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판타지
김별아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호주에 있을 때였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혼자 낯선 거리를 거닐며, 어디 조용히 울 곳을 찾을까, 다른 기분 전환할 거리를 찾을까, 헤매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우동 가게가 눈에 띄었다. 우동,이라면 대학교 3학년 시절 매일같이 나의 점심 메뉴로 간택되었던,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그 통통한 국숫발과 뜨끈한 국물이 일품이 그 아이 아닌가. 낯선 땅에서 혼자 울음을 삼키고 있는 내 앞에 나타난 'Udon' 간판이 그날은 정말 한글간판을 만난 것보다 더 반가웠다. 주머니에 돈이 얼마 들어있지 않아서 망설이다가 들어갔는데, 일단 가격부터 물어보니, 역시 너무 비쌌다. 그래서 그냥 발길을 돌려 나왔는데, 조금을 더 돌아다녔지만, 나는 조용히 울 곳도, 다른 기분 전환할 것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결국은 다시 그 'Udon' 품으로 돌아갔다. 메뉴에는 '**** Udon'이라는 이름이 몇 개 있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기에(우동을 좋아하긴 했지만, 내가 매일같이 먹은 것은 그저 시골 분식집의 소박한 우동이었을 뿐이다) 그냥 아무거나 '**** Udon'을 하나 시켰다. 곧 만나게 될 우동 생각에, 내 마음은 이미 슬픔에서 기쁨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었고,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우동이 내 앞에 나타났다. 짜잔~! 쿠구구궁!!! '아니! 이게 뭐야?!!' 나는 분명히 '우동'을 시켰는데, 내 앞에 있는 그 '**** Udon'이란 녀석은 면발은 통통한 게 분명하지만 국물도 없고, 웬 간장 양념에 볶아 놓은 것 같았다. 이게 뭐지? 이게 뭐지? 뜨근한 국물로 달래주려던 내 마음은 급 냉각되었고, 씁쓸하고 더욱더 슬퍼진 마음을 추스르며 겨우 그 면발을 대충 집어먹고 값을 치르고 나왔다.(나중에서야 그 '**** Udon'이 '야키 우동'이라는, 일종의 볶음 우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따끈한 국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던 내 마음이, 볶음 우동 앞에서 산산히 부서졌던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받아들이게 된 낯선 존재. 그 낯선 존재가 가져다 준 마음 불편함.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오래전 그 우동이 떠올랐을까?

그랬다. 나는 이 책에서 뭔가를 '기대'했었다. 제목에 '가족'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만 보고는, 뜨뜻한 아랫목에 담요 덮어 쓰고 누워 동화책을 읽던 그런 느낌 같은, '따뜻함' '편안함' '재미' 뭐 그런 것들을 떠올렸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세포가 반사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가족에 대한 산문집들도 대부분 그런 느낌을 주었고 말이다. 나는 김별아 작가의 책을 만나본 적이 없다. 책꽂이에 <미실>이 한 권 꽂혀 있긴 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작가가 어떤 글을 쓰는지도 전혀 몰랐기에, 내 멋대로 이 책은 이러이러한 느낌이겠군, 이라고 속단하고 이 책을 펼쳤던 거다. 나의 실수니, 이 책을 탓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 책이 내게 가져다 준 느낌은, 위에서 말한대로, 예상치 못한 것에 대한 낯섦, 불편함 같은 것들이었다. 아마, 내 멋대로 어떤 기대 같은 거 하지 않고 이 책을 펼쳤거나, '가족'이란 단어가 내게 그런 따뜻함을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책을 지금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공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이미 '뜨끈한 국물이 있는 우동'을 상상하고 기대했었으니까. 다만 책 뒷부분에 작가가 자신의 아들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은, 얼마 전에 엄마가 된 동생 생각이 나서 무척 감동적으로 읽었다. 그 부분은 따로 옮겨 동생에게 보내주고 싶다. 조금 더 나중에, 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치고 힘겨울 때가 오면, 그 때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 그때는 내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안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