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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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밤은 노래한다 / 김연수

2008 / 문학과지성사

 

첫 번째 읽은 날 : 2009년 10월 08일

세 번째 읽은 날 : 2009년 12월 29일

 

 

'2009년 김연수 다시 읽기' 프로젝트의 마지막 책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한 권씩 출간 순서대로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었다. 조금 밀려서 읽은 달도 있었지만 매달 김연수 작가의 책과 함께 한 일 년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 더 의미 있는 한 해처럼 느껴진다. 중간에 신작 소설도 읽고, 며칠 전에 다시 펼쳐든 책도 있고 하니, 일 년에 김연수 작가의 책을 열 다섯 번쯤 읽은 셈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대로 김연수 작가의 글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는가? 애당초 '이해'라는 목표 설정은 좀 잘못 되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내가 일 년 동안 끊임없이 그의 책을 만나며 얻은 것은 그의 문장들을 향해 더욱 깊어진 사랑이 아닐까. 그리고 그건 '이해'와는 달리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 일 년 동안 줄기차게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 가슴은 더욱더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것.

 

그리고 이 책은 띠지를 벗기면 나오는 새빨간 표지만큼이나 내 가슴을 더욱 빨갛고 뜨겁게 달궈주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세 번 읽어보았는데, 사실 받은 감동으로 따지면 두 번째 읽었을 때가 최고였다. 그때는 막 김연수 작가의 음성으로 이 소설을 들었던 직후라 책의 모든 페이지가 자동 음성 전환 서비스를 제공해주어, 마치 오디오북을 듣는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작가의 음성으로 들려왔기에 아주 특별한 감동을 맛 보았다. 그로부터 일 년여가 흐른 뒤 다시 들은 '밤노래'. 일 년 전에 비해 '오디오북'의 성능은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눈으로 읽고 귀로 듣는 문장들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켜켜이 아로새겨졌다. 그 아름다운 문장들을 그냥 눈으로만 보기 아쉬워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축농증의 후유증으로 코맹맹이 소리가 귀에 거슬리긴 하였으나, 노래는 소리 내어 불러야 맛, 그러므로 '밤노래' 역시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동과 아름다움이 책 읽기의 즐거움을 한껏 더해주었다.

 

세 번이나 이 책을 읽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 내용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건, 난 아직도 민생단이니 하는 그 시대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아니, 세 번이나 읽었는데, 어째서 이 내용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거야,라는 절망감이 들기도 했으나, 나는 머리보다는 가슴이 발달한 인간이라며, 그리고 김연수 작가의 글은 머리보다는 가슴에 가까운 글이라며, 그러므로 무언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나는 김연수 작가의 글과 가슴으로 소통했다며, 혼자 그럴듯한 위로를 해 주었다. 민생단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어떤가, 나는 해연과 여옥의 사랑을 지켜보며 전율을 느꼈는데. 정희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애절하고 애틋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는데. 해연이 여옥에게 바다를 느끼게 해주던 그 장면은, 아아, 김연수 소설의 명장면 중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김연수 작가 왈, "제 소설 중 제일 야한 부분인데."라고 하시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흠흠)

 

밤 바다의 파도 소리를 생각나게 하는 '밤노래'. 해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그 아름다운 문장들은 내 귀에 파도처럼 밀려들 것 같다. 새해에도 그 문장들을 향한 짝사랑은 식지 않고 이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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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봉투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제프리 브라운 고양이 시리즈
제프리 브라운 지음, 사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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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할 당시 나는 고양이에게 평소보다 조금 더 반해 있었다.

우리 강아지가 다니는 동물 병원에는 도도하고도 아름다운 고양이들이 꼬리를 치켜 들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내 주위를 어슬렁거렸고,

가을에 구입한 고양이 사진집을 펼치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만 같은 고양이들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출간 당시 제목을 눈여겨 봐 두었던 이 책을 기억해 내고 구입하게 되었다.

주변의 말을 듣자하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절대 공감을 보내는 책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양이를 키웠던 적은 있지만, 아주 어렸을 때 키운 고양이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없고, 그나마 아직 기억에 조금 남아 있는 시골집의 고양이들은 글쎄, 우리가 키웠다기 보다는 그냥 한 공간을 나눠쓰는 관계 같은 것이었달까? 우리와 놀아주기에는 고양이들에게 더욱 다채로운 바깥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고양이들은 기껏 마당에서 빨래는 너는 내 다리에 얼굴을 부벼주는 은총을 하사하신 정도가 전부이다. 가끔 기분 내키면 시내에 나가는 가족들을 동네 어귀까지 배웅하고 다시 유유히 귀가하시기도 했고. 아,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 일주일 정도 맡아 보살폈던 고양이가 있었구나. 하지만 일주일은 녀석과 내가 서로를 잘 알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고양이가 봉투에'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면 수확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만화를 보며 나는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그냥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내가 고양이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이기도 하겠고, 고양이가 보이는 행동이 머릿속에 많이 입력되어 있지 않은 탓이기도 하겠다.

만약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이었다면, 아마, 아아 우리 고양이랑 똑같잖아!!하며 환호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강아지 키우는 친구와 서로의 강아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몽이도!!!" 하고 맞장구치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의 아이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환호하는 순간의 기쁨은, 그 맞장구를 나눠본 사람만이 알리.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보며 맞장구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안타깝고 애석하고 슬프고 외로웠다.

고양이 세계에서 소외된 기분을 맛보았다고 하면 과장되게 느껴질까?

하지만 실제로 그랬는걸.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하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고양이 만화를 봤으니, 내가 진짜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가 의심이 되고, 일단 의심이 끼어든 사랑은 흔들릴 수밖에.

아아, 이 흔들린 사랑은 나의 사랑스런 사진집으로 다잡아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이 만화를 꼭 다시 꺼내어보리라. 그리고 박장대소하며 맞장구쳐야지! 어머, 우리 고양이랑 똑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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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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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는 추천을 받아 구입하고는 오래오래 책꽂이에 꽂아만 두고 있던 이 책을 부랴부랴 꺼내 읽은 건 뮤지컬 퀴즈쇼를 보기 위해서였다.(일요일에 있을 뮤지컬 관람을 위해 금요일에 꺼내 읽었으니 말 그대로 '부랴부랴'.)
꼭 소설을 보고 뮤지컬을 봐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원작 소설' 정도는 읽고 가야 예의(?)가 아닐까 생각하면서,뮤지컬 내용을 이해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하면서 이틀 밤 동안 열심히 읽었다.

뮤지컬 관람 전에 읽은 '원작 소설'은 확실히 뮤지컬 보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그런데 책 리뷰를 쓰자니 소설 속 문장이 생각나는 게 아니고 자꾸 뮤지컬 장면들이 머릿속을 장악해버려 좀 난감하다.

그래서 쓰는 김에 책 리뷰와 뮤지컬 리뷰를 두루뭉술 뭉쳐서, 그러니까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같이 쓰기로...흠흠.

 

책은, 여러 차례 '강추'를 들어와 기대했던 것 만큼 무척 재미있었다.

제법 두꺼운 책이었지만 몹시 흡입력이 있던지라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읽었(는지는 사실 시간이 지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복잡한 현실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인터넷에 접속해 빠져들게 되는 퀴즈방. 그 세계가 내 밤을 하얗게 칠해버린 일등공신이었다. '영퀴방'이라니, 정말 얼마만에 들어보는 단어인지 모르겠다!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연결해 나우누리에 접속하던 그 시절, 영퀴방에서 밤을 지새던 동생의 덕을 십 년이 훌쩍 지나서야 고마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영화에 관심이 없었던지라 영퀴방에서 퀴즈를 푸는 동생의 모습이 참 신기해보였고, 어떻게 저런 걸 다 알까 싶기만 했지, 그저 밤늦게 다다다닥 거리는 타자 소리가 거슬리기만 했지, 이렇게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움의 재회를 하게 될 줄이야.

영퀴방에서 퀴즈를 풀던 실력으로 티브이 퀴즈쇼에도 출연하고 또 그 인연으로 영퀴방의 히로인 '벽속의요정'을 만나 사랑을 키워나가고... 비록 졸지에 천애 고아가 되고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 고시원 쪽방에서 전전하다 그 마저도 쫓겨나는 신세가 되지만, 많이 서글프진 않았다. 젊으니까. 무책임하고 대책도 없고 가난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태연할 수 있는, 철없을 수 있는 젊은이니까.(그런 점에서는 나도 아직 싱싱한 젊은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쭐(이라니!)했다. 아, 정말 대책 안 서는구나.)

여기까지는 내게 추억을 불러 일으켜주며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나를 매료시켰다면 이후에는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판타지가 이어진다. 사실 소설에서는 이 현실과 판타지 구분이 모호한 이야기가 조금 지루하고 책의 분위기가 너무 갈리는 느낌이 들어 별로였다.

그런데 이 부분은 뮤지컬에서 좀 더 빛을 발하게 된 듯 하다.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 대부분은 소설에서 내게 사랑 받았던 앞부분이 아니라 이 뒷부분의 장면들이니까.



 

소설에서는 현실과 판타지의 분량이 4:1 정도 였던 것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전반 후반 거의 비슷한 분량으로 나눠졌던 것 같다.

뮤지컬 내용에 앞서 독특한 무대 장치가 무척 시선을 잡아 끌었다. 무대 전반에 설치된 반투명 스크린에는 채팅창이 뜨고 그 스크린 너머에서는 연기자들이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는데 굉장히 훌륭한 장치라는 생각에 감탄을 했다.(다만 음성과 채팅창 입력 문장이 제대로 맞지 않아 좀 헷갈렸다는 아쉬움이.)

소설에서는 퀴즈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면 뮤지컬에서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는 생각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영퀴방에 반가워하느라 미처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우리 시대 청년 실업자들의 모습이 뮤지컬을 통해 무척 가슴 찡하게 부각되었다. 4년제 대학 졸업은 기본이요 토익 고득점자도 넘쳐나고 부모 세대에 비하면 책도 많이 읽고 자격증도 많이 따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은데,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일자리는 없는 건지! 그들의 애타는 몸짓과 음성이 아직도 눈과 귀에 선하다. 면접 장면이 이 뮤지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무대 밑에서 지켜보는 나마저 어찌나 서글퍼지고 애가 타던지, 그만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더라는 건, 비밀... 어딜 가나 들려오는 '청년 실업' 소리가 지겨운, 하지만 그 소리에 가슴에 못이 박히는 젊은이들이 보면 깊이 공감할 것 같다.

후반부는 내가 책에서 살짝 흥미를 잃었던 판타지 부분인데, 뮤지컬 무대로 보니 색다른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장면 전환과 실제 퀴즈쇼 현장을 보는 것 같던 생생함. 아직도 무대를 빙글빙글 도는 은색 의상의 연기자들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대미를 장식한 키스신도 빼놓을 수 없겠다. 2층에는 모 카메라 동호회 회원들이 인기스타 기자회견을 방불케하는 카메라 장비들을 갖추고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었는데, 후반부 들어 완전히 수그러들었던 카메라 셔터 소리가 갑자기 쏟아져 키스신에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미안한 사연.

대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공연이었지만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음악이 약하지 않았나 하는 거다. 뮤지컬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뮤지컬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들은 영혼을 뒤흔드는 것 같은 노래를 들을 때였다. 공연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귓가에 맴도는 노래가 한둘 쯤은 있기 마련일텐데 딱히 기억에 남는 노래도 없고, 뮤지컬 보는 동안에도 노래가 아쉽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것만 뺀다면 대체적으로 감동적이고 만족스러웠던 무대!

 

그리하여 소설 퀴즈쇼와 뮤지컬 퀴즈쇼를 같은 기간에 함께 보는 색다른 경험을 즐겼는데, 소설 퀴즈쇼를 본 사람이라면 뮤지컬 퀴즈쇼도 함께 관람해 볼 것을 권하고 싶고, 뮤지컬 퀴즈쇼를 본 사람이라면 역시 원작 소설 퀴즈쇼를 함께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같은 듯 다른 책과 뮤지컬이므로 각각에서 주는 재미와 감동을 합친다면 엄지 손가락 두 개 쯤은 거뜬히 치켜들게 되리라는 것.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고, 아주 즐거운 책 읽기와 뮤지컬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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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 김사과 장편소설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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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 풀이 눕는다.

 

 

이 책, 이 느낌은 뭘까,라고 생각했는데, '폭풍 같은 사랑'이란 말이 떠올랐다.

폭풍 같은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꼭 이들의 사랑 같을 거라는 생각.

 

걷지 않으면 못 견디는 나날들, 왜 그런지 알 수도 없고 그냥 마구 걸어야 했던 그 날들에 마침표를 찍게 해 준 건 '풀'과의 만남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멀어져 가는 그의 등에 사로잡혀 무작정 따라간다.

그리고 바로 그 만남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고백한다, "당신을 사랑해요."

사실 이 장면에서 나는 한 번 멈칫했다.

말도 안되는 그렇고 그런 연애 소설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계속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민.

하지만, 애초에 김사과라는 내가 모르는 작가와의 첫 만남을 가지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된 것이기에, 어떤 소설이 될지 상관 않고 '김사과 알아보기'로 끝까지 읽기로 했다.

 

사랑에 대해 뭐라 말할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첫 만남부터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당돌한 여 주인공 때문에 적이 당황스럽고 무언가 허탈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가려니 내 마음은 자꾸 삐딱하기만 했다.

상식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분명히 한참 어긋나 있을 것 같은 그들의 행동들에 눈쌀을 찌푸리다가,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풀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 전시회에서, '나'에게 온 초대장을 받아들고 참석한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그들의 행동은 정말이지 '상식 이하'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를, 정말 '골 때리는' 모습이었다.

(특히 전시회에서는 정말 '나'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벌이는 행위 예술이 아닐까, 순간 의심을 하게 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살면서 딱 한 번만이라도 이렇게 미쳐봤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더니,

급기야는 '죽기전에 꼭 해야 할 일' 목록에 그들의 '전시회 퍼포먼스'를 추가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책을 덮을 때까지 나는 계속 이들이 부러웠다.

돌이켜보면 정말 밋밋해서 하품만 날 뿐인 내 삶이 어찌나 시시하게 느껴지던지.

어쩌면, 첫 만남부터 당돌하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 안에 눕는, 그래, 그 사랑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책 뒤표지에 적힌 문구가 가슴에 크게 와 박힌다.

"사랑 안에서 굶어 죽겠다, 아름답게. 그게 내 꿈이었다."

그래, 나도 그런 꿈을 가져보고 싶다. 사랑해서, 사랑으로 죽어도 좋다는, 그런 생각, 나는 평생 가지지 못할 그런 꿈을, 그들은 가졌으니까. 꿈을 이뤘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들이 부러웠던가 보다.

책을 덮은 지 한참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의 사랑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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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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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집어 들었다.

전작인 <완득이>와는 제목과 표지부터 어찌나 다른 느낌인지, 한 작가의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여서, 이번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무척 궁금했다.

 

이번에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파괴해야 했던 소녀 천지와 그 뒤에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참 무거웠다.

'자살'이라는 소재 자체가, 누구에게나 마음 편하게 다가가지는 않을 것이다.

'남겨진 자의 슬픔'을 맛본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편안하게 읽을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한 소녀가 떠났지만 절대로 통곡하지 않는 책.

되레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표정과 말투가 통곡보다 더한 슬픔을 안겨준 책.

책의 뒤표지에는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사실'과 '진실'의 퍼즐 맞추기'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나는 이 책에서 사실이 무엇이고 진실이 무엇인지, 그들이 늘어놓는 우아한 거짓말 이야기 보다는,

이 책을 보며 진한 공감을 느낄지도 모를, 천지의 입장이 되었든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남겨진 자가 되었든,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를 현실 속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현실에도 '천지'와 같은, '화연'과 같은 아이들은 분명히 존재할테니까.

나는 이미 지나온 지 한참 되었지만, 그리고 나 때와는 아주 많이 다를테지만, 그냥 이런 일들을 겪으며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비록 아직 제대로 된 어른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도 별 수 없이 어른이 되었다는 걸지도. 그래서 나의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의 이야기로 받아 들이게 됐을지도.

어떻게 보면 타인의 고통을 이해했다고도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남의 이야기를 들은 절대 타자의 입장이 되기도 했던 그런 시간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있던 건 앞에서도 말한, 통곡보다 더한 슬픔을 느끼게 해준 무덤덤함이었다.

아니 그건 무덤덤함을 가장한 통곡이었을까?

문득 '걸어다니는 무덤'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걸어다니는 무덤 

                   윤희상

 

지난 겨울,

나의 친구는

일곱 살 된 딸을

가슴에 묻었다

이제는 '걸어다니는 무덤'이 된 천지 엄마의 모습이 어찌나 아프던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문득 오래전 나도 느껴본 적 있는, '남겨진 자의 슬픔'을 떠올리게 한, 내게는 그런 슬픔을 남겨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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