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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 김사과 장편소설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폭풍 같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 풀이 눕는다.
이 책, 이 느낌은 뭘까,라고 생각했는데, '폭풍 같은 사랑'이란 말이 떠올랐다.
폭풍 같은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꼭 이들의 사랑 같을 거라는 생각.
걷지 않으면 못 견디는 나날들, 왜 그런지 알 수도 없고 그냥 마구 걸어야 했던 그 날들에 마침표를 찍게 해 준 건 '풀'과의 만남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멀어져 가는 그의 등에 사로잡혀 무작정 따라간다.
그리고 바로 그 만남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고백한다, "당신을 사랑해요."
사실 이 장면에서 나는 한 번 멈칫했다.
말도 안되는 그렇고 그런 연애 소설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계속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민.
하지만, 애초에 김사과라는 내가 모르는 작가와의 첫 만남을 가지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된 것이기에, 어떤 소설이 될지 상관 않고 '김사과 알아보기'로 끝까지 읽기로 했다.
사랑에 대해 뭐라 말할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첫 만남부터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당돌한 여 주인공 때문에 적이 당황스럽고 무언가 허탈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가려니 내 마음은 자꾸 삐딱하기만 했다.
상식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분명히 한참 어긋나 있을 것 같은 그들의 행동들에 눈쌀을 찌푸리다가,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풀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 전시회에서, '나'에게 온 초대장을 받아들고 참석한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그들의 행동은 정말이지 '상식 이하'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를, 정말 '골 때리는' 모습이었다.
(특히 전시회에서는 정말 '나'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벌이는 행위 예술이 아닐까, 순간 의심을 하게 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살면서 딱 한 번만이라도 이렇게 미쳐봤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더니,
급기야는 '죽기전에 꼭 해야 할 일' 목록에 그들의 '전시회 퍼포먼스'를 추가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책을 덮을 때까지 나는 계속 이들이 부러웠다.
돌이켜보면 정말 밋밋해서 하품만 날 뿐인 내 삶이 어찌나 시시하게 느껴지던지.
어쩌면, 첫 만남부터 당돌하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 안에 눕는, 그래, 그 사랑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책 뒤표지에 적힌 문구가 가슴에 크게 와 박힌다.
"사랑 안에서 굶어 죽겠다, 아름답게. 그게 내 꿈이었다."
그래, 나도 그런 꿈을 가져보고 싶다. 사랑해서, 사랑으로 죽어도 좋다는, 그런 생각, 나는 평생 가지지 못할 그런 꿈을, 그들은 가졌으니까. 꿈을 이뤘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들이 부러웠던가 보다.
책을 덮은 지 한참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의 사랑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