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사막은 은유를 헤아릴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사막엔 칼로 자른 듯 선명한 두 개의 세계 외엔 없다.
빛과 어두움.
그러니, 운명의 모호함에 질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중독될 수밖에 없는 거지. (23)
사막에 중독이 된 건 아니지만, 사막을 여행 중이라며, 사막을 전해 온 친구가 생각났다.
'운명의 모호함에 질린' 거였을까, 어쨌든, 현실에 질리고 지쳐 일상을 정리하고, 내가 한 달에 지하철을 타는 횟수만큼 비행기를 타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전해주던 사막 이야기와 사막 사진에 빠져있을 즈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붉은 분홍' 빛을 낸다는 정오의 사막. 어쩌면 나의 친구도 봤을 한낮의 사막. 그래서 더욱 궁금한 이야기, 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작가의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몇 해 전에 『내 아들의 연인』을 읽었었는데, 내용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뭔가 개운하지 못 한 느낌을 남겼던 것만은 생생하다. 그래서 조금 망설이다가, 단 한 권의 책으로 한 작가와의 만남을 중단하고 싶지는 않아 이번에 나온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내게 어떤 느낌을 남겨줄까...
귀찮다 했지만, 그래도 꽤 무람없이 느껴졌다. 누구하고든 이런 식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은 게 도대체 언제였지, 싶은 생각도 들었고. 외롭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아귀 어긋나는 얘기를 주고받다보니 갈라터진 마음속에 찰랑찰랑한 물기 같은 게 밀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을 때야 비로소 얼마나 추운 바깥에서 떨고 있었나 알게 되는 것처럼. (165~166)
승도, 보라도, '추운 바깥에서 떨고 있'는 외로운 사람들 같았다. 오기와 독기를 가슴 가득 품고 있는 승의 가슴속에 불쑥불쑥 치미는 분노, 홀로 외로움을 견뎌내기 힘겨워 내키지 않지만 나오미의 방에 발을 들이는 보라의 오갈 데 없는 마음은, 내 마음속의 것들과 닮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쓸쓸한 동질감을 느꼈던 시간들...
'붉은 분홍'의 정오의 사막보다는, 싸늘하게 식은 검푸른 밤의 사막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보라를 향한 바바의 마음을 읽을 때만 마음속에 잠시 퍼지던 연분홍빛 따스함. 그 외에는 손발이 싸늘해지는 외로움과 통증이 따랐다. 작가의 글이 그랬던 건지, 이 글을 읽는 내 마음이 그랬던 건지, 그건 모르겠지만.
소설의 결말,을 읽고도 또 다른 마지막 장면이 있을 것 같아, 혹시나 에피소드가 작가의 말 뒤에 실려 있나 찾아보기도 했던 부질 없는 미련.
소설의 결말엔 '칼로 자른 듯 선명한 두 개의 세계'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절절한 가슴을 부여 안고, 책장을 덮었다.
"나오미, 종교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데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과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걸까?"
말로 하다보니 꽤나 비극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론이지. 사랑이야 말로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영혼들마저 연결해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신비한 감정이니까."
꿈꾸듯 속삭이는 걸 보니 몸만 의자에 앉혀두고 마음은 그사이 아주 먼 곳으로 달아난 지 오래다.
"그럼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어?"
"보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알 수 있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막 뜨기 전, 맨 처음 떠오르는 얼굴이라면 그를 사랑하는 거란다. 사랑이 내 전부를 가득 채워버린 거지."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