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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114)
컴퓨터 책상 바로 옆에 있는 책장에 메모지 두 장을 붙여 두었다. 몇 해 전에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김연수 작가의 글을 보고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글들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웃고 싶다면 지금 여기에서 웃어야만 한다.'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없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만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다.'
내 몸 어딘가에 내가 깨닫지 못 하는 어떤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절대로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
내가 이렇게 그리고 저렇게 그려봐도, 아무리 행복을 꿈꾸고 달콤함을 기다려도 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보이는 미래.
내가 나 자신과 만나는 대부분의 시간은 바로 저 둘, 과거와 미래에 있다.
나는 바로 지금 여기, 현재에 있지만, 늘 마음속으로는 과거를 떠올려보며 지난 실수들에 아직도 손발을 오그라뜨리거나 이제는 잡을 수도 없는 그때의 행복에 아직도 미소를 짓거나, 혹은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은 자신감과 행복으로 충만한 미래를 그려보며, 나를 억지로 거기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현실은 시궁창' 같기만 한데 말이다.
그래서 현실의 나를 바라보라고 조언하는 문장들이 보이면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지금 여기'.
내가 정말 살아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이자리 바로 여기인데...
나는 왜 이렇게 과거로만 미래로만 숨어들며 현실을 피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아내와 이혼하고 호텔에 머물며 아버지와 불편한 아침 식사를 하고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 탬킨 박사가 추천하는 주식에 투자한 윌헬름.
그의 하루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는데,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못 한 것인지, 사실 그의 이 구구절절한 하루 중 어디를 꽉 잡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현실에 처해 비참하고 서글퍼지느니 차라리 나를 과거나 미래의 아름다웠던 혹은 아름다울 것 같은 시간으로 살짝 옮겨 놓으면 안 될까? 정신 건강을 위해서.
밑줄 그은 문장은 굉장히 많았지만, 책 내용 자체가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윌헬름을 알거지로 만들지만 또 윌헬름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 탬킨 박사는 약간 돌팔이이자 사기꾼 같은 사람으로 나오는데, 나는 탬킨 박사가 등장 인물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작품 해설에는 끝내 돌팔이 사기꾼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나는 지금도 그 박사는 결코 돌팔이도 사기꾼도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책 속 그의 대사는 가슴 속에 새기고 싶은 문장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의 환자들도 그런 말을 들으며 치유 받지 않았을까?
가슴에 와 닿는 문장들이 많은 책이라, 나중에 다시 만나보고 싶다.
그때의 나는 오늘을 잡으며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_ 시간을 낭비했다. 그 시간들은 이제 단념해야 한다. 그밖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134)
_도대체 위아래 어느 쪽으로 봐도 거꾸로 보이는, 트럼프 카드에 그려진 얼굴처럼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109)
_ 여기, 내 가슴, 자네 가슴, 모든 사람들의 가슴 할 것 없이 사람의 가슴속에는 영혼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야. 수많은 영혼이 있지. 그렇지만 그중에서 중요한 영혼이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진짜 영혼과 가짜 영혼이야.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그러곤 반드시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느끼지. '만약 자네가 사랑할 수 없다면 도대체 자네는 무엇이란 말인가?' 내 말 알아듣겠는가?(120)
_ 사람의 가치는 그가 사랑하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21)
_ 잘 가거라, 청춘이여! 오, 잘 가거라, 경이로웠지만 어리석게 허송세월한 나날들이여! 나는 그때 얼마나 철없는 멍텅구리였던가. 지금도 그렇지만.(52)
_ 그 사람은 미쳤지만 동시에 제정신일 수도 있어요. 요즘 세상에서는 뭐가 미쳤고 뭐가 제정신인지 아무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으니까요.(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