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아니 에르노.

그녀의 이름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책 좀 읽는다는 지인들의 '강추'가 이어졌다.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권의 작품 중에서 '열정'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 이 책, <단순한 열정>을 아니 에르노와의 첫만남으로 삼았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아니 에르노.

그래서일까, 소설이라기보다는 현실에서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의 일기장을 그대로 훔쳐본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일기를 이처럼 쓸 수는 없지만, 소설가의 일기장이라면 이런 글들이 씌여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처음에는 이 소설이 왜 독서계를 경악시켰다는 것인가 금방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경악'스러운 이유는 바로 아니 에르노가 '체험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라는 것.

만약 우리 문단의 내로라 하는 작가가 '자전적 소설'이라면서 자신의 불륜 체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내놨다면,

나 역시 경악했을 게 분명하다.

 

 

너무도 단순해서 치명적인 열정,

감염되는 순간, 다 써버려야 하는 열정,

모든 기억을 쓰고 태우며 욕망의 극한에서 전율한다.

 

실연을 열 번쯤 하면 절로 시인이 된다고 하는데, 글을 쓰고 싶으면 사랑을 많이 하라는 말도 심심찮게 듣는데,

사랑과 실연은 글을 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많은 글들에 온전히 빠져들고 공감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건 같다.

내가 누군가와 이렇게 뜨거운 사랑에 빠져봤다면, 이 글들이 마치 내 일기장 속의 글귀처럼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지면 온 세상 유행가 가사가 자기 이야기 같다는 것처럼.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나도 짝사랑은 많이 해봤다는 것.

짝사랑에도 '단순한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그 '너무도 단순해서 치명적인 열정'을 조금은 맛봤다는 것.

 

제목 참 멋지다.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릴 듯 뜨겁기 그지없는 '열정'이지만, 또 얼마나 단순하기 그지없나.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다하다'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19)

 

그녀가 정의 내린 사치를 맘껏 누리며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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