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미란다 줄라이 지음, 이주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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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은 이런 책이 좋다.

이런 책? 글쎄, 어떤 책을 이런 책,이라고 한 거지?

그러니까,

책 속 어딘가에 내가 자리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있는 그 일상의 이야기...?

그래, 그런 이야기들이 좋다. 비범한 사람들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혹은 평범보다는 조금 찌질한 사람들의 평범하거나 조금 찌질한 이야기가.

아니, 이 책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평범하다고 하는 걸까, 나는?

뭐, 어쨌든, 비범한 이야기는 아니잖아.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들의 젠체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옮긴이의 말처럼

'미란다 줄라이의 주인공들은 키 작고 못생기고 내성적이라 아무도 관심이 없던, 기억도 안 나는 반 친구일 수도 있고, 집 앞 편의점의 고등학생 아르바이트 학생일 수도 있고, 평생 짝사랑 말고는 사랑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노처녀 고모일 수도 있고, 아무도 들어주거나 앨범을 사줄 리 없는 무명 인디밴드의 보컬일 수도 있고, 로맨스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마을버스 기사 아저씨일 수도 있다.' (나는 벌써 두 군데에 밑줄을 그었다.)

그러니, 내가 주인공일 수도 있는 책.

 

그래서, 제목을 따라 가만가만,

나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라고 생각했다.(제목이 '너'라고 말했으니까, 읽는 내게는 '나'겠지.)

 

이 책, 제목도 무척이나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제목으로 나를 유혹한 책, 하니 작년에 읽은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가 생각난다.

그 책을 들고 나갔던 날, 공교롭게도 나는 너무나 힘들고 지쳐 내 몸이 그대로 땅속으로 꺼져들어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펼쳐들었던 그 책이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 인생을, 구했다. 제목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제목이 자꾸 내게 주문을 걸어왔다.

'내가 너를 구할 거야'라고.

그리고 제목이 아주 매혹적인 이 책, <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를 읽으면서, 나는 정말 나만큼, 내 삶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철 지난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며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고 두 주먹 불끈 쥐고(까지는 아니지만) 생각했다.

그래, 여기 이 자리에, 나만큼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책을 초반 몇 페이지쯤 읽고,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지인에게 재미있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좀 독특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책,이라는 답장이 왔다.

좀 독특하다는 데에는 나도 금세 공감을 했지만, 불편하다니 어느 부분이? 하고 의아했는데, 조금 읽다보니, 끄덕끄덕 공감이 가긴 했다.

하지만 뭐, 그 불편도 어찌보면 내 안의 편견이 빚어낸 불편일 뿐,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짧은, 조금 긴, 아주 짧은, 들쭉날쭉한 길이의, 여러 사람들의 들쭉날쭉한 이야기들이 평온한 내 주말을 들쭉날쭉, 개성있게 그려주었다.

내게. 어울리는. 책,을 읽으며, 내게. 어울리는. 주말,을 보내며, 잊지 않기 위해 가만가만 기억해본다. 미란다 줄라이.

 

 

_ 나는 그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다시 한번 속삭였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야. 어쩌면 누군가에게 내가 해주고 싶었거나 듣고 싶었던 단 한 마디가 있다면, 바로 이 말이었을 것이다. (19)

 

_ 인생에 대해 회의가 가득하다고요? 이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하늘을 보세요. 바로 당신 거예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세요. 그 얼굴들도 당신 거예요. 거리며, 거리 아래의 땅이며, 땅 아래 불덩어리인 지구도 모두 당신 거예요.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내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 사실을 기억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을 향하세요. 그리고 하늘과,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 한 명 한 명 안에 담긴 빛을 찬미하세요. 인생이 불확실하게 느껴져도 상관없어요. 그래도 삶을 찬미하고, 찬미하고, 또 찬미하세요. (27)

 

_ 우리가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실은 누군가 죽도록 일한 결과였다. 횡단보도의 흰 줄도, 과자 한 조각도. (109)

 

_ 또 어떤 걸 할 수 있나요?

   널 사랑하는 거.

  그보다 더 신기한 건 못해요?

  못해.

  하지만 나한테만 이렇게 해주는 거죠?

  너는 우주에서 가장 사랑스러우니까.

  내가요?

  그럼. 당연하지! (186~187)

 

_ 다리 힘이 풀리더니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영어로 울부짖었고, 불어로 울부짖었고, 온갖 언어로 울부짖었는데, 눈물은 만국 공용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마치 에스페란토어처럼. (235)

 

_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그냥 쪽, 계속, 계속 밀고 나가라고. (241)

 

_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눈물을 덜 흘린다는 건 사실이 아니에요. 단지 여자랑 우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남자들은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볼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각자 독창적으로 우는 방식을 고안해내야 하는 거예요.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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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국 주방장 ㅣ 보름달문고 38
정연철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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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늦은 밤까지 이불 덮어 쓰고

 <학교는 밤마다 이상해> <난지도 하늘에 뜬 무지개> <우동 한 그릇> 같은 동화를 읽던 어린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자마자, 정든 친구들(동화책들)과 작별을 했어요.

왠지 어른이 된 기분이었겠죠.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童話)는 이제 안녕,이라고 했을 거예요.

그래서 <테스>를 읽고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 <깊은 슬픔> 같은, 소.설.을 읽으며(<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다읽다 포기하기도 하며)

이것이 바로 소녀를 위한 책이다, 생각했을까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언, 어언, 글쎄요, 얼마나 됐나 금방 계산이 되질 않네요.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강산이 두 번째 탈바꿈을 할 만큼의 시간이 흘러흘러, 무척 오랜만에 동화책을 만났어요.

 

그동안 동화책이라고는 읽을 생각도 안 해봤는데(청소년 소설이라면 조금 읽었더랬지만) 정말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이 제 손에 들어왔어요.

읽고 있던 다른 책이 있었지만, 이른 아침 지하철에서 무겁고 탁한 머리로는 읽힐 것 같지 않아, 시원시원한 행간에 그림까지 있어서 술술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책을 펼쳤지요. 그리고, 그냥 그대로 빠져버렸습니다. 다시 만난 동심의 세계에...

 

어려서부터 주방장이라는 확실한 꿈을 가지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꿋꿋하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예비 주방장 주병국, 다른 아이들과 약간 다른 생김새 때문에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고 왕따를 당하는 '외계인', 할아버지에게서 최신 휴대폰을 얻어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애교와 착한 짓을 가증스럽게 해내는 미나, 동네가 '개벽천지'를 하며 들어선 아파트에 살고 싶어 떼를 쓰다가 아픈 이별을 맞이한 한우, 선생님을 짝사랑 하는데 자꾸만 옆에 껌딱지처럼 들러붙는 정훈이 때문에 미칠 것 같은 혜미, 층간 소음을 원인으로 일상이 점점 팍팍하게 변해가고 있는 1605호와 1705호.

 

여섯 편의 이야기 속에서 만난 어린 친구들의 모습이, 때로는 멋있고 듬직하고, 때로는 소름 끼칠 정도로 솔직하면서 얄밉고, 때로는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도록 귀엽고, 때로는 눈물이 똑똑 떨어지게 가슴이 먹먹하고, 그랬어요. 이야기 한 편 한 편, 참 매력적이었답니다.

 

표제작인 '주병국 주방장'을 읽다가는 이런 문장 때문에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어요.

"내가 콧구멍이 두 개니까 살지, 한개였으믄 벌쎄 숨 막히 죽었을 끼라!"

아니, 이 말은!! 우리 어머니의 단골말!!! @.@

우리 엄마가 속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자주 쓰시는 말이거든요. "내가 진짜 콧구멍이 두 개니까 숨을 쉬고 산다!"라고요...

주병국 엄마의 입에서도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요. (나중에 지인에게 들으니, 경상도에서는 흔히 쓰는 표현이라고...)

책 속에서, 내 가족의 (더군다나 '전매특허'라고 생각한) 단골말을 발견함으로 해서,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더욱 커졌어요.

 

아파트로 이사가자고 떼 쓰다가, 예상치 못하게 할머니와 작별하게 된 한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그만 가슴이 먹먹해져 눈물 방울을 떨어뜨리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짓궂게 밟아버린 할머니표 찐빵도 떠오르고, 한우 좋아하는 칼국수 만든다고 서둘렀을 할머니 모습도 떠오르고, 그리고 그만, 내가 좋아하는 나물 반찬을 해주시겠다고, 들로 나물 뜯으러 가던 우리 할머니 모습이 그 위에 겹쳐지고...

여기에서 책을 잠시 덮었네요. 자꾸만 가슴속에 떠오르는 할머니 모습 때문에, 더 이상 글자를 읽어나갈 수가 없었어요.

 

마지막 수록작인 '쿵쿵'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였어요. 이야기 속에서는 층간 소음으로 시작된 아파트 아래위 층의 오해일 뿐이지만, 사실 우리 일상에는 이런 오해로 인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지요! 타인의 삶을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내 시선으로만 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김없이 생겨나는 오해, 그리고 그로 인한 정신적 소모.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괜히 이해하려고 애 쓰다가 잘 되지 않아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고속도로에서 미친듯이 속도를 높이며 추월해 오는 차나, 얌체 같이 갓길이나 버스 전용 차로를 달리는 차를 만나면 우리 가족들은 늘 우스개처럼 말 해요. "마누라 애 낳으러 가는 갑다." 정말, 그런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고, 정말 그럴 수도 있거든요. 물론, 실제로는 왜 그렇게 달리는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아버지께 들려드렸더니, 아버지가 물어보세요.

"그래가 오해 풀고 끝났나?"

"아니. 그냥 오해 한 채로 끝나."

"그라믄 우야노. 오해를 풀고 끝나야지."

"그럼 권선징악 같은 그렇고 그런 교훈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시시하지! 우리 삶도 어차피 그 많은 오해들 그냥 안고 가는 건데. 진짜 같은 이야기지."

 

진짜 같은 이야기. 여섯 편 모두, 내 안에 그렇게 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어요.

오랜만에 만난 동화책 한 권으로, 마음이 아주 포근해진 시간이었답니다.

아주 오래 떨어져 있던, 그래서 이제는 서로 잊혔던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 떨어져 산 세월만큼 더 서로를 아끼고 보듬게 될 것 같은 그런 기분.

<주병국 주방장> 덕분에, 저는 동화를 다시 만납니다. 동화는, 아이들의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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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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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를 로맹 가리와 만나게 해 준 첫 책은 『새벽의 약속』이었다.

어쩌면 어머니를 향한 애틋하고도 절절한 사모곡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

그 책 한 권으로 로맹 가리에 반해버려,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의 책들을 모두 읽어보리라, 한 권 두 권 사다가 꽂아 놓고는,

얼마 전에서야 다시 로맹 가리를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이번엔 에밀 아자르로 만났다.

 

『새벽의 약속』을 통해 이미 맛보았던 로맹 가리의 유쾌하고 재치있는 글맛이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음속에, 환희가 차올랐다. 다시 맛보게 된 그의 글이, 미치도록 행복하고 황홀했다!

아아, 이 책을 그동안 계속 책꽂이에 꽂아만 두고 있었다니. 극심한 후회와 함께,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겪어본 후에야 그놈의 행복이란 걸 겪어볼 생각이다."(100)라는 우리의 꼬마 친구 모하메드.(나이는 '꼬마'지만 생각하는 건, 나보다 훨씬 성숙하다.) 모모가 그놈의 행복이란 걸 겪기 전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겪어야 하는 걸까...?

자신을 버린 부모, 이제는 모모가 돌봐줘야 하는 로자 아줌마, 모모의 훌륭한 인생 선생님이었지만 이제 모모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 하는 하밀 할아버지, 모모를 희망에 차게 했다가 금세 실망하게 만들어 버린 쓸데 없는 친절을 베푼 금발 미녀, 사랑하기 때문에 더 좋은 곳으로 보내야만 했던 강아지 쉬페르...

모모가 행복이란 걸 겪어보기 위해 건너야 하는 징검다리의 돌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돌을 하나하나 밟고 나아갈 때마다 그만큼 더 성장하는 모모.

 

나는, 그 돌들을 건너기 두려워하기 때문에, 성숙하지 못 하는 걸까...?

그 모든 것을 겪어야만 만나볼 수 있는 게 행복이라면, 차라리 그것들도 만나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겠다,고 생각해버릴 것 같은 내 모습, 어째야 좋을까...

 

  "두려워할 거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사실 말이지 '두려워할 거 없다' 라는 말처럼 얄팍한 속임수도 없다.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108)

 

 

모든 등장인물이 다 사랑스러운 책이다. 주인공 모모는 물론, 모모의 측근들과 잠깐 스치듯 나오는 인물이며, 정말 잠깐 등장하는 강아지마저도.

그 인물들로 그려진 모모의 생은, 사실 고통인 동시에 행복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숙한 모모의 눈에 그려진 모습들이었기에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생에게 비굴하지 않겠다는 모모는, 생을 대하는 내 모습을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훌륭한 꼬마 선생님이었다.

역시 미뤄두고 있던 로맹 가리의 책들, 늦으면 늦을수록 나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

다른 책들도 어서 만나봐야겠다.

 

내 생에 이런 작가 만날 수 있어 정말 다행이고 축복이다,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로맹 가리.

 

 

_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44)

 

_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63)

 

_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91)

 

_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116)

 

_ 저능아란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자라지 않기로 마음먹은 아이다. (131)

 

_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 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사람들은 말없이 하나둘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232)

 

_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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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2012-06-0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원주 님
저는 문학동네 편집부 해외3팀 김선희라고 합니다. 언제나 원주 님이 올려주시는 멋진 리뷰들 잘 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자기 앞의 생> 띠지를 새로 제작하게 되었는데, 띠지 뒤쪽에 원주님이 올려주신 이 리뷰 중 한 구절을 인용하려 합니다. 제작이 급하게 진행되어 좀더 일찍 말씀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띠지 뒷면에 이렇게 들어갈 예정입니다.

마음속에, 환희가 차올랐다. 그의 글이, 미치도록 행복하고 황홀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사랑스러운 책. 알라딘 독자

메일로도 같은 내용을 보냈고 여기에도 제 메일 주소를 남기니, 간단하게나마 답신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유익한 리뷰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선희 드림(shkim@munhak.com)
 
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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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은 은유를 헤아릴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사막엔 칼로 자른 듯 선명한 두 개의 세계 외엔 없다.

  빛과 어두움.

  그러니, 운명의 모호함에 질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중독될 수밖에 없는 거지. (23)

 

사막에 중독이 된 건 아니지만, 사막을 여행 중이라며, 사막을 전해 온 친구가 생각났다.

'운명의 모호함에 질린' 거였을까, 어쨌든, 현실에 질리고 지쳐 일상을 정리하고, 내가 한 달에 지하철을 타는 횟수만큼 비행기를 타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전해주던 사막 이야기와 사막 사진에 빠져있을 즈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붉은 분홍' 빛을 낸다는 정오의 사막. 어쩌면 나의 친구도 봤을 한낮의 사막. 그래서 더욱 궁금한 이야기, 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작가의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몇 해 전에 『내 아들의 연인』을 읽었었는데, 내용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뭔가 개운하지 못 한 느낌을 남겼던 것만은 생생하다. 그래서 조금 망설이다가, 단 한 권의 책으로 한 작가와의 만남을 중단하고 싶지는 않아 이번에 나온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내게 어떤 느낌을 남겨줄까...

 

  귀찮다 했지만, 그래도 꽤 무람없이 느껴졌다. 누구하고든 이런 식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은 게 도대체 언제였지, 싶은 생각도 들었고. 외롭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아귀 어긋나는 얘기를 주고받다보니 갈라터진 마음속에 찰랑찰랑한 물기 같은 게 밀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을 때야 비로소 얼마나 추운 바깥에서 떨고 있었나 알게 되는 것처럼. (165~166)

 

승도, 보라도, '추운 바깥에서 떨고 있'는 외로운 사람들 같았다. 오기와 독기를 가슴 가득 품고 있는 승의 가슴속에 불쑥불쑥 치미는 분노, 홀로 외로움을 견뎌내기 힘겨워 내키지 않지만 나오미의 방에 발을 들이는 보라의 오갈 데 없는 마음은, 내 마음속의 것들과 닮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쓸쓸한 동질감을 느꼈던 시간들...

 

'붉은 분홍'의 정오의 사막보다는, 싸늘하게 식은 검푸른 밤의 사막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보라를 향한 바바의 마음을 읽을 때만 마음속에 잠시 퍼지던 연분홍빛 따스함. 그 외에는 손발이 싸늘해지는 외로움과 통증이 따랐다. 작가의 글이 그랬던 건지, 이 글을 읽는 내 마음이 그랬던 건지, 그건 모르겠지만.

 

소설의 결말,을 읽고도 또 다른 마지막 장면이 있을 것 같아, 혹시나 에피소드가 작가의 말 뒤에 실려 있나 찾아보기도 했던 부질 없는 미련.

소설의 결말엔 '칼로 자른 듯 선명한 두 개의 세계'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절절한 가슴을 부여 안고, 책장을 덮었다.

 

 

  "나오미, 종교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데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과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걸까?"

  말로 하다보니 꽤나 비극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론이지. 사랑이야 말로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영혼들마저 연결해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신비한 감정이니까."

  꿈꾸듯 속삭이는 걸 보니 몸만 의자에 앉혀두고 마음은 그사이 아주 먼 곳으로 달아난 지 오래다.

  "그럼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어?"

  "보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알 수 있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막 뜨기 전, 맨 처음 떠오르는 얼굴이라면 그를 사랑하는 거란다. 사랑이 내 전부를 가득 채워버린 거지."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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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대책 없이 해피 엔딩>

 

28년 지기 두 친구, 두 김 작가님의 대책 없이 웃긴 영화 이야기가(...영화 이야기 맞는 거지? 어째 영화보다는 두 작가님의 주거니 받거니 '대꾸'가 강렬하게 머릿속을 치고 올라오는 것이냐...)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씨네21에 '나의 친구 그의 영화'란 꼭지로 연재되었던 글이다.

 

여름 휴가철에 무척 잘 어울리도록, 표지도 파도가 부서지는 파아란 바다 그림이다.

스쿠터를 타고 있는, 뒷모습도 멋지기 그지 없는 이 두 오빠(-_-*)는 당연히 우리의 두 김 작가님 되시겠다~!

옆에 친절하게 이름이 써있긴 하지만, 뭐,

이름 없어도 알겠다.

절대로, 다리 길이 보고 하는 말은 아님............흠흠...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우정의 향기가 퐁퐁 솟아나는 그림이냐~~!!

(이 그림을 보고, 정확히는, 그러니까, 리얼한 '길이'를 보고는 일러스트는 분명히 김중혁 작가일 것이다, 생각했으나,

책 날개를 보니 '일러스트 이강훈'이라고 되어 있음.)

 

책 속에 일러스트가 많은데, 아아, 정말 글과 그림이 혼연일치!

글을 살리는 그림, 그림을 살리는 글이다. 글, 그림 모두 훌륭함!

 



(김중혁 작가가 '기억나는 대로' 썼다는) 작가 소개부터 매력 만점이다~!

 

김연수와 김중혁은 문학의 도시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김연수는 1970년에, 김중혁은 1971년에 태어났지만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 김중혁이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같은 학년이 되었다. 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기록지를 교환하다 친구가 됐고, 이후 28년 동안 친구로 지냈다. 김연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김중혁은 대구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여 사이가 멀어지는 듯하였으나 김중혁이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학교수업을 내팽개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있었다. 김중혁은 서울에 올라와 김연수의 자취방과 하숙방에 빌붙어 지낸 적이 많았는데, 미안함 때문에 하루종일 밖에서 놀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김연수는 친구가 집에 없는 틈을 타 문학에 매진하였다. 1993년에는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며 치사하게 저 혼자 작가가 되더니, 1994년에는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차세대 기대주로 발돋움했다. 이후 『꾿빠이, 이상』,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7번 국도』,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스무살』, 『세계의 끝 여자친구』 등의 책을 펴냈으며(뭐 빠진 거, 있나?)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뭐 빠진 거, 없지?) 수상하였다. 김연수는 아직도 차세대 기대주다. 열심히 놀던 김중혁은, 친구의 배신에, 아뿔싸, 뒤늦게 문학에 매진하여 2000년 겨울 『문학과사회』에 중편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작가가 됐고,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등의 책을 (뭐 빠진 거, 없군!) 펴냈으며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2010년 손가락에 물이 오른 김중혁은 문학계간지에 새로운 장편 『미스터 모노레일』을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 8월에는 ‘좀비’를 다룬 장편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다. 





 



 

씨네21에서, 이렇게 두  김 작가님이 주거니받거니 '대꾸'하며 독자들 배꼽 빠지게 만들어 주었던, 그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이렇게 책으로 엮어 나오니 아아 정말 행복하다.

 

영화를 잘 보지 않는, 그래서 아는 영화도 별로 없고, 영화 이야기라면 지루해하기까지 하는 내가,

유일하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진지하게 읽어내려간 영화 관련 책이기도 하다.

 

두 김 작가님의 독자들뿐 아니라 영화 마니아들에게도 정말 시원한 여름 선물이 되어줄 것이라 장담!




40대가 더욱 기대되는 두 김 작가님!!!

작가님들이 있어,

저는 오늘도 대책 없이 해피해피!!! ^_____^*

시원한 여름 선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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