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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도감 - 꽃과 채소로 가득 찬 뜰 만들기 ㅣ 체험 도감 시리즈 5
사토우치 아이 지음, 김창원 옮김, 사노 히로히코 외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0년 2월
평점 :
겨우내 마당 한구석에 내버려두었던 화분에 웬 싹이 올라와 있는 것을 며칠 전에야 발견했다.
진한 자줏빛 싹들이 제법 예쁜 모습으로 실하게 올라왔다.
싹의 모양만으로도 작년에 그 화분에 자라던 아이가 누구인지 알겠다.
작년 봄, 하동 쌍계사에 벚꽃놀이 갔다가 데려온 금낭화이다. 금낭화가 다년생이라는 걸 몰랐기에 그 '빈 화분'에서 이렇게 반가운 새생명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게다가, 내 기억에 의하면 작년에 심은 건 두 포기였는데, 올해는 화분 여기저기에 퍼져서 네다섯 포기가 올라오는 것 같다. 반가움이 배가 된다.
아, 이제 봄이 온다.
2주 전쯤에는 '봄이 왔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으나, 올 겨울은 봄을 지나치게 샘내며 쉬이 그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이제나저제나 어두컴컴한 집 안 구석에 움츠리고 있는 화분들을 다시 마당에 내놓아 줄까 눈치만 보는 마음에 조바심이 인다. 마당에 내놓고 시원하게 물줄기 뿌려주려고 기다리다가 지쳐 옹색하게 컵에다 물을 받아 조심조심 뿌려주고 만다.
봄을 향한 기다림은 정말 길고도 길다. 그 긴긴 기다림의 끝자락에서 이 책을 읽었다. '꽃과 채소로 가득 찬 뜰 만들기'를 알려주는 책, 『원예도감』.
나처럼 마당 가득 초록이들을 해방시켜주기 위한 긴 기다림에 애태우는 사람들, 나처럼 늘 무언가를 기르지만 아직 어설프기한 한 사람들, 나처럼 '그린 핑거(식물을 잘 키우는 도사라는 뜻)'를 꿈꾸는 사람들, 나처럼 늘 가슴 한 구석에 꽃과 채소로 가득한 뜰을 그리며 사는 사람들, 나처럼…… 그러니까, 무언가를 가꾸기 좋아하거나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내가 활동하는 야생화 카페에 극찬을 하며 추천했던 책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이 책에는 『원예가의 열두 달』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와 함께 내가 가장 아끼는 '초록 책'이 될 것이다.
보통 실용서를 볼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보다 내가 원하는 부분만을 골라 읽으며 내게 필요한 지식만 습득하는 책 읽기를 하게 되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부분도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여느 소설책 못지 않게 재미있기까지 해, 밤이 늦도록 손에서 책을 놓지 못 했다.
책은 모두 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첫장에서는 문학 속의 정원 이야기를 들려주며 바로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1년에 적지 않은 책을 읽는 편이지만, 내가 만난 책 중에서는 정원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남은 책이 별로 없다.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는,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올 겨울에 모 인터넷 사이트 연재로 읽은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 나무수국이나 백일홍이나 테이블야자 등과 같은 식물들이 자주 등장해 반갑고 향긋한 마음으로 읽었던 게 전부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정원 이야기가 등장하는 책들이 무척 반가웠다. 스잔 힐의 『정원의 작은 길』, 필리퍼 피어스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프랜시스 버넷의 『비밀의 화원』, 크리스티나 비외르크의 『모네의 정원에서』,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 장 앙리 파브르의 『파브르 곤충기』, 어니스트 에반톰슨 시튼의 『시튼 동물기』, 엘리스 피터스의 『수도사의 두건』, 카렐 차페크의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 등이 이에 소개된 책들인데 이 목록을 잘 옮겨두었다가 '정원'을 주제로 한 책 읽기를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 먹어본다. 생각만해도 몸과 마음이 다 상쾌해지는 듯하다.
이렇게 문학적으로 처음을 열어 준 뒤, 이제 우리가 뜰을 가꾸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내용들을 친절히 알려준다. 여러 정원의 형식, 원예에 필요한 도구, 정원 흙과 거름 만드는 방법, 씨나 알뿌리를 심는 시기와 방법,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식물 늘리기, 그렇게 가꾼 뜰에서 얻은 것들로 만들수 있는 것들 등을 마치 아이에게 알려주듯이 친절하고 조곤조곤하게 전해준다. 아마도 실제로 어린 독자들도 염두에 두고 쓴 책인 듯, 책 내용 곳곳에 마당 한 켠을 쓰기 위해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라던가 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물론 전적으로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쓴 책은 전혀 아니다. 그만큼 쉽고 친절하게 알려준다는 이야기다.)
그 동안 내가 식물을 가꾸며 늘 어려워했던 부분인, 흙 만드는 법, 씨 뿌리는 시기, 해충 없애는 법, 각 식물의 특성 등에 대해서 이 책에서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올 듯 올 듯 오지 않는 봄을 향한 긴긴 기다림을 달래기 위해 집어든 책인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 세게 불타오르고, 계속되는 강추위와 황사 소식이 야속하기만 하다. 언제쯤에나 나의 화분들을 마당으로 해방시켜줄 수 있을까, 올해는 또 어떤 꽃들을 심어 내 마당과 마음을 향긋하게 가꿔볼까, 겨울 동안 잊고 있던 화분들에서 금낭화처럼 깜짝 선물을 만날 수 있으려나, 아아,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마음에 온통 봄, 봄, 봄, 봄, 봄을 향한 외침뿐이다.
_ "옛부터 '반나절은 일하고, 반나절은 바라본다.'는 말이 있는데 원예 일은 바라보는 일이 아주 중요하지. 보고 있으면 식물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거든. 요즘 사람들은 정원사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게으름 피운다고 못마땅해 하겠지만."(210)
_ 실패를 하면 그 원인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실패를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는 우리가 식물을 이해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262)
_ 뜰을 만들고 꾸미는 것은 우리들이지만 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꽃과 채소들입니다. 씨를 뿌리는 일은 우리가 하지만 그 뒤 식물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랍니다. 마치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부모 없이 아이는 생기지 않지만 일단 태어난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개척해야 하고 부모는 옆에서 그들이 자라는 것을 돌볼 뿐이듯 말이죠.(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