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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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라는 이름은 어쩐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어서 그의 작품을 읽어볼 엄두도 못 냈었다.

먼길 외출 나갔다가 전자책 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지인에게 이 책을 빌려 집에 오는 길에 읽었다.

아아, 배터리가 다 된 전자책에 축복을!!

 

내가 탄 지하철이 금정 쯤 도착해서는 아아, 벌써 내려야 하는구나 슬퍼졌고, 수원에 도착해서는 이대로 모른 체하고 신창까지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일을 해야 해서 책을 펴볼 수 없기에. 어쨌든 정말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푹 빠져 이 책을 읽었고, 미친듯이 손가락을 놀려 일을 하고 짬을 내어 남은 부분을 마저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금의 내가 읽기에 딱,이라는 표현 말고 뭐가 더 있으랴, 말 그대로 딱,이었는데,

그러니까 고백하자면 요즘의 나는 마음이 두근두근하는 상태라는 거지.

나는 바로 베르테르로 빙의하여 내 마음속 로테를 상상하며 이 책의 모든 문장을 내 심장으로 빨아들였다.

로테에게 반하는 베르테르, 로테의 주위를 맴도는 베르테르, 로테의 미소에 행복해 하는 베르테르, 로테를 보지 못해 괴로워하는 베르테르, 로테의 약혼자를 질투하는 베르테르, 로테에게 마음을 보이자고 결심하는 베르테르, 로테를 떠나자고 다짐하는 베르테르, 아, 베르테르....

 

어제 본 영화 '시'에서 시란 누군가 표현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 해주는 것이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야 말로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는 한편의 길고도 긴 서정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들도 많았고, 이건 바로 내 마음이야! 공감 가는 문장도 무척 많았다. 얼마나 많은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던지(아, 빌린 책이라 밑줄은 못 긋고 쪽수를 적어 두었는데 그 양이 엄청나다) 밑줄 그은 문장을 읽으려면 결국은 책을 다시 읽는 셈이 될 거 같다.

 

또 다시, 어제 읽은 책 <은교>에서는 '내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나의 조국'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던가.'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베르테르에게는 로테가 '나의 조국'이 아니었을까. '조국'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나도 문득, 내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나의 조국'이라고 부를 사람이 있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비록 지금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중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번 짝사랑을 해봤지만, 그 모든 게 지나고 과거가 되어 버리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아직까지, 나의 진정한 로테를, 나의 조국을 만나지 못했다니, 심히 슬프다.

 

어찌되었든, 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지금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

 

 

_ 그렇게 해서, 우리는 로테의 집 앞에 당도할 때까지 졸음을 견디어냈다. 이윽고 하녀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로테의 물음에 아버님과 아이들이 다 무사하고 아직 모두들 주무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헤어질 때, 그날중으로 다시 만나달라고 간청했다. 그 순간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조용히 계속해서 돌고는 있었겠지만, 나는 그때가 낮인지 밤인지를 가릴 수 없었다.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47)

 

_ 로테를 너무 자주 만나지는 않겠다고 나는 벌써 몇 번이고 결심을 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지켜질 수 있을는지! 나는 매일 유혹에 못 이겨 나가면서, 내일은 가지 말고 집에 머무르겠다고 스스로 굳게 다짐해 보곤 한다. 그러나 막상 날이 새고 그 내일이 오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찾아 어느 결에 그녀 옆에 와 있는 것이다.(68~69)

 

_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85)

 

_ 그렇지만 이런 일은 산을 넘어가야 하는 나그네처럼 꼭 참고 체념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산이 없으면 가는 길은 훨씬 편하고 거리도 한결 가까워지겠지요. 그러나 산은 이제 엄연히 가로놓여 있으니,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요!(106)

 

_ 아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129)

 

_ "상상력이란 정말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고 나는 소리쳤다. "나는 일순간 이 편지를 나에게 쓰신 거라 멋대로 상상했지요"(138)

 

_ 어제 내가 떠나려고 나왔을 때,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그녀가 나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붙여서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 말이 나의 골수에 사무쳤다. 나는 혼자서 그 말을 백 번도 더 되풀이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며 횡설수설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라는 말이 잠결에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러고는 혼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151~152)

 

_ 그녀의 모습이 내게서 영 떠나질 않는다! 자나깨나 그녀의 그림자가 내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다. 눈을 감으면, 이마 속으로 마음의 시력이 집중되어,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나타난다. 바로 이곳에 말이다. 자네에게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눈을 감으면 그것이 나타난다. 바다처럼 심연처럼 그녀의 눈동자는 내 앞에 내 속에 깃들이고 내 이마 속을 꽉 채운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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