈욱 이어졌더라면, 요즘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고팠던 나로서 조금 참고 읽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건 조금 넘어가니까 갑자기 웬 10년 전에 죽은 사람이 등장해서 '데스티네이션' 같은 스토리를 이끌고 나가다가 갑자기 스릴러가 되기도 하고, 마지막엔 또 생뚱맞게 해피엔딩.

 

그래도 워낙 연애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여서인지 사랑에 관한 문장은 밑줄 긋게 되는 게 몇 부분 있었다. 그리고 각 챕터를 열 때마다 '명언' 같은 걸 실어놨는데, 그게 제일 볼만 했다.

 

그래도 이 책이, 이 작가가 베스트셀러인 데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그 이유가 있겠지.

다만, 내게는 이 책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기욤 뮈소의 책을 읽을 엄두(!)도 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줄 그은 몇 문장은 정리해둬야겠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 않으면서도 나를 보았다.

그것은 봄날이고 태양이며 따뜻한 바다였다. _ 앨버트 코헨

 

사랑은 열병과도 같다.

사랑은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어나고 사라진다. _ 스탕달

 

인생에서 내가 배운 것, 그걸 몇 마디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네.

누군가가 날 사랑해주는 날, 그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아!

나는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을 모른다네. 날씨가 정말 좋아! _ 장 가뱅이 부른 노래 <난 이제 알아> 중에서

 

(결국, 기욤 뮈소의 말보다 더 기억에 남은 건 '남'의 말들이었군...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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