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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맨발로 걷다
이희영 지음 / 브리즈(토네이도)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나이를 나타내는 그 숫자가 보이면 귀가 솔깃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다른 숱한 여행서들에 묻혀서 내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를 이 책은 바로 그 숫자 때문에 내 눈에 들어왔다.
저자 이희영, 그녀 나이 서른에 그녀는 맨발로 걸으며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을까?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늙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서른, 아주 좋은 지금, 바로 지금을 껴안아야 한다.
그토록 소중한 서른에 우리는 최대한 행복해야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꿈꾸고
후회 없이 사랑하고
슬픔을 감추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며
온전한 나로 지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천천히 나이 드는 법이다.(16)
지금, 이 순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서른'을 보내고 있는 나는 이 책의 구절구절에 깊이 공감하고 감동하며
이미 이만큼 지나온 나의 서른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 지내야 할 서른의 모습을 그려봤다.
이 책을 통해 꽁꽁 언 내 마음이 추위를 피하는 법을 배웠고, 타인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으며,
한 해가 바뀔 때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에 가면 동양여성은 마음껏 키스를 나눌 수 있다는 흥미로운 정보도 얻었고,
낯선 나라를 사랑하는 이유가 굳이 거창할 필요는 없음에, 때로는 커피향 같은 사소한 것이 나를 매료 시킬 수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슴에서 일제히 붉은 열망들이 일어선다.
시간이 더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뜻밖에도 많은 것을 하고 싶게 만든다.(91)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담은 예쁜 사진들.
그 사진들에는 유난히 '사람'이 많다.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
길거리에서 둘의 사랑을 서슴없이 확인하는 키스하는 연인, 낯선이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주는 따뜻한 사람들,
어딘가로 떠나고 어딘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골목을 걸어가는, 어느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이들,
같은 추억을 회상하는 듯,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노부부……
그렇게 사람이 담긴, 사람이 느껴지는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뚜렷한 대상도 없이 괜스레 누군가가 그리워졌다.
사랑은 결코 소모적이지 않다.
길든 짧든, 깊든 얕든, 모든 사랑은 저마다 영혼을 한 뼘씩 자라게 한다.
그러니 사랑은 모두 다 성공이다.(117)
이 책은 저자가 '서른의 길목에서 찾아낸 삶의 지도'이다. '떠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떠나보지 않은 나는 알 수 없는 것들.
저자의 '삶의 지도'를 나눠보며, 어영부영 흘러간 내 서른의 일곱달을 가만히 떠올렸다. 슬몃 미안해진다. 나의 서른에게.
나는 나에게 어떤 삶의 지도를 그려줄 수 있을까, 머릿속에 괜한 그림만 그려보다 말았다.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 구하려던 나에게, 이런 책이라도 짜잔하고 나타나 준것이 그래도 얼마나 행운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참, 자전거 배우기와 사랑의 공통점은?
둘 사이에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건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재미있다.
나도 여전히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그리고 차라리 자전거 배우기를 포기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만다……
처음엔 용기가 필요하다.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넘어질 수도 있고,
방향을 잡지 못해 불안하게 흔들릴 수도 있다.
넘어지면 큰 상처가 날 수도 있고,
나중에서야 미세한 상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차라리 자전거 배우기를 포기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덤빌 수도 있다.
사랑이 그러하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42)
어찌되었든, 나는 '아주 좋은 지금'을 보내고 있고,
그러니까, 그토록 소중한 서른에 최대한 행복해야 한다! 지금 바로, 지금 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