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남자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2
스와 데쓰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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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ionist 세계의 작가 시리즈 열두 번째 책이다.

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집어 든 이유다.

 

일단 이 책을 선택하고 나서 책 소개를 읽다보니, 수상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무라카미 류 이후 30년 만에 아쿠타가와상과 군조 신인문학상을 동시 수상하며 스와 데쓰시라는 대형 신인의 탄생을 알린 바로 그 소설!' 어떤 소설일지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소설은, '안드로메다적'이다.

소설 구성도 다소 그런 면이 있고,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인 숙부와 그가 사용하는 언어도 다분히 '안드로메다적'이다.

읽본 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은 내게만 이런 느낌을 주는 걸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은 무척 신선했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퐁팟" 소리내어 발음해봤다.

'퐁팟'은 사라진 숙부가 자주 내뱉던 정체불명의 언어이다. ('안드로메다 어'일까?)

어려서부터 심하게 말을 더듬던 숙부는 스무 살 어느 겨울, 갑자기 말 더듬는 현상이 사라졌다.

그때까지 그를 힘들게 하던 '키츠츠키(딱따구리)'라는 발음을 "키,츠츠키"가 아닌 "키츠츠키"라고 제대로 할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하지만 말 더듬는 현상만 사라졌을 뿐, 숙부의 괴상한 언어 습관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퐁파" "타퐁튜" "체리파하"...듣는 이를 멍하게 만들지만, "그러니까 그건 즉 타퐁튜야." "말을 바꾸자면 그건 체리파하......야."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숙부의 그 '안드로메다적' 언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또 그 말들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건 숙부와 같은 '안드로메다 남자'들 만이 아는 걸지도.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과 소통 불가능한 우리만의 '안드로메다 어'가 있는 걸지도.

 

"퐁팟카퐁파, 퐁팟카퐁파. ...헤에~, 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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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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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이야기를 읽었다.

도서관도 좋아하고, 동물(특히 개와 고양이)도 좋아하는 내게는 참새 방앗간 같은 책이었다.

 

책 표지를 장식한 아름다운 황금빛(책에는 오렌지 색이라 나온다) 고양이.

그의 이름은 듀이 리드모어 북스(Dewey Readmore Books), 듀이다.

 

1988년 1월. 미국 아이오와 주의 작은 마을 스펜서.

기온이 영하 26도까지 내려 간 매섭도록 추운 날에, 도서관 책 반납함 속에서 이 작고 여린 고양이가 발견되었다.

하늘이 (조금 잔인한 방법이긴 했지만) 도서관에, 이 작은 마을에 내려 준 천사였을까?

네 발에 동상이 걸린 채 발견된 이 작은 고양이는 이후 19년 간 이 도서관에서 생활하며, 도서관의 제왕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천사가 된다.

 

이 귀엽고 영특한 도서관 고양이 듀이는 도서관을 제 집 삼아, 도서관 이용객을 제 친구 삼아, 도서관 사서이자 자기를 제일 먼저 발견한 비키를 엄마 삼아, 그의 특별한 삶을 이끌어 나간다.

도서관의 밤을 홀로 지샌 듀이는 아침에 출근하는 '엄마'의 차가 보이면 재빨리 현관 앞에 나가 앉아있다가 '손'을 흔들어준다.(이후 일본 다큐멘터리 팀이 와서 그 모습에 반해 촬영하고자 했으나, 이건 오로지 하루에 딱 한 차례 치뤄지는 신성한 의식!) 도서관 개관 시간이 다가오면 역시 현관 앞에 앉아 기다리다가 시간 맞춰 들어오는 이용객들에게 환영 인사를 한다. 듀이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가장 자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낸다. 그리고 그의 무릎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준다. 영혼이 지친 사람들,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은 무릎 위에 누운 듀이의 따뜻한 체온에 크나큰 위안을 받는다. 고무줄을 좋아해서, 구석구석 숨은 고무줄을 찾아 먹고 '고무줄 지렁이' 똥을 싸기도 하고, 세계 제일의 미각을 자랑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료가 아니면 닷새도 굶는 의지를 보이기도 하는 듀이.

미국에는 듀이 말고도 십여 마리의 도서관 고양이가 있다는데, 유독 듀이가 이렇게 전세계의 이목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비키는 도서관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문의를 해오는 이들에게 '적합한 고양이'여야 한다고 말한다. 고양이라면 다 똑같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듀이가 어째서 '특별한' 고양이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매력에 푸욱 빠져버릴 것이다.

 

작은 동물 한 마리로 인해 삶이 바뀔 수 있다.

비키의 부모님은 아들을 병으로 잃은 뒤 페르시안 고양이를 데려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부부간의 정을 놓치지 않고 지켰다. 비키와 그녀의 딸 조디와의 사이에 깊게 패인 감정의 골을 듀이가 메워줄 수 있었다. 늘 고개를 푹 숙인채 휠체어에 앉아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소녀는 듀이의 사랑을 받고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를 줄 아는 소녀가 되었다.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동물 때문에 기뻐하고 행복해 한다.

스펜서 마을에 듀이가 있다면 우리집에는 몽이가 있다. 듀이처럼 온 마을을, 전 세계를 뒤흔들거나 감동시키는 강아지는 아니지만, 우리집에서만큼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다. 온 식구가 들어오면서 "몽아~!!" 몽이부터 찾고, 가족들 들어온 순서대로 오늘 몽이가 어떤 행동으로 나를 웃겼는지 듣는다. 밥을 먹다가도 우리는 몽이 때문에 웃고, 잠을 자려다가도 먼저 베개 차지하고 누운 몽이를 보며 웃고, '목욕'소리에 황망히 도망치기 바쁜 몽이를 보며 웃고...이 작은 강아지는 우리집의 '웃음 바이러스'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웃음 줘본 적이 없는데, 나보다 낫다.

 

모든 생명체는 다 '끝'이 있게 마련이다. 그 작별의 순간이 두려워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사람도 봤다. 나 역시도 이제 아홉 살 먹은 몽이를 가만 쳐다보다가 괜히 눈물을 떨구게 될 때도 있다. 상상만으로도, 아니 상상도 하기 싫은 슬픔이 언젠가 우리를 찾아올 테니까. 하지만 그 슬픔이 두려워 이 작은 생명체가 주는 커다란 기쁨을 누리는 기회를 잃고 싶지 않다. 우리 함께 하는 시간 동안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서로에게 기쁨을 주며 사랑하며, 그렇게 살면 되니까. 살아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듀이도 이미 스펜서 마을과, 그의 집이었던 도서관과, 엄마 비키와 작별했다. 19년 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기쁨, 행복, 사랑을 전해주고, 듀이는 떠났다. 나도 많이 슬펐고,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듀이는 '엄마'덕에 다시 태어났다. 이 책으로 듀이는 이제 더 많은 이들의 마음에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말리와 나>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 이야기 책,이 되었다. 사랑스런 <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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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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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 없이 펼쳐들었다가, 의외의 월척을 낚은 기쁨에 주변에 마구 추천해주고 싶은 책!

(이 책 앞에 읽은 책은, 잔뜩 기대하고 읽었다가 많이 실망했는데, 이 책으로 보상 받은 기분이다.)

 

표지의 그림과 '하하 미술관'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유머로 마음을 치유해주는 책인가, 생각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그냥 지나갔으면 섭섭할 뻔 했다.

 

앙드레김 같은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의상학과에 두 번이나 낙방하고 경영학과에 진학해 복수전공으로 영화를 공부한 남자. 시크(chic)한 모델이 될 날을 꿈꾸며 회사에 들어갔다가, 시크(chic)는 커녕 시크(sick)해진 건강과 감성을 되찾기 위해 퇴사하고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난 남자. 1년 동안 빙하를 세 번 타고, 번지점프를 열두 번 하고(!), 발레학교에 다닌 남자. 이 남자, 김홍기가 이 책의 저자이다. 이런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저자 이력을 보면, 읽기도 전부터 책이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은, 이 책을 내게된 이유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은 '하하 미술관'입니다. 우울한 소식만 가득한 세상, 그림으로 여러분을 환하게 웃기고 싶었습니다. ... 상처 받은 마음을 그림을 통해 성형하고 싶다면 딱 맞는 책을 고르신 겁니다.'

이미 살짝 넘겨본 그림들에 상당히 매료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렘은 가득했으나,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준다는 말에는, 난 별로 위로받을 만한 상처가 없는데? 그냥 그림 감상이나 하지 뭐,라고 생각했다.

 

웃으며, 감탄하며, 심각해지며, 그렇게 책을 감상하다가,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위로 받을 상처가 없다더니, 내 마음 나도 몰랐던가 보다...

마음 깊숙한 곳에 곪아있던 고름이 터져 눈물로 나오는지, 내 안의 아픈 감정을 잔뜩 머금은 눈물이, 주르륵.

 

'상처란 그런 것입니다. 치유되지 못할 만큼의 무게를 가진 상처는 세상에 없습니다. 언제든 내 의지로 들어 옮겨 놓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상처의 숙명이지요.'(69쪽)

 

이 책에는 그런 힘이 있다.

웃기거나, 멋지거나, 소름돋거나, 슬프거나, 예쁘거나 엽기적인 그림, 또는 조각, 또는 사진 들과

'경영학도'가 아니라 '문학도' 아닌가, 의심하게 만드는 저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글이 만나,

마음 깊숙한 곳까지 그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뻗어온다.

 

이 책을 통해, '하하' 웃을 수 있었고, 내 인생의 아름다운 시절을 돌아볼 수 있었으며, 거울 앞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고, 앞으로 험한 세상 헤쳐나갈 힘과 용기를 얻었다.

저자는 인생의 두 번째 책인 이 책을 쓰며, '누군가에게 나를 태워 몸을 덥혀 줄 그런 글을 써야 할 텐데'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썼다. 다른 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 한 독자는 그의 글로 영혼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맛보았음을 전해주고 싶다. '이 책이 잘 팔려서 인세로 장가가고 싶'다는, 농담인 듯 진담인 듯한 저자의 말에, 나도 함께 이 책이 잘 팔리기를(!) 바라본다. 책을 읽고나서 든 '딴생각'을 하나 보태자면, 책 표지와 제목이 조금 더 감성적인 에세이 느낌을 주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예를 들어, 소제목인 '삶을 위한 일시 정지'와 그 안의 작품들이 제목과 표지였더라면, 이 책을 만나기 전에 했던 그 망설임의 과정을 생략했을지도 모르겠다. 뭐, 지극히 주관적인 기호 문제이겠지만.(쓰고보니 주제넘은 참견 같아서...흠흠...)

 

마지막으로,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하여, 외로움에 몸부림칠 솔로들에게 바치는 그림 하나.

'이 죽일 놈의 연애...커플천국을 걷는 싱글들에게'에서...



주정아, <개도 남자다>.

'인간 커플의 닭살 돋는 애정 행각에 질려 산책을 거부하는 개의 표정' 압권!

이 앞 쪽에 실린 <스쿠터 보이>도 재밌는데(완전 푸하하, 터지는 웃음), 사진으로 잘 안 찍혀서 생략.

 

외롭고 슬프고 지친 영혼들, 이 책보고 위로 받으세요~!

 

'희망의 힘은 강력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내 육체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런 일들만 계속해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기억하는 육체보다는 삶의 근거와 용기, 긍정의 힘을 기억하는 육체를 갖고 싶습니다.'(178쪽)

 

'삶은 추억이란 열매를 섭취하고 새로운 기억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추스르는 과정입니다. 행복한 기억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격려하지만, 잊고 싶은 기억은 반복적으로 마음속 깊이 투과되어 상처를 냅니다. 상처(Scar)와 별(Star)은 단 하나의 철자로 인해 차이가 드러납니다. 상처가 숙성되어 향기가 날 때, 저 하늘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비추는 별이 되는 것이지요.'(65쪽)

 

'여러분 모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수만큼 행복하시길 빕니다.'(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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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판타지
김별아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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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있을 때였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혼자 낯선 거리를 거닐며, 어디 조용히 울 곳을 찾을까, 다른 기분 전환할 거리를 찾을까, 헤매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우동 가게가 눈에 띄었다. 우동,이라면 대학교 3학년 시절 매일같이 나의 점심 메뉴로 간택되었던,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그 통통한 국숫발과 뜨끈한 국물이 일품이 그 아이 아닌가. 낯선 땅에서 혼자 울음을 삼키고 있는 내 앞에 나타난 'Udon' 간판이 그날은 정말 한글간판을 만난 것보다 더 반가웠다. 주머니에 돈이 얼마 들어있지 않아서 망설이다가 들어갔는데, 일단 가격부터 물어보니, 역시 너무 비쌌다. 그래서 그냥 발길을 돌려 나왔는데, 조금을 더 돌아다녔지만, 나는 조용히 울 곳도, 다른 기분 전환할 것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결국은 다시 그 'Udon' 품으로 돌아갔다. 메뉴에는 '**** Udon'이라는 이름이 몇 개 있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기에(우동을 좋아하긴 했지만, 내가 매일같이 먹은 것은 그저 시골 분식집의 소박한 우동이었을 뿐이다) 그냥 아무거나 '**** Udon'을 하나 시켰다. 곧 만나게 될 우동 생각에, 내 마음은 이미 슬픔에서 기쁨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었고,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우동이 내 앞에 나타났다. 짜잔~! 쿠구구궁!!! '아니! 이게 뭐야?!!' 나는 분명히 '우동'을 시켰는데, 내 앞에 있는 그 '**** Udon'이란 녀석은 면발은 통통한 게 분명하지만 국물도 없고, 웬 간장 양념에 볶아 놓은 것 같았다. 이게 뭐지? 이게 뭐지? 뜨근한 국물로 달래주려던 내 마음은 급 냉각되었고, 씁쓸하고 더욱더 슬퍼진 마음을 추스르며 겨우 그 면발을 대충 집어먹고 값을 치르고 나왔다.(나중에서야 그 '**** Udon'이 '야키 우동'이라는, 일종의 볶음 우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따끈한 국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던 내 마음이, 볶음 우동 앞에서 산산히 부서졌던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받아들이게 된 낯선 존재. 그 낯선 존재가 가져다 준 마음 불편함.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오래전 그 우동이 떠올랐을까?

그랬다. 나는 이 책에서 뭔가를 '기대'했었다. 제목에 '가족'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만 보고는, 뜨뜻한 아랫목에 담요 덮어 쓰고 누워 동화책을 읽던 그런 느낌 같은, '따뜻함' '편안함' '재미' 뭐 그런 것들을 떠올렸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세포가 반사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가족에 대한 산문집들도 대부분 그런 느낌을 주었고 말이다. 나는 김별아 작가의 책을 만나본 적이 없다. 책꽂이에 <미실>이 한 권 꽂혀 있긴 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작가가 어떤 글을 쓰는지도 전혀 몰랐기에, 내 멋대로 이 책은 이러이러한 느낌이겠군, 이라고 속단하고 이 책을 펼쳤던 거다. 나의 실수니, 이 책을 탓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 책이 내게 가져다 준 느낌은, 위에서 말한대로, 예상치 못한 것에 대한 낯섦, 불편함 같은 것들이었다. 아마, 내 멋대로 어떤 기대 같은 거 하지 않고 이 책을 펼쳤거나, '가족'이란 단어가 내게 그런 따뜻함을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책을 지금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공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이미 '뜨끈한 국물이 있는 우동'을 상상하고 기대했었으니까. 다만 책 뒷부분에 작가가 자신의 아들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은, 얼마 전에 엄마가 된 동생 생각이 나서 무척 감동적으로 읽었다. 그 부분은 따로 옮겨 동생에게 보내주고 싶다. 조금 더 나중에, 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치고 힘겨울 때가 오면, 그 때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 그때는 내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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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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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 노인으로 태어나 갓난아이로 성장(?)하는, 남들과 다른 시간의 흐름을 사는 이 남자 이야기가 요즘 뜨고 있다.

<위대한 게츠비>로 유명한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영화로 제작되면서, 국내에서도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이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 나는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책을 만나보았다.

 

벤자민 버튼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남들과 다른 시간의 흐름을 산다.

노환을 앓는 듯한 일흔 살 노인의 몸으로 세상의 빛을 보고, 자신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중년 남자에게 '아버지'라고 한다.

배내옷은 입을 수도 없고, 신생아 침대는 몸을 겨우 앉힐 수 있을까말까하고, 배고픈데 우유병만 건네주니 기가 막혀 하는 이 남자.

태어날 때만 괴상망측한 게 아니라, 이후의 삶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남들은 세월따라 나이를 먹어가는데, 벤자민은 세월따라 나이를 '뱉어낸다'.

힘겹게 노구를 움직이며 할아버지와 말벗을 하던 '아기' 벤자민이 '자라서' 군인이 되고, 더 '자라서' 결혼도 하고, 조금 더 '자라서' 대학도 가고, 또 '자라서' 유치원도 가고, 아주 많이 '자라서' 갓난아기가 되어...

정말 '소설같은' 이야기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며 내내 "말도 안돼!" "저게 어떻게 가능해?" "완전 옥의 티! 옥의 티!!"를 외치는 내 머리마저도,

벤자민 앞에서는 그만 꼼짝 못하고 얼어버렸다.

말도 안 되건, 어떻게 가능하건, 그런 걸 상상할 여력조차 주지 않는 이 독특한 이야기 앞에서는 그저 '소설은 소설처럼'읽을 수 밖에.

참, 기발하고 기발한 이야기다.

(<막스 티볼리의 고백>도 이와 같은 소재를 다룬 거라는데, 그 책은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지 엄청 궁금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기를 거부하지만, 벤자민은,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을 살았다.

얼마나 고독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갓난아기로서 우유병의 행복을 맛보지 못하고, 또래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없고, 부모에게서 불쑥불쑥 "벤자민 씨"라는 호칭을 들어야 하고, 자식에게 "아저씨라고 부르세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그 삶이, 소설이라 참 다행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외에도 열 편의 단편을 더 만나볼 수 있었는데,

스콧 피츠제럴드가 '훌륭한 단편 작가로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패트릭 오도넬의 서문을 읽었음에도,

무척 재미있고 마음속에 오래 남을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석 부분이 미주로 처리되어 있어서 읽을 때 뒤로 가 찾아봐야 하는 점이 조금 불편했다.

많지 않은 단어여서, 그냥 각주로 다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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