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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굴기 중국역사기행
최대균 지음 / 푸른향기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그동안 접하던 것과는 좀 다른 여행서를 만났다.
이 책은 역사를 가르쳐온 전직 교사가 배낭 하나 메고 중국 대륙 곳곳을 누빈 경험을 기록한 역사 기행서이다.
'역사를 알면 도시가 보인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역사와 도시가 잘 어우러진 책이다.
중국어를 전공했으면서도 중국 역사에 참 무지하고 무관심한지라 가끔은 스스로가 한심하고, 남 보기에도 부끄럽고 그렇다.
'역사'라면 십 리 밖으로 줄행랑을 치면서도 '역사'라는 단어가 제목에 떡 하니 들어간 이 책을 읽겠노라고 집어들게 된 건, 앞으로 더 이상 무지와 무관심으로 무장하고 버틸 수만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책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중국 역사를 알려 줄지는 모르겠지만(많이 알려준다고 또 내가 다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적어도 역사에 대한 관심은 불러일으키길 기대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를 향한 경탄의 마음이 끊이질 않았다.
저자의 말대로 '역사를 알면 도시가 보인다'고, 역사를 아는 저자와 역사를 모르는 내가 본 도시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나는 워낙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습성 탓에, 중국에 얼마간 머무르는 동안에도 많은 곳을 다니지는 않았다. 그나마 얼마 다니지 않은 곳도, 대도시 몇 곳을 제외하고는 지명 조차도 기억하지 못 한다. 기껏해야 몇 장의 사진과 함께 간 이들과의 추억 정도를 기억 할 뿐.
그래서 이 책에서 만나게 된 도시들 중 내가 그 느낌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저자가 들려주는 중국 이야기가 나의 중국 이야기와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예로,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기억하는 데 있어서도, 나는 기껏해야 자금성이랄까, 이화원이랄까, 천단공원 같은 몇몇 유명한 명승고적의 외관만 떠오를 뿐, 그에 담겨 있는 역사적인 모습은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베이징 여행 시에 동행한 중국인 친구에게 간략한 설명을 들었어도 당시는 내 중국어 실력이란 게 역사적인 내용을 소화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었거니와, 무엇보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베이징 이야기는 명, 청이 교체되던 역사적인 시기의 장면이라던가, 명나라 숭정제가 망국을 눈 앞에 두고 나무에 목을 메고 죽었다던가, 완공된 이화원에서 환갑잔치를 열던 서태후가 산동반도에 상륙한 일본해군 소식을 듣고는 하필 이런 때 오느냐고 역정을 냈다던가, 조선에서 끌려온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천단의 제사의식에 참여했다던가 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베이징 거리를 거닐며, 베이징의 역사적인 장소들을 관광하며 전혀 떠올려보지도 못 했던 역사 이야기들이다.
역사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온 경험들을 살려 글로 녹여낸 것일까, 이야기는 쉽고도 매력적이다. 부담스럽지 않게 역사 이야기를 즐기며 중국의 유명한 고적지들을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서귀포 지명의 유래라던가, 증산도의 기원과 같이 우리나라와 관련하여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곁다리로 알게 되는 지식들도 꽤 재미있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었던 점은 저자의 성격이 꼼꼼한 것인지, 어디에서 어디까지는 얼마에 무엇을 타고 몇 시간을 달렸다, 어디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의 호텔에 얼마를 주고 묵었다, 조식이 제공되지 않는다, 어디의 입장료는 얼마이고 케이블카는 얼마이다 등등을 꽤 세심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실제 여행 계획을 짤 때 경비 면에서 참고할 만한 꽤 실용적인 내용이라고 생각됐다.
감성적인 에세이 형식의 여행서를 좋아해서, 여행서라면 주로 그런 책들만 봐왔지만, 이번에 맛본 역사 기행서가 꽤 매력적이라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계속해서 이런 책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