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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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에 대한 결연한 각오를 다지게 하는 제목과, 왔다갔다 고민과 번뇌를 반복하고 있는 듯한 표지 그림 속의 남자.

아지즈 네신이라는 터키 작가와의 만남을 무척 기대되게 해주었다.

터키 문학은 몇 권 접해보지 않아서 당연히 이 책이 이 작가와의 첫 만남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작가 이름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작가 소개를 읽고서야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의 저자라는 걸 알았다.

한창 도서관을 드나들 때는 누가 쓴 책인지 신경 쓰지 않고 손 가는대로 빌려다가 읽었는데, 그때 이미 이 터키 문학의 거장을 만났던 거다. <튤슈...>는 그 내용보다는 예쁜 그림이 담겨 있는 책이라는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아지즈 네신은 터키 풍자 문학의 거장이자, 터키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다. 이 책은 작가가 부르사로 유배 당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이란 이름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유배 시절 회고록,쯤이 더 어울리는 표현 같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같고,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그 당시에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겠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었다.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게 미안하다, 이 책은. 말했다시피 작가의 유배 시절 이야긴데, 그런 고통을 '푸하하' 웃으면서 읽는다는 게 말이다.(정말 중간중간 '푸하하' 터지는 웃음때문에, 유배 중인 주인공에게 미안한 마음도...) 하지만 정말 재밌는 걸 어쩌리. 솔직히 그간 접했던 (몇 권 되지 않는) 터키 소설들이 다 심오하고 무거웠던지라, 이 책도 다소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띠지에 실려 있는 '포복절도할 웃음과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가득 찬 성대한 만찬'이라는 오르한 파묵의 추천평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른 귀빈을 맞이하기 위한 환영 인파 속으로 뛰쳐들어가 아주 거창하게 '부르사 입성식'을 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 도시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유배 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굶주림, 사람들의 외면, 자존심과의 싸움, 어이없는 가짜 '진실'... 지금이야 작가 본인도 웃으며 회고할 수 있고, 이렇게 유쾌한 필체로 풀어내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읽을 수 있지만, 정말 그 당시 본인의 심정은 피가 마르고 또 마르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왜인지 잘 모르겠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체포되어(공식적인 이유는 '불온 문서 출판'이었지만)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그 시간들을 인생의 오점이나 상처로 기억하지 않고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 이 글을 보며, 왜 아지즈 네신이 터키 국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작가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아지즈 네신의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다.

 

정말 정말 유쾌한 책이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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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양장) 겨레 전통 도감 1
윤혜신 글, 김근희.이담 그림, 토박이 기획 / 보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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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국어사전을 들여다본다.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실력 못지 않게 우리말 실력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국어사전 일독에 나선 것. 모르는 단어 찾을 때나 뒤적여봤지 마음 먹고 사전을 읽는 건 처음인데, 그 사전의 세계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한 번 빠지면 시선을 떼고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사전 속에는 단순히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있고, 경제가 있고, 철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종교가 있고, 스포츠가 있고, 그리고 문화가 있다. 수많은 분야의 용어들이 풀이 되어 있다보니, 국어 사전을 통해 뜻하지 않게 우리의 전통 문화를 종종 접하게 된다.

 

국어 사전 속의 한 단어로 만나는 우리 전통 문화는 익숙한 것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또는 '이런 것도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는 이 책의 제목인 '살림살이'에 관한 단어들도 꽤 된다. 몇 주 전에 KBS 1TV '우리말 겨루기'에서 1단계 다섯째 판 문제로 '살강'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2년 동안 우리말 공부를 했다던 여성 출연자가 '그릇 따위를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의 벽 중턱에 드린 선반'이라는 정확한 뜻을 맞췄다. 살강, 어렸을 때 할머니가 발음하시던 그 단어를 들어본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 살포시 떠올랐다. 하지만 대충의 모양새만 짐작이 갈 뿐,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그려내지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살강'을 만났다. 다른 어떤 살림살이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앞에서 말한 프로그램을 통해 접했던 것이기 때문인지도.(나는 그 프로그램의 열혈 시청자다) '살강' 외에도, 사전에서 봤던 이름을 가졌거나, 민속촌에서 옛집 안에 놓여져 있는 것을 봤던 살림살이들이 이 책 속에 대거 등장한다.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의 살림살이를 김근희 님 이담 님의 세밀화와 윤혜신 님의 글로 살려낸 것이다. 특히나 이제는 '전통 문화'라는 것과 너무나 멀어져 버린 듯한 우리 아이들의 시각에 맞추어 씌여져 있기 때문에, 글이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마치 전통 박물관에서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듯한 기분이다.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보기 힘든, 그렇지만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혼이 담긴 전통 살림살이들을 만나 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사전을 보며 자주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이 어째서 사전 속에서 잠만 자고 있을까. 이런 단어는 옛날에 많이 썼을텐데 왜 지금은 발음하기조차 낯설게 되어 버렸을까. 나는 그저 그 단어가 점점 잊혀져감에 안타까워했지만, 생각해보니, 잊혀지고 있는 건 비단 그 단어, 그 글자뿐 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서서히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져 가면서, 그와 함께 그것들의 이름, 그것들과 관계된 단어들도 함께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미 우리 전통 살림살이를 대체할 만한 더욱 과학적이거나 더욱 실용적이거나 더욱 심미안적인 살림살이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전통 살림살이를 부활 시키자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겠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우리 전통을 자주 접하고, 잊지 않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서재에 전통 문화 박물관 하나 들여놓은 기분이다. 참 뿌듯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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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기다리며
츠지 히토나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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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e my memory...

이 약을 삼키면 미친듯이 격렬하게 춤을 춘다. 그리고 기억을 잊는다. 나를 아프게 하는, 나를 슬프게 하는, 내가 잊고 싶은 그런 기억만. 신종 마약이다.

 

이 약 때문에 시로의 형 지로는 머리에 총을 맞고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다. 시로는 이국적인 외모의 남자에게 '루즈 마이 메모리'가 담긴 란도셀(가방)을 찾아내라는 협박을 받고, 이 일에는 뜻밖에도 지로의 옛 여자친구이자 시로와 묘한 감정을 맺게 되는 도모코가 얽혀있다.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 이야기들이 처음에는 중구난방인 듯 불쑥불쑥 어지럽게 튀어나오다가, 나중에는 하나의 끈에 가지런히 묶인다. 태양을 기다리는 영화 제작팀이 있고, 그 감독의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 과거(훼이팡)가 있고, 이국적인 외모의 남자 후지사와의 탄생 스토리가 있고, 그의 아버지 크레이그 부샤르의 일기장이 나오고, 의식속을 헤매고 다니는 지로가 있고, 시로와 도모코의 이야기가 있다. 별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 어떤 인연의 끈에 의해 하나로 묶이는 걸 느끼며 온몸이 찌릿.

 

장편 소설이지만, 한 권의 책이지만 이 많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더욱 풍성한 책읽기였다.

 

나는 '크레이그 부샤르의 수기'에 가장 깊이 빠져들었는데, 특히 원자폭탄 투하를 앞두고 이제 곧 자신이 사라질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이 내 마음을 아주 오래 묶어두었다.

 

그런데 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내 모습은 상상할 수 있어도, 그로 인해 내가 이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나라는 존재가, 이 세계 속에서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나는 도무지 인식할 수가 없다. 내가 없는 세계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아무리 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니, 내가 있기 때문에 세계가 있는 거라고 어려서부터 생각해왔다. 왜냐면, 내가 이렇게 사고하는 가운데 세계가 항상 있는 거니까. 지금까지는 늘 그래왔으니까.

...

내가 없어진 후에도 세계란 것은 남는다고 한다. 어디를 뒤져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따위, 있어서 좋을 리가 없다. 아니 있을 리가 없다. 왜냐면, 세계란 곧 나 자신이니까. 내가 이렇게 존재하는 자체가,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아니었던가.(332~333쪽)

 

바로 얼마 전에 '죽는다'는 것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던지라(자살을 생각했다는 게 아니고, 어느날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 남자의 심리 묘사가 너무나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 두려움, 내가 사라진 뒤에도 아무렇지 않게 남을 세계에 대한 배신감, 무언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초조함. 결국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을 맞게 될 우리 모두가 느끼게 될 것인지도.

 

어느날 내 앞에 lose my memory가 툭 떨어진다면 얼른 주워먹고 잊고 싶은 기억들 싹 지워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무엇을 지우고 싶은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싫은 기억? 슬픈 기억? 짜증나는 기억? 아픈 기억? 비록 떠올렸을 때 행복해지는 그런 기억들은 아니지만, 그 모든 기억이 뭉쳐져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 이것도 그냥 가지고 있고 저것도 그냥 가지고 있고. 결국은 다 내가 그러안고 가야할 기억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기다리는 태양은 나타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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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출판 - 북페뎀 09
강주헌 외 21명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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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 번역가를 꿈꾼 지 여러 해. 번역에 관한 책에는 자연히 관심이 간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출판한 <번역출판>은 격주간지 <기획회의>의 잡지 속의 잡지로 선보인 '번역출판'을 단행본으로 엮어 낸 책이다. 모두 21명의 번역가가 쓴 글들이 이 책 한 권에 담겨있다. 평소에 번역서를 볼 때면 역자 이름을 눈 여겨보다보니 눈에 익은 이름이 꽤 많이 보여서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이 책을 만나보게 되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번역에 관한 이야기들은 만나보기도 전부터 두근두근. 오랜만에 만난 번역에 관한 책이라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다.

 

1부 번역의 의의,에서는 '번역과 유럽의 발전', '서구자본주의 문명의 일본식 근대화', '다언어 지적 생산물을 자국어로 읽는다' 등 세 편의 글을 만날 수 있다. '번역과 유럽의 발전'에서는 12세기에 유럽에서 번역 활동이 어떤 시대 흐름 속에서 어떻게 진행됐는지, 당시의 번역자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번역 활동에는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를 소개한다. '서구자본주의 문명의 일본식 근대화'에서는 메이지 시대 일본이 서양어를 번역했던 시대적, 사회적 환경, 일본의 번역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던 조선에게 일본의 번역이 가지는 의의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다언어 지적 생산물을 자국어로 읽는다'는 필진 중 유일한 외국인 쓰노 가이타로 씨의 글인데, 주자의 독서론, 자동 번역, 문헌 디지털 베이스의 꿈 등에 관한 내용을 만나볼 수 있다.

 

2부 번역출판의 현재,에서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번역출판의 양적 성장과 그에 비해 뒤처져 있는 질적 성장, 국내 번역출판 지원 현황 등에 관한 글을 만나볼 수 있다. 번역의 질적 성장이 더딘 이유에 대해 실력 있는 번역가의 부재, 번역가에 대한 부실한 처우(가 실력 있는 번역가의 부재를 부르기도 한다), 출판인들의 안목 부재 등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내용에 특히 크게 공감하며 읽었다.

 

3부 번역가의 출판기회 경험기,를 읽을 때부터는 이미 해가 꽤 기울어 책을 읽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싶었지만(밖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한참 기다리며 읽고 있었다)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던지라 사위어가는 햇살 아래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이 책에서 내가 얼른 만나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3부부터 등장했기 때문. 프랑스어 전문번역가이자 기획자인 이재형 님의 번역·기획자로 살아가는 이야기, 역시 번역가이자 출판기획자 박중서 님이 들려주는 헌책방에서 건져올리는 보물 이야기, 번역가 김선희 님이 말하는 행복한 번역가의 조건, 출판 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 대표 임희근 님이 소개해주는 '사이에' 이야기와 기획에 관한 이야기 들을 흥미진진하게 만나보았다.

 

4부 번역, 나는 이렇게 한다,는 마치 교과서를 읽는 심정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읽은 부분이다. '인문학 번역의 람보와 록키'라는 제목으로 강주헌 번역가가 들려주는 인문학 번역 방법,  '문학 번역,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황보석 번역가 풀어 놓는 출판시스템의 문제점, 번역자의 문제점, 의역과 직역에 관한 이야기(!), '경제경영서 번역의 주의사항과 방법론'이라는 제목으로 안진환 번역가가 소개하는 실용서 번역의 원칙과 번역가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 정말 한 자라도 놓칠새라 바짝 집중하고 읽었다.

 

5부 번역과 나의 인생,에서는 번역가 이종인, 권남희, 조영학, 김선희 님의 글을 만날 수 있다. 4부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심정으로 읽었다면, 5부는 잔뜩 흥분된 마음을 조금 가라 앉히며 '선배 번역가'가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권남희, 이종인 번역가의 글은 <번역은 내 운명>을 통해서도 만나본 적이 있어 더욱 반가웠다. 스스로를 번역가가 아니라 '번역쟁이'라고 부른다는 조영학 님은 나처럼 '번역쟁이로서 달랑 번역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게 소원'인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충고한다. '이 바닥에 뛰어들기 전에 자신한테 남다른 재능이 있는지, 매달 원고지 1,500매 이상을 부지런히 두들길 인내와 끈기가 있는지, 더 나아가 그 피 말리는 과정을 (참아내는 차원을 넘어) 기꺼이 즐겨줄 광기가 있는지 차근차근 따져볼 일이다. 인생 걸고 애꿎은 도박할 일이 없다면 말이다.' 이 문장에 밑줄을 박박 긋고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나에겐 남다른 재능이 있나? 매달 원고지 1,500매 두들길 인내와 끈기는? 그 과정을 즐길 광기는? 내 안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으면 무척 기뻤을 일인데, 딱히 부정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기쁜 마음으로 긍정도 못한 그런 어정쩡한 마음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에게 자못 실망스러웠다. 나는 아직도 제대로 정박하지 못하고 떠도는 배였단 말인가, 내 마음 확고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내 마음을 다시 정비해봐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번역가 인터뷰도 무척 재미있었다. 인터뷰에서는 제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김진준 번역가, 어린이책 전무번역기획실 '햇살과나무꾼', 너무나 유명한 일본어 번역가 양억관 님을 만나볼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번역에 관한 책, 그리고 많은 번역가들의 글을 만날 수 있었던 책. 정말 즐거운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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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여행 1 : 그리움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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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7시 40분. 막 잠에서 깨어난 당신에게, 휴일 아침 늦장 부리지 않고 새 아침을 맞아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 있다. KBS 1TV 영상포엠 '내 마음의 여행'. 나는 이 선물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에게 아침 7시 40분은 한창 꿈나라를 헤맬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그동안 밀린 선물을 한 꺼번에 안겨주는 책을 만났다. 산타클로스의 빨간 주머니만큼 커다란 행복을 안겨다 주는 책을. 뭐 그리 착한 일하며 산 건 아니지만 책 부지런히 읽었다고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히 이 만남을 가졌다.(책읽기 마저 게을리 했다면 이런 예쁜 책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 아닌가!)

 

이 책을 읽고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의 여행'을 만나보았다. 인터넷 사이트 다시보기를 클릭한 후 18분 40초 동안 나는 내 눈을 사로잡는 아름답고 따뜻한 화면에, 따뜻한 커피향 같은 내레이터의 목소리에, 나를 천상으로 데려다 주는 듯한 음악에 그만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 일요일 아침마다 이렇게 좋은 선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왔다니, 이렇게 아쉬울 수가!

 

이 아름다운 화면과 내레이션과 음악을 한 권의 책에 담아 펴낸 것이 바로 이 책 <내 마음의 여행>이다. 한 번이라도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은 이 책이 어떤 느낌을 줄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위에서 내가 옮겨 놓은 미숙한 표현의 감탄들로나마 그 느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홈페이지의 프로그램 소개를 빌려오자면,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단순한 문화유산 답사기를 지양하고 PD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조명한, 그리고 알려진 문화유산과 함께 숨겨진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주제가 보이는 색깔있는 영상 에세이다. 이 책도 4가지 주제별로 그 이야기들을 엮었다. '그리운 어머니의 품 크고 깊은 계곡의 꿈', '동쪽 섬 새 해 뜨고 파도 위 푸른 소망 만나리', '삶의 길섶에는 저문 강이 흐르고', '삶의 다른 이름 인연'. 그 제목들도 아름다운 시구 같다. 첫장에서는 내 학창 시절을 보낸 곳 밀양이 '들길에 그대 그림자 물 위에 비친 그리움 _ 영남 알프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어 무척 반가웠다. 밀양에 10년 가까이 살면서도 가보지 못했던 곳, 이 책을 통해 만나니 어찌나 '나의 살던 고향'이 그립던지.

 

이 책에는 음악도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음악감동 손지명 씨가 주는 '영상포엠이 담은 12가지 음악선물'이 담겨 있는 것. 프로그램 하나에 음악을 담기 위해 어떤 수고를 거치는지 맛 볼 수 있어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고, 그의 탁월한 안목으로 추천해준 음악 목록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다시보기를 통해 영상을 직접 만나보고 나니 이 책에 소개된 음악들도 당장 찾아서 들어보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사진과 글과 음악이 함께하는 책. 삶의 무게에 지친 어깨를 조곤조곤 주물러주는 손길같은, 그리움에 흘러내리는 마음의 눈물 닦아주는 손수건같은, 희망에 부푼 가슴에 더 따뜻한 온기를 더해주는 햇살같은, 그런 소중한 선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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