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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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계속 우울한 나날이 이어졌다.

우울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증상,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기, 역시 나를 찾아왔다.

 

'나의 동생, 김인배에게'라는 헌사가 적힌 이 책은, 저자가 갑작스럽게 남동생을 잃고 6개월 뒤, 여러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려 떠난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혼자 있고 싶었다. 모두가 타인 뿐인 곳에서 아무런 구속없이 지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 방향을 향해 800킬로미터를 걷고 또 걷기만 한다는 그 길을 택했다. 혼자일 수 있으니까. 길 잃을 염려 없이 계속 걷기만 하면 되니까.

그 길고긴 '카미노'를 걷기 위해 등에 메고 가는 배낭은 6킬로그램이었지만, 마음속에 얹힌 그 짐은 무게를 가늠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길의 시작에 서 있는 저자의 마음(만큼은 아니겠지만)처럼 끝간데 모르고 추락하는 내 마음을 추스르며, 저자와 함께 걷고 또 걷기로 했다.

 

왜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꾸 울고 싶었다. 그냥 계속 슬펐고, 답답했고, 아팠고, 공감했다.

내 마음속에 갇혀 있는 무언가를 자꾸 건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주책맞게 눈물이 흘러도, 흐느낌이 터져 나와도 어쩔 수 없었다. 내 방이었다면 목 놓아 울었겠다.

 

혼자이고 싶어 떠난 길이었지만, 저자는 단 한 순간도 혼자 걸은 적이 없다.

서로 마음속에 품은 생각은 다르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녀 곁을 스쳐갔고, 그녀와 함께 걸었다.

그리고 바람으로, 구름으로, 꽃으로, 비로, 그녀의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걸어준 남동생이 있었다.

 

"낯선 사람들과 섞이는 경험은 마치 여러 개의 거울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수치스러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고, 스스로를 꽤 좋아할 만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던 순간도 겪었다. 절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가 낯선 이들 앞에선 술술 풀려 나왔다. 지루하고 서툰 내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듣고 등을 토닥여준 낯선 사람들의 호의를 직접 되갚지 못한 적도 많았다. 대신 나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이들에게 조촐한 위로라도 전하려고 애썼다."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며, 서로의 아픔을 위로해주며 걷고 또 걷는 그들을 보며, 나도 그 틈에 끼어 함께 걷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관계 맺기'에 서툰 내가, 갑자기 타인이 그리워졌다.

'처음엔 혼자 시작해도 거의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끝나게 되는' 그 길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 길에 함께 할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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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빗질하는 소리 - 안데스 음악을 찾아서
저문강 지음 / 천권의책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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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빗질하는 소리'라는 아름다운 제목에 이끌려 만나본 이 책은 부제에서 말해주고 있듯이

안데스 음악 여행기이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안데스 음악'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였기에 이 책은 내게 새로운 한 세계를 만나게 해 주었다.

 

20년 전 안데스 음악을 처음 만난 뒤, 지금까지 안데스 음악을 향한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저자 저문강.

그는, 그저 안데스 음악이 좋아, 안데스 음악을 더 알고 싶어, 그리고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안데스로 날아갔다.

'여행'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안데스 행은 여행이라기 보다는 성지 순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안데스 음악을 향한 짝사랑을 절절히 고백한 수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한 것은 물론 안데스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았다는 기쁨도 있겠으나,

그 보다 더 큰 기쁨은 책 전반에 가득히 흐르는 '열정'이었다.

안데스 음악을 향한 저자의 열정이 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가슴 속에서 뭔가 뜨겁게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안데스 음악에 '미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에 '미친' 사람이 쓴 글을 좋아한다.

어떤 한 존재를 향한 짝사랑으로 구구절절한 그런 글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그에 동화되어

삶을 대하는 자세가 좀 더 진지하고 뜨거워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를 미치게 하는 무언가가 있고, 또 그에 눈 멀고 귀 먹을 수 있기에 힘든 세상도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그 사랑을 이루어야겠다는 열망을 가지고라면, 우리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시간도 없다고.

 

서울 가던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다보니, 안데스 음악이 무척이나 듣고 싶었다.

'안데스 음악'의 존재를 몰랐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한참 읽다보니 지하철 역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이국 밴드가 떠올랐다.

바로 그 음악이 안데스 음악이리라. 

그리고 환승을 위해 내린 지하철 역에서 바로 그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을 재촉해 가 보니, 바람을 부르는 듯한 연주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에꽈도르에서 왔습니다."

10분 쉬었다가 다시 연주한다는 말에 그 앞에 자리잡고 앉아 계속 연주를 듣고 싶었지만,

약속 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뛰어가던 차라 그럴 순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섰지만, 그 잠깐의 연주 덕에, 다시 책을 펼쳐 들었을 때는 내 머릿속에 조금 더 선명한 안데스 음악이 흐를 수있었다.

 

참 희한도 하지.

그 전에는 그냥 슬쩍 쳐다보며 지나가고 말았는데, 이젠 그 음악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니.

안데스 음악과 만남의 길을 열어 준 이 책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며,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 그 매력 속으로 나도 푸욱 빠져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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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 변종모의 먼 길 일 년
변종모 지음 / 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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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병이다. 그것도 전염력이 대단한.

그리고 여행서는 두말 할 것 없이 아주 막강한 '여행병 바이러스'!

나는 그만 또 병에 걸려버렸다. 이 책 때문에.

 

바야흐로 여행의 계절.

쏟아져 나오는 여행서들 중에서 어느 것을 고를지 고민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 책이 내 눈에 화악 들어왔던 건 <짝사랑도 병이다>의 저자이기 때문.

인도를 향한 애절한 짝사랑을 달래주었던 그 책의 저자라니, 감동 보증 100%!

(참, 그 짝사랑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정말 멋진 선택이었지.

이렇게 예쁜 책이라니!

이렇게 예쁜 바이러스라면, 평생을 걸려도 행복할 것 같다!

(이런 책은 포토리뷰를 올려줘야 마땅하나, 사진 기술 꽝이므로 어쩔 수 없이 생략!)

 

이 책에는 따뜻한 가슴과 뜨거운 열정과 포근한 감동이 있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저자는 정말 가슴이 따뜻한 남자다.

책을 읽다가 마주치는 감동스러운 장면들...몇 번이나 코끝이 찡해졌다.

거기에, 여행을 위해 일곱 번째 사표를 내던지고, 전 재산을 정리해 훌훌 떠난 그 열정은 또 어떻고! 멋지다. 나는 늘 꿈만 꾸는 일을 현실로 옮기다니, 부럽다.

 

나도 아무것도 생각말고 모든 거 정리하고 훌훌 떠나보고 싶다.

"언제까지 머무를 거예요?"라고 누가 물어온다면

"레몬 나무에 레몬이 다 떨어질 때까지."라고 대답하면서.(나는 외국에서 본 나무 중에 레몬 나무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아. 어쩌면 좋나. 정말 지독한 병이다, 여행은. 만날 짝사랑!

올 여름에는 이 사랑 좀 이루어 볼까나?

사랑하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데!

 

오늘도 책상 옆의 지구본만 뺑글뺑글 돌리며, 짝사랑의 열병으로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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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 중국 고전 시와 사의 아름다움과 애수
안이루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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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목, 미녀 작가, 은은한 책 표지.

나를 중국 고전 시와 사의 매력 속으로 인도한 이 책의 첫 인상.

중국 시라면 두려움부터 이는 내가 겁도 없이 덥석 이 책을 읽겠다고 덤빌 정도로 이 3박자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매력을 더욱 강하게 내뿜으며 나를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심장이 콩닥거리게 만들어버렸다.

 

 

죽든 살든 만나든 헤어지든

그대와의 약속 이루고자 하였네.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해로하자던.

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1984년 생 젊은 작가 안이루가 재치있는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중국 옛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여느 소설보다도 더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마치 중국 고전 시에 관한 책이 아니라, 옛 사랑 이야기를 엮어 놓은 듯한, 그리고 그런 사랑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시를 한 편씩 곁들어 놓은 듯한 느낌이어서 시에 대한 부담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중국 고전 시를 몰라도 좋고, 어느 시대에 활동한 시인 누구누구같은 것도 몰라도 상관없다. 재미있고 애절하고 감동적이게 이 책을 읽고 나면 중국 고전 시와 사가 한결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와 있으니까.

'이른바 격조를 낮추고 불필요한 고상함을 버리고 읽어보면 작품이 정말 좋아서, 맑은 하늘의 난데없는 소나기처럼 밝고 구성진 느낌 때문에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지은이의 조언도 마음에 쏘옥!

 

 

사람들은 바다가 깊다고 하지만

그리움에 비하면 반도 되지 않지요.

바다는 끝이라도 있지만

그리움은 아득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

거문고 들고 높은 망루에 오르니

텅 빈 누각에 밝은 달빛만 한가득

상사곡을 타고 있노라니

애간장 끊어지듯 거문고 줄 끊어집니다.

人道海水深, 不抵相思半.

海水尙有涯, 相思渺無畔.

携琴上高樓, 樓虛月華滿.

彈着相思曲, 弦腸一時斷.

 

이렇게 아름다운 (그리고 쉽게 와 닿는) 시들과 함께 지은이의 아름다운 해설과 그녀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 머릿속에도 어쩐 일인지 그 옛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시만큼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 해석 덕분이다. 중국에서는 지은이의 파격적인 시 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시 해석에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오히려, 이 시는 이런 배경으로 씌여졌으며, 이런 의미를 담고 있으니 이런 방향으로 읽으시오, 하는 시 해석이 나는 별로다.) 그저 읽은 사람이 느끼는 대로,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고 나만의 시로 간직하면 더욱 아름다운 시 읽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다. 시 한 편을 가지고 먼 옛날로 날아가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지은이의 풍부한 상상력과, 또 그런 상상력에 힘을 실어 주는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부럽다. 

 

 

사랑은 삶에서 가장 찬란한 환각입니다. 잘 익은 술처럼 때로 아득히 먼 하늘가에 닿기 전에는 깨어나고 싶지 않습니다.(128쪽)

 

사랑이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증명 받고픈 허망함입니다. 꽃불은 불이 붙어야만 찬란해질 수 있듯 말입니다.(132쪽)

 

사랑, 그것은 일순간에 마음의 문을 두드려 봄날 꽃봉오리가 터지듯 다가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서서히 잊혀져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사랑했던 이를 또는 무지개처럼 찬란했던 그 순간의 달콤한 감정을 기억합니다.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을 기억.(224쪽)

 

아름다운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글들이 가득한 책. 특히, 사랑에 관한, 사람에 관한, 인연에 관한 글들이 어찌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던지 많은 글들에 밑줄을 그으며 이 책과 사랑에 빠졌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절이 함께 온다佳人佳時幷俱는 말이 있다시피 어느 글자나 구절이 다가서는 것은 마치 천지가 개벽하던 그 시절부터 그곳에서 그대가 다가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문장에 한참 시선이 머문다. 오래전부터 내가 다가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국의 옛 시와 나의 인연이, 이제 시작되는 것 같다. 모든 인생의 첫 만남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가장 강하게 내 마음에 와 닿은 한 구절!

 

값비싼 보석이야 쉽게 구하지만

마음에 둔 낭군 얻기 어려워라.

易求無價寶, 難得有心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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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 정목일 에세이집
정목일 지음, 양태석 그림 / 문학수첩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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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필의 대가' 정목일 님의 수필집을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보았다. 그 동안 '에세이'라는 장르의 글을 많이 접해봤지만, 이 글은 그 동안 읽었던 대부분의 에세이와는 달랐다. 얼마 전에 읽은 어떤 글에서 요즘은 진정한 수필을 보기 힘들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났다. 아, 이런 글이 바로 '진정한 수필'이라는 건가? 하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책 소개에 나와 있던 '서정수필의 대가'라는 표현도 떠올랐다. 피천득 님의 글을 떠올리게도 하는 아름다운 수필집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이 책과 함께 2009년의 여름을 맞이하는 마음이 참으로 따사로웠다.

 

글의 소재는 대부분이 자연과 사람이다. 자연도 사람도 늘 우리가 대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볼 때마다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와 비슷한 장면을 보고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한 장면으로 여겨버리는 나에게는, 그 장면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승화시켜 놓은 게 어찌나 경이롭고 존경스러운지! 그래서 수필은 보면 볼 수록 '매일 똑같은' 내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 느끼게 해준다. 내겐 일상의 스승같은 존재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어쩐지 고전 수필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의 느낌과 비슷한 책들을 더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데, 왠지 옛 글들에서 이런 향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책장에 꽂아만 두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이번 기회에 만나봐야겠다. 이 책은 내가 그 동안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수필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제목만큼이나 참으로 따듯하고 환하고 향기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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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아름다운 광경은 역광이어서 눈조차 뜰 수 없다. 눈이 부셔서 오래 바라볼 수 없는 것은 마음속에 담아 두라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얼싸안아 일체가 되는 것이리라.

  순수, 진실, 사랑, 신비, 깨달음은 눈이 부셔서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아름다운 역광인지도 모른다.(36쪽)

 

  열중하는 때는 삶을 통한 모든 체험과 지혜가 동원되는 순간이자, 영혼이 집중력의 빛을 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일에 골몰해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어떤 정신력에 감전이나 된 듯한 홍조가 떠오르고, 눈빛이 강렬하게 빛난다.

  아, 열중이야말로 최선의 정신력과 노력의 결정체를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열중할 수 있는 대상과 일을 찾아 마음의 방황과 갈등을 없앨 수 있을까. 절대의 의문과 만나서 그것을 푸는 일에 몰두 하고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윤택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43~44쪽)

 

  인생은 만남과 떠남으로 이루어진다. 만남은 떠남의 시작이며 떠남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떠나는 존재이며 그 과정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인간은 누구나 '일생'이라는 표를 내고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의 승객이 된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185쪽)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없게 되자 알싸하던,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던 김치 맛이 새삼 그리워진다. 자신을 소금에 절이고 뼈와 살을 녹여서 가족들을 위해 진국 맛, 젓갈 맛을 내던 어머니. 소리 없이 자신을 발효한 삶으로 가정에 건강과 웃음을 피워 내신 어머니. 아, 어떤 업적이나 남에게 내세울 일이 없더라도, 어머니의 일생은 거룩하고 훌륭하셨다.(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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